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서시집(竹西詩集) 166

죽서 박씨, "달"

竹西朴氏 月 露下空庭皎似霜,閒雲散盡碧天長。 夜寂無聲當素影,寒凝生潤瀉清光。 如花更有嫦娥艷,比玉猶多桂樹香。 萬劫經來餘一片,鏡輪終不變炎凉。 죽서 박씨 "달" 이슬 아래 텅 빈 정원이 서리 내린 듯 맑고 깨끗합니다 한가한 구름 다 흩어지니 푸른 하늘이 길게 펼쳐집니다 밤은 아무 소리 없이 적막하게 흰 빛을 마주하고; 차가움이 촉촉하게 맺혀 맑은 광채를 쏟아냅니다 꽃과 같으면서 선녀 상아의 아름다움을 더했고; 옥과 비교하면 계수나무의 향이 짙습니다 만 겁 긴 세월을 거쳐오면서 남은 건 이 한 조각 그 둥근 거울 더워도 추워도 끝까지 바뀌지 않았습니다 주: 다섯째 행은 잘 알려진 "상아 달로 도망치다 (嫦娥奔月)"라는 이야기를 사용합니다. 《회남자(淮南子)》의 기록에서 이야기의 주요부분이 갖추어 집니다. 상아는 남..

죽서 박씨, "반가운 비"

竹西朴氏 喜雨 蟻垤初移鳩婦鳴,疾風驅似出奇兵。 初迷堤柳霏霏影,漸聽階蕉滴滴聲。 御史車前隨處至,坡公亭上幾時名。 歡騰四野霑俱足,從此三農望有成。 (初字重) 죽서 박씨 "반가운 비" 개밋둑이 막 옮겨지고 암비둘기가 울더니 거센 바람이 돌격대처럼 밀려옵니다 처음에는 강둑 버드나무 가지 휘휘 흔들리는 그림자인줄 알았는데; 점점 섬돌 옆 파초에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사의 수레라면 어디도 따라가지요; 소동파의 정자에는 언제 이름이 붙었나요 사방 들판이 기뻐 뛸 만큼 충분히 촉촉하게 젖었으니; 세 가지 농사일이 지금부터는 잘 될 희망이 생겼습니다 주: 이 작품은 몇 가지 문헌근거를 알고 읽으면 좋겠습니다. 첫 구절은 비를 예보하는 민간의 많은 속설 중 두 가지를 이용합니다. 개미가 집을 짓기 위해 물어다 내놓은 ..

죽서 박씨, "소나기"

竹西朴氏 驟雨 濃雲潑墨蔽郊坰,電影雷聲不暫停。 注勢簷端垂玉索,圓紋水上起銀鈴。 晝生暝色書仍減,夏入凉天酒易醒。 洗盡浮埃山更碧,斜陽依舊在林亭。 죽서 박씨 "소나기" 짙은 구름이 먹물을 뿌려 들판을 덮고 번갯불과 우레 소리 잠시도 멈추지 않습니다 퍼붓는 기세가 추녀 끝에서 옥동아줄을 드리우는 듯하고; 동그란 무늬가 물 위에서 은방울처럼 일어납니다 대낮인데 어둑어둑해 책 읽기를 접는데; 여름으로 들어섰지만 날씨가 쌀쌀해 술기운이 쉽게 깹니다. 떠 다니는 티끌을 모두 씻어내 산이 더욱 푸르고 기우는 해 여전히 숲 속 정자에 머물고 있습니다. (반빈 역) Bak Jukseo "A Rain Shower" Dark clouds splash ink Veiling the field. Streaks of lightning an..

죽서 박씨, "봄 지난 후"

竹西朴氏 春後 一年幾度負佳期,往事茫然摠不知。 比昔經春偏似速,從今送日更何遲。 鸎藏高樹聲初滑,蝶戀餘花意尚癡。 怳惚欲醒殘夢裏,兒童身在故園時。 죽서 박씨 "봄 지난 후" 한 해 몇 번이나 좋은 시절을 뒤로 하는지 지난 일이 아련해 어찌해도 알아낼 수 없네요 옛날에 비해 봄 지나가는 것이 유달리 빨라진 듯한데; 지금부터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이 어찌 더 느릴 수 있나요 키 큰 나무에 숨은 꾀꼬리 지저귀는 소리가 비로소 매끄럽지만; 끝물의 꽃을 사랑하는 나비 그 마음 아직도 어리숙합니다 가물가물 깨어나는 듯한 희미한 꿈 속에서 나는 그 옛날 그 정원 그 어린아이입니다 (반빈 역) Bak Jukseo "After Spring" How often in a year Do I let go of a beautiful time..

죽서 박씨, "햇살"

竹西朴氏 日影 朝晝殊光照處明,可憐隨物影俱成。 江波萬曲溶溶動,嶺樹千重冉冉輕。 斜掛驛亭催客意,穿過花院碎禽聲。 定知無路追相及,鄧杖堪憐夸父行。 (憐字重) 죽서 박씨 "햇살" 아침과 낮의 빛이 다르지만 비치는 곳은 밝고 사랑스런 그림자가 비치는 물건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만 구비 강 물결 너울너울 움직이고; 천 겹 고갯마루 나무 한들한들 가볍습니다 역참 정자 비스듬히 걸려 나그네 심정을 돋우고; 꽃 핀 정원 뚫고 가며 새 소리를 흩뿌립니다 어느 길로 쫓아가도 따라잡지 못하는 걸 분명히 아니 수풀이 된 지팡이 견디어 내며 길 떠나는 과보를 사랑했을 겁니다 주: 마지막 구절은 "과보가 해를 쫓아간다"는 뜻의 과보축일(夸父逐日)의 고사를 사용합니다. 과보가 해를 쫓아갈 때 지니고 갔다는 지팡이가 등장(鄧杖)이고, 그 지..

죽서 박씨, "해"

竹西朴氏 日 清風起處上初陽,赫赫中天照萬方。 影轉桑榆移晚景,心傾葵藿逐靈光。 長繩却恨難留繫,一線惟知較短長。 莫咲田夫愚未達,負暄猶欲獻吾 王。 (長字重。) 注:三句〈桑榆〉用《淮南子·天文訓》事:「日西垂,景在樹端,謂之桑榆。」 四句〈葵藿〉用曹植事。《三国志·魏志·陳思王植傳》:「若葵藿之倾葉,太陽雖不為之回光,然向之者誠也。」末句〈負暄獻王〉用《列子·楊朱》如下事:「昔者宋國有田夫,常衣緼黂,僅以過冬。暨春東作,自曝於日,不知天下之有廣廈隩室,綿纊狐貉。顧謂其妻曰:負日之暄,人莫知者。以獻吾君,將有重賞。」 죽서 박씨 "해" 싱그러운 바람이 이는 곳에서 밝은 기운으로 떠올라 하늘 가운에 이르러 이글이글 세상 구석구석을 비춥니다 뽕나무와 느릅나무에 빛이 비치면 저녁 정경으로 옮아 가고; 한해살이 아욱과 콩도 마음이 기울어 신령한 빛을 쫓아 따릅니..

죽서 박씨, "초승달"

竹西朴氏 初月 落日嶺西盡,雲端初掛彎。 雙眉分一半,團扇摺中間。 暗暈藏金鏡,流輝破玉環。 懸知三五夜,皎皎滿人寰。 죽서 박씨 "초승달" 지는 해 고갯마루 서쪽으로 사라지면 구름 끝으로 나와 구부정하게 걸립니다 한 쌍의 눈썹이 반으로 나뉘더니; 둥근 부채가 가운데에서 접힙니다 어둑한 후광이 금 거울을 품고; 흐르는 빛은 옥가락지를 깨뜨립니다 보름날 밤이 오면 밝고 깨끗하게 이 넓은 사람의 세상에 가득하겠지요 (반빈 역) Bak Jukseo "A Crescent Moon" The setting sun fades away over the west ridges, And an arc hangs on the edge of the clouds. A paired eyebrows are divided in the middle;..

죽서 박씨, "같은 제목(받들어 올립니다)으로 씁니다"

竹西朴氏 同題(奉呈) 海內幾人三絕兼,文章從古世多嫌。 錦心繡口才難敵,鶴膝蜂腰格又添。 雪月精神開畫帖,山川氣色發詩籤。 深閨失學君休笑,豈有燈花雨露霑。 죽서 박씨 "같은 제목(받들어 올립니다)으로 씁니다" 이 나라를 통틀어 몇 사람이나 세 가지 빼어난 재능을 모두 갖추었나요 글쓰기는 예로부터 세상 사람들이 많이 싫어했지요 비단같은 마음과 수놓은 듯한 말을 재주로 상대하기는 어렵지만; 학의 무릎과 벌의 허리를 피해 형식의 아름다움을 한껏 더합니다 눈 위의 달빛같이 깨끗한 마음으로 화첩을 펼치고 산 사이로 흐르는 물처럼 살아있는 빛으로 시 쓰는 종이를 채워 냅니다 내실 깊이 살아서 공부를 하지 못했다고 그대, 웃지 말아 주세요 등불의 불꽃이 어떻게 비와 이슬에 젖을 수 있겠습니까 주: 첫 구절의 "세 가지 빼어난 재..

죽서 박씨, "받들어 올립니다"

竹西朴氏 奉呈 歲月蹉跎幾許分,哀鴻仍是病中聞。 一輪明月來相照,半樹寒梅逈不群。 憶別裁詩頻下淚,無心揮墨謾生雲。 誰謂人間能浩大,環瞻四海只依君。 죽서 박씨 "받들어 올립니다" 헤어져 헛되이 보낸 세월이 그 얼마입니까 서글픈 기러기 울음소리를 여전히 병중에 듣습니다 밝은 달 동그라미 하나 와서 서로를 비추니; 싸늘한 매화 성근 꽃잎 참으로 빼어납니다 헤어지던 날을 기억하며 시를 마름질하니 자꾸 눈물이 흐르지만; 마음 내려놓고 휘둘러 쓰는 글씨는 멋대로 구름처럼 날아 오릅니다 사람들 세상 한없이 크다고 그 누가 말하나요 이리저리 둘러싼 바다를 바라보지만 기댈 곳은 님뿐입니다 주: 둘째 연에서 숫자인 "하나(一)"와 숫자의 부류로 볼 수 있는 "반(半)"이 이루는 댓구가 번역에서 전달되지 않는 것은 아쉽습니다. 글자의..

죽서 박씨, "또 한가롭게 읊습니다"

竹西朴氏 又(閒詠) 滿城春氣上為霞,憂樂塵間病轉加。 乍得須看塞翁馬,妄尊堪咲子陽蛙。 絲絲綰恨橋邊柳,朵朵消魂嶺上花。 一瞬滄桑真可念,何人肯教暫離家。 注:四句用《後漢書·馬援列傳》事。馬援評公孫述曰:「子陽井底蛙耳」。公孫述,字子陽。 죽서 박씨 "또 한가롭게 읊습니다" 성 안 가득 봄기운이 하늘로 떠올라 노을이 되었는데 근심과 즐거움의 이 풍진세상에서 내 병은 더욱 심해집니다 언뜻 뜻이 이루어지면 변경 노인의 말 이야기를 보아야 하고; 누군가 하릴없이 치켜세우면 우물 안 개구리라는 비웃음을 견디게 됩니다 다리 옆 버드나무는 가지마다에 아픔을 매달았고; 고갯마루 꽃은 송이송이 영혼을 흩트립니다 눈 깜짝할 사이 세상이 뒤집어진다고 참으로 생각할 수 있다면 누구인들 잠시라도 집을 떠나 있게 하겠습니까 주: 둘째 연의 "변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