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시선(韓國漢詩選) 359

김정희,"가을밤 연생과 함께 짓습니다" 두 수의 첫째

金正喜 〈秋夜與蓮生共賦〉二首之一 酒熟花初發, 詩情俱在眉。 異苔同石喜, 各夢共床知。 蛩雨青燈暗, 雁霜赤葉遲。 重陽看漸近, 又是把盃時。 김정희 "가을밤 연생과 함께 짓습니다" 두 수의 첫째 술도 익고, 꽃도 피기 시작하니 시에 담을 마음이 모두 눈썹 사이에 있습니다 같은 돌 위에 다른 이끼가 섞인 것처럼 기쁘지만; 한 침대에서 각각의 꿈을 꾼다는 것도 압니다 비 섞인 귀뚜라미 소리 속에 푸른 등불이 어둑하고 서리 내린 기러기 아래 붉은 단풍이 머뭇거립니다 보아하니 중양절이 점차 가까워 오고 있네요 또 술잔을 잡아당길 때입니다 (반빈 역) Kim Chong-hui "Composed with Yon-saeng in an Autumn Night" First of Two Poem As wines mature, an..

김정희,"자하에게 그림을 돌려주며 씁니다"

金正喜 〈歸畫於紫霞仍題〉 我雖不知畫, 亦知此畫好。 蘇齋精鑑賞, 烏雲帖同寶。 持贈霞翁歸, 其意諒密勿。 歎息老鐵畫, 東來初第一。 星原筆鎔鐵, 似若壽無量。 如何須臾間, 曇花儵現亡。 萬里遂千古, 撫畫涕忽泫。 匪傷星原死, 吾輩墨緣淺。 注:紫霞為申緯(1769-1847)之號。三句蘇齋為翁方剛(1733-1818)之書齋。四句烏雲帖指蘇東坡〈天際烏雲帖〉,翁方剛曾為之寫題跋。九句及十五句之星原為翁方剛之子,翁樹崑(1786-1815)。 김정희 "자하에게 그림을 돌려주며 씁니다" 그림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지만 그래도 이 그림이 좋다는 건 압니다 그림 감상에 정통한 소재선생님이 '검은 구름 첩'에 버금가는 보물로 여겼는데 귀국하는 자하옹께 선사했다고 하니 그 극진히 여긴 마음을 알겠습니다 노련하고 힘찬 필치가 처음 동쪽 땅으로 온 것..

김유근,"추사를 그리워 합니다"

金逌根(1785-1840,朝鮮王朝後期文人, 政治人物,號黃山) 〈懷秋史〉 論交在少日, 知子已文明。 愽古源流遠, 師心筆勢橫。 追隨惟我輩, 齮齕足平生。 嗜好元相別, 今人何苦爭。 김유근 (1785-1840) "추사를 그리워 합니다" 우리가 처음 사귄 건 어린 시절 그 때 이미 그대가 글에 밝다는 걸 알았습니다 옛일에 해박해 근원과 흐름을 멀리까지 알았고 마음에게서 배우니 붓의 기세에 거침이 없었지요 배워 따르는 건 우리들 뿐이고 물고 뜯는 무리는 평생을 채웁니다 좋아하는 건 본래 서로 다를 수 있는데 요즈음 사람들은 왜 애써 다투려고만 하지요 (반빈 역) Kim Yu-gun (1785-1840) "Remembering Kim Chong-hui" We were very young when we got to kno..

김정희,"제목은 잃었습니다" 두 수 중 둘째

金正喜 〈失題二首〉之二 萬里論交事亦奇, 廿年離緒數行詩。 書從落鴈天邊寄, 夢繞扶桑海外枝。 文字古來通遠域, 身名老去負清時。 弓衣傳唱知多少, 肯為都官理繡絲。 김정희 "제목은 잃었습니다" 두 수 중 둘째 만 리 밖에서 친분을 나누다 보니 놀라운 일이 있네요 이십 년 헤어져 산 정이 몇 구절의 시에 담겼습니다 서찰이 기러기 내려앉듯이 하늘 끝에 다다르니 꿈이 서로 기대는 부상(扶桑)나무를 맴돌다 바다 건너로 가지를 뻗습니다 글이라는 게 예로부터 먼 지역을 연결하지만 몸은 늙어가며 좋은 시절을 저버립니다 활집에 담겨 전달된 나라의 부름을 벌써 몇 번이나 받았습니까 판서나리 관복에 어떻게라도 수를 놓아드리고 싶습니다 주: 네째 구절의 부상(扶桑)은 푸른 바다 한가운데 있는 지역의 이름인데 부상이라는 나무가 많아서 그..

김정희,"제목은 잃었습니다" 두 수 중 첫째

金正喜 〈失題二首〉之一 蘭雪文章老更奇, 今春寄我自題詩。 黃鐘大呂中和律, 碧樹珊瑚錯落枝。 小別桑田如昨日, 重逢飯顆定何時。 故人衰謝年年甚, 面皺雞皮鬢鷺絲。 注: 首句蘭雪為清吳嵩梁(1766-1834),由翁方剛(1733-1818)開始之交遊持續了平生。第六句〈飯顆〉,為相傳位於長安附近之山名。事出自李白,〈戲贈杜甫〉:「飯顆山頭逢杜甫,頂戴笠子日卓午。借問別來太瘦生,總為從前作詩苦。」 김정희 "제목은 잃었습니다" 두 수 중 첫째 난설선생의 글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놀라워지는데 스스로에게 낸 과제로 시를 지어 올봄에 내게 보내왔습니다 음률과 언어가 황종과 대려로 크고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여러 재주가 산호의 붉고 푸른 가지처럼 섞여 어우러졌습니다. 상전창해에서 잠시 이별한 것이 마치 어제의 일 같은데 반과산에서 다시 만나 시 ..

김정희,"어쩌다 그림 '시를 찾아서'에 붙입니다"

金正喜 〈偶題尋詩圖〉 尋詩何處好, 詩境畫中深。 散慮延遐想, 忘言待好音。 枕書交竹色, 下榻借桐陰。 舊雨成天末, 難為萬里心。 김정희 "어쩌다 그림 '시를 찾아서'에 붙입니다" 시를 찾으려는데 어디가 좋을까요 시의 경지는 그림 속이 깊지요 염려를 흩트리니 먼 생각으로 이어져 언어를 내려놓고 좋은 소리를 기다립니다 책을 베개 삼아 대나무의 색과 마음을 나누고 몸을 눕히려 오동나무 그늘 신세를 집니다 옛 친구들이 하늘 끝에 있어 만 리 밖으로 마음을 전하기 어렵습니다 (반빈 역) Kim Chong-hui "Inscribed by Chance on a Painting, 'Searching for Poems'" To search for poems, what shall be good places to go? The p..

김정희,"제목은 잃었습니다"(오언율시)

金正喜 〈失題〉(五律) 庭陰濃欲滴, 歲月已侵尋。 幽竹憐王子, 朱華憶謝臨。 病違雙蠟屐, 情重異苔岑。 不有郵筒過, 誰破寂寥心。 注:頷聯〈王子〉為王羲之之子王徽之,甚愛竹,「何可一日無此君」為其傳世名言。「謝臨」為謝靈運,曾任臨川太守。 김정희 "제목은 잃었습니다"(오언율시) 정원의 그늘이 짙어져 물방울처럼 듣는 듯하고 세월은 조금씩 흐르고 또 흘렀습니다 그윽한 대나무 숲 왕희지의 아들이 그립고 붉은 꽃밭에서는 사령운을 기억합니다 몸이 병들어 초를 먹인 나막신을 멀리하지만 정 때문인지 여러가지 이끼들이 다 소중합니다 시를 담은 편지 봉투가 오지 않는다면 누가 이 적적한 마음을 없애 주겠습니까 주: 세째 구절은 왕희지(王羲之, 303-361)의 아들 왕휘지(王徽之, 338-386)를 이야기하는데, 그는 하루도 대나무 없이..

김정희,"아버지를 모시고 삼막사에 가는데..."

金正喜 〈陪家君上三藐寺,仲弟及金季良、咸聖中偕之。時雪庵、懶雲二釋亦不期而至,皆近日名宿也。〉 招提一宿喜歡緣, 雙袖天風慾界仙。 青白蓮交呈氣象, 百千海攝現澄圓。 往來方便飛雲屐, 撥轉機鋒瀹月泉。 紅日樓前如鼓大, 無量壽相是中邊。 김정희 "아버지를 모시고 삼막사에 가는데 둘째 아우와 김계량, 함성중이 동행했습니다. 때마침 설암, 나운 두 분의 스님이 약속도 없이 왔습니다. 모두 요즈음 명망 있는 학자들입니다." 절에서의 하룻밤 즐겁고 기쁜 인연입니다 두 소매에 하늘바람이 가득해 신선의 경계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희고 푸른 연꽃이 번갈아 이곳의 기운을 드러내고 백 겹 천 굽이 바다가 감싸 안은 듯 맑고 모서리 없음을 보여줍니다 편한 대로 오고 가려고 날아다니는 구름을 나막신 삼고 뾰족한 붓끝을 밀고 돌리려고 달빛 어린 샘..

김정희,"그냥 짓습니다"(칠언고시)

金正喜 〈偶作〉(七古) 朱鳥天邊大海湄, 神山蜿蜒走西支。 野中小治僅如斗, 青石郭連短竹籬。 汞鉛寶氣青霞碣, 松竹勁節東門祠。 人家盡依壽星下, 水仙千朵復萬枝。 元祐罪人惠州飯, 笠屐風雨忘居夷。 島童海丁近相熟, 有時叩玄兼問奇。 獨豹勝似花豬肉, 麥麵新醅酒一鴟。 五雲多處夢如縷, 破悶春山橫翠眉。 김정희 "그냥 짓습니다"(칠언고시) 붉은 새 하늘 끝 큰 바닷가로 날고 신령한 산 구불구불 서쪽으로 뻗어 갑니다 들 한가운데 조그만 고을은 고작 한 말이나 될까 싶은데 퍼런 돌담이 낮은 대나무 울타리로 이어집니다 푸른 안개 속 돌하르방이 신선 수련의 귀한 기운 속에 있고 소나무와 대나무의 절개가 동문선생 사당에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장수 노인들에게 의지하고 수선화 천 송이가 만 줄기로 다시 태어납니다 송나라 원우 연간에 혜..

김정희,"그냥 짓습니다"

金正喜 〈偶作〉 不算甛中與苦邊, 天風一笠亦隨緣。 飄零白髮三千丈, 折磨紅塵六十年。 我愛沈冥頻中聖, 人憐遠謫漫稱仙。 蹣跚簷底時行藥, 消受茶罏伴篆烟。 김정희 "그냥 짓습니다" 달콤함의 가운데이거나 씁쓸함의 곁이거나 가리지 않았습니다 하늘 가득한 바람 속에 삿갓 하나 쓰고 그저 인연을 따라 다녔지요 흩날리는 백발이 삼 천 장이라고 하더니 고생스러운 홍진세상에서 육 십 년을 삽니다 나는 남모르게 지내는 걸 좋아하고 늘 맑은 술에 홀리지만 사람들은 멀리 귀양 온 걸 가련히 여기는지 하릴없이 나를 신선이라 부릅니다 때로는 처마 밑을 뒤뚱뒤뚱 다니며 약초를 심기도 하고 차 끓이는 화로를 지키며 옛 글자 모양으로 맴도는 연기를 즐기기도 합니다 (반빈 역) Kim Chong-hui "Composed for No Par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