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15

"매화와 시"

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15) "매화와 시" 매화의 계절입니다. 여기저기에서 꽃구경 가자는 말, 매화를 구경하기 좋은 곳, 좋은 때에 대해 주고 받는 대화가 자주 들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몸으로 느끼는 매화와 한시에서 만나는 매화의 사이에는 거리감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봄이 왔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꽃인 듯한데, 중국사람들의 시에서는 봄이 올 것을 예고하는, 그래서 추운 날씨, 눈 덮인 가지와 와 더 잘 어울리는 꽃입니다. 춥고 바람이 센 계절의 꽃이라 그런지 가지에 잘 피어있는 꽃 뿐 아니라 흩날려 떨어지는 꽃잎을 노래하는 시도 많이 있습니다. 며칠 전 내가 속해 있는 대화방의 회원이 임포(林逋, 967-1028) 가 매화를 "그윽한 향기(暗香)"라고 노래한 표현을 소개했습니다. ..

"내면의 갈등과 시인의 목소리: 굴원(屈原)과 어부(漁父)"

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14) "내면의 갈등과 시인의 목소리: 굴원(屈原)과 어부(漁父)" 내 연구실 한쪽 벽에는 왕농(王農, 1926-2013)이라는 화가의 작품이 한 폭 걸려 있습니다. 20세기 전반의 저명한 화가 서비홍(徐悲鴻, 1895-1953)의 제자로 스승처럼 역동적인 모습의 말을 잘 그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나도 사실 말을 그린 그의 작품을 소장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건 조금 너무 흔하지 않느냐는 느낌이 들어 중국민속신앙에서 신의 반열에 올라있는 종규(鍾馗)를 그린 작품을 골랐습니다. 악귀를 쫓아내는 신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작품을 부적으로 생각해 걸어둔 것은 아닙니다. 종규를 형상화한 그림 중에 어떤 것은 그를 술 취한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

"자랑질과 자조: 소식蘇軾과 김정희金正喜"

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13) "자랑질과 자조: 소식(蘇軾, 1037-1101)과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전공으로 시를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강의해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인문학 교양강좌인데, 그런 요청은 가능하면 받아들입니다. 뭐 꼭 좋은 일을 하자는 뜻에서는 아닙니다. 많은 노력을 들여 쓴 글이 대부분 전공하는 몇몇 사람과 나누어 읽으면 그만이니 조금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건 아닌가 자문합니다. 특히 가끔 귀국했을 때 그런 부탁이 있으면 더욱 기꺼이 받아 들입니다. 대개 거절하기 어려운 지인의 부탁으로 하는 것이니 강의가 끝나면 한 잔 하고 이야기도 듣고 할 수 있어..

"두보 이야기 (1): 시인의 습유(拾遺)라는 이름표"

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12) "두보(杜甫, 712-770) 이야기 (1): 시인의 습유(拾遺)라는 이름표" 중국의 고전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공부해야하는 작가나 시인이 여러 가지 호칭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같은 사람을 여러가지 이름으로 알아야 하니 좀 성가시기도 합니다. 그냥 두어 가지 호칭을 더 공부해야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심한 경우는 열 개를 훌쩍 넘어 스무 가지 이름표를 달았던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호칭 하나하나의 의미나 그러한 호칭이 생기게 된 연유를 공부하다 보면 재미있는 걸 많이 알게 되는 좋은 점도 있습니다. 중국어로 이름을 명자(名字)라고 하는데 이는 명(名)도 있고 자(字)도 있어서 그 두 가지가 합쳐져 만들어진 명사입니다. 명보다 자..

"장애물에 담긴 기회 (3): 율시(律詩)의 경우"

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11) "장애물에 담긴 기회 (3): 율시(律詩)의 경우" 표현의 공간을 극히 제한하는 장애물을 절제되고 함축적인 시적 언어의 사용으로 극복하여 여운을 길게 남기는 것이 절구의 짓기와 읽기에서 중요한 미학적 원칙이라고 앞에 쓴 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중국이라는 특정한 문화적 특성에 근거해 생긴 원칙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공간적 제한을 극복하는 방법은 다른 문학에서도 비슷합니다. 일본의 마츠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의 하이쿠(俳句) 한 수를 예로 보시지요. 古池や ふるいけや 蛙飛びこむ かわずとびこむ 水の音 みずのおと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들며 나는 물 소리 열일곱 음절 뿐인 짧은 형식의 시이지만, 거기 담긴 정취가 오래 기억에 남을..

"장애물에 담긴 기회 (2)"

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10) "장애물에 담긴 기회 (2)" 중국 고전시 중, 절구의 경우, 칠언절구는 28자, 오언절구는 20자뿐이라는 심각한 공간의 제한이 시적 표현의 장애물로 작용하기 쉽지만, 그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오히려 시의 맛이 오래 남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해 내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에서 찾아낸 방법은 형식적 조건이 정형화되지 않은 자유시에 동원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정형시의 전통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시인이 스스로 자신의 표현 수단이나 공간을 제한하는 장애를 설정하고 그것을 설득력 있게 극복하여 오랫동안 여운이 남게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박목월시인의 〈불국사(佛國寺)〉가 오래오래 붙들고 놀아볼 좋은 예라고 생..

"주선(酒仙)의 경지"

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9) "주선(酒仙)의 경지" 글이 갈수록 어려워진다는 원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쉬어가는 셈 치고 술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우선 북송 때의 시인 소식(蘇軾, 1037-1101)의 작품을 하나 읽지요. 이 시인은 우리에게는 소동파(蘇東坡)라는 호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제 소개할 이 작품은 큰 범주로 보면 요즈음의 말로 시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시(詩)가 아니라 사(詞)입니다. 사(詞)라는 형식의 문학은 장단구(長短句)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긴 구절과 짧은 구절이 섞여있는 형식입니다. 한 구절의 길이가 모두 다섯 음절로 되거나 일곱 음절로 된 시(詩)와 달리 길고 짧은 구절이 섞여 있으니 언뜻 보면 요즈음의 자유시와 비슷하다는..

"장애물에 담긴 기회 (1)"

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8) "장애물에 담긴 기회 (1)" 돌이켜보면 중국시를 공부하면서 산 세월이 짧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 집에 걸려있던 한시 서예작품을 보며 선친이 해 주시는 설명을 듣던 때까지 되돌리지 않더라도, 대학에서 중국어와 중국문학을 전공하겠다고 결정한 때부터 세면 벌써 반 백 년이 되었습니다. 주로 도연명이나 두보, 이태백, 소동파 등 남이 지은 작품을 공부하는 일을 했지만, 가끔 스스로 한시를 짓기도 했습니다. 한참을 끙끙거리며 쓰다가 어느 날 쓰지 않기로 했었습니다. 유학이랍시고 떠나서 참 긴 시간 귀국하지 못해 고향을 그리던 신세에 한시를 써서 그랬는지 쓸 때마다 떠돌이(遊子)의 한탄이 나오기 일쑤였습니다. 그게 싫어서 쓰지 않기로 했던 것입니다. 가끔 가까운..

"언어는 믿음직한가요?"

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7) "언어는 믿음직한가요?" 언어가 없는 세상은 참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얼마 전까지 조그만 멍멍이와 함께 살았는데, 예쁘다고 말해줄 때도 있었고, 야단을 칠 때도 있었습니다. 예쁜 짓을 할 때도 있지만, 아무데나 오줌을 싸는 등 사고를 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그 녀석은 무어라고 지껄이느냐는 듯 나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했는데, 그 때 마다 저 녀석은 머릿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담아내고 진행시키는 언어는 있을까, 혹시 언어에 의지하지 않는 직관의 세계에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보다 못할 게 없는 것 같네, 뭐 그런 생각도 종종 했었습니다. 우리는 참 여러가지로 언어에 의지해 삽니다. 그러나 종종 언어가 내 생각..

"이태백의 머릿속"

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6) "이태백의 머릿속" 시를 읽는 일, 시하고 노는 일에 시인을 결부시키는 경우 그의 마음 속 뿐 아니라 머릿속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있다고 앞서 쓴 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이태백의 시 한 수를 가지고 놀면서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 보기로 합니다. 이 과정에서 발견하는 놀 거리는 어떤 것은 시인들이 거의 모두 공유하는 특성일 것이고, 어떤 것은 이태백 개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특성일 것입니다. 우선 시를 찬찬히 들여다 보시기를 권합니다. 한문에 익숙하시지 않아도, 제 번역과 대조하면서 천천히 읽으시면 이 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흥미있는 일들을 찾으시는 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李白,“訪戴天山道士不遇” 犬吠水聲中,桃花帶露濃。 樹深時見鹿,溪午不聞鍾。 野竹分青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