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056

"일흔 일곱 번? 아니면 사백 구십 번?"

"일흔 일곱 번? 아니면 사백 구십 번?" "내게 죄를 지은 형제를 몇 번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 하면 되겠습니까?" 이렇게 묻는 베드로와 그 정도로는 아주 부족하다고 지적하는 예수님과의 대화를 기록한 마태오복음 18장은 자주 들어 친숙한 말씀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이 정확히 무엇이었고, 그걸 어떻게 읽어야하는지는 묵상할 숙제로 남는다. 우선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지금 미국에서 사용하는 매일미사는 "not seven times but seventy-seven times"라고 적는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이란 뜻이다. 이 숫자가 이제까지 알고 있던 것과 달라서 우리말 번역을 확인하니 두 가지 서로 다른 대답이 있다.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는..

에세이 2015.08.26

"새로운 국가모델로서의 미국"

"새로운 국가모델로서의 미국"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실제로 새 국가를 건설하는 일이 새 국가의 탄생을 선포하는 독립선언보다 훨씬 어렵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내외의 사정이 모두 신생국가인 미국의 건설을 어렵게 했다. 전후에 겪어야했던 경제난은 참으로 심각했다. 막대한 전비의 지출로 생긴 인플레와 심각한 불경기도 그랬지만 전쟁 중 망가져버린 생산과 교역의 복구도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외부로부터의 압박도 심각했다. 특히 스페인과 영국은 북미대륙에 병력을 유지하면서 신생 미국에 위협적인 존재로 남아 미국의 입지를 어렵게 했다. 복잡하게 얽혀 서로 충돌하는 미국 내의 이해관계도 조정하기 어려운 과제였다. 미국이 처음 고안한 연방정부는 이러한 어려움을 감내하고 대처할 능력이 없었다...

"하나로 남기 위한 미국의 노력"

"하나로 남기 위한 미국의 노력" 미국은 여러 개의 주가 모여 이룬 연방국가로, 연방의 사회적 응집력을 지켜 하나로 남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미국 역사의 이러한 특징은 우선 국호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미국의 공식 국호는 “미합중국” 또는 “아메리카 합중국”이라고 번역되는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이다. “다수의 개체[중(衆)]”가 하나로 “모여[합(合)]” 만들어진 나라라는 뜻을 지닌 명칭이다. 이 이름에는 자칫하면 서로 충돌할 수 있는 두 가지 의지가 담겨있다. 그 하나는 개체를 존중한다는 의지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연합을 지켜내겠다는 의지이다. 물론 개체에 대한 존중이 없이는 진정한 의미의 연합이 가능하지 않고, 합쳐진다는 전제 없이는 개체의 존중도 무의미하므로 이 ..

"죽어야 가는 하늘나라와 밀알"

"죽어야 가는 하늘나라와 밀알" 주일미사를 집전하던 신부가 어린이들을 제대 앞으로 불러모았다. 미국 성당의 주일미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말씀의 전례가 시작되면 신부는 제대 앞으로 모은 어린이들에게 오늘의 말씀을 통해 무얼 생각해 볼지를 몇 가지 제시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주일학교 선생들의 인솔로 잠시 그 자리를 떠나 성찬의 예절에 돌아올 때까지 따로 말씀의 전례를 진행한다. 미사를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그날의 말씀에 대해서는 어린이들의 언어로 생각해보라는 배려인 것이다. 신부가 어린이들에게 물었다. "너희들 중에 누가 하늘나라에 가고 싶으니?" 어린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까치발로 서서 손을 흔들어대며 대답했다. "저요, 저요, 저요." "저요, 저요. 저도 갈래요." 신부가 다시 입을..

에세이 2015.03.29

〈무릎꿇고〉 경배한다는 말

"〈무릎꿇고〉 경배한다는 말" 아기예수가 태어난 환경을 재현한 마굿간의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띄는 계절이다. 말구유에 누운 아기예수와 어머니 마리아, 아버지 요셉이 있고, 말과 당나귀, 양 같은 동물 몇 마리, 목동이 두엇 있는 게 보통이다. 주의 공현축일이 되면 동방박사 세 분이 또 마굿간에 도착한다. 목동과 동방박사들은 대부분 무릎을 꿇고 있거나 허리를 깊이 숙이고 있는 모습이다. 세상에 오신 아기예수를 경배하는 그런 모습은 성탄절에 흔히 보이는 모티프의 하나다. 눈에 뜨일 뿐 아니라 또 자주 들린다. 귀에 익은 크리스마스 캐롤의 하나인 "오오, 성스러운 이 밤(O Holy Night)"의 후렴은 이렇게 노래한다. 무릎을 꿇지어다. 천사의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오오 거룩한 이 밤, 그리스도가 태어나신..

에세이 2015.01.01

Thanksgiving 2014

올해 추수감사절에는 20 파운드짜리 칠면조와 10 파운드짜리 햄을 포함해 음식을 준비하고 가족과 친구, 학생들을 초대했습니다. 저녁식사에 앞서 다음과 같은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In this season of Thanksgiving, a Chinese phrase comes to mind: "For every bowl of rice and porridge, we must keep in mind that they do not come easy; for every thread and twine of cloth, we shall remember the endeavor that creates the power of things. 壹粥壹飯,當思來處不易;半絲半縷,恆念物力維艱。" Our thoughts should ..

에세이 2014.11.29

추수감사절 준비

추수감사절 준비 어쩌다 보니 와서 살게 된 미국땅, 이역만리에 생각치 않게 또아리를 튼지 벌써 30년도 훌쩍 넘어버린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회 속에서의 생활이 과식한 후 속 거북한 느낌으로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늦가을 겨울의 문턱에 찾아오는 추수감사절만은 늘 깊은 감동으로 맞이합니다. 명절의 뜻도 뜻이지만, 한 해의 마무리를 위해 내 생활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때라 그런 듯합니다. 몇 년 전에는 추수감사절 아침부터 내가 감사할 일, 고마워 해야할 사람들을 적어보기도 했습니다. 아침부터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다 보니 점심 때를 지나서도 아직 쓸 게 남아있었습니다. 감사할 일이 참 많은 과분한 삶을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음을 확인했지요. 올해는 세상 구석구석..

에세이 2014.11.24

“歲寒曲 (추운 시절의 노래)”

갑오년이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이 더 지났습니다. 갑오년을 맞으며 한시를 한 수 썼던 게 기억납니다. 소람하세요. 〈歲寒曲〉 風簌簌,能不觫,家遠人自惑, 雲陰陰,客喑喑,日斜當痛飲。 孤燈雖昏奔萬里,睡夢恐僅爬一寸。 鼓凍殘聲漫縈繞,歲寒遊子仍交困。 (二賓寫於甲午前夕) 〈세한곡〉 풍속속, 능불속, 가원인자혹, 운음음, 객음음, 일사당통음. 고등수혼분만리, 수몽공근파일촌. 고동잔성만영요, 세한유자잉교곤. (이빈사어갑오전석) 〈추운 시절의 노래〉 휘익 휘이익 부는 바람, 떨지 않을 수 있을까? 집은 멀고 나는 홀로 갈팡질팡. 침침한 구름 속, 목소리 잃은 객— 해가 기울면, 물론 통쾌히 마셔야겠지. 외로운 등불 희미해도 만리를 달리지만, 깊은 잠 꿈속에서는 한 치나 길 수 있나 두렵다. 북소리 얼어붙어 잦아..

시선(詩選) 2014.07.25

"정말?"

잠시 귀국한 사이 마침 고등학교 졸업 40주년 기념 "추억의 수학여행"이란 행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 많이 만났습니다. 만찬 중 회장의 부탁으로 즉석에서 이런 시를 하나 써 읽었습니다. ---------- "정말?" -고등학교 졸업 40주년에 정말? 아아, 그랬구나. 참 잘 됐네. 축하해. 내 술 한 잔 살께. 정말? 아아, 그랬구나. 걱정이 많았겠다. 지금은 괜찮지? 그래도 그만한 게 다행이야. 힘내. 정말? 벌써 세월이 그렇게 지났나? 이제 시집만 보내면 되겠네. 짝은 있대? 정말? 그새 손자를 봤어? 다행히 할머니 닮았지? 그런데 할머니하고 자는 기분은 어때? 정말? 나는 따님을 모시고 온 줄 알았어. 비결이 뭐야? 늘 이고 다니시는 모양이지? 아무튼 부러워. 정말? 그래, ..

시선(詩選) 2014.06.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