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음식 기행

"라오떠우푸(老豆腐)"

반빈(半賓) 2010. 9. 10. 21:21

 

"라오떠우푸(老豆腐)"

 

우스갯소리로 하신 말이겠지만 결혼을 며칠 앞두고 가진 한 저녁자리에서 내 장인은 따님의 혼처가 원래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정해졌다고 하셨다. 마침 저녁상에 오른 두부요리가 화제가 된 끝에 나온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렸을 적부터 두부를 좋아해서 늘 두부공장집으로 시집을 보내야한다고 말해왔는데 어쩌다 보니 고리타분하게 중국고전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보내게 됐다는 말씀이었다. 내 자격지심때문이었는지 그 말씀이 그냥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았다. 그 때만 해도 중국이 아직 소위 "()의 장막"에 가려져 있어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문학을 공부하는 게 그리 희망이 있어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그 때 내 인생의 청사진이 꼭 배고프게 살겠다는 선언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 자리에서 구차하게 반박을 하거나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을 수도 없어서 그냥 "두부조차 마음대로 먹지 못하게 할 것 같아 걱정이 되시는 모양입니다"하고 받고 말았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다른 건 몰라도 두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찾은 혼처치곤 나도 나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처럼 두부를 다양하게 먹는 문화도 찾기 힘든데, 중국을 공부하다 보니 중국사람을 사귀고, 중국과 타이완을 여행하고, 그래서 중국음식을 대할 기회가 자연히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부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리된 두부를 먹어 볼 수 있었고, 그 다양함은 어쩌면 두부공장 여주인이 쉽게 따라올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두부를 먹는 방법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냥 한두 모를 끓는 물에 풍덩 담가 잠시 삶은 후 양념장을 곁들여 먹기도 하고, 기름에 노릇노릇 부쳐 먹기도 하고, 부친 두부에 온갖 갖은 양념을 해서 찌기도 하고, 된장찌게나 김치찌게에는 널찍하게, 콩나물국에는 길쭉하게 썰어 넣어 맛을 더하기도 하고, 흐물흐물한 순두부에 해물이나 돼지고기를 넣어 매콤하게 먹기도 하고, 심지어 갖은 양념을 한 다진 고기를 두부 가운데를 갈라 그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워넣은 후 통째로 쪄서 먹기도 하니, 두부가 밥상에 오르는 모습이 실로 변화무쌍하다. 그러나 그 변화의 폭은 중국음식에서의 두부를 따르지 못한다. 언젠가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우리 홍어 삭히듯 짚단 속에 넣어 곰팡이가 슬게 한 후 코를 찌르는 악취를 인내하며 먹는 방법까지 있으니 말이다.

 

여기 소개하는 두부요리는 "늙을 로()"를 붙여 "라오떠우푸(老豆腐)"라고 하는데 이 이름은 정말 어찌 번역해야할지 감감하다.  여기 "늙을 로"라는 글자는 중국어에서 "늙었다"는 뜻 외에 너무 오래 조리해서 질겨졌다는 뜻을 갖기도 한다.  예를 들어, 달걀을 후라이 할 때 너무 익어버렸다고 불평하면서 "너무 늙었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노두부" ""자는 절대로 부정적인 의미로 이해할 수 없다. 실제로 "라오떠우푸"는 조리 시간이 아주 길어 상당히 정성이 필요한 요리이다.  그러나 "질긴 두부" "늙은 두부"라고 입맛이 떨어지게 하는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다. 그렇게 하기엔 참 맛이 깊은 요리이다.

 

요즈음처럼 한 모 두 모 플라스틱 용기에 들어있는 두부가 아니라 재래시장에서 열여섯, 혹을 스물다섯 모가 함께 붙어있는 두부를 한 판 판째로 사서 자르지 않고 한꺼번에 물에 삶는다. 한 십오 분이 지나 한바탕 끓고 나면 물을 따라버리고 다시 냉수를 부어 또 십오 분 정도를 삶는다. 그러기를 열 번 정도하고 나면 두부는 아주 조그맣게 쪼그라든다.  십 센티 정도 되던 두께가 이삼 센티로 줄어들 정도로 작아진다. 열 번을 끓이고 난 후에 생기는 변화는 크기의 수축뿐이 아니다. 우선 두부를 만들 때 쓰이는 간수가 가지는 쓴 맛이나 석고의 맛이 모두 빠져 정말 깨끗하고 담백한 맛이 된다. 두부를 잘라보면 안에 꼭 벌집 같은 구멍이 많이 생겨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변화이다. 이 두 가지 변화, 즉 조금 역겨울 수 있는 간수의 맛이 모두 제거되고 두부 안에 구멍이 많이 생긴다는 변화는 "라오떠우푸"가 깊은 맛을 갖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렇게 준비된 두부는 반복해서 끓이는 동안 딱딱해져 있는 네 변을 얇게 저며낸 후 먹기 좋을 만한 크기로 썬다.

 

이렇게 두부를 준비하는 동안, 한편에서는 육수로 쓸 닭국물을 마련한다. 통통한 씨암탉을 서너 시간 물에 넣고 삶은 후 국물을 육수로 쓰고, 뒷 다리 살은 껍질을 벗겨낸 후 결에 따라 찢어둔다.

 

이렇게 육수가 준비되면 옹기냄비에 육수를 붓고, 준비한 "늙은 두부"를 가지런하게 넣는다.  그 외에 여러 가지 재료를 첨가할 수 있지만, 얇게 썬 전복, 결에 따라 찢은 스캘럽, 가늘게 채썬 햄 등이 자주 사용되는 재료이다.  육수와 두부가 든 옹기냄비에 우선 햄과 스캘럽을 넣어 한 시간 정도 약한 불에 끓이고, 다시 준비해 둔 찢은 닭고기와 전복 박편을 넣어 잠시 더 끓이면 요리가 끝난다.  중국음식에 사용하는 해산물은 싱싱한 것 보다 말리거나 캔으로 만들어 갈무리해 둔 것을 사용해야 제 맛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을 줄 때가 많다.  "라오떠우푸"에 사용하는 전복은 대부분 캔으로 된 것을, 스캘럽은 말린 것을 술을 넣은 따듯한 물에 한 삼십 분 담가 불려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경우 캔에 들어있는 전복의 국물은 버리지 않고 모두 냄비에 넣어 함께 조리한다.

 

어디 그게 두부요리냐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두부는 제일 값싼 재료인 반면에, 전복, 스캘럽, , 닭고기 등 값나가는 재료가 들어가니 해산물 닭고기 요리라고 하는 게 더 적당하지 않느냐는 지적이 그럴 듯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라오떠우푸"를 먹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정말 깊은 맛은 다른 재료가 아닌 그 늙은 두부를 씹을 때 느낄 수 있다.  여러 번 끓여 맛이 깨끗해진 두부와 그 안에 생긴 숭숭 뚫어진 벌집같은 구멍 사이로 좋은 재료의 맛이 스며들어 있다가 이와 혀 사이로 전달되는 것이다.  "질기다"는 표현은 적당하지 않다. 그러나 반복해서 삶는 동안 보통 두부보다 씹히는 맛이 생겼기 때문에 천천히 씹으며 그 두부 속에 깊히 잡힌 맛을 꺼내 음미하는 과정이 미식가에게는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2010 9)

 

'중국 음식 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깐비엔(乾煸) 조리법"  (0) 2010.10.30
"夫妻肺片과 '마알라(麻辣)' 맛"  (0) 2010.10.05
"스즈터우(獅子頭)"  (0) 2010.09.07
거렁뱅이 닭  (0) 2010.05.09
"홍사오(紅燒)" 조리법  (0) 2010.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