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시선(韓國漢詩選) 358

김정희, "재미로 속된 표현을 집어 듭니다"

金正喜 〈戲拈俚句〉 庭梧只管碧婆娑, 夜熱還於午熱多。 曲彔床頭眠不得, 向人空自覓藤婆。 김정희 "재미로 속된 표현을 집어 듭니다" 정원의 오동나무가 열심히 푸른 이파리를 흔들어 대지만 오밤중 더위가 한낮 뺨칩니다 뒤틀려 꿀렁거리는 침상에서 잠을 이루지 못해 등나무 마누라를 찾아오라고 쓸데없이 사람들에게 성화를 해댑니다 주: 마지막행의 "등나무 마누라(藤婆)"는 더위를 피하기 위한 도구인 죽부인을 뜻합니다. 대나무뿐 아니라 등나무 가지로 엮기도 한 모양입니다. (반빈 역) Kim Chong-hui "Picking up some common parlances just for fun" The phoenix-trees in the courtyard Do wave the green leaves, But the hea..

김정희, "대나무 족자에 쓴 시가 도착했기에 ...... 다시 두 수를 보내오"

金正喜 〈翌日又以竹㡧題詩來到,戲以前韻更寄二首〉 一、 看手成春竹一枝, 寫成詩意裊情絲。 入庭忽作瀟湘色, 分外餘情午夢時。 二、 好把來詩當竹枝, 園陰如雨夢如絲。 使君胸中唯我竹, 誰解天然笑笑時。 김정희 "다음 날 또 대나무 족자에 쓴 시가 도착했기에 재미로 앞에 쓴 시의 운을 써서 다시 두 수를 보내오" 1. 손이 닿으면 봄이 이루어져 대나무 가지로 자라고 시로 쓰면 담긴 마음 간들간들 아지랑이로 피어 오르네 뜨락에 드니 홀연히 소수와 상강의 색이 되고 남은 정 넘쳐 흐르니 한낮의 꿈을 부를 때이구려 2. 잘 골라 보낸 시 대나무 가지 노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정원의 나무 그림자 실처럼 내리는 꿈속의 이슬비 같구려 사또 나으리 가슴 속에 나의 대나무가 있을 따름이니 누구라서 자연스레 소소의 때를 알 수 있을까요..

김정희,"평양성의 소윤 이씨에게 웃자고 바칩니다"

金正喜 〈戲奉浿城李少尹〉 肘嚲竹符唱竹枝, 亦要聽竹不聽絲。 由來饞守通身符, 況復騰騰醉倒時。 (原注:今日為竹醉日。) 김정희 "평양성의 소윤 이씨에게 웃자고 바칩니다" 팔꿈치에 대나무 부절을 매달고 대나무 가지 노래를 부르신다지요 대나무 피리만 듣고 현악기는 듣지 않으신다고도 하네요 그래서 그런지 늘 배고프신 원님 몸 전체가 대나무 같으십니다 그런데도 힘이 넘치시는 듯하니 취해 넘어지실 때인가 봅니다. (원작주: 오늘은 대나무 심고 취하는 죽취일입니다.) 주: 첫 구절의 "대나무 가지 노래"는 죽지사(竹枝詞)로 민간의 가요가 당나라 유우석(劉禹錫, 772-842)의 손을 통해 발전된 시형식입니다. 죽취일(竹醉)은 음력 5월13일이라는 설과 8월8일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대나무의 생일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날..

김정희, "평양 기녀 죽향에게 짓궂게 드리는 시 두 수"

金正喜 〈戲贈浿妓竹香二首〉 一、 一竹亭亭一捻香, 歌聲抽出緣心長。 衙蜂欲覓偷花約, 高節那能有別腸。 二、 鴛鴦七十二紛紛, 畢竟何人是紫雲。 試看西京新太守, 風流狼藉舊司勳。 注:七十二為八乘九。八與九分別為陰數陽數之至大者,因而讀第二首第一句為眾男眾女之意。紫雲為唐李願之歌姬,傳有與杜牧之戀情佳話。司勳為管賞典之官。杜牧曾任司勳員外郎。 김정희 "평양 기녀 죽향에게 짓궂게 드리는 시 두 수" 1. 아리따운 대나무 피리 하나 손가락 짚을 때마다 향기— 길게 늘어지는 노랫가락이 마음을 잡아 끄네 벌들 떼를 지어 은밀한 꽃구경을 약속하고 싶어하니 어찌 몸뚱이가 따로 있어 높다는 절개를 담을 수 있을까 2. 암수 원앙이 모두 모였는데 도대체 어떤 사람이 보라색 구름인가 서경에 새로 부임한 태수님을 봐요 풍류 넘치던 옛날 그 사훈사 나으..

김정희, "패수에 띄운 배 안에서 판향의 부채에 씁니다"

金正喜 〈浿水舟中題瓣香扇面〉 山光水色襲人裾, 長壽城邊載筆餘。 多爾儒酸饒別趣, 萬花圍席獨看書。 김정희 "패수에 띄운 배 안에서 판향의 부채에 씁니다" 산 색 물 빛깔 옷깃으로 스며들고 장수성 가를 노니는데 붓이 여유있게 실렸습니다 고집스러운 서생도 많고 별난 취미도 널렸지만 만 송이 꽃으로 둘러싸인 자리에서 홀로 책을 보다니 주: 판향은 한 평양기녀의 이름입니다. 패수는 대동강의 옛 이름이고, 장수성은 장수왕이 도읍을 정했던 평양을 이릅니다. (반빈 역) Kim Chong-hui "Writing on Petal Scent's Fan on a Boat on the Paesu River" Mountain colors and water hues Tinge the neckbands of your jacket. W..

김정희, "초의에게 드립니다"

金正喜 〈贈草衣〉 竪拳頭輪頂,搐鼻碧海潯。 大施無畏光,指月破群陰。 福地與苦海,摠持一佛心。 淨名無言偈,殷空海潮音。 入佛復入魔,但自笑吟吟。 狸奴白牯知,機用互相侵。 春風百花放,明明到如今。 김정희 "초의에게 드립니다" 두륜산 꼭대기에선 주먹을 불끈 드시고 벽해 해변에서는 코를 잡아 비트시지요 두려움 없는 빛을 크게 베푸셔서 달을 가리켜서 못된 군중을 흩으십니다 복된 땅에서나 고통의 바다에서나 언제나 한가지로 부처님 마음을 지키시지요 깨끗한 이름은 말없는 기도 하늘 가득한 바다물결 소리입니다 부처님들 가운데 들었다 다시 마귀들 사이로 가셔도 오로지 껄껄 스스로 웃으실 따름이십니다 시커먼 고양이나 허연 소도 알지요 기회를 보아 서로를 노리는 것을 봄바람에 온갖 꽃이 밝게, 밝게 피어 지금에 이릅니다 역주: 2행: 이..

김정희, "청석령에서 이직내와 함께 바위 벽에 씁니다"

金正喜 〈青石嶺與李直內題石壁〉 屐底白雲起, 嶺平身更高。 蹄愁緘欲脫, 輪感析為勞。 路訝東西阻, 人翻上下遭。 及時沾渴肺, 寺茗勝村醪。 김정희 "청석령에서 이직내와 함께 바위 벽에 씁니다" 나막신 아래에서 흰 구름이 일고 고갯마루가 평평해지면서 우리 몸이 우뚝 섭니다 말 발굽에서 편자가 떨어질까 근심하고 수레 바퀴는 너무 힘을 써 부러질 듯합니다 길은 동쪽 서쪽이 막힌 건 아닌지 의심되고 사람들은 위에서 아래에서 다시 만나는 듯 굴러 다닙니다 마침 맞게 한 모금 목을 축이기에는 절집 차 한 잔이 시골 막걸리보다 낫네요 (반빈 역) Kim Chong-hui "Inscribed on a Cliff at Blue Rock Ridges with Palace Attendant Yi" White clouds rise f..

다산 정약용, "오징어의 노래"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시 한 수를 소개합니다. 다소 길지만 찬찬히 읽어보시면 맛이 있을 겁니다. 조선 후기의 저명한 학자로만 생각하면 의외일 수 있지만. 자신의 내면에 없을 수 없는 번민을 담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丁若鏞(1762 - 1836) 〈烏鰂魚行〉 烏鰂水邊行, 忽逢白鷺影。 皎然一片雪, 炯與水同靜。 擧頭謂白鷺, 子志吾不省。 旣欲得魚噉, 云何淸節秉。 我腹常眝一囊墨, 一吐能令數丈黑。 魚目昏昏咫尺迷, 掉尾欲往忘南北。 我開口呑魚不覺, 我腹常飽魚常惑。 子羽太潔毛太奇, 縞衣素裳誰不疑。 行處玉貌先照水, 魚皆遠望謹避之。 子終日立將何待, 子脛但酸腸常飢。 子見烏鬼乞其羽, 和光合汙從便宜。 然後得魚如陵阜, 啗子之雌與子兒。 白鷺謂烏鰂, 汝言亦有理。 天旣賦予以潔白, 予亦自視無塵滓。 豈爲充玆一寸嗉, 變易形貌乃如是。 魚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