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음식 기행

말린 새우 "카이양(開洋)"과 무우 배추

반빈(半賓) 2011. 1. 31. 08:04

 

말린 새우 "카이양(開洋)"과 무우 배추

 

무우나물은 내게 아주 특별한 음식이다.  별로 내세울 것 없는 반찬 한 가지를 가지고 무슨 호들갑이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긴 이렇다할 맛이 없는 담백한 맛을 맛으로 삼는 음식인 것도 사실이니 그런 생각도 그럴 듯하다.  그렇지만 내게는 벌써 오래 전에 아주 귀한 음식이 되었다.  특별한 기억과 연결되었기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겠다.  집이 한 동네여서 중학교 3년을 늘 함께 붙어다닌 친구가 있었다.  등하교 길을 콩나물 시루 같던 시내버스 안에서 같이 시달렸고, 그게 싫은 날은 함께 안국동에서 비원을 지나 창덕궁 담을 따라 걸어서 하교하기도 했다.  명륜동쯤에서 옆길로 새 탁구를 한 바탕 차고 나서야 귀가한 날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물론 네집 내집 없이 서로의 집을 드나들었다.  지금은 그 친구도 그의 어머니도 모두 저세상 사람이 되었지만, 나를 형제처럼 아들처럼 대해준 분들이었다. 

 

그 댁에서 주신 먹거리에는 언제나 정성이 담겨 있었다.  이를테면 미숫가루가 그랬다.  비지땀을 흘리며 하교한 여름날이면 차게 준비해 둔 꿀물에 미숫가루를 한 술 듬뿍 띄어 내주셨다.  찬 물위에 동동 떠있는 미숫가루가 아래서부터 조금씩 녹아 내리는 모습을 관찰하던 기억이 그 구수하면서 시원했던 맛만큼이나 새롭다.

 

무우나물은 그 댁의 밥상에 늘 오르던 음식이었다.  하루는 친구와 둘이 겸상을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들어와 우리들 밥먹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한참을 아무 말씀없이 앉아 계시다가 밥상 한 구석에서 천대받고 있던 무우나물을 가리키며 그 댁에서 특별한 음식이라고 소개하셨다.  시어머니로부터 조리법뿐 아니라 귀한 사람에게 낼 수 있도록 늘 준비해 두라는 당부까지 받으신 반찬이니 흔한 음식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나니 그 무우나물의 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귀한 아들의 귀한 친구라서 내는 음식이라는 뜻이었으니 어찌 특별히 귀하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시작한 무우나물 사랑은 이제 끝을 모른다.  언제 어디에서라도 무우나물을 만나면 그냥 정답다.  친구 어머니의 그 때 그 손맛이 아니라는 호사스런 불평은 일찌감치 접었고, 그냥 무조건 반가워한다.

 

그렇게 무우나물을 좋아하다 보니 중국음식에서도 비슷한 음식이 눈에 띄였는데 "일견종정(一見鍾情)"이라고 만나자마자 정이 들었고 오랜 친구가 되기를 약조했다.  소개해준 분의 이야기도 비슷한 훈훈함과 너그러움을 담고 있었다.  "카이양(開洋)"이라고 부르는 말린 새우를 곁들여 배추나 무우로 조리하는, 그냥 모습으로 보면 별로 내로랄 게 없는 음식이 몇 가지 있다.  들어가는 재료에 따라 "카이양 뤄버쓰 탕(開洋蘿蔔絲湯 말린 새우 무우채 국)"이나 "카이양 바이차이(開洋白菜 말린 새우 배추볶음)"라고 불린다.  내게 "말린 새우 배추볶음"을 처음 만들어주신 분은 주부에게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만드는 음식이라고 껄껄 웃으며 설명하셨다.  준비한 음식이 특별할 게 없다는 겸양의 말로 들렸다. 

 

타이완 유학시절 젊은 선생님 한 분과 아파트 문을 마주보는 집에서 이웃으로 지냈다. 그 댁의 부인이 첫 아들을 해산했을 때, 내 아내는 조카를 본 듯 늘 건너가 살면서 목욕을 같이 시키곤 할 정도로 가깝게 의지해며 지냈다.  그 부인이 초대하여 친정부모님댁에 갔을 때의 일이었다.  산뚱(山東)이 고향이시라 억양이나 몸동작이 한국에서 많이 본 익숙한 모습이었고 그래서 금세 친숙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분이었다.  모이면 대개 함께 "쟈오즈(餃子)"라고 부르는 만두를 빚어 먹었으니 주인이 미리 준비하는 음식은 많지 않았고 사실 필요하지도 않았다.  그 댁에서는 보통 두세 가지 음식을 따로 준비하셨는데, 처음 갔을 때 나온 음식이 바로 마른새우 배추볶음이었다.  게으르고 싶을 때 하는 음식이라는 말은 사실 실제 상황과 어울리지 않았다.  딸네 부부가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는 손자를 데리고, 외국인 부부와 함께 들이닥친 상황에선 게으르고 싶다는 마음이 들 리가 없지 않은가.  아무튼 그렇게 소개하며 조리하는 모습을 보니 조리법은 정말로 간단했다.  하긴 깊은 맛은 늘 그렇게 평범해 보이는 음식에서 찾을 수 있는 듯하다.

 

우선 "카이양"이라는 말린 새우를 소개한다.  마른 새우는 우리음식에도 쓰이는 식재료이지만 중국에서는 두 가지로 나뉜다.  머리째로 말린 것은 대부분 새우의 살보다는 껍질의 맛이 중요한 식재료이다.  이 종류는 보통 "새우껍질"이라는 뜻으로 "씨아피(蝦皮)"라고 한다.  "카이양"은 머리를 떼고 말린 새우로 껍질보다 살이 중요한 식재료이다.  "카이양"은 남쪽지방에서 주로 쓰는 이름으로 말하자면 사투리이다.  북쪽지방에서는 "씨아미(蝦米)"라고 하는데 바다새우로 만든 건 "하이미(海米)", 강에서 나는 새우로 만든 건 "허미(河米)", 호수에서 잡히는 새우로 만는 건 "후미(湖米)"라고 한다.  "카이양(開洋)"이라는 두 글자의 뜻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아마 바다새우를 말린 것을 뜻하는 듯하다.  딱딱하게 말렸는데도 엄지손톱만한 걸 보면 사용한 새우가 상당히 컸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값이 비싼 편이다.

 

우선 말린 새우를 청주를 넉넉히 넣은 따뜻한 물에 불려야 한다.  한 십 분 두었다가 물을 한 번 갈아주는 것이 좋다.  말리는 과정에서 개입될 수 있는 잡내를 제거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말린 새우가 잘 불려지면 요리는 거의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배추를 씻어 적당한 크기로 썰어놓아야 하는데, 이 때 밑둥의 두꺼운 흰 부분과 푸른 이파리 부분을 대충 나누어 놓는 게 좋다.

 

기름을 두르고 새우를 볶다가 배추 밑둥을 넣고, 어느 정도 익으면 배추 이파리까지 넣고 조금 볶은 후 물을 자박자박하게 부은 후 물이 끓으면 불을 작게 줄인 후 뚜껑을 덮고 배추에 말린 새우의 맛이 밸 수 있도록 15분 정도 두면 조리가 끝난다.  어떤 강한 맛이나 색을 배제하기 위해 볶는 과정 전체에 다진 마늘 등의 조미재료를 쓰지 않고, 간이 부족하면 소금을 약간 뿌린다.  말린 새우에서 우러나오는 짠맛 때문에 대부분 소금이 그리 필요치 않다.  이 정도의 조리과정이 게으르다는 말과 어울리는지는 사람에 따라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간간한 맛이 남기는 여유로움은 우리의 무우나물에서 멀지 않다.  그 여유로움의 빈 공간을 상상으로 채우라는 것이 무우나물과 카이양 바이차이가 갖는 공통분모인 듯하다. 

 

"카이양 뤄버쓰 탕"이라는 말린새우 무우채 국도 개운하고 담백한 맛을 만드는 음식이라 조리법이 비슷하다.  말린새우는 따뜻한 물에 술을 조금 섞어 불려 둔다.  무우는 껍질을 벗기고 채를 썰어 끓는 물에 잠깐 데쳐낸다.  중불에 우선 다진 파를 볶아 향을 낸 후, 준비해 둔 데친 무우채를 넣어 볶다가 불린 말린 새우를 넣고, 술을 조금 더한 후 물을 붇고 불을 올린다.  거품이 일면 걷어내면서 한 소끔 끓이면 된다.  개운한 맛을 보존하기 위해 다른 양념을 하지 않는다.  중국사람들은 닭의 기름을 조금 더하기도 하지만, 내 자신의 기호에는 닭기름은 넣지 않는 것이 더 좋은 느낌이다.  단지 시원하고 개운한 맛을 드러내기 위해 식탁에 내기 바로 전에 후추를 치는 것은 권할 만하다.

 

무우와 배추는 우리에게는 참 친숙한 식재료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짙은 양념을 한 김치나 깍두기, 갈치나 고등어 조림에 넣는 무우와 배추 뿐 아니라, 그냥 담백하고 시원한 맛을 내는 우리 음식도 많이 있다.  여기 소개한 중국음식 둘은 바로 그렇게 담담하고 개운해서 외국음식이면서도 고향을 느끼게 한다.

 

(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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