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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벌써 여러 해 전에 쓴 습작입니다. 고향떠나 살기 시작한 후로 귀국할 기회가 있으면 꼭 친구들을 졸라 산행을 합니다. 지리산 "종주"라는 것도 여러 번 했지요. 한 7-8년 전에 쓴 걸 다시 보니 기억에 새롭습니다. ---------- "지리산" 이른 저녁 뱀사골 대피소 거친 숨소리 비릿한 땀 냄새 사이에서 여섯 살 쌍둥이 자매를 만났습니다 엄마아빠를 따라 지리산 주능 백리길을 걷는다는데 울퉁불퉁 바윗길은 그냥 걸어도 해질녘 아우성 속에서 잠을 청하려면 엄마 아빠 품을 하나씩 차지해야 한답니다 내일아침부터 이틀 여섯 살 쌍둥이 뒤꽁무니를 따라 이번 산행은 동요를 부르며 하겠습니다. (2002년 6월)

시선(詩選) 2010.11.15

"가을 벚나무"

재작년인지 가을나무를 보고 써 두었던 시 한 수를 이번 가을 바람에 선 바로 그 나무를 다시 보며 조금 고쳤습니다. ----- "가을 벚나무" 끝으로 치닫는 길목에 선 저 손짓도 꽃이라고 부르지요 향긋하지도 화사하지도 않고 흰 꽃잎 흩날린 그 때 같은 흥분도 흥겨움도 없지만 못할 것도 없지않나요 일찌감치 붉게 탄 꼭대기와 바래가는 초록을 움켜쥐고 버틸 때까지 버티려는 안간힘 사이로 여긴 맑게 저긴 깊게 때론 진하게 때론 옅게 갖가지 갈색 노랑색이 어우러진 게 꽃처럼 좋지 않아요 하긴 비내리고 바람불면 흩어져 없어질 것도 한 이치 아닌가요 저 손짓도 꽃이라고 부르지요 마음에 새겨두기에는 오히려 더 좋은 듯 하네요 (2007년 11월 청우재에서) (2010년 11월 수정)

시선(詩選) 2010.11.04

"깐비엔(乾煸) 조리법"

"깐비엔(乾煸) 조리법" 중국음식점은 참 가지 각색이다. 땅덩어리가 워낙 넓으니 지방에 따라 음식이 가지가지이고, 그런 지역의 특색을 살리려다 보니 음식점의 종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지역 음식문화의 차이 말고도 음식점이 가지 각색인 이유는 또 많이 있다. 종업원 사이의 정보교환이 귀 옆으로 매달린 무선통신기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형음식점에서부터, 꼭 옛날 궁중이나 귀족의 가옥을 연상하게 하는 고급스러우면서 은밀한 곳도 있지만, 중국음식으로 보면 만리타향이랄 수 있는 미국의 시골 구석 뒷골목에 테이블 대여섯 개를 놓고 마치 소꿉장난 하듯 열어놓은 집까지 중국음식점은 참 진폭이 크다. 중국 큰 도시의 길가에 좌판을 벌이듯 열어놓은 먹거리 장소까지 포함시킨다면 정말 가지 각색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夫妻肺片과 '마알라(麻辣)' 맛"

"夫妻肺片과 '마알라(麻辣)' 맛" 세상 곳곳에 참 여러가지 맛이 있고, 그 중 어떤 맛은 아무리 맛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도 쉽게 좋아하기 어려울 수 있다. 실제로 역겹게 느껴지는 맛이 있기도 하고, 좋아할 수 있는 맛이라도 먹을 때의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두 번 다시 손이 가지 않는 맛을 가진 음식도 있다. 나도 참 여러가지 음식을 먹어보았지만 세상에 있는 갖가지 맛의 폭은 과연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동양에서는 갖가지 음식의 맛을 달고, 쓰고, 맵고, 짜고, 신 다섯가지의 기본이 되는 맛이 갖가지 비율로 배합되었다는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른바 "오미(五味)"인데 그건 "오행(五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중국문화에 "오행"이라는 게 있음은 두루 알려져 있다. 하긴 오랜 역사..

"생생하게 살아계신 허세욱선생님"

이라는 수필전문 문예지의 청탁으로 지난 7월초 돌아가신 허세욱선생님을 추모하는 글을 또 하나 썼습니다. 2010년 가을호에 실렸습니다, ----- "생생하게 살아계신 허세욱선생님" 선생님께서 영면하시던 날 저녁 나는 빈소에서 입맛 쓴 소주를 참 많이 마셨다. 그냥 소주가 아니었다. 6월 초 고문헌학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홍콩으로 가는 길에 잠시 귀국해 전화로 인사를 드리면서 찾아뵙겠다고 했었다. 편치 않으신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꼭 뵙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 밖으로 선생님께서는 오지 말라고 하셨다. 지금은 와도 소주 한 잔 같이 할 수 없으니, 회복한 다음 소주 한 잔 할 수 있을 때 오라고 하셨다. 학회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와 고대병원에서 뵙게 되었을 때는 이미 다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주잔을..

에세이 2010.09.24

"라오떠우푸(老豆腐)"

"라오떠우푸(老豆腐)" 우스갯소리로 하신 말이겠지만 결혼을 며칠 앞두고 가진 한 저녁자리에서 내 장인은 따님의 혼처가 원래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정해졌다고 하셨다. 마침 저녁상에 오른 두부요리가 화제가 된 끝에 나온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렸을 적부터 두부를 좋아해서 늘 두부공장집으로 시집을 보내야한다고 말해왔는데 어쩌다 보니 고리타분하게 중국고전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보내게 됐다는 말씀이었다. 내 자격지심때문이었는지 그 말씀이 그냥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았다. 그 때만 해도 중국이 아직 소위 "죽(竹)의 장막"에 가려져 있어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문학을 공부하는 게 그리 희망이 있어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그 때 내 인생의 청사진이 꼭 배고프게 살겠다는 선언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

"스즈터우(獅子頭)"

중국음식중엔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이름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서시설(西施舌)"이라는 음식이 그렇다.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서시(西施)의 혀"라는 뜻인데, 중국역사에서 손꼽히는 미인였다는 서시, 그것도 그 여자의 혀를 지칭하고 있으니, 도대체 어떤 음식이길래 그런 이름을 감당할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서시설"은 중국 동남해안에 위치한 복건(福建)성과 타이완의 동남쪽 해안에서 나는 조개의 한 종류인데, 이 조개를 재료로 조리한 음식도 그냥 "서시설"이라고 부른다. 일본음식에서 사시미 재료로 인기가 있는 미루가이라는 조개(우리나라에서는 왕우럭조개나 코끼리 조개라고 부른다)보다는 작은 편이지만 몸체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길고 통통한 수관(水管)부분이 식용으로 애..

"군신유의(君臣有義)"를 생각한다

"군신유의(君臣有義)"를 생각한다 나라의 중요한 직책에 지명된 사람들이 합당한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논의로 한참 사회가 떠들썩했다. 또 흠결의 혐의가 짙은 사람들이 지명되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에 정책의지를 강력히 실천하기 위해서 가까운 사람들을 기용하려다보니 흠결을 알고도 애써 외면했다고 이해해준다면 가장 선의적이겠다. 그러나 사람들이 대통령의 이번 지명에서 내가 데려다 쓴다는데 왠 말이 그렇게 많으냐는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았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이제까지 여러번의 고위공직자 지명에서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총리를 포함해 세 명의 지명자가 사퇴함으로써 마무리되었다고 하지만, 분명히 흠결이 있어보이는 사람을, 상당히 분명한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임명하기도 했으니, 진정한 마무리는..

에세이 2010.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