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음식 기행 20

"도(道) 닦는 음식"

"도(道) 닦는 음식" 뚜우푸(杜甫)가 리뻐(李白; 李太白)을 생각하며 쓴 몇 수의 시 중에 "이백에게 드린다(贈李白)"라는 작품이 있다. 열두 행으로 오언고시(五言古詩) 치고는 짤막한 편이다. 우선 작품을 읽어보자. 二年客東都, 뤄양(洛陽)에서 객지생활 두 해, 所歷厭機巧。 겪어야 하는 온갖 치사한 꼴에 진저리가 난다. 野人對腥羶, 거칠게 살며 늘 비리고 누린 음식을 대하다 보니 蔬食常不飽。 이제 푸성귀로는 배가 부르지 않아. 豈無青精飯, 푸른 정령의 밥이 어째 없는가? 使我顏色好。 내 얼굴빛을 좋게 해줄텐데. 苦乏大藥資, 이렇다할 보약재를 살 여유도 없고, 山林跡如掃。 산길 조차 걷지 않고 있구나. 李候金閨彥, 출중한 수재 이태백은 脫身爭幽討。 조정을 벗어나 그윽히 살면서 亦有梁宋游, 옛 양나라 송나..

"원조(元祖) 북경오리구이"

"원조(元祖) 북경오리구이" 중국 대학가의 뒷골목에 가면 종종 "라오띠팡(老地方)"이라는 옥호를 단 음식점이 눈에 띈다. 그 이름에서 "띠팡(地方)"은 "장소" 또는 "곳"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문제는 "라오(老)"라는 글자의 뜻이다. 그냥 이름만 얼핏 듣고 쉽게 생각하면 개업한지 오래되어 역사가 있다는 뜻으로 보일 수 있으나, 그 옥호를 단 음식점의 꼴을 보면 바로 그런 이해가 적절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우리 충청도 사투리로 "그이(게)딱지만한" 장소에 탁상 몇 개를 놓고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 대부분 역사고 뭐고 따질 게 없어 보인다. 말이 그럴 듯해 "옥호"지, 사실 옥호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어울리지 않는 보잘 것 없는 식당이 아니면 그 이름이 잘 붙지 않는다. 심지어 그 옥호에서 보..

"떠우푸깐(豆腐乾)"

"떠우푸깐(豆腐乾)" 중국 사람들이 참 다양한 방식으로 두부를 먹는다는 건 이미 소개했지만, 그 여러 가지 방식 중 우리와 아주 다른 게 바로 "떠우푸깐(豆腐乾)"이다. 떠우푸깐은 두부를 눌러 수분을 많이 제거해 만들기 때문에 두부에 비해 단단하다. 이름에 들어있는 "깐(乾)"이라는 글자가 바로 "마를 건"이니 그 특징을 잘 설명한다. 아무 조미 없이 그냥 눌러 물기를 뺀 것과 "오향(五香)"이라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향신료를 가미한 것, 그렇게 두 종류가 대부분이다. 보통 두부보다 쫄깃쫄깃해 질감이 특별하고, 물기를 많이 제거해서 그런지 조리한 후 상당기간 보관할 수 있어 편하다. 별스럽게 요리하지 않고도 길쭉한 성냥개비 모양으로 썬 후 부추나 절인 겨자잎과 함께 볶아내면 손쉽게 그럴 듯한 음식 한 ..

"빼갈의 추억"

"빼갈의 추억" 중국술하면 역시 "빠이지어우(白酒)"가 제맛이다. "사오씽지어우(紹興酒)" 같은 쌀로 담근 양조주도 잊기 어려운 독특한 맛이지만, "까오량(高梁 수수)"등의 몇 가지 곡식을 재료로 빚은 후 증류과정을 통해 만들어 낸 백주의 맑고 깨끗한 색깔과 맛은 다른 문화의 술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식도를 훑어내리는 뜨거운 촉감은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다. 사실 백주의 감흥은 혀와 식도로 다가오기 전에 코에서 먼저 시작한다. 품질이 좋은 백주는 누군가 식당 한 구석에서 한 병을 열어도 식당손님 모두를 그 향으로 매혹시킨다. 몇 년 전 타이완 정부의 높은 관직에 있는 친구가 선물한 "사오따오즈(燒刀子)"를 불광동의 어떤 조그만 중국집에서 함께 북한산에 다니는 선배, 친구들과 마신 적이 있었다. 병 ..

"신선놀음과 죽(粥)"

"신선놀음과 죽(粥)" 나는 중국여행중 종종 아침을 과식해서 하루종일 일정을 거북하게 지내곤 한다. 죽때문이다. 샤올룽빠오(小籠包)라고 하는 작은 만두 서너 개, 따듯한 콩국과 함께 먹는 중국식 도우넛 여우탸오(油條), 사오빙(燒餠)이라고 부르는 납작하게 구운 빵, 거기다 볶은 야채와 달걀요리 약간을 합하면 벌써 평소 먹는 아침의 양을 훨씬 넘어선다. 그런데 그만 일어서려고 할 때쯤이면 아차 죽을 먹지 않았네 하는 데 생각이 미친다. 그러면 기어코 한 그릇 먹을 수밖에 없다. 아니, 못 이기는 척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죽을 뜨러 간다고 해야 정확하고 솔직한 표현이다. 그런데 호텔이나 대학 내빈숙소의 아침식사에는 보통 흰 죽 하나, 무언가 다른 식재료를 넣은 죽 하나, 그렇게 두 종류 준비되어 있다. 마음을..

"썩어도 준치"?

"썩어도 준치"? 좀 익살스러운 표현을 쓰자면 원시적 채집경제라고 해도 좋았다. 이십여 년 전 포틀랜드에 이사와 보니 여기 교민들은 철마다 산으로 바다로 다니며 이것 저것 먹거리를 구했다. 먹을 게 없어서 그런 건 물론 아니었다. 신선하고 맛있는 먹거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고, 일상에서 벗어나 소풍 다니듯 놀며 하는 일이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우기의 끝나가는 4월 경 상당히 높은 산으로 올라가야 딸 수 있는 고사리로 시작해서, 바다 속으로 허리가 잠길 정도의 깊이까지 들어가 걷어내는 미역, 물 빠진 개펄에서 부삽으로 그냥 떠내는 어른 주먹만한 조개, 거기다 철에 따라 곳에 따라 크기와 모습이 다른 온갖 게에, 건기가 끝나는 초가을 무렵 비가 두어번 내리기 시작하면 돋아나오는 송이버섯까지, 무..

"차예딴(茶葉蛋)"

"차예딴(茶葉蛋)" 드디어 한 번 해 보았다. 달걀을 찻잎과 색 짙은 향신료를 푼 물에서 삶아내는 "차예딴(茶葉蛋)"을 집에서 만든 것이다. 중국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만나며 동하는 호기심을 참 오래도 누르며 살았다. 우리가 누군가. 달걀이라면 사죽을 쓰지 못하게 된 운명을 산 사람들 아닌가. 찜이건 프라이건, 말이건, 달걀이라면 형제 사이에서도 아귀다툼을 하면서 히히덕거린지 오래면서 왜 그 중국달걀을 맛보는데는 그리 시간이 걸렸을까.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왠지 길거리에서 그걸 사먹는 게 그리 마음이 놓이지 않아 미루기도 했고, 그러면서 종종 누군가 나를 청할 때 식탁에 내주었으면 하고 희망도 해보았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유같지도 않은 이유로 별로 대수롭지 않게 미루어진 것이..

말린 새우 "카이양(開洋)"과 무우 배추

말린 새우 "카이양(開洋)"과 무우 배추 무우나물은 내게 아주 특별한 음식이다. 별로 내세울 것 없는 반찬 한 가지를 가지고 무슨 호들갑이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긴 이렇다할 맛이 없는 담백한 맛을 맛으로 삼는 음식인 것도 사실이니 그런 생각도 그럴 듯하다. 그렇지만 내게는 벌써 오래 전에 아주 귀한 음식이 되었다. 특별한 기억과 연결되었기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겠다. 집이 한 동네여서 중학교 3년을 늘 함께 붙어다닌 친구가 있었다. 등하교 길을 콩나물 시루 같던 시내버스 안에서 같이 시달렸고, 그게 싫은 날은 함께 안국동에서 비원을 지나 창덕궁 담을 따라 걸어서 하교하기도 했다. 명륜동쯤에서 옆길로 새 탁구를 한 바탕 차고 나서야 귀가한 날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물론 네집 내집 없이 서로의 집을 ..

"깐비엔(乾煸) 조리법"

"깐비엔(乾煸) 조리법" 중국음식점은 참 가지 각색이다. 땅덩어리가 워낙 넓으니 지방에 따라 음식이 가지가지이고, 그런 지역의 특색을 살리려다 보니 음식점의 종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지역 음식문화의 차이 말고도 음식점이 가지 각색인 이유는 또 많이 있다. 종업원 사이의 정보교환이 귀 옆으로 매달린 무선통신기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형음식점에서부터, 꼭 옛날 궁중이나 귀족의 가옥을 연상하게 하는 고급스러우면서 은밀한 곳도 있지만, 중국음식으로 보면 만리타향이랄 수 있는 미국의 시골 구석 뒷골목에 테이블 대여섯 개를 놓고 마치 소꿉장난 하듯 열어놓은 집까지 중국음식점은 참 진폭이 크다. 중국 큰 도시의 길가에 좌판을 벌이듯 열어놓은 먹거리 장소까지 포함시킨다면 정말 가지 각색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夫妻肺片과 '마알라(麻辣)' 맛"

"夫妻肺片과 '마알라(麻辣)' 맛" 세상 곳곳에 참 여러가지 맛이 있고, 그 중 어떤 맛은 아무리 맛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도 쉽게 좋아하기 어려울 수 있다. 실제로 역겹게 느껴지는 맛이 있기도 하고, 좋아할 수 있는 맛이라도 먹을 때의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두 번 다시 손이 가지 않는 맛을 가진 음식도 있다. 나도 참 여러가지 음식을 먹어보았지만 세상에 있는 갖가지 맛의 폭은 과연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동양에서는 갖가지 음식의 맛을 달고, 쓰고, 맵고, 짜고, 신 다섯가지의 기본이 되는 맛이 갖가지 비율로 배합되었다는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른바 "오미(五味)"인데 그건 "오행(五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중국문화에 "오행"이라는 게 있음은 두루 알려져 있다. 하긴 오랜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