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참 특별했던 미사"

반빈(半賓) 2010. 8. 26. 13:19

참 특별했던 미사

 

지난 주일(2010 8 22)은 참 특별한 미사에 참여했습니다. 내가 미리 알고 일부러 찾아간 것도 아닌데 많이 배우면서 기도하는 참 좋은 기회였습니다. 큰 은총으로 생각합니다. "아씨씨의 성 프란치스코 (St Francis of Assisi)"라는 본당이었습니다. 갑자기 생긴 일정이 내가 속한 본당의 주일미사 시간과 중복되어 인터넷에서 근처의 다른 본당 미사시간을 확인하고 그냥 한 시간 일찍 교중미사를 하는 본당을 찾아간 것 뿐이었습니다. 동네 전체가 좀 어둠침침해서 분위기가 그리 유쾌해보이지 않았습니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 근처에 도착해 차를 세우고 두리번거리며 성당처럼 생긴 건물을 찾다보니 조그만 공원에서 야외미사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오르간 두 대와 플룻, 꼭 우리나라 장구처럼 생긴 북 하나를 포함한 타악기 둘, 기타 둘을 비롯해 대여섯 명의 성가대원들이 준비하고 있었고, 지휘자인 듯한 여자분 하나가 교우들에게 화답송으로 부를 노래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눈에 뜨이는 교우들은 대부분 노인들이었지만 성가 실력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성당 바로 옆에 있는 조그만 공간으로 "성프란치스코 공원"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장소였는데 바로 옆으로 난 길에서 자동차 소리와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해 어수선했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멋도 있었습니다.  아름드리 나무가 빽빽하게 서 있었고, 벽돌로 만든 수로였지만 상쾌하게 물도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밖으로 나와 미사를 드리면서 특별히 자연과 환경에 대해서 생각하고 기도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인류의 무책임한 행위가 환경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하고 있음을 기억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는 지향을 가지고 드리는 기도였지요. 말씀의 전례에서 들은 독서와 복음은 연중 21주일의 내용 그대로였습니다.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으니 듣고 묵상하면서 두려운 생각이 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가 들어가려는 순간 하느님 나라의 문이 닫혀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로 내 책임을 다 하라고 독려했으니 더욱 그랬지요.

 

전례를 준비하신 분들이 참으로 수고하셨다는 게 분명했습니다.  몇 가지 인상싶었던 부분만 여기 옮기지요. 

 

우선 미사 시작 전 묵상을 위해 들은 노래는 가슴이 조여올 정도로 무거웠습니다.  앤디 반스라는 사람이 쓴 "마지막 큰 고래"라는 노래였는데 가사가 참 애절했습니다.

 

내 영혼이 내게서 찢겨 나갔고 나는 피를 흘리고 있어요.

내 마음은 부서졌고 나는 흐느끼고 있어요.

주위의 모든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나는 울부짖고 있어요.

마지막 큰 고래인 나는 이제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젯밤 나는 내 마지막 동무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작살대포가 으르렁댄 후 나 홀로 남았어요.

나는 수천 마리의 동무들과 함께 있던 옛날을 생각했어요.

나 역시 곧 죽는다는 걸 나도 잘 알고 있어요.  마지막 고래입니다.

 

오늘 아침에도 태양은 주홍색 가장자리를 북쪽하늘 위로 밀고 올라왔습니다.

얼음은 핏빛이었고, 바람소리는 탄식이었지요.

나는 숨을 쉬려고 물 위로 올라왔는게, 그게 마지막 숨이 되었습니다.

대포에서 죽음을 고함소리가 터져나오고, 나는 끝장이 난 것이지요.

 

우리는 시간이 시작된 때부터 사냥 당했습니다.

우리들의 집인 바다에서 사냥을 당한 것이지요.

조각배를 탄 에스키모에서부터 힘센 고래잡이들까지

우리가 그렇게 애타게 애원했건만, 아무도 우리를 구하러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이 모두 가버렸으니, 이제 사냥도 없겠지요.

큰 녀석들이 모두 가버렸다고 아쉬워해도 소용없어요.

우리 다름으로는 누가 도륙을 당할까요?

코끼리일까요, 바다표범일까요? 아니면 여러분의 아들 딸들일까요?

 

내 영혼이 내게서 찢겨 나갔고 나는 피를 흘리고 있어요.

내 마음은 부서졌고 나는 흐느끼고 있어요.

주위의 모든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나는 울부짖고 있어요.

마지막 큰 고래인 나는 이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정제되지 않은, 너무 직접적인 감정표현이라고 한다면 그건 상아탑에 감금된 정신빠진 읽기라고 비판되어야 할 것입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피를 흘리며 죽어가면서 감정의 정제를 생각하라고 하겠습니까.  물론 미사에 앞서 미사를 준비하는 묵상으로 이런 처절한 목소리를 듣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닐 수 있었지만, 욕심과 무지에 의한 환경의 파괴가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마지막 큰 고래에 힘있게 투영되어 있었고 그건 그 미사의 메세지를 받아 새기기 위해 필요한 고통이었습니다.

 

이 노래를 듣고 모두 일어서서 노래로 부른 입당송은 목소리가 조금 달랐습니다.

 

성스러운 땅이여, 성스러운 물이여, 성스러운 하늘이여, 모두 거룩하고 참되네.

성스러운 모든 생명이여, 서로서로에게 모두 성스러우면서 좋으신 하느님을 반영하네.

 

목소리가 다르게 들렸다는 건 이 입당송이 긍정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었겠습니다.  그러나 두 목소리를 병치시켜 들으면 이 입당송도 그리 마음편하게 들을 수 있는 내용이 아니겠지요.

 

그리고 나서 이 미사를 합당하게 드리기 위해 우리 자신을 돌보는 참회의 예절 역시 전례를 담당하신 분들이 새로 쓰신 듯 했습니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 하느님, 당신이 만드신 것은 얼마나 많고 얼마나 훌륭합니까.  당신은 지혜로 모든 것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고백합니다. 당신이 창조하신 자연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걸 알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은혜로 받은 저희들이지만, 우리는 오만과 무지와 욕심으로 그 선물을 함부로 대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작품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힐 수 있는 일을 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당신께 찬미를 드릴 수 있는 창조물의 능력을 고갈시켰음을 고백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손길이 우리 삶의 환경을 주셨음을 고백합니다. 그건 바로 우리들의 집입니다.

 

우리들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청합니다. 우리들이 한 일에 대한 슬픔 속에서 우리는 참회를 드립니다. 우리는 당신과 당신의 창조에 대한 우리의 참회가 합당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삶을 주십시오. 아멘.

 

이런 기도로 시작된 후, 강론시간에 참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일일이 옮기기에는 내 기억이나 능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그냥 한마디만 옮기지요.  "개인주의를 미덕이라고 하는 것은 특혜를 받은 계급의 신화이다."  우리 말에서 "개인주의"라는 말은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 때문에 이 말이 별 감흥을 주지 못할 수 있으나, 영어에서 "individualism"이라는 말은 대부분 개인의 독자성과 창의성을 강조하는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 말하자면 사회나 공동체 등 집단의 힘으로 개인의 자유나 독자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날 강론의 맥락에서는 우리가 절대로 우리 삶과 존재의 맥락을 이루는 여러 관계에서 독립적일 수 없다는 뜻에서 "개인주의"가 있는 사람, 특혜받은 사람들의 오만이나 아집임을 지적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개인주의"라는 이름으로 주위, 환경, 생태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해를 끼치는 사람들은, 복음말씀을 통해 들은 것처럼 이 세상에서 첫째일지 몰라도 하느님의 왕국에서는 꼴찌가 될 수 있다는 것이고, 어쩌면 하느님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조차 없을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고래가 다 죽고, 코끼리가 다 죽고, 바다 표범도 다 죽은 후에 우리 후손이 여전히 살아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었겠지요.

 

기억해두고 싶은 일은 이 외에도 많았습니다.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시간에 교우 모두가 함께 부르고 들은 노래에서는 "Peace be upon us, peace be upon us, be upon us all." 이라는 영어인사가 "아쌀라무 알라이쿰, 와알라이쿰 아쌀라암"이라는 아랍어 인사로 이어졌습니다.  종교에 뿌리를 둔 무지와 편견, 증오로 열병을 앓고 있는 지금, 천주교 전례에서 아랍어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성체를 모시는 시간이 끝난 후 우리는 성가는 아니지만 참 구수하고 좋은 노래를 함께 불렀습니다.  조지 와이스와 밥 틸일리가 작곡했고, 루이 암스트롱의 구성진 목소리로 우리의 귀에 익은 "What a Wonderful World"라는 노래였습니다.

 

I see trees of green, red roses, too.  I see them bloom for me and you,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world.

I see skies of blue and clouds of white, the bright blessed day, the dark sacred night, and I think to myself, What a wonderful day.

……

 

물론 노래에서는 지금 이 날이 바로 그렇게 훌륭한 것으로, 현재 시제로 노래하고 있지만, 이런 세상을 만들고 지켜나가기 위해서 참 할 일이 많다는 건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  미사를 통해 그런 다짐, 하느님이 만들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세상을 지키고 더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힘을 합쳐 일하자는 취지였지요.

 

물론 이 미사 내내 태평양 건너 내 고향에서 사대강인지 대운하인지라는 이름으로 돌이킬 수 없이 회손되고 있는 하느님의 아름다운 창조물들이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2010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