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예딴(茶葉蛋)"
드디어 한 번 해 보았다. 달걀을 찻잎과 색 짙은 향신료를 푼 물에서 삶아내는 "차예딴(茶葉蛋)"을 집에서 만든 것이다. 중국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만나며 동하는 호기심을 참 오래도 누르며 살았다. 우리가 누군가. 달걀이라면 사죽을 쓰지 못하게 된 운명을 산 사람들 아닌가. 찜이건 프라이건, 말이건, 달걀이라면 형제 사이에서도 아귀다툼을 하면서 히히덕거린지 오래면서 왜 그 중국달걀을 맛보는데는 그리 시간이 걸렸을까.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왠지 길거리에서 그걸 사먹는 게 그리 마음이 놓이지 않아 미루기도 했고, 그러면서 종종 누군가 나를 청할 때 식탁에 내주었으면 하고 희망도 해보았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말하자면 이유같지도 않은 이유로 별로 대수롭지 않게 미루어진 것이다.
그러다 갑가지 그 달걀을 만들게 된 것은 어떤 사람의 회고록을 읽다가 장개석총통이 차예딴을 즐겼다는 대목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사람이 먹었다고 해서 나도 먹어야된다고 생각할만큼 크게 존경하는 사람도 아니니 그건 작은 핑계에 지나지 않을 수 있겠다. 오랫동안 눈에 띄일 때마다 어어 저건 아직도 먹어보질 못했네 하고 생각했고, 그 다음에는 또 잊고 지냈던 음식의 이름을 한 편의 글에서 읽게 되었고, 그걸 계기로 만들어 보게 된 것이다.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빚을 갚은 기분이다.
재료도 조리법도 아주 간단하다. 달걀 열 두어 개, 팔각이라는 중국 향신료 열 개쯤, 빨간 통후추 넉넉히, 계피 서너 조각, "삥탕(氷糖)"이라고 불리는 덩어리 설탕 몇 조각, 간장 반 공기, 거기에 홍차나 울룽차 등 발효공정을 거쳐 만든 찻잎 두 큰술 정도. 그 나머지는 충분한 양의 물이다.
달걀요리의 요체는 물론 물의 온도와 조리시간이다. 예를 들어 노른자가 흐물흐물한, 아주 부드러워 "처녀 무엇 만지듯" 다루어야하는 반숙을 만들기 위해서는 물이 펄펄 끓기를 기다려 달걀을 넣고 6분에서 6분 30초 정도를 계속 끓는 물에 두었다가 바로 흐르는 찬 물에 잠시 식히면 된다. 끓는 물에 달걀을 넣는 방법에는 물론 약간의 위험이 따른다. 온도차로 인해 달걀이 터져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방법대로 반숙을 하려면 달걀을 냉장고에서 꺼내 두었다가 실온이 되었을 때 요리를 시작하는 것이 좋고, 삶기 위해 끓는 물에 넣기 전에 혹시 금이 가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차예딴의 요리도 물론 물의 온도와 시간의 조절이 가장 중요하다. 향신료의 많고 적음은 맛에 조금 영향을 주기는 하나, 이래도 저래도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다. 맛이 짙으면 짙은 대로, 옅으면 옅은 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의 온도와 시간은 달걀의 질감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리고 차예딴의 정수는 바로 달걀의 질감이다.
달걀을 서로 부딪쳐 깨지지 않토록 차곡차곡 쌓고 거기 찬물을 부은 냄비를 큰불에 올려 물이 끓기 시작한 때부터 4분을 둔다. 그리고는 달걀을 건져 잘 식도록 한참을 두어야한다. 이렇게 일차 삶아낸 달걀을 젓가락이나 수저 손잡이로 가볍게 두드려 껍질에 갈라진 흔적을 내야하기 때문에 다루기 쉽도록 뜨겁지 않게 식히는 것이다. 너무 세지도 않고 그렇다고 약하지도 않게 톡톡톡 뺑 돌아가면서 달걀을 두드려 금이 가게 한다. 꼭 골동품 도자기의 유약에 나있는 열흔 무늬 같은 금이 가도록 하면 된다.
이렇게 달걀이 준비되면 준비한 향신료와 함께 조리한다. 슬로우 쿠커를 사용하든지 아니면 스토브의 아주 작은 불로 조리한다. 물에 앞에 열거한 향신료를 한꺼번에 다 넣고 휘휘 저은 후 준비한 달걀을 넣고 아주 약한 불에 오랜 시간 조리한다. 이 때 달걀이 모두 잠기도록 물을 넉넉하게 잡아야 한다. 최소한 두 시간, 아주 약한 열을 유지할 수 있는 슬로우 쿠커가 있으면 밤새 놓아두어도 된다.
결과는 향신료의 맛을 흡수한 완전히 익은 노른자와, 반투명할 정도로 살짝 익어 연한디 연한 질감위에 짙은 선으로 골동품 도자기에서 보는 열흔이 나타난 흰자이다. 이웃집에 서너 개 보냈더니 예쁜 모습이 아까워 먹을 수 없더라는 반응이 왔다.
들은 이야기이지만 달걀은 노른자가 흰자보다 응고점이 낮다고 한다. 그러나 노른자가 안에 있기 때문에 센불에 조리하면 흰자가 익는 사이에 열이 노른자까지 전달되지 않아 반숙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약한 불에 익히면, 노른자가 익는 동안 흰자가 딱딱해지는 속도를 줄일 수 있다. 차예딴은 바로 이점을 이용한다. 우선 흰자가 어느 정도 응고되도록 센불이 익혀 두드려 열흔을 내고, 그 다음에는 향신료의 맛과 열을 노른자가 받을 수 있도록 낮은 열을 유지해서 오래 조리하는 것이다.
호박을 채썰고 새우젓과 파, 마늘, 생강으로 조미를 한 달걀찜과는 물론 아주 다른 경험이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열 번에 여덟 번, 아홉 번은 아무래도 우리식 달걀찜으로 손이 갈 것 같다. 그러나 나머지 한 번쯤은 차예딴에 할애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눈과 혀, 입술과 이가 한꺼번에 느끼는 미학적 경험이라고 하면 조금 과장일까.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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