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詩選)

“큰고모”

반빈(半賓) 2020. 11. 26. 03:26

"큰고모"

 

버스 길도 잘 모르니 걸어갑시다

지도 보니 그리 멀지 않아요

 

둥지부터 세어보니

오 천 걸음쯤

열심히 걸어

등짝에 송송 땀이 맺히면

고모댁입니다

 

다 키운 아이들이 모두 떠나고

팔순 노인이 혼자 사시니

자주 가 뵙시다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매 주일 가지는 못해도

두어 주일 가지 않으면 허전해

오가며 만 걸음 걷는 길을

꽤 자주 다닙니다

 

일찍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와는

시누이 올케 사이인데

늘 우리 어머니 편을 들어 주셨고

그래서 우리는 늘 고모 편이었습니다

 

노인이 되시기 전

고모댁에는 밥 먹으러 갔었습니다

솜씨가 좋아 밖의 음식이

따를 수 없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이웃과 교우들, 동사무소도

음식을 해다 드리는데

잘 드시지 않는 것 같아요

 

맛있는 것 드시러 가세요

 

사리원면옥에 모시고 가

불고기를 시키면

홍어찜이 반찬으로 놓이고

 

월산면옥에서는

돼지갈비를 시키면

육회가 따라 나옵니다.

 

강쇠네에선

어떤 음식을 시키든 먼저

생 간에 처녑을 한 접시

가득 줍니다

 

참 잘 드세요

젊었을 때는 별로

고기를 드시지 못하셨다며

한풀이처럼 드십니다

 

하시는 말씀은 늘 같은 말씀

나나 아내나

처음 듣는 것처럼

열심히 듣습니다

 

늘 우리 어머니 편이셨고

우리 어머니가 많이 의지하셨는데

그것도 못하겠어요?

 

(2019.3.20)

("둥지틀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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