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음식 기행

"깐비엔(乾煸) 조리법"

반빈(半賓) 2010. 10. 30. 16:43

 

"깐비엔() 조리법"

 

    중국음식점은 참 가지 각색이다.  땅덩어리가 워낙 넓으니 지방에 따라 음식이 가지가지이고, 그런 지역의 특색을 살리려다 보니 음식점의 종류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지역 음식문화의 차이 말고도 음식점이 가지 각색인 이유는 또 많이 있다.  종업원 사이의 정보교환이 귀 옆으로 매달린 무선통신기구를 통해 이루어지는 대형음식점에서부터, 꼭 옛날 궁중이나 귀족의 가옥을 연상하게 하는 고급스러우면서 은밀한 곳도 있지만, 중국음식으로 보면 만리타향이랄 수 있는 미국의 시골 구석 뒷골목에 테이블 대여섯 개를 놓고 마치 소꿉장난 하듯 열어놓은 집까지 중국음식점은 참 진폭이 크다.  중국 큰 도시의 길가에 좌판을 벌이듯 열어놓은 먹거리 장소까지 포함시킨다면 정말 가지 각색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이다.

 

    나는 외견상 나타나는 그런 품격의 차이에 구애받지 않고 중국집이면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다 다녔다.  갖가지 음식을 조리법이나 내력에 대해 늘 관심을 가지면서 맛을 보는 게 즐거웠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런 음식점이 상상했다고 생각되는 고객의 층과 그에 따라 달라지는 음식의 모습도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렇게 가리지 않고 중국음식점을 찾아다니다 보니 생각치 않았던 일이 생기기도 했다.  이를테면 음식을 시켜 먹었는데 주인이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한 깜찍한 일도 있었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지금 사는 포틀랜드에 이사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런 일이 있었다.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 미국식 다이너 건물을 개조해 만든 듯한 허름한 중국음식점에서 였다.  너무 오래 전의 일이라 음식점 이름조차 가물가물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잘해야 아마 "China Delight" "Lucky Seven" 같은 야릇한 영어이름이었을 것이니 기억이 난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고, 이름을 알아 지금 다시 애써 찾아본다고 해도 그 집이 아직 남아있을 것 같지 않다.  그런데 그런 허름한 중국집 메뉴에 "깐비엔() 쇠고기"라는 흔하지 않은 음식이 올라 있었다.  일부러 찾아간 곳도 아니고 밥 때를 놓쳐 그냥 눈에 띄는 대로 찾아 들어간 곳이었기 때문에 흔치 않은 그 메뉴가 더욱 눈을 끌었다.  물론 그걸 한 접시 시켰다.  솜씨가 그럴 듯했다.  주인장인 듯한 사람이 있길래 "이집 깐비엔 쇠고기가 미국에서 두번째로 맛있다"고 칭찬을 했다.  주인장의 입장에서 보다면 "두번째"라고 한 말이 귀에 거스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그렇게  이야기했다.  말을 몇 마디 더 주고받기 위해 늘 써온 상투전인 전략이었다.  그러나 그 말엔 그 음식이 맛이 있었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이 들어 있었다.

 

    주인장은 바로 제일 맛있는 집은 어디냐고 바로 되물었다.  예상했고 바라고 있던 반응이었기에 미소로 답했다.  그리고 나서 버클리대학 부근의 조그만 중국집에서 맛을 본 깐비엔 쇠고기가 아직은 제일로 기억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건 상당부분 진심이었다.  그 때 그 집도 잘 아는 사람이 데려간 것도 아니고 소개를 받아 찾아간 것도 아니었지만, 정말로 그 음식이 맛있었다고 기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의 그 말에  주인장이 오늘 음식값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공짜로 점심을 해결하게 되었으니 그다지 기분 나쁜 일은 아니었지만, 혹시 둘째라고 해서 기분이 상한 건 아니었는지, 혹시 내가 말을 잘못한 건 아니었는지, 조금의 조바심은 없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이 간단하게 한 점심이었으니 몇 푼 되지 않았지만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는 이유를 굳이 물어야 했다.  대답은 간단했다.  내가 첫째라고 했던 버클리대학 근처의 그 중국집을 바로 얼마 전까지 자신이 운영했고, 최근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는데 배운 도둑질이 음식 만드는 일이라 또 음식점을 열었다는 이야기였다.  자기가 전에 경영한 음식점의 음식을 그렇게 긍정적으로 평가해주어서 참 고맙고, 그래서 점심값은 받지 않아야겠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첫째도 둘째도 다 자기 솜씨이니 그런 칭찬을 어찌 맨입으로 듣겠느냐는 취지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한토막의 미담이었고 우연치고는 참 재미있는 우연이었다.

 

    "깐비엔()"이라는 조리법은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쓰촨(四川)지방의 일반적인 조리법이다.  식재료를 센불의 기름에 후루룩 튀겨내 바깥부분의 수분을 빠른 속도로 제거한 후 매콤한 양념과 함께 다시 한 번 볶아내는 방법으로, 알고 맛을 본 분들도 있겠지만 무언지 모르고 그냥 맛을 즐긴 분들도 아마 많을 것이다.  기름에 튀긴 음식을 꺼리는 현대의 음식습관에서도 센불에 빨리 튀겨내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다고 들었다.  그런 조리의 과정에서는 기름이 그리 식재료에 흡수되지 않는다고 한다.  어쨌든 그렇게 튀기는 과정의 효과는 대단히 즐겁다.  우선 식재료 깊은 속부분의 수분은 유지되기 때문에 연하고 부드러운 질감을 느끼게 하면서, 급하게 튀겨진 부분에서는 아삭아삭한 상쾌함을 준다.  그 두 가지 질감이 하나의 식재료에 함께 어울러졌다는 게 더욱 중요하겠다.  또 식재료 겉부분이 탈수되었기 때문에 양념이 맛있게 배어들 틈이 만들어진다.  이래저래 좋은 효과인 것이다.

 

    이러한 효과를 위해 사용하는 조리법이기 때문인지 이 방법으로 조리되는 음식의 식재료는 대부분 원래 길다란 끈의 모습이거나 그렇게 적당한 굵기로 채를 썰어서 사용한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재료는 영어로는 "string beans"라고 하고 중국어로는 "쓰지떠우(四季豆)"라고 하는 깍지째로 먹는 콩류 식물이다.  물론 이 조리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재료는 그 외에도 많이 있다.  싱싱한 죽순을 손가락 길이, 손가락의 1/4 굵기로 썰어 조리하기도 한다.  생버섯을 그렇게 조리한 것도 맛본 일이 있는데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기억한다. 심지어 무우를 무말랭이 만들듯 길쭉길쭉하고 통통하게 채로 썰어서 쓰기도 한다.  생선으로는 그렇게 조리한 장어를 맛본 일이 있다.  쇠고기를 깐비엔으로 조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인 듯했다.  메뉴에 그게 올라 있으면 늘 주문을 했기 때문에 비교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솜씨를 인정하고 싶은 집은 많지 않았다.  적절한 크기와 굵기로 썬 쇠고기를 빨리 튀겨내어 아삭아삭하면서 부드러운 느낌을 함께 만들어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포틀랜드라는 촌 구석에서 솜씨좋은 깐비엔 쇠고기를 맛본다는 게 의외의 즐거움이었다.

 

    주인장에게 비결을 물었다.  "영업비밀인데…" 하고 너털웃음을 웃으며 세 가지를 이야기했다.  첫째는 기름이라고 했다.  어쨌든 튀기는 요리이니 기름이 중요하다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얼마전 서울에 갔을 때 본 튀긴 닭 광고지에 그 회사는 닭을 올리브유로 튀긴다고 했던데, 그건 그야말로 무식의 소치이거나 고객이 무식하다는 생각에서 나온 거짓말이다.  올리브유는 고온으로 덥혀 쓰는 기름이 아니다.  그 중국집 주인장은 깐비엔 요리에는 해바라기씨로 만든 기름을 쓴다고 했다.  중국음식에 대한 경험이 조금이라도 있는 분들은 대개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중국사람들은 음식에 기름을 참 많이 쓴다.  우스갯소리로 중국사람들은 무얼 요리할지 결정하기 전에 먼저 왁에 기름부터 덥힌다고 할 정도로 기름을 많이 쓴다.  해바라기씨 기름은 아마 식물성 기름 중에서 고급에 속할 것으로 생각된다.  소흥주(없으면 다른 술도 무방하겠지만)와 간장, 다진 마늘, 생강즙으로 밑간을 해 둔 길쭉길쭉 썬 쇠고기를 센 불에 덥힌 좋은 새 기름에 빨리 튀겨낸 후, 기름을 따라내 왁에 묻어있는 한 술 정도의 기름으로 나머지 요리를 한다.  둘째는 쓰촨지방의 요리에 자주 등장하는 매운 된장(辣豆瓣醬)이라고 했다.  튀겨낸 쇠고기를 다시 볶을 때 먼저 쓰촨식 매운 된장을 넣어 볶다가 쇠고기를 넣으라는 이야기였다.  세째는 화초(花椒)라고 부르는 매운 양념이었다.  꼭 후추처럼 생겼지만 붉은 색이고, 음식에 넣어 볶으면 가운데가 십자모양으로 갈라지기도 한다.  이 향신료가 내는 맛은 맵다기 보다는 얼얼하다고 하는 편에 더 가깝다.  그래서 가루로 낸 것을 쓰지 말고 통째로 쓰는 것이 좋다.  매운 맛을 즐기지 않거나 잘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화초를 빼고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화초는 요리가 다 되어 접시에 담기 바로 전에 넣어 잠시 뒤적거리면 좋다.

 

    깐비엔 요리는 요리에 그리 솜씨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특히 부엌일에 서툰 남자들이 한 번 시도해 봄직한 조리법이다.  튀긴 후 다시 볶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장황함 때문에 조금 잘못되더라도 가족들이 별 말을 하지 않는다.  수고했다는 게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재료로 쓸 때는 밑간에 쓰이는 술이나 마늘, 생강, 그리고 볶을 때 넣는 향신료 외에 다른 특별한 재료가 없다.  그러나 쓰지떠우나 버섯, 무우를 요리한다면 새우나 스캘럽을 함께 넣어도 좋다.  싱싱한 것을 쓸 때는 너무 익는 걸 피하기 위해 그 해산물을 조리과정의 끝 부분에 넣어야 하지만, 말린 것을 이용할 때는 물에 적당히 불린 후 매운 된장을 볶을 때 바로 넣어도 좋겠다.  밥 한 솥 하고, 이 요리 하나 하면 한 끼 잘 먹을 수 있다.  조금 허전해 보이면 중국식 달걀탕을 곁들이면 나무랄 게 없을 것이다.  늘 해준 음식만 먹는 남편들에게 한 번 해서 가족들, 특히 부인의 평소 수고를 체험하고 나누라고 권하고 싶은 조리법이다.

 

(20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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