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음식 기행

"夫妻肺片과 '마알라(麻辣)' 맛"

반빈(半賓) 2010. 10. 5. 16:40

 

"夫妻肺片과 '마알라(麻辣)' "

 

    세상 곳곳에 참 여러가지 맛이 있고, 그 중 어떤 맛은 아무리 맛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도 쉽게 좋아하기 어려울 수 있다.  실제로 역겹게 느껴지는 맛이 있기도 하고, 좋아할 수 있는 맛이라도 먹을 때의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두 번 다시 손이 가지 않는 맛을 가진 음식도 있다.  나도 참 여러가지 음식을 먹어보았지만 세상에 있는 갖가지 맛의 폭은 과연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동양에서는 갖가지 음식의 맛을 달고, 쓰고, 맵고, 짜고, 신 다섯가지의 기본이 되는 맛이 갖가지 비율로 배합되었다는 말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른바 "오미(五味)"인데 그건 "오행(五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중국문화에 "오행"이라는 게 있음은 두루 알려져 있다.  하긴 오랜 역사 속에 넓은 지역으로 전파되어 우리의 문화에도 곳곳에 스며들어 있느니 꼭 "중국 것"이라고 할 수도 없겠다.  자연을 이루는 다섯 가지 기본요소를 말하면서 또 그러한 요소가 차고 이지러짐에 따라 거치는 단계를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영어로는 오행을 흔히 "five elements" 또는 "five phases"라고 한다.  이런 사고방식이 우리의 생활에 미친 영향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넓고 깊다. 우리는 한 주일의 일곱날 중 닷새를 이 오행으로 이름지었다. 

 

    그러나 말은 이렇게 해도 사실 오행이 무언지는 꼭 집어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다.  우선 다섯 개 사이의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한 주일 일곱날의 이름에서는 해()와 달()에 이어 불(), (), 나무(), (), ()의 순서로 사용되는데 왜 이런 순서인지 설명이 없다.  태양계의 행성 중 지구를 뺀 첫 다섯을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라고 이름한 것도 역시 이 오행을 적용한 것인데, 거기 보이는 다섯 사이의 순서가 또 다르다.  이 오행의 사이에는 서로 살리고(相生), 서로 억제하는(相剋) 관계가 있어서 그 관계를 중심으로 순서를 찾아볼 수도 있다.  낳고 살리는 관계를 따르자면 나무()가 불()을 낳고, ()이 흙()을 낳고, ()이 쇠()를 낳고, ()가 물()을 낳고, ()이 나무()를 낳으니 이 순서를 따르면 목, , , , 수이다.  물론 이 순서는 계속 돌아가기 때문에 어느 것에서 시작하든 관계가 없겠다.  또 서로 억제하는 순서로 배열하면 수, , , , 토이다.  물을 부으면 불이 꺼지고, 쇠붙이는 불에 넣으면 힘없이 녹는다.  쇠로 만든 도끼나 톱은 나무를 패고 베는 데 그만이고, 나무(뿌리)는 흙을 파고들어 틈을 만든다.  또 흙으로 만든 뚝은 물을 막는다.  이게 바로 상극의 관계에 따른 오행의 순서이다.

 

    그런데 이 몇 가지 순서는 모두 오행이 중국의 서적에 처음 나타났을 때의 순서와 또 다르다.  《상서(尙書), 혹은 《서경(書經)》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책의 〈홍범(洪範)〉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타난다.  "오행의 그 하나가 물()이고, 그 둘이 불()이고, 그 셋이 나무()이고, 그 넷이 쇠()이고, 그 다섯이 흙()이다.  물은 아래를 적심이라 하고, 불은 위를 덥힘이라 하고, 나무는 바른 것을 구부림이라 하고, 쇠는 뜻대로 바꿈이라 하고,  흙은 심고 거둠이라 한다.  아래를 적심이 짠맛을 만들고, 위를 덥힘이 쓴맛을 만들고, 바름을 굽힘이 신맛을 만들고, 뜻대로 바꿈이 매운맛을 만들고, 심고 거둠이 단맛을 만든다."  오행의 순서도 순서이지만, 그 오행을 다섯가지 맛과 연결시켰다는 점이 재미있다.

 

    한의학에서는 또 오행이 또 우리 몸의 다섯가지 장기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나무는 간, 쇠는 폐, 물은 콩팥, 흙은 지라, 불은 심장을 대표한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오행과 오미와 오장의 관계는 때에 따라 그 연결이 뒤죽박죽이어서 무엇이 무엇과 연결되어있는지 정확하게 짚어내기 쉽지 않다.

 

    순서나 조합이야 어찌 됐든 맛에는 다섯가지가 있어서 실제로 우리 입에 들어오는 음식은 이 다섯가지의 맛이 묘하게 어우러진 것이라는 설명은 그럴 듯 하다.  그 무수한 조합에서 오는 변화에 음식의 온도나 조리된 식재료의 질감에 따른 차이가 더해지니 실제로 음식의 맛이 주는 즐거움이 무궁무진한 것이다.  그런데 이 다섯가지의 맛의 범위를 벗어난 맛이 있으니 그게 바로 "麻辣"이다. 우리말로 쓰면 "마알라" 또는 "마라" 정도일 것이다.  여기서 "()" "매울 신()"이 들어있는 것을 보아도 "맵다"는 뜻으로 다섯가지 기본적 맛의 하나이다.  문제는 "()"이다.  "얼얼하게 마비"되는 것이니 꼭 맛이라고 하기보다는 접촉에 의해 피부의 감각이 일시적으로 둔해진다는 뜻에 가깝다.  음식의 이름이나 묘사에 이 어휘가 들어 있을 경우 조심하는 것이 좋다.

 

    실제로 이 "마알라"의 맛을 강조해 잘 알려진 "푸치페이피엔(夫妻肺片)"이라는 음식이 있다.  이름만 보아도 어떤 부부가 만들기 시작해서 성공함으로써 유명해진 음식임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음식이 맵기로 정평이 있는 사천(四川)지방의 청두(成都)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이제는 중국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명물이 되었다.  사천지방보다 음식이 더 맵다고 주장하는 지방이 많이 있고, 사실 아주 맵게 조리된 음식은 중국 여러 곳에서 맛볼 수 있다.  그러나 "뿌파알라(不怕辣)", 즉 매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사천사람들에게 시비를 하면, 그 사람들은 나는 "파부울라(怕不辣)", 즉 맵지 않을까 두렵다고 대답한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사천음식은 매운 맛으로 손꼽히고, 사천사람들은 매운 음식을 잘 먹기로 알려져 있다.  물론 우리나라 사람들도 매운 음식이라면 상당한 내공이 있고, 나도 그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나는 "부처폐편"은 처음 만났을 때 반의 반도 먹지 못했다.  입안뿐 아니라 식도를 거쳐 뱃속까지 이르는 전신이 마비되는 기분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묘한 맛의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길 즐겨왔다고 해도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 것이다.  사실 다음에 기회가 또 있다고 해도 그리 손이 갈 것 같지 않다.

 

    신경이 마비될 정도로 맵다는 이유뿐이 아니었다.  음식이름에 분명히 "()"가 들어있는데, 정작 음식에서는 어느 것이 폐인지 알 수 없었고, 소개한 친구에게 물으니 폐는 식재료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했다.  주로 쇠고기의 여러 부위를 재료로 만드는 음식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소머리의 껍질부분, 염통, 처녑, 혓바닥 등이 널찍널찍하게 얇게 저며져 들어있었다.  국물은 붉다 못해 검은 색이 돌았는데, 보기만 해도 끔찍할 정도로 매운 느낌이었다.   음식이름에 들어있는 ""가 호기심을 돋구었는데, 들어있지 않다고 해서 의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저으기 안심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름과 실질이 부합하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궁금했다.  그러다 언뜻 생각이 난 것이 그 ""는 실제로는 "허파"라는 ""가 아니고 "쓸 데가 없어 버린다"는 그러니까 "폐품"이라는 ""였음이 분명했다.  우리말 발음만 같은 것이 아니라 중국어 발음도 성조까지 같은 동음이의어이다.  말하자면, 음식에 넣기 그렇고 해서 버릴 재료를 이용하되 맛을 지독하게 맵고 얼얼하게 하여 관심을 끌거나 아니면 다른 생각을 라지 못하게 한 것이 이 음식이라는 짐작이 가능했다.  매운 것도 매운 것이지만, 그런 음식을 다시 찾아 먹을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뱃속이 어디 쇠고기 재활용 공장인가.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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