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서시집(竹西詩集) 166

죽서 박씨, "여름날 속절없이 읊조립니다"

竹西朴氏 夏日謾吟 閒雲終自靜,幽夢有誰知。 荏苒黃梅節,徘徊綠草時。 意添千曲水,辭短數篇詩。 寂寞懷人處,莫違明月期。 죽서 박씨 "여름날 속절없이 읊조립니다" 한가한 구름이 결국 잦아들었습니다 내 이 그윽한 꿈을 이제 누가 알까요 매실 노랗게 익는 계절 덧없이 흘러가고; 푸른 풀 위를 서성이는 때입니다 천 구비 물길을 더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몇 편 시를 쓰기에도 벅찬 글 솜씨입니다 쓸쓸하게 님을 그리워하는 이곳으로 달 밝은 날 오겠다 하신 약조를 어기지 않으시기를 (반빈 역) Bak Jukseo "An Undirected Song of a Summer Day" The idle clouds after all have quieted down— Who would now know my hidden dreams? The..

죽서 박씨, "마음을 풀어냅니다"

竹西朴氏 遣懷 綠陰誰與共吟詩,白雪高歌恨少知。 淡靄多生層嶂外,殘烟偏起暮鐘時。 山風帶雨頻侵箔,庭樹經春便作籬。 千里離羣音信斷,慇懃向月問前期。 (五句雨字,警修堂本作兩。疑誤。) 注:二句用宋玉〈對楚王問〉。楚襄王問宋玉士民眾庶不譽之甚之故,宋玉說國中屬而和〈陽春〉、〈白雪〉者不過數十,是其曲彌高之故,以之與鳥有鵬、魚有鯤自比。 죽서 박씨 "마음을 풀어냅니다" 푸른 그림자 아래서 누구와 함께 시를 읊나요 흰 눈의 노래 격조 높게 부르지만 아는 사람 얼마 없어 안타깝습니다 희미한 안개 이는 건 대부분 겹겹이 둘러친 산봉우리 저편; 남은 연기 흩어지는 것은 꼭 저녁 종 칠 무렵 산에서 부는 바람이 비를 몰고 와 늘 갈대발에 들이치고; 뜰 안 나무 봄이 지나면서 울타리가 되었습니다 친구들 무리에서 천 리를 떨어지며 소식이 끊겼기에 마음..

죽서 박씨, "겨울밤"

竹西朴氏 冬夜 離離爐篆宿香痕,獨臥綃衾不肯溫。 燭始生花應結子,壺常開口竟無言。 喜逢知己情何極,思到前塵恨更存。 忽有寒聲驚遠夢,數行鴻鴈月中翻。 죽서 박씨 "겨울밤" 향연기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묵은 흔적 위에 흔적을 남기는데 나는 따뜻해지지 않으려는 명주이불에 홀로 누웠습니다 초가 불꽃을 내기 시작했으니 분명 촛농이 맺히겠지요; 술병은 주둥이가 항상 열려있지만 결국 말이 없습니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기쁘게 만나면 기분이 얼마나 좋아질까요 지난 날의 부질없음에 생각이 이르고 보니 그 때의 한이 아직 남았습니다 갑자기 차디찬 소리에 놀라 꿈이 멀리 물러가고 몇 줄 큰 기러기 달빛 속에서 날갯짓합니다 (반빈 역) Bak Jukseo "A Winter Night" Incense smoke spirals up, Leav..

죽서 박씨, "지난 일을 떠올리며"

竹西朴氏 感舊 翩翩柳絮逐風忙,簾下閒眠六尺牀。 山色臨池水蕩漾,春光閉院花棲凉。 裁詩難效青蓮格,養病常探歧伯方。 世事何殊夢邊過,平生得意酒生香。 죽서 박씨 "지난 일을 떠올리며" 버들개지 퍼얼펄 바람 따라 바삐 나는데 나는 주렴 아래 여섯 자 침상에서 한가로이 잠을 잤지요 연못 옆 산의 모습이 물결을 따라 출렁거렸고; 닫힌 뜰 안 봄 빛이 꽃에 쌀쌀하게 머물었습니다 시를 지으면서 이태백의 격조를 흉내내기 어려웠지만; 병을 다스리기에 명의 기백의 처방을 늘 찾으려 했습니다 세상일이 어찌 꿈결에 지나가는 것과 다르겠습니까 평생 뜻하는 대로 이룬 건 피워내는 술 향기뿐이었습니다 주: 셋째 연에서 이태백을 뜻하는 청련(青蓮)과 대를 이루는 기백(歧伯)은 중국의 전설적 명의입니다. (반빈 역) Bak Jukseo "Mov..

죽서 박씨, "초여름에 그냥 읊조립니다"

竹西朴氏 初夏雜吟 四月南風麥雨晴,山明水麗意俱清。 林中啼鳥相求侶,樓下歌童或併行。 新酒隨量惟盡醉,舊篇纔續尚餘情。 門前知有幽溪水,落日琮琤近枕鳴。 (首句雨字,警修堂本作兩。疑誤。) 죽서 박씨 "초여름에 그냥 읊조립니다" 사월 마파람 불고 익은 보리에 내리던 비도 갰습니다 산이 빛나고 물도 아름다우니 생각이 모두 맑습니다 수풀 속에서 지저귀는 새들이 서로 짝을 찾고; 누각 아래에서는 노래하는 아이들이 가끔씩 줄지어 지나갑니다 새로 빚은 술은 양껏 마셔도 흠뻑 취할 뿐이고; 묵은 시를 이제야 다시 다듬으니 담고 싶은 마음이 아직 더 있습니다 고요한 시냇물이 문 앞에 있는 걸 알지만 해가 지면서 졸졸 흐르는 소리가 베개 옆에서 들립니다 (반빈 역) Bak Jukseo "Chanted Miscellaneously in ..

죽서 박씨, "연이어 금원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竹西朴氏 連見錦園書 故人慰我再三書,書不成行意有餘。 薄酒猶賢當取樂,衰花雖在易歸虛。 自從身病無相問,豈是人情好獨居。 慙愧諸君勤問訊,離羣絕俗計還疎。 (問字重) 注:三句用〈清聖濁賢〉,事見《三國志·魏書·徐邈傳》。鮮于輔為徐邈進曰:「平日醉客謂酒清者為聖人,濁者為賢人,邈性脩慎,偶醉言耳。」 죽서 박씨 "연이어 금원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오랜 친구가 나를 위로하느라 여러 차례 편지를 쓰셨네요 글귀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담으려 한 뜻이 넘쳐납니다 희멀건 술이 어진 사람 같으니 즐겁게 마셔야 마땅하지요; 시드는 꽃이 아직 피어 있지만 쉽게 공허함으로 되돌아 갈 것입니다 몸에 병이 생긴 후부터 서로 안부를 묻지 않았지요 사람의 마음이 어찌 홀로 사는 것을 좋아하겠습니까 여러 사람이 부지런히 잘 있느냐 물으니 부끄럽습니다 함..

죽서 박씨, "한가하게 시간을 보냅니다"

竹西朴氏 消遣 年多漸覺難為人,萬事還愁有此身。 酒國只應逢聖代,燈花不是待芳春。 休道光陰同隙駟,那堪契活摠棲塵。 碧樹朱欄清箇裏,一輪明月自相親。 죽서 밖시 "한가하게 시간을 보냅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느끼게 되는 것이지만 사람 노릇 하기 참 어렵습니다 모든 일이 근심으로 되돌아오는 곳에 이 몸이 있네요 술 마시는 나라도 오로지 좋은 시절을 만나야 좋은 것이고; 등불을 밝힌다 해도 꽃 피는 봄을 기다림은 아닙니다 세월 흐르는 것이 담장 틈새로 지나가는 마차 보는 듯하다 하지 마세요; 잘 살아보려 해도 늘 먼지 속에 머문다는 걸 어찌 참아냅니까 푸른 나무나 붉은 난간의 맑은 곳마다 둥실 밝은 달이 떠 함께 가까이 지내자 합니다 주: 다섯째 행에서 사용된 빠른 세월의 표현은 묵자(墨子) 겸애(兼愛)편의 다음과 같은..

죽서 박씨, "자고 일어나서"

竹西朴氏 睡起 詩不求工自苦吟,一輪晴日到天心。 高樓簾動微風度,小院烟收細柳深。 壁上已无三尺劒,書中空聽五絃琴。 繁華春色歸何處,數朵殘紅隱綠林。 죽서 박씨 "자고 일어나서" 시를 정교하게 지으려 한 게 아니라 나 자신 위해 애써 읊조릴 뿐이었는데 둥근 밝은 해가 하늘 가운데 이르렀습니다 높은 누각의 주렴을 흔들며 산들바람이 지나가고; 작은 뜰의 안개가 걷히니 가는 버들가지 색이 깊습니다 삼척검은 이미 벽에 걸려있지 않고; 오현금을 하릴없이 책 속에서 듣습니다 화려했던 봄의 색깔은 어디로인지 돌아가고 시드는 꽃 몇 송이만 푸른 수풀에 숨었습니다 주: 셋째 연에서 댓구를 이루는 삼척검과 오현금은 문자의 의미로는 길이가 석 자인 칼과 현이 다섯인 악기이지만 한나라 고조인 유방 (劉邦)이 사용했던 칼과 순 (舜)임금이 ..

죽서 박씨, "운을 차례로 따라서"

竹西朴氏 次韻 數旬淹病摠違期,過雨林園綠漲池。 雖着弊衣寧有媿,欲裁佳句每生疑。 落花滿地春光暮,垂柳寒煙日色遲。 深閉書樓人不到,一庭啼鳥苦吟時。 (二句雨字,警修堂本作兩,疑誤。) 죽서 박씨 "운을 차례로 따라서" 두어 달 병에 빠져 지내다 보니 기약한 걸 모두 지키지 못했는데 지나가는 비에 숲과 뜰이 푸르고 연못에는 물이 불었습니다 해진 옷을 입었다 해도 어찌 부끄러울 일이겠습니까; 좋은 시 몇 구절을 만들어 내려니 그 때마다 의문을 갖습니다 떨어진 꽃잎이 땅을 채우면 봄의 경치는 끝물이고;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에 찬 안개가 끼니 햇빛도 느릿합니다 문 닫아 건 서재 깊이로 당신은 오지 않으니 뜰 가득 지저귀는 새처럼 애써 시를 지어야 할 시간입니다 (반빈 역) Bak Jukseo "Following the Rhym..

죽서 박씨, "봄 지난 후"

竹西朴氏 春後 日夕林叢挹翠華,今年詩事屬誰家。 却愁驟雨靡庭草,且惜狂風入院花。 寂寞春歸山意懶,冥濛夜入月痕賖。 水流雲散知何處,未信長天竟有涯。 (三句雨字,警修堂本作兩,疑誤。) 죽서 박씨 "봄 지난 후" 낮에나 밤에나 수풀 속에서 임금님 대하듯 푸르름 향해 두 손 모으고 올해는 시 짓는 일을 어떤 사람이 잘 할까 생각합니다 그저 별안간 내린 소나기가 뜰 안의 풀을 망쳤다고 슬퍼하거나; 또는 미친듯한 바람이 정원의 꽃 사이를 휘젓는다 아쉬워 합니다 소리없이 봄이 물러가니 산에 가려는 마음도 시들해지고; 어둑어둑 밤이 길어져 달빛의 흔적이 쌓입니다. 물이 흘러가고 구름이 흩어지는 게 어디에서 인지 알 수 있나요 긴긴 하늘에 끝이 있다는 걸 저는 믿지 않았습니다 (반빈 역) Bak Jukseo "After Sp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