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음식 기행

미국 중국음식이 중국음식?

반빈(半賓) 2010. 3. 19. 17:13

"미국 중국음식이 중국음식?"

 

    언제 기회가 있어 파리나 카이로, 리우데자네이로, 또는 케이프타운 같이 아주 먼 곳에 가게 되면 현지의 고유한 음식은 물론 그곳의 중국음식을 먹어볼 계획이다.  최소한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중국음식"은 세상 어느 구석엘 가나 있기 마련인데, 가는 곳 마다 나름대로의 특징을 보인다.  중국음식이 처음 소개된 시점의 사회상황이나 그 후의 정착의 과정을 반영하고 있는 듯 해서, 음식을 먹으며 해볼 수 있는 이런저런 생각이 음식만큼이나 맛있고 흥미진진하다.

 

    그런 점에서는 중국의 바로 이웃인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요즈음은 조금 생소해졌는지 몰라도 "청요리"라는 말이 있었다.  그 때, 그러니까 우리 어렸을 적의 중국음식은 끼니로 먹는 음식과 "청요리"라고 불리던 조금 호사스러운 음식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끼니로 먹는 음식에 짜장면, 울면이나 짬뽕, 볶음밥, 군만두 같은 것들이 있었고, 탕수육이나 라조기, 해삼쥬스라는 묘한 이름의 음식, 난자완스 등이 "청요리"에 속했었다.  이 두 계통 사이의 구분은 상당히 엄격해서 잘 섞이지 않았다.  국수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우려고 할 때 가는 곳은 "중국집"이나 "짱꿰집"이라고 불렀고, 아주머니들 계모임 같은 행사의 장소는 "청요리집"이었다.  분명히 같은 장소를 가리키면서도 "짱꿰집에 가자"는 말과 "청요리집에 가자"는 표현이 예정하는 식사는 그 내용이 전혀 달랐다.  그 두 계통의 중간쯤에 "잡탕밥" 같은 음식이 있었다.  한끼 한 접시의 식사이면서도 빼갈 한 도꾸리를 곁드릴 수 있는 안주의 역할도 할 수 있었지만, 그런 음식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두 계통이 구분되어 있었음을 반증한다.

 

    여기 열거한 음식들은 대부분 이름 자체가 국적불명이다.  중국음식이라고는 해도 한두 가지를 제외하면 중국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할 이름이다.  "라조기"가 그래도 중국어에 가깝다.  고추(辣椒: 라쟈오)를 볶으면서 요리한 닭고기(鷄: 중국어발음은 "지"이나 산동의 사투리로 읽으면 "기")라는 뜻일 테니 어법에 맞고 중국사람들이 알아들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그 비슷한 음식을 중국에서는 "라즈지(辣子鷄)"나 "라즈지띵(辣子鷄丁)" 정도로 부른다.  짜장면은 중국식 된장(醬: "쟝")을 볶아서(炸: "짜") 양념으로 얹은 국수라는 뜻이라 흔하지는 않지만 중국에도 있기는 있다.  하지만 모습이나 맛이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짜장면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탕수육"이라는 이름은 재미있는 언어현상을 보인다.  중국에도 설탕(糖: "탕")과 식초(醋: "추")로 새콤달콤한 맛을 낸 고기요리가 있고 우리나라의 탕수육과 그리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중국어발음으로 "탕추"육이라고 하든지, 우리말 발음으로 "당초육"이라고 해야 하는데 "탕수육"이 됐다.  짐작이기는 하지만 "식초"라는 뜻의 醋(초)를 중국어에서는 "추"라고 읽는데 이 음절의 자음이 우리말의 "ㅊ"처럼 혀의 윗면(舌面)이 마찰되면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혀끝(舌尖)과 앞니의 사이에서 나야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은 발음이다.  그러다보니 그 "추"가 "수"로 들릴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소리의 변화가 생긴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런데 이름에 어떤 연유에서이든 "수"자가 들어가서 그런지, 튀긴 고기 위에 얹는 소스가 한국식 중국음식인 탕수육의 경우 훨씬 멀겋게 느껴진다.

 

    그나마 이 몇 개의 이름은 어찌 된 건지 생각해볼 내력이나 있지, 짬뽕은 아예 중국말이 아니다.  우리말로 "진 땅에 장화"라고 하면 그게 중국말처럼 들린다는 사람들에게는 혹시 "짬뽕"이란 말이 중국말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억지로 설명을 가져다 붙이자면 "섞는다"는 뜻의 "攙(중국어 발음 '찬')"에 "음식을 만든다"는 뜻의 "烹(중국어발음 '펑')"을 연결시키면 "찬펑"쯤 될 터인데, 그게 어찌어찌 "짬뽕"이라는 소리로 바뀌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중국어 단어는 쓰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말에는 "チャンポン"이라는 말이 있어 뒤섞는다는 뜻 또는 많은 요소가 뒤섞어 만들어진 것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늘 가타카나로 쓰는 걸 보면 외래어로 간주되는 단어이니 일본사람들은 그 말이 중국어에서 왔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우리가 쓰는 짬뽕이라는 중국음식의 이름은 일본말에서 왔다고 생각하면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해삼과 돼지 허벅지라는 뜻의 "肘子(저우즈)"를 주재료로 만드는 음식의 이름이 "해삼쥬스"가 된 내력에도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일본말이 개입되지 않았나 싶다.  하긴 그렇게 멀리서 찾을 게 아니라 "군만두"를 대부분 "야끼만두"라고 불렀다는 사실에서도 도 일본말의 영향이 쉽게 확인된다.  우리나라의 중국음식 식단에서 유사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건 우리나라에 중국음식이 소개된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19세기 후반부터 중국이 "잠자는 사자"나 "종이 호랑이" 정도로 무력함이 드러나면서 계속된 외세의 침략에 시달리고, 따라서 이어지는 전쟁과 사회적 불안 때문에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황해를 건너 우리쪽으로 피난을 왔다.  중국음식은 그렇게 온 피난민에 의해 우리사회에 정착되었는데, 그 당시 한반도는 일본의 침략으로 나라를 빼앗긴 상태였으니 우리나라에서의 중국음식에 무시할 수 없는 일본의 입김이 들어있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의 중국음식이 피난 나온 중국사람들에 의해 소개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식 중국음식의 특징을 결정했다.  그들의 대부분이 산동반도의 벽촌에서 왔고, 그러한 상황이 우리나라 중국음식의 메뉴나 음식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이다.  물론 음식은 꼭 비싸야 맛이 있고 기억에 남는 게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먹어 습관이 된 음식이 그리운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니 한국식 중국음식인 짜장면을 주 메뉴로 하는 음식점이 상해 한 복판에 생겨 점심이고 저녁이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는 사실은 재미있긴 해도 이상할 건 없는 일이다.

 

    황해라는 조그만 바다 하나를 건너서도 중국음식은 이름에서부터 시작해서, 생김생김이나 맛이 모두 현지에 적응, 변화했으니,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까지 간 중국음식 역시 무엇인가 달라졌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겠다.  2-3년 전쯤 뉴욕타임즈에 미국의 중국음식이 중국의 중국음식에 비해 정말 형편없이 뒤떨어져 있으니 제발 이민법을 풀어 일류 중국요리사가 올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이 실린 적이 있었다.  미국의 중국음식은 정말 중국음식이라고 하기가 무색할 정도로 다르다.  그 중국음식은 초라하다는 표현과 소박하다는 표현 사이의 어디쯤에서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그러나 그게 이민법을 푼다고 해결될 문제인지는 잘 모르겠다.

 

    미국의 중국음식은 시작부터 초라하고 소박했다.  중국사람들의 미국이민은 19세기 대륙횡단 철도의 건설을 위한 노동력의 수입을 위해 대규모로 이루어졌는데, 중국음식 역시 그런 배경에서 미국에 소개되었다.  주로 철도건설에 투입된 가난하고 배고픈 중국노동자들이 고객이었으니 값이 싸고 양이 많아야 한다는 게 기본조건이었고 그 기본조건은 이미 미국사회에 깊이 각인되어 쉽게 바뀌지 않을 듯 하다.  대륙횡단 철도의 건설이 완성되면서 중국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전국으로 흩어졌다.  광산이나 목재제재소, 생선통조림 공장 등 고된 일자리를 찾아 옮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런 곳을 거쳐 다시 도시로 옮겨가 살았았다.  그런 과정에서 중국음식은 미국의 여러 곳으로 전파되었다.  조그만 광산촌의 한 구석에서도 오래된 중국음식점을 찾을 수 있는 건 그런 연유에서이다.  도시로 옮겨간 중국인들은 빨래나 청소 등 힘든 노동으로 연명하면서 차이나타운을 이루고 살았다.   미국의 중국음식이 서민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런 역사적 배경이다.  중국사람들뿐 아니라 중국음식점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값이 싸고 후한 음식을 기대한다.

 

    미국의 중국음식에 대부분 "사천"이나 "광동"의 요리라는 명패가 붙어있으나, 중국음식 유입의 경로는 그 외에도 많이 있다.  그 한가지 예로, 우리나라에 이주해 살면서 중국집을 하던 화교가 미국으로 건너가 우리나라식의 중국음식점을 열어 짜장면과 짬뽕, 탕수육등을 메뉴에 올려놓은 집이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주인장이 우리말을 할 줄 아는 경우도 많이 있다. 

 

    중국음식은 그렇게 자주 옮겨다녔기 때문인지 국적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불분명해진 경우가 많이 있다.  이를테면 서울 이태원의 해밀튼 호텔에 처음 열었고, 그 후로 여기저기 분점을 열 정도로 성공하고 있는 "홀리차우"는 굳이 말을 하자면 미국식 중국음식이 우리나라로 유입되면서 우리나라의 음식문화의 영향으로 조금 변화된 형태이다.  음식점이름이 벌써 장난이 아니다.  미국사람들이 감탄하면서 흔히 하는 "Holy Cow!"라는 표현에 중국의 흔한 성씨의 하나인 周(쩌우)를 대입시켜 만들었으니 그야말로 미국식 중국표현이다.  유학이나 사업때문에 미국에서 살다온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들 대부분이 힘든 미국생활동안 미국식 중국음식에 많이 의지했기때문에 그 맛에 대한 짙은 향수를 가지고 있다.  값이 싸고 양이 많아야한다는 기본조건이 조금 변했다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이해할 수 있다. 

 

    차병원 사거리 근처, 차병원에서 대각선쪽 어느 뒷골목에 있는 "토니향"이라는 게딱지만한 음식점도 참 특별한 예이다.  주인장 姜(쟈앙)노인이 가게를 보고, 대만에서 대학까지 나온 아들이 아버지를 도와 음식점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이 음식점은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세상에서 탕수육을 제일 맛있게 만든다.  정겹고 인심 후한 이 음식점은 음식 맛만큼이나 재미있는 내력을 가지고 있다.  쟈앙노인은 미국으로 이민을 해 텍사스 어딘가에서 한국식 중국음식점을 했다고 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참 화교들을 박대했다.  지금은 달라졌으나 오랜동안 부동산을 소유하지 못하게 해서 큰 돈을 벌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한국에 있던 많은 화교가 미국으로 이민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미국에 가서 중국음식점을 열면 고객의 대부분이 한국사람이다.  짜장면, 짬뽕에 깐풍기, 유산슬, 탕수육, 부추잡채 등 우리나라의 중국음식을 먹을 수 있다.  아마 쟈앙노인이 텍사스에서 했던 음식점도 그랬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런데 그런 분이 노년에 "돌아올" 곳이 우리나라였다는 게 참 재미있는 일이다.  중국에서 우리나라로, 우리나라에서 미국으로, 그곳에서 다시 우리나라로 옮겨온 음식이 어떤지 한 번 가보시길 권한다.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테이블 네댓 개의 조그만 음식점이지만 쟈앙노인댁의 복잡한 내력이 만드는 맛이 깊고 푸근하다.

 

    미국의 중국음식이 중국음식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없지 않고, 그런 주장에 어느 정도 근거가 있다.  그런 말은 우리나라의 중국음식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렇게 보면 세상 어느 곳의 중국음식도 나름대로의 내력이 있고 그래서 그만큼 변해있다.  그게 광산촌 가난한 노동자의 필요에 적응한 것이든, 가난한 유학생의 향수를 따라 변한 것이든 이것저것 생각하며 먹을 수 있으면 나쁘지 않다.  결국은 다 마음에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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