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서시집(竹西詩集) 166

죽서 박씨, "되는 대로 읊조립니다"

(이 짧은 칠언절구가 《죽서시집》의 맨 마지막에 실린 작품입니다. 시집 166 수의 영역과 우리말 번역을 일단 마무리한 셈입니다. 그 동안 보잘 것 없는 번역을 읽어 주시고 의견을 보내주신 분들께 마음 깊숙한 곳에서 부터 감사의 인사 드립니다.) 竹西朴氏 〈謾吟〉 明月如期小院東,人聲初靜九街中。 欄頭佇立還怊悵,詩轉難成意不窮。 죽서 박씨 "되는 대로 읊조립니다" 밝은 달이 기약했던 대로 작은 뜰 동쪽에 걸렸고 큰길의 사람들 소리 이제 조용해졌습니다 난간에 우두커니 섰는데 여전히 서글픈 것은 시는 마무리하기 어려워지고 하고 싶은 말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반빈 역) Bak Jukseo "A Random Chant" The bright moon, as expected, Hangs on the east of t..

죽서 박씨, "현청 서재에서 어쩌다 지은 시"

竹西朴氏 〈縣齋偶題〉 世機忘却自閒身,匹馬西來再見春。 東閣梅花今又發,清香不染一纖塵。 죽서 박씨 "현청 서재에서 어쩌다 지은 시" 세상에 대한 관심을 잊으니 내 몸이 그냥 한가해집니다 한 필 말을 타고 서쪽으로 와 두 번째 봄을 맞이합니다 동쪽 누각의 매화가 이제 또 피는데 맑은 향기에 티끌 하나도 묻지 않았습니다 (반빈 역) Bak Jukseo "Written by Chance in the Study at Prefecture Office" I become oblivious of worldly affairs, And my body is leisurely by itself. Having come westward on a single horse I see the season of spring the second..

죽서 박씨, "느낀 바 있어서"

竹西朴氏 〈有感〉 幾許敲椎一字詩,文章勞力自今知。 會心政遇磨針處,勤業須從鑿壁時。 萬卷藏來胷界闊,三江倒處筆端奇。 空虛愧我無精藝,到此方嗟悔恨遲。 注:頷聯用事二則成對仗。起句用李白遇老媼〈鐵杵磨針〉之傳說。事載於南宋祝穆《方輿勝覽》、晚明曹學佺《蜀中名勝記》等。對句用漢匡衡〈鑿壁偷光〉事。匡衡勤學而無燭,穿壁引鄰舍之光,以書映光而讀書之事,見《西京雜記》。 죽서 박씨 "느낀 바 있어서" 몇 번이나 한 글자 한 글자 두드리고 다듬으며 시를 지었나요 그런데 이제야 글쓰기에는 공을 들여야 함을 알겠습니다 마음으로 깨우치면 바로 쇠를 갈아 바늘 만들 곳을 만나고; 열심히 공부하려면 반드시 벽에 구멍을 낸 때를 따릅니다 만 권의 책을 소장하면 마음의 폭이 넓어지고 세 강 물길 휘돌아 흐르는 듯 붓끝의 움직임이 기묘합니다 세련된 예술의 경지에..

죽서 박씨, "당신께 올립니다"

竹西朴氏 寄呈 黃梅雨後綠槐風,月落西牕曙色空。 低首含情封錦字,停盃無語望青穹。 百聞一見何曾比,萬度千思未易通。 逆旅浮生猶努力,如君當作黑頭公。 (首句雨字,警修堂本作兩。疑誤。) 注:三句〈錦字〉,錦字書也,刺繡於錦之書札也,後為妻子寄呈丈夫之書之通稱。末句〈黑頭公〉謂二毛前任高位也。語出自《晉書》〈諸葛恢傳〉。 죽서 박씨 "당신께 올립니다" 매실 익는 계절 비가 지나고 푸른 회화나무에 바람이 불면서 달 떨어진 서쪽 창가가 새벽 빛으로 텅 비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사랑을 담아 비단 편지를 마무리하고 술잔을 멈춘 채 말 없이 푸른 하늘을 바라봅니다 백 번 듣는 소식과 한 번 뵙는 만남을 어찌 비교할 수 있나요 만 번 궁리하고 천 번 생각해도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객사에 잠시 머무는 떠돌이 삶이라도 노력을 해야겠지요 당신은 젊은..

죽서 박씨, "현청 서재에서 외로움을 떨어냅니다" 둘째 시

竹西朴氏 縣齋消寂·其二 世情人事兩茫然,哀樂何妨置一邊。 春去黃鸝聲已澁,秋來綠竹節尤堅。 尖纖病骨寒生粟,零落歸魂日抵年。 只是青山長不厭,相看如畫在簾前。 죽서 박씨 "현청 서재에서 외로움을 떨어냅니다" 둘째 시 세상의 사정이나 사람의 일이나 둘 모두 막막합니다 슬픔도 기쁨도 한 편에 놓아둔들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봄이 가면 노랑 꾀꼬리 울음소리가 떨떠름하고; 가을이 오면 푸른 대나무 마디가 더욱 든든합니다 가녀린 병든 몸 추위에 소름이 돋고; 시들어 꺼져가는 영혼 하루를 한 해처럼 지냅니다 오로지 푸른 산만 오래 보아도 싫증나지 않아 바라보면 주렴 앞에 걸린 그림 같습니다 (반빈 역) Bak Jukseo "Dispelling Loneliness in the Study in Prefecture Office": S..

죽서 박씨, "현청 서재에서 외로움을 떨어냅니다"

竹西朴氏 縣齋消寂 閒居睡到夕陽蟬,隔水邨家起暮煙。 胷裏文詞纔一半,身邊世界儘三千。 可憐虛送青春後,何故長嘆白日前。 且惜寸陰勤事業,聖賢元不在於天。 죽서 박씨 "현청 서재에서 외로움을 떨어냅니다" 한가히 지내며 잠 자다가 해질녘 매미 울 때 일어나니 강 저편 마을 집들에서 저녁 연기가 피어 오릅니다 가슴 속의 글귀는 이제 겨우 반을 지었을 뿐인데; 내 주변의 세계는 삼 천에 이릅니다 가련하게 허무하게 푸르른 봄철을 보낸 후; 무슨 이유로 그리 길게 흰 태양 앞에서 탄식하나요 짧은 시간이라도 아껴 부지런히 일해야 하겠습니다 성스럽고 어진 사람이 되는 게 원래 하늘에 달려있지 않지요 주: 넷째 구절은 불교용어인 "삼천세계(三千世界)"를 이용합니다. 사대주(四大洲)와 구산팔해(九山八海)가 중심에 있는 수미산(須彌山)을..

죽서 박씨, "경치를 보고"

竹西朴氏 即景 靜夜頻看織女明,江城物色故多情。 池塘淡月含秋氣,林木涼風作雨聲。 好學何曾通萬古,耽眠猶是卜平生。 高雲不得同歸去,百尺層欄按墨兵。 (四句雨字,警修堂本作兩。疑誤。) 죽서 박씨 "경치를 보고" 조용한 밤이면 종종 밝은 직녀성을 봅니다 강 마을의 경치는 예로부터 다정했지요 연못 위 희미한 달은 가을의 기운을 머금었고; 수풀 속 서늘한 바람이 빗소리를 만듭니다 배우는 걸 즐긴다고 해서 언제 오랜 세월을 꿰뚫어 알 수 있었나요 잠을 좋아하는 게 어쩌면 평생의 점복일 수 있지요 높은 구름과는 함께 돌아갈 수 없지만 백 척 높은 난간에서 시 지을 궁리를 합니다 (반빈 역) Bak Jukseo "Stimulated by the Scenery" In a quiet night, I often look up the b..

죽서 박씨, "그대와의 만남"

竹西朴氏 逢人 萍水初逢似舊知,多情談笑問前期。 青燈影裏淋漓飲,忘却西牆月欲移。 죽서 박씨 "그대와의 만남" 부평초처럼 떠다니다 처음 만났지만 오래 알던 사람 같았습니다 다정하게 웃고 이야기하며 그 전의 만남에 대해 물으셨어요 파란 등불 그림자 아래서 흠뻑 마시다 보니 서쪽 담장 위 달이 움직이려는 걸 잊고 잊었었지요 (반빈 역) Bak Jukseo "The Meeting with You" We first met adrift like duckweed on the water, But you seemed an old acquaintance. Genially we laughed and talked, And you ask about the earlier encounter. Drinking to our heart's ..

죽서 박씨, "마음 속의 생각을 노래합니다"

竹西朴氏 咏懷 流水聲中歲月移,人間易盡百年期。 惟宜種德心田闊,每擬酬恩眼界遲。 春㬉秋涼猶可辨,昨非今是有誰知。 先賢遺訓餘經籍,指路明明却不疑。 죽서 박씨 "마음 속의 생각을 노래합니다" 흐르는 물소리 속에 세월은 가는데 사람들은 쉽게 백 년의 시간을 써버립니다 덕을 심기에 적절하려면 오로지 마음의 밭이 넓혀야 하는데; 은혜를 갚으려 하면 언제나 눈썰미가 느릿합니다 봄에는 따뜻하고 가을엔 서늘한 것은 구분할 수 있지만; 지난 날이 그르고 지금이 옳음을 누가 있어 알겠습니까 선현이 남기신 가르침이 경전에 담기고 넘쳐 갈 길을 분명히 보여주기에 의심이 없습니다 (반빈 역) Bak Jukseo "Singing Thoughts in My Heart" The time flows, In the sound of flowing..

죽서 박씨, "낮잠 주무시는 큰 오라버니께 장난을 겁니다"

竹西朴氏 戲伯兄午睡 閉門隨處有山林,偏是山林午夢深。 浪跡已愁千丈髮,閒談空負百年心。 啣盃喜似探花蝶,厭讀堅同折柱琴。 何敢戲嘲惟勸勉,淘沙試見揀黃金。 죽서 박씨 "낮잠 주무시는 큰 오라버니께 장난을 겁니다" 문을 닫아 걸어도 가는 곳마다 산과 숲이 있지요 여기저기가 모두 산과 숲인 건 한낮의 꿈이 깊은 때문이겠지요 물결이 남기는 지난 근심이 천 길 머리칼이고; 한가하게 이야기하는 괜한 매정함은 백 년의 다짐이었지요 술잔을 입에 달고 좋아하시는 모습이 꽃을 들여다 보는 나비를 닮았고; 책 읽기 싫다고 고집스럽게 버티는 건 안족 부러진 거문고와 똑같습니다 어찌 감히 오라버니를 놀리고 조롱하겠어요 오로지 열심히 공부하시라 권할 뿐입니다 모래를 일면서 잘 들여다 보아야 황금을 골라 낼 수 있지 않나요 (반빈 역) B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