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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꿇고〉 경배한다는 말

"〈무릎꿇고〉 경배한다는 말" 아기예수가 태어난 환경을 재현한 마굿간의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띄는 계절이다. 말구유에 누운 아기예수와 어머니 마리아, 아버지 요셉이 있고, 말과 당나귀, 양 같은 동물 몇 마리, 목동이 두엇 있는 게 보통이다. 주의 공현축일이 되면 동방박사 세 분이 또 마굿간에 도착한다. 목동과 동방박사들은 대부분 무릎을 꿇고 있거나 허리를 깊이 숙이고 있는 모습이다. 세상에 오신 아기예수를 경배하는 그런 모습은 성탄절에 흔히 보이는 모티프의 하나다. 눈에 뜨일 뿐 아니라 또 자주 들린다. 귀에 익은 크리스마스 캐롤의 하나인 "오오, 성스러운 이 밤(O Holy Night)"의 후렴은 이렇게 노래한다. 무릎을 꿇지어다. 천사의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오오 거룩한 이 밤, 그리스도가 태어나신..

에세이 2015.01.01

Thanksgiving 2014

올해 추수감사절에는 20 파운드짜리 칠면조와 10 파운드짜리 햄을 포함해 음식을 준비하고 가족과 친구, 학생들을 초대했습니다. 저녁식사에 앞서 다음과 같은 감사기도를 했습니다. In this season of Thanksgiving, a Chinese phrase comes to mind: "For every bowl of rice and porridge, we must keep in mind that they do not come easy; for every thread and twine of cloth, we shall remember the endeavor that creates the power of things. 壹粥壹飯,當思來處不易;半絲半縷,恆念物力維艱。" Our thoughts should ..

에세이 2014.11.29

추수감사절 준비

추수감사절 준비 어쩌다 보니 와서 살게 된 미국땅, 이역만리에 생각치 않게 또아리를 튼지 벌써 30년도 훌쩍 넘어버린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도 이 사회 속에서의 생활이 과식한 후 속 거북한 느낌으로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늦가을 겨울의 문턱에 찾아오는 추수감사절만은 늘 깊은 감동으로 맞이합니다. 명절의 뜻도 뜻이지만, 한 해의 마무리를 위해 내 생활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때라 그런 듯합니다. 몇 년 전에는 추수감사절 아침부터 내가 감사할 일, 고마워 해야할 사람들을 적어보기도 했습니다. 아침부터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다 보니 점심 때를 지나서도 아직 쓸 게 남아있었습니다. 감사할 일이 참 많은 과분한 삶을 살아왔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음을 확인했지요. 올해는 세상 구석구석..

에세이 2014.11.24

“歲寒曲 (추운 시절의 노래)”

갑오년이 시작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이 더 지났습니다. 갑오년을 맞으며 한시를 한 수 썼던 게 기억납니다. 소람하세요. 〈歲寒曲〉 風簌簌,能不觫,家遠人自惑, 雲陰陰,客喑喑,日斜當痛飲。 孤燈雖昏奔萬里,睡夢恐僅爬一寸。 鼓凍殘聲漫縈繞,歲寒遊子仍交困。 (二賓寫於甲午前夕) 〈세한곡〉 풍속속, 능불속, 가원인자혹, 운음음, 객음음, 일사당통음. 고등수혼분만리, 수몽공근파일촌. 고동잔성만영요, 세한유자잉교곤. (이빈사어갑오전석) 〈추운 시절의 노래〉 휘익 휘이익 부는 바람, 떨지 않을 수 있을까? 집은 멀고 나는 홀로 갈팡질팡. 침침한 구름 속, 목소리 잃은 객— 해가 기울면, 물론 통쾌히 마셔야겠지. 외로운 등불 희미해도 만리를 달리지만, 깊은 잠 꿈속에서는 한 치나 길 수 있나 두렵다. 북소리 얼어붙어 잦아..

시선(詩選) 2014.07.25

"정말?"

잠시 귀국한 사이 마침 고등학교 졸업 40주년 기념 "추억의 수학여행"이란 행사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들 많이 만났습니다. 만찬 중 회장의 부탁으로 즉석에서 이런 시를 하나 써 읽었습니다. ---------- "정말?" -고등학교 졸업 40주년에 정말? 아아, 그랬구나. 참 잘 됐네. 축하해. 내 술 한 잔 살께. 정말? 아아, 그랬구나. 걱정이 많았겠다. 지금은 괜찮지? 그래도 그만한 게 다행이야. 힘내. 정말? 벌써 세월이 그렇게 지났나? 이제 시집만 보내면 되겠네. 짝은 있대? 정말? 그새 손자를 봤어? 다행히 할머니 닮았지? 그런데 할머니하고 자는 기분은 어때? 정말? 나는 따님을 모시고 온 줄 알았어. 비결이 뭐야? 늘 이고 다니시는 모양이지? 아무튼 부러워. 정말? 그래, ..

시선(詩選) 2014.06.02

유현석 변호사 10주기 추모미사 가족인사

어제(2014.5.26) 혜화동성당에서 아버지 10주기 추모미사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가족인사를 했습니다. "유현석 변호사 10주기 추모미사 가족인사" 안녕하세요. 유현석 변호사의 둘째아들입니다. 오늘 드릴 말씀을 이렇게 써가지고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재판이 군사법정에서 열리게 된 게 참 다행이라는 그 유명한 모두발언, 법관의 자격조건으로 지식, 양심, 특히 용기가 중요한데, 용기하면 군인 아니냐, 용기를 생명으로 하는 군인이 재판장이시니, 용기를 내어 잘 심판해주실 게 아니냐, 그래서 이 재판을 군사법정에서 하는 게 참 다행이라고 하셨다는, 이미 전설이 된 그 법정발언도 원고없이 조그만 메모지 한 장에 의지해서 하셨다는데, 저는 짤막한 이 가족인사를 원고에 의지해..

에세이 2014.05.27

감사의 기도 (Prayer of Thanksgiving)

마나님을 친정으로 보내놓고 혼자 (정확하게 말하자면 멍멍이 리오와 둘이 코를 비벼대며) 추수감사절 휴일을 보냈습니다. 감사할 일이 많은 사람이라 찬찬히 감사하고 싶은 일들, 사람들을 생각하다 보니 이런 감사의 기도를 쓰게 되었습니다. 내친 김에 우리말로 한 번, 영어로 한 번 썼네요. "감사의 기도" 손에 든 이 우산을 감사하게 하소서, 나의 주님, 빗속에 있는 이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안식을 주는 이 집을 감사하게 하소서, 나의 주님, 매서운 바람 속에 내몰린 이들을 생각하게 하소서. 이 음식을 감사하게 하소서, 나의 주님, 배고픈 이들에게 눈길을 돌리게 하소서. 이 건강을 감사하게 하소서, 나의 주님, 병중에 아파하는 이들을 위로하게 하소서. 할 일이 있음을 감사하게 하소서, 나의 주님, 생계가 없는..

에세이 2012.11.25

맥주이야기 #2: "수직경험(Vertical Experience)"

맥주이야기 #2: "수직경험(Vertical Experience)" 가을이 깊어가던 지난 시월, 로스앤젤레스까지 자동차로 여행을 하면서 치코라는 곳에서 하루 저녁을 지냈다.  나 사는 곳에서 로스엔젤레스까지는 길을 재촉해 열 대여섯 시간을 내리 운전한다면 하루에 다다를 수도 있는 거리이다.  그러나 그건 젊어 힘이 넘치던 시절에나 어울리는 일, 어디선가 하루를 지내고 가는 게 지금의 내 처지에 어울리는 무리없는 일정으로 보였다.  어디서 하루를 쉬고 갈 것인지를 정하는 일이 있었을 뿐, 하루에 내쳐 간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여행일정을 정하는 방법은 대개 둘 뿐이다.  특별한 이유나 사정이 없을 땐 그저 발길 닿는 곳으로 가면서 해 떨어질 때쯤 적당히 잠자리를 찾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빠듯한 ..

에세이 2012.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