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한시선(韓國漢詩選) 361

김유근,"초가을"

金逌根 〈初秋〉 病枕多幽思,不眠覺夜遲。 方生苦亦樂,過境喜成悲。 雲破月來處,燈闌客散時。 風簾空自響,怊悵欲為誰。 김유근 "초가을" 몸져누우니 깊은 생각이 많고 잠 이루지 못하니 밤이 더딥니다 한창 때는 어려움도 즐거웠지만 한풀 꺾이니 기쁨도 서럽습니다 구름이 열려 달이 나오는 곳 등불 밝힌 난간에서 손님들 흩어지는 때 창문의 주렴이 스스로 내는 소리는 누구를 위해 슬퍼하는 것일까요 (반빈 역) Kim Yu-gun "Early Autumn" Lying on a sick bed, many deep thoughts arise. Being unable to sleep, the night seems to stall. In my robust days, even hardship was pleasurable; Since ..

김유근,"중복날에" 세 수

金逌根 〈中伏〉三首 一、 夏序方居季,中庚又見來。 雲烘如湯沸,日杲訝罏開。 繪雪真徒爾,鏤冰亦固哉。 凉風知不遠,逝者幾時回。 二、 明明如月至,穆穆似風來。 浮世從吾好,幽懷待子開。 狂歌亦已矣,不飲為何哉。 三宿由前定,山扉首幾回。 三、 三月居無定,今年始是貧。 鄉園同昔日,兄弟豈他人。 松老思仙躅,蓮深證佛身。 城闉非不近,吾亦出風塵。 김유근 "중복날에" 세 수 1. 여름철에 막 자리를 잡아가는데 또 중복날이 왔습니다 후끈거리는 구름 끓는 물 같고 이글대는 해 열린 아궁이인지 의심케 합니다 눈 내린 풍경을 그리는 건 정말 쓸데없는 짓이고 얼음을 깎는 것 역시 고집입니다 서늘한 바람이 멀지 않았음을 잘 알지요 물러갈 더위는 또 언제 돌아올까요 2. 밝디밝게 달처럼 다다르고 늠름하게 바람같이 몰려옵니다 세상을 떠돌며 나 좋은 걸 ..

김유근,"선친의 유고를 읽습니다"

金逌根 〈閱先稿〉 玉瓚黃流爛有光, 積中勳業是文章。 昭回歷代淵源重, 賁飾熙朝黼黻煌。 昔日朱門來舊客, 長年綠野掩虛堂。 編摩自盡生三義, 纏慟窮天俾可忘。 注:七句〈生三〉,據《道德經》四十二章,「道生一,一生二,二生三,三生萬物」語,釋為天地間萬物。 김유근 "선친의 유고를 읽습니다" 옥 술잔에 담긴 진한 술에서 밝은 광채가 납니다 가득 담긴 공과 업적이 바로 빛나는 문장입니다 지난 시대를 돌이켜 밝힘에 그 원천을 중시했고 흥성한 왕조를 아름답게 그려내니 훌륭한 글이 반짝입니다 지난 날엔 붉은 대문을 오랜 손님들이 드나들었지만 한 해 내내 푸른 들판 높다란 집은 문이 잠겨 있습니다 이 유고의 편집은 하늘 땅 사이 만물에서 스스로 할 일을 다 하는 것이니 끊임없는 슬픔이 하늘 끝에 이른다 해도 소홀히 할 수 있습니까 주: ..

김유근,"선죽교에서 느낌을 씁니다"

金逌根 〈善竹橋書感〉 當時天意眷真人, 未必前王姓是辛。 揖讓唯聞歸舜禹, 謳歌不見屬朱均。 全生地下應無面, 一死橋邊願贖身。 莫把故都看逆旅, 祖先自昔悉臣民。 注:善竹橋是高麗朝末反對易姓革命之鄭夢周(1337-1392)被刺殺之地。二句用有關高麗三十二代國王禑王(1374-1388在位)之風聞:禑王之生父並非恭愍王,而是其寵臣辛旽。《高麗史》因而歸禑王於列傳,未為之寫世家。四句〈朱均〉為丹朱與商均,是堯與舜之子。商均,本名義均,因生於商,故稱之。堯舜禪讓之事,詳見於《孟子·萬章上》。 김유근 "선죽교에서 느낌을 씁니다" 그 때 하늘의 뜻은 진실한 사람을 아끼는 데 있었지 성이 신(辛)씨였던 지난 번 왕에 있었던 건 아니었지요 공손하게 왕위를 양보한 건 오직 요임금과 순임금 뿐이라 들었고 사람들의 노랫소리에 단주와 상균은 없었습니다 목숨을 부지했다..

김유근,"제목은 아직 붙이지 않았습니다 未題"

金逌根 〈未題〉 苦死留富貴,富貴不我留。 苦死謝貧賤,貧賤復不去。 去者不可留,來者何須拒。 貧乃士之常,賤又貧所宅。 人生在適意,貴賤不足較。 富是衆所怨,貧固於心安。 心安與衆怨,二者何所擇。 君子行乎素,不以易其操。 朝旭入吾室,捫蝨坐南榮。 肆然伸四軆,起居任吾意。 䟽糲充吾腹,布衣掩吾身。 疲當復偃臥,悠然便引睡。 我曾落塵網,廿載滾泥陌。 奔走勞身軆,膠擾役心志。 未補聖明治,空自誤身計。 仁天誘我衷,一朝如夢覺。 城東卜安宅,結搆頗精好。 復有田園美,足以供朝夕。 開門迎嶽色,臨軒聽水聲。 山鳥日相狎,野老時復過。 但道桒麻好,不見軒駟至。 政可怡心神,何苦憂世網。 世事本如此,為向知者道。 注:一、此篇載於〈初稿本〉,但並無註明其題,似非無題或失題,因而暫題為未題。此篇從頭到尾採用五言句形式,但不押韻。恐不能歸類為詩。二、9-12句,用《論語》如下篇章:「貧而無怨,難..

김유근,"늦은 봄 앓는 중에 그대를 그리워합니다"

金逌根 〈晚春病中懷人〉 沈吟送遲日,久病妨佳辰。 相望知不遠,莫徃空勞神。 김유근 "늦은 봄 앓는 중에 그대를 그리워합니다" 마음 속 깊은 생각으로 느릿한 해를 보내니 오랜 병이 좋은 날을 방해합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서로 그리워하는 걸 알지만 가지는 못하고 쓸데없이 근심만 합니다 (반빈 역) Kim Yu-gun "Longing for You in Late Spring while Ill in Bed" With a longing deep in my heart, I see off the faltering sun. The prolonged illness impedes any good days. I know well that we miss each other not from far away. Without bein..

김유근,"병치레 후에 하염없이 읊습니다"

金逌根 〈病起漫吟〉 殘燈耿耿伴閒思, 寒雨空堦夜共遲。 不省病淹今幾日, 居然歲暮已多時。 那堪谿壑填無底, 良苦形神供有涯。 一夢南柯何處覔, 餘生剩得髩成絲。 김유근 "병치레 후에 하염없이 읊습니다" 꺼져가는 등불이 수심에 찬 듯 두서 없는 내 생각을 따라 다닙니다 빈 계단에 차가운 비 내리고 밤도 함께 거기 머뭇거립니다 병치레가 오래 계속되어 지금이 몇 일인지도 모르는데; 한 해가 저문 게 벌써 오래 전이라 해서 놀랍니다 어떻게 해도 참을 수 없는 건 채우려 해도 바닥이 없는 골짜기이고; 좋건 나쁘건 끝에 다다를 몸과 마음입니다 부귀영화의 꿈을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이 생애에 남은 것은 하얗게 변한 귀밑머리 뿐입니다 (반빈 역) Kim Yu-gun "Chanting Aimlessly after a Long ..

김유근,"빗속에 한가히 앉아서" 두 수

金逌根 〈雨中閒坐〉二首 一、 鳴蛙閣閣滿林園, 客斷山樓獨掩門。 隱几逌然慵睡罷, 一簾凉雨近黃昏。 二、 天際烏雲撥不開, 林塘隱隱度輕雷。 小園日涉饒幽事, 却喜新篁冒雨栽。 김유근 "빗속에 한가히 앉아서" 두 수 1. 개굴개굴 개구리 울음소리 숲과 뜰을 가득 채우는데 손님 발길 끊어진 산 속 누각에서 홀로 사립문을 닫습니다 한적하게 책상에 기대어 게으르게 낮잠을 자고 나니 주렴 밖으로 차가운 비가 내리고 이제 곧 땅거미가 내릴 때입니다 2. 하늘 끝 검은 구름은 흩트려 열어젖힐 수 없고 수풀과 연못에는 우르릉우르릉 가벼운 우레가 지나갑니다 작은 정원 매일 거니니 여기저기 숨어있는 이야기도 많고 어린 대나무가 좋아서 비를 무릅쓰고 심습니다 (반빈 역) Kim Yu-gun "Sitting Leisurely in the..

김유근,"밤에 창랑정에 묵으며"

金逌根 〈滄浪亭夜宿〉 臨江多少起高樓, 看得幾人到老休。 惟有夜來千頃月, 小風波處泛虛舟。 김유근 "밤에 창랑정에 묵으며" 강을 내려다보는 곳에 높은 누각이 얼마나 들어서는지를 보면 늙어 쉬러 오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넓디넓은 이곳을 밤에 찾아오는 건 오직 달 뿐 실바람 속 잔잔한 물결 이는 곳에 빈 배 하나 떠 있습니다 (반빈 역) Kim Yu-gun "Spending a Night at the Changnang Pavilion" How many high towers rise In this place, overlooking the river, Would show how many people Come to rest in their old age. On these thousands of acr..

김유근,"대나무를 그리고 스스로 화제를 씁니다"

金逌根 〈寫竹自題〉 閒齋秋雨思紛紛, 清簟踈簾坐日曛。 一派彭城今已遠, 世間何處可逢君。 김유근 "대나무를 그리고 스스로 화제를 씁니다" 고요한 서재에 가을비가 내리고 생각이 어지럽게 흐트러집니다 깨끗한 돗자리 위 성긴 발 아래 앉으니 땅거미가 내립니다 팽성의 무리는 이제 먼 옛날의 일 세상 어느 곳에서 그대를 만날 수 있습니까 주: 셋째 행의 팽성은 지금의 강소성 서주(徐州)입니다. 그곳에서 지주(知州)를 지낸 소식(蘇軾, 1037-1101)도 대나무를 좋아했고, 그와 망년지교를 맺은 문동(文同, 1018-1079)은 대나무 그림의 대가입니다. 소식이 문동의 대나무 그림에 대해 쓴 글이 여러 편 전합니다. (반빈 역) Kim Yu-gun "Inscribed on My Own Bamboo Painting" 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