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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어도 준치"?

"썩어도 준치"? 좀 익살스러운 표현을 쓰자면 원시적 채집경제라고 해도 좋았다. 이십여 년 전 포틀랜드에 이사와 보니 여기 교민들은 철마다 산으로 바다로 다니며 이것 저것 먹거리를 구했다. 먹을 게 없어서 그런 건 물론 아니었다. 신선하고 맛있는 먹거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고, 일상에서 벗어나 소풍 다니듯 놀며 하는 일이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우기의 끝나가는 4월 경 상당히 높은 산으로 올라가야 딸 수 있는 고사리로 시작해서, 바다 속으로 허리가 잠길 정도의 깊이까지 들어가 걷어내는 미역, 물 빠진 개펄에서 부삽으로 그냥 떠내는 어른 주먹만한 조개, 거기다 철에 따라 곳에 따라 크기와 모습이 다른 온갖 게에, 건기가 끝나는 초가을 무렵 비가 두어번 내리기 시작하면 돋아나오는 송이버섯까지, 무..

"차예딴(茶葉蛋)"

"차예딴(茶葉蛋)" 드디어 한 번 해 보았다. 달걀을 찻잎과 색 짙은 향신료를 푼 물에서 삶아내는 "차예딴(茶葉蛋)"을 집에서 만든 것이다. 중국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만나며 동하는 호기심을 참 오래도 누르며 살았다. 우리가 누군가. 달걀이라면 사죽을 쓰지 못하게 된 운명을 산 사람들 아닌가. 찜이건 프라이건, 말이건, 달걀이라면 형제 사이에서도 아귀다툼을 하면서 히히덕거린지 오래면서 왜 그 중국달걀을 맛보는데는 그리 시간이 걸렸을까.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왠지 길거리에서 그걸 사먹는 게 그리 마음이 놓이지 않아 미루기도 했고, 그러면서 종종 누군가 나를 청할 때 식탁에 내주었으면 하고 희망도 해보았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유같지도 않은 이유로 별로 대수롭지 않게 미루어진 것이..

말린 새우 "카이양(開洋)"과 무우 배추

말린 새우 "카이양(開洋)"과 무우 배추 무우나물은 내게 아주 특별한 음식이다. 별로 내세울 것 없는 반찬 한 가지를 가지고 무슨 호들갑이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긴 이렇다할 맛이 없는 담백한 맛을 맛으로 삼는 음식인 것도 사실이니 그런 생각도 그럴 듯하다. 그렇지만 내게는 벌써 오래 전에 아주 귀한 음식이 되었다. 특별한 기억과 연결되었기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겠다. 집이 한 동네여서 중학교 3년을 늘 함께 붙어다닌 친구가 있었다. 등하교 길을 콩나물 시루 같던 시내버스 안에서 같이 시달렸고, 그게 싫은 날은 함께 안국동에서 비원을 지나 창덕궁 담을 따라 걸어서 하교하기도 했다. 명륜동쯤에서 옆길로 새 탁구를 한 바탕 차고 나서야 귀가한 날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물론 네집 내집 없이 서로의 집을 ..

"일기가성 명박상득"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1년 1월 5일자에 실렸다고 합니다.] "일기가성, 명박상득" 청와대가 새해를 내다보며 ‘일기가성’(一氣呵成)이라는 성어를 내놓았다. 마음이 서늘해지는 낙담을 느낀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사자성어’가 유행한다. 연말연초에는 시의적절한 한자성어를 선택하고 사색하는 일이 약방의 감초 같은 이벤트가 됐다. 이 한 해의 성어를 발표하면, 이제 그 소식이 중국의 매체에까지 소개된다. 이 발표한 ‘올해의 사자성어’를 보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첫째, 교수들은 거의 매년 흔히 접할 수 없는 성어를 찾아낸다. 중국 고전문학과 사상사를 전공한 나조차도 출전이 막막한 경우가 많다. 2010년의 성어 역시 그랬다. “머리를 숨기기에 급급해 미처 꼬리를 감추지 못한다”는 뜻의..

에세이 2011.01.06

"동짓날 개기월식"

"동짓날 개기월식"(*) 동짓날 밤 보름달이 뜬다는 게 우선 흔치 않은 일이겠지만 바로 그 밤 그 보름달이 우리들 그림자로 가득 찬다는 개기월식은 사백 오십 몇 년 만에 처음이랍디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그렇게 한 열 번은 더 세어야 하는 길고 긴 세월 동안 아무도 볼 수 없었던 잔치라길래 핑계 삼아 술 부어가며 기다렸지요. 늘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하다못해 구름이라도 잔뜩 끼는 계절인데 달 뜨기를 기다려 어쩌자는 것이냐고 묻더군요. 월식은 못 본다고 해도 마신 술은 남지 않겠느냐고 대꾸했습니다. 억지였지요. 이번엔 마신 술이 없어지지 어떻게 남느냐는 핀잔이 왔습니다. 왜 말꼬리를 잡느냐는 목청 돋운 핀잔으로 되돌려 준 후 헤헤 웃음을 섞어 얼렁설렁 넘겼습니다. 잠들 시간을 훌쩍 넘어서..

시선(詩選) 2010.12.24

"북한산"

산행은 북한산으로 더 많이 했으면서 지리산 산행에서 쓴 시만 한 수 올릴 수 없어서 북한산 걸은 후 쓴 시도 하나 올리지요. ----- 북한산 대남문 주위로 일요일 아침 내내 새소리는 없이 사람들 아우성이 가득하지만 그 사람소리가 바로 새소리입니다. 멀리로 여기저기 가지런히 줄을 맞추어 늘어선 도심의 묘비들을 뒤로하고 바람을 찾아 북한산을 오른 것이 새들이고 사람들입니다. 나도 너를 모르고 너도 나를 모르지만 서로 재잘댈 수 있는 것이 한가지입니다. (2002년 6월)

시선(詩選) 2010.11.23

"지리산"

벌써 여러 해 전에 쓴 습작입니다. 고향떠나 살기 시작한 후로 귀국할 기회가 있으면 꼭 친구들을 졸라 산행을 합니다. 지리산 "종주"라는 것도 여러 번 했지요. 한 7-8년 전에 쓴 걸 다시 보니 기억에 새롭습니다. ---------- "지리산" 이른 저녁 뱀사골 대피소 거친 숨소리 비릿한 땀 냄새 사이에서 여섯 살 쌍둥이 자매를 만났습니다 엄마아빠를 따라 지리산 주능 백리길을 걷는다는데 울퉁불퉁 바윗길은 그냥 걸어도 해질녘 아우성 속에서 잠을 청하려면 엄마 아빠 품을 하나씩 차지해야 한답니다 내일아침부터 이틀 여섯 살 쌍둥이 뒤꽁무니를 따라 이번 산행은 동요를 부르며 하겠습니다. (2002년 6월)

시선(詩選) 2010.11.15

"가을 벚나무"

재작년인지 가을나무를 보고 써 두었던 시 한 수를 이번 가을 바람에 선 바로 그 나무를 다시 보며 조금 고쳤습니다. ----- "가을 벚나무" 끝으로 치닫는 길목에 선 저 손짓도 꽃이라고 부르지요 향긋하지도 화사하지도 않고 흰 꽃잎 흩날린 그 때 같은 흥분도 흥겨움도 없지만 못할 것도 없지않나요 일찌감치 붉게 탄 꼭대기와 바래가는 초록을 움켜쥐고 버틸 때까지 버티려는 안간힘 사이로 여긴 맑게 저긴 깊게 때론 진하게 때론 옅게 갖가지 갈색 노랑색이 어우러진 게 꽃처럼 좋지 않아요 하긴 비내리고 바람불면 흩어져 없어질 것도 한 이치 아닌가요 저 손짓도 꽃이라고 부르지요 마음에 새겨두기에는 오히려 더 좋은 듯 하네요 (2007년 11월 청우재에서) (2010년 11월 수정)

시선(詩選) 2010.11.04

"깐비엔(乾煸) 조리법"

"깐비엔(乾煸) 조리법" 중국음식점은 참 가지 각색이다. 땅덩어리가 워낙 넓으니 지방에 따라 음식이 가지가지이고, 그런 지역의 특색을 살리려다 보니 음식점의 종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지역 음식문화의 차이 말고도 음식점이 가지 각색인 이유는 또 많이 있다. 종업원 사이의 정보교환이 귀 옆으로 매달린 무선통신기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형음식점에서부터, 꼭 옛날 궁중이나 귀족의 가옥을 연상하게 하는 고급스러우면서 은밀한 곳도 있지만, 중국음식으로 보면 만리타향이랄 수 있는 미국의 시골 구석 뒷골목에 테이블 대여섯 개를 놓고 마치 소꿉장난 하듯 열어놓은 집까지 중국음식점은 참 진폭이 크다. 중국 큰 도시의 길가에 좌판을 벌이듯 열어놓은 먹거리 장소까지 포함시킨다면 정말 가지 각색이라는 표현이 무색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