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담치기"
"386세대"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부터 50년대에 태어나 70년대에 대학을 다닌 우리 세대의 시대는 그냥 얼렁뚱땅 생략되고 지나가 버렸다는 느낌이었다. 은근히 섭섭한 마음 없지 않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들이 가지지 못한 경험을 많이 했다고 주장할 근거가 상당히 있다. 예를 들어 사업을 하다가 망한 사람에게 "깡통을 찼다"고 말하는 근거가 무언지 젊은 세대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깡통을 차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면서 "밥 좀 줘어--"하는 모습을 어디서 경험했겠나. 우리는 그걸 다 겪으면서 자랐다. 그런 광경을 일상에서 보며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감수성과 정서, 어려움에 대한 경외, 마음 한 구석에서 자라난 정의에 대한 갈망, 그런 게 남달랐다고 주장하면 너무 "오바"하는 건가?
그런데 그 "깡통"에 관한 추억이 중국 남쪽 푸우쩌우(福州)라는 도시에서 먹은 "불도장(佛跳牆)"이라는 음식을 음미하는데까지 동원되리라는 건 상상하지 못했다. "불도장"이라는 말은, 특히 한글로 써버리면, 도대체 무슨 뜻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한자를 풀이해 보면 "부처님이 담을 뛰어넘는다"는 뜻이니, 우리말로 잘 번역을 하자면 "부처님 담치기" 정도가 적당할 듯 하다. 좀 이상한 상상을 자극하는 이름이라서 그런지 그걸 십분 이용하는 상술도 있다고 들었다. 요즈음 서울의 고급 중국요리집에서도 이 음식을 맛볼 수 있다고 하는데, 부처님이 담을 넘는다는 소리를 엉뚱한 데 같다 붙여 남자 정력 운운한다고 해서 하는 말이다.
이 음식은 중국 남부지방, 특히 푸우졔엔(福建)성과 타이완 일대에서 맛을 볼 수 있는 진미인데, 그 맛의 조화를 먹은 지 두 달이 돼오는 지금에서야 글로 옮길 용기를 내고 있으니, 그것만 보아도 내가 받은 감동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 음식의 내력은 대충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옛날, 옛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 어떤 거지아이 하나가 있었다. 그 아이는 깡통을 하나 들고 밥술 깨나 먹을 듯 보이는 부잣집을 골라 다니면서 국 찌꺼기, 반찬 부스러기 따위를 얻으러 다녔다. 깡통이 가득해진 후, 불을 피워 이미 식어버린 그 찌꺼기 음식을 덥혀 주린 배를 채우려고 인적이 드문 곳을 찾다보니 산 속 어떤 절 밖의 한 모퉁이까지 가게 되었다. 불을 피워 깡통을 올려놓으면서 음식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갔고, 결국 절 안에서 도를 닦고 계시던 스님들의 코 끝에 닿았다. 자극된 식욕을 참고 있자니 침이 줄줄 흘렀다. 원초적인 본능에서 오는 그 반응은 땡초나 주지스님이나 다를 게 없었다. 물론 코 끝으로는 그게 남이 먹다남긴 음식인지를 알 방도가 없었겠다. 부잣집에서 온 것이라 산해진미라고 할 생선과 고기가 잔뜩 들어있었기 때문에 그 향기가 부처님을 동하게 하여 그걸 얻어먹자고 담치기를 할 정도로 대단했다는 이야기를 "부처님 담치기"라는 묘한 이름에 담아놓은 것이다. "아, 벼룩이 간을 내 먹지, 그래 거지아이가 얻어온 음식 찌꺼지를 빼앗아 먹어?"하고 욕하기에는 그 향내가 참을 수 없이 매혹적이다.
물론 이 이야기가 음식의 이름을 본 후에 그 이름을 따라 지어낸 건지, 아니면 정말로 그 이름의 내력이 그런 이야기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겠다. 그러나 배뚱뚱이 부처님이 조각되어있는 그 백자 단지의 뚜껑을 열고 향내를 음미하며 조금씩 떠서 입에 넣고 천천히 씹으며 음식의 내력을 생각해 보면 그 이야기가 "부처님 담치기"의 조리법과 관계가 없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재료는 대충 이렇다. 꼭 들어가야 하는 것으로 생선 지느러미, 해삼, 오징어 (싱싱한 것도 좋지만, 마른 오징어를 물에 불려 써도 좋음), 돼지 족발, 돼지 처녑, 버섯, 토란, 대추 등이 있고, 거기다가 돼지갈비나 메추리 알 등을 넣어도 좋다. 들어가는 재료의 종류가 다양한 걸로 보아도, 이 음식이 여러 부잣집에서 두루 걷어온 음식이라는 말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이런 갖가지 재료를 다 넣고 아무리 중탕을 하고 난리를 쳐도 그 맛, 그 향기는 나지 않는다. 집에 돌아와 책도 보고 실험도 해 보니, 그 비결은 역시 "여러 부잣집"이었다. 앞에 열거한 재료를 그냥 함께 넣고 요리를 해서는 소용이 없다. 따로 따로, 가능하면 각각 다른 방식으로 구울 건 굽고, 찔 건 찌고, 볶을 건 볶아야 한다. 물론 재료마다 다른 양념을 써서 조리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재료가 다 준비되면 함께 소흥주(紹興酒)에 넣고 은근한 불에 오래오래 중탕을 한다. 그래야 제 맛이 난다.
물론 그렇게 하자면 손이 많이 간다고 하는 한국음식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조리법이 복잡한 요리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 늘 먹고 지내는) 신선로를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안에 들어가는 재료를 산적이나 전을 부치듯 지지고 볶아 미리 한바탕 요리를 한 다음 신선로에 다시 넣고 끓여먹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 음식에서는 그걸 "신선놀음"과 연결시켜 "신선로"라고 이름했고, 중국에서는 생계를 위한 한 거지아이의 안간힘이 함께 거두어 모을 수 있었던 여러 부잣집의 갖가지 음식습관과 연결한 것이다. 물론 "부처님 담치기"가 중국의 "신선로"라는 말은 아니다.
여러 재료를 이 집 저 집에서 걷어다 덥혀 먹는다는 것은, 시간과 공간을 조금 더 탄력있게 생각해 보면, 한 집에서 오랜 기간에 먹는 여러 가지 요리의 정수를 한 시간으로 집합시켜 모은다는 말도 된다. 그러니까 오늘 해삼을 먹으면서 요리를 조금 더해서 남겨두고, 내일은 족발을 해 먹고, 또 조금 남겨두고, 그렇게 해서 여러 날, 여러 가지 재료가 갖가지 방법으로 조리된 것을 한 곳 한 시간으로 집중시키는 게 "부처님 담치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맛있는 여러 가지 음식을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초월시켜, 백자 단지 하나에 담아 좋은 술을 넣고 오래오래 은근히 중탕을 해 냈으니 부처님이 육식을 하지 않는다는 계율을 잠시 접는다고 해도 그게 뭐 그리 큰 흠이 되겠는가? 계율은 가끔씩 접으라고 있는 거 아닌가? 물론 "부처님 담치기"를 이렇게 설명하는 사람이 나 말고는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걸 고백한다. 그러나 내 해석이 그럴 듯 하고 또 깊은 뜻도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음식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 먹는 것만 즐기는 게 아니고, 요리를 하고, 또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관심이 많아진 것이다. 이번에 "부처님 담치기"를 경험하고 나서 그걸 글로 한번 써 보려고, 신문에 레스토랑 리뷰를 쓰는 우리학교 영문과 교수에게 이야기를 해보았다. 그 친구 대답이 재미있었다. "'부처님 담치기'? 너 지금 섹스 체위를 이야기하는 거냐, 아니면 음식을 이야기하는 거냐?" 그리고 보면 음식과 섹스라는 두 가지 경험은 서로 그렇게 동떨어진 건 아닌 듯 하다. 다 마음가짐으로 좌우된다는 게 공통점일 수 있으니까. "부처님 담치기"라는 이름을 대하면서 자세히 음미하고 알아보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졌던 것이 그 진미를 즐길 수 있게 해주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한 가지가 주는 만족이 다른 한 가지를 아주 제쳐놓게 해버린 건 아닌지 모르겠다는 말못할 고민이 있기는 하다. 갑자기 섹스이야기를 꺼낸 게 무안했던지 그 영문과의 동료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자기가 먹어본 불란서 음식에 "Nun's Nipple"이라는 게 있다는 거였다. 그 친구는 자극적이면서도 침범을 허락하지 않을 듯한 이름이 붙은 그 음식의 모습과 질감을 마치 눈앞에 놓고 보고있는 듯 자세히 묘사했다. 레스토랑 리뷰의 고수다운 실력이였다. 그런데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음식은 기회가 있어도 먹지 않는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뒷일을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후기:
1. 푸우쩌우(福州)에서 "부처님 담치기(佛跳牆)"를 제일 잘한다는 집, 그러니까 "원조"라는 소리를 듣는 집은 쥐춘유엔(聚春園)이라는 곳이다. 그야말로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중국의 좋은 음식점이 대부분 그렇듯이 몇 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는 이 음식점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대부분 만족스럽게 싱글벙글하는 얼굴들이다. 물론 그렇게 호사스럽고 화려한 장소에 문제가 없지는 않다. 깡통을 들고 음식동냥을 하는 데서 시작하는 걸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그냥 음식점 한 곳에서 "부처님 담치기"를 만들어 제공한다는 사고방식 자체가 그 유래나 조리법이 축지법(縮地法)과 축시법(縮時法)을 전제로하는 음식이라는 내 해석에서 볼 때 거리감을 준다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바로 거기서 "부처님 담치기"를 맛보았고 이 글까지 쓰게 되었다는 것 역시 사실이다.
2. 글을 다 쓰고 생각하니 "담치기"라는 말이 지금도 통용되는지 자신이 없다. 우리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책상, 걸상을 들어다 학교 뒷동산에 숨겨두고 담을 타고 넘어 영화를 보기도 하고 중국집에서 짜장면에 빼갈을 두어 잔 하는 장난기를 즐겼는데, 그렇게 담을 넘는 걸 "담치기"라고 했었다. 지금의 젊은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지 않은 못된 짓이었지만, 그 말 자체는 구수한 짜장면 냄새가 배어있는 재미있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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