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참게(大閘蟹)찜"
2007년 쑤쩌우(蘇州)의 한 재래시장에서 만난 참게
시월 중순을 전후한 몇 주 사이에 양자강 하류 지역, 즉 상하이(上海)나 쑤쩌우(蘇州), 항쩌우(杭州) 같은 곳을 여행해 본 사람은 대부분 집게발 발등에 털이 수북하게 난, 꼭 우리 어린 시절 논두렁 사이 물길이나 하천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의 참게가 다리를 가지런히 접혀 웅크린 몸을 가느다란 지푸라기 산내끼에 꽁꽁 묶인채 음식상에 오르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진미(珍味)라니까 하며 그 참게찜을 한두 마리 먹어본 사람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따자씨에(大閘蟹)"라는 이름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아마 민물 수로의 수문 근처에서 많이 잡힌 모양이다.
이 참게는 그 근방 넓은 지역에 두루 분포되어 있는데 양청후(陽澄湖)라는 호수에서 나는 것을 최고로 친다. 그 호수는 바닥의 대부분이 큼지막한 바위덩어리여서 그 바닥을 기어다니며 자란 참게는 배에 붙은 딱지가 희고 깨끗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특정지방의 소출을 특산품으로 귀하게 여기는 세태는 거기도 우리와 마찬가지인 듯 하니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게 약일지 모른다. 왜 "영광으로 가다가 잡힌 조기를 잡아 말리면 모두 영광굴비"라거나 "다른 데서 잡았어도 영광으로 가져다 말리면 영광굴비"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식당마다 양청후 참게를 판다는 광고를 내 걸고 있으니 아무리 그 호수가 물 반 게 반이라도 그렇지…, 하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다른 곳에서 잡거나 양식한 참게를 양청후에 넣어 얼마간 기르면 배가 바위에 마찰되어 희게 변하는데 그 때 다시 수확해서 양청후 특산으로 납품한다고 한다. 뭐 그렇게라도 한 후 양청후 참게라고 한다면 딱히 틀리다고 할 수도 없겠다. 아무튼 그 호수의 무엇이 참게를 맛있게 만드는지 몰라도, 그 물에 그렇게 억지로 목욕이라도 한 녀석이면 조금 다를까 의아스럽다.
그 지방 사람들은 이 참게를 대부분 그냥 통째로 쪄 먹는다. 명성에 손색이 없을 만큼 맛이 깊고 담백하면서 육질이 이와 혀에 닿는 느낌이 매우 즐겁다. 제 철에 그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시식을 권한다. 다음과 같은 한두 가지 이야기를 곁드리면 조금 참고가 될지 모르겠다.
우선 음양의 조화에 대해 한 마디. 정말로 음양을 조화시키는 게 중요해서 그런지, 아니면 매출을 늘리려는 상술인지 모르지만, 중국사람들은 암수 한 마리씩 두 마리를 함께 먹어야 좋다고 한다. 특히 손님을 접대하면서는 그 조화를 빼뜨리지 않는다. 암놈의 몸값이 비싸리라는 건 예상할 수 있겠다. 닭도 암탉이 좋다고 하고 갈비도 암소갈비를 찾지 않는가. 그런데 통째로 식탁에 오르는 탓에 암수가 대번에 구별되어서 그런지 아예 메뉴에 가격이 다르게 붙어있다. 마지막으로 먹어본 것이 2007년 가을이었는데, 그 때 암놈이 인민폐 100 콰이, 숫놈이 65 콰이 (우리 화폐로 치면 각각 15000원, 10000원) 정도였으니 암놈이 숫놈보다 한 오십프로 더 나갔다. 닭고기나 갈비의 경우에는 내 상에 오른 음식이 정말 암놈에서 왔는지 확신을 가지고 먹은 적이 없으니 암수의 맛을 비교한다는 생각은 아예 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암수 한 쌍이 나란히 접시에 올랐고, 가격이 현저하게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 맛의 비교는 생략할 수 없는 절차였다. 그냥 덤벙거리며 한 게 아니라 부위마다 번갈아 학구적으로 비교하며 먹었다. 내 혀가 무뎌서 그랬는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물론 암놈에는 알이 들어있지만, 그건 참게의 살이 주는 즐거움에 비하면 말초적인 차이에 불과했다. 아무튼 기회가 있으면 암수 한 마리씩 해서 비교하면서 드시기 바란다. 그래야 나중에 할 말이 있을 것 아닌가.
둘째 이야기는 암수 두 마리를 먹는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 참게는 천천히 구석구석을 다 발라먹어야 하니 시간여유를 확보한 후 먹어야 한다. 또 다른 음식으로 배를 너무 채우지 말아야 한다. 중국사람들은, 특히 손님을 접대하면서는, 정말로 음식을 많이 시킨다. 나오는 음식을 조금씩만 먹으라는 말은 사실 참게가 아니라도 기억해 둘 만하다. 그러나 특히 계절과 지방이 특정된 이 음식을 경험하면서 자칫 겉으로 한 번 핥고 빨아본 후 어적어적 두어 번 씹고 뱉기 쉬운데, 그건 암수 구색까지 맞추어 일껏 준비한 음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남의 눈치가 보이든 말든 다리를 하나하나 떼어내어 젓가락을 대롱사이로 밀어넣어 살을 완전히 발라 먹는 것으로 시작해서 끝으로 게딱지를 닥닥 긁어 남김없이 먹을 일이다.
그렇게 먹다 보니 생각이 엉뚱하게 우리 음식으로 번져갔다. 아아니, 이 아까운 참게를 이렇게 쪄 먹고 말아도 되는 건가 하는 아쉬움에서 비롯된 생각이었을 것이다. 아주 귀국하지 못하고 객지생활을 하는 몸이라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언제부터인지 서울에서는 "간장게장"이 음식점 메뉴에 오르기 시작해서 한참을 유행했었다. "밥도둑" 운운하는 문구가 여기저기 나붙어있어 호기심이 상당히 동했다. 어릴 적 우리집 밥상, 특히 겨울밥상에는 자주 오르던 반찬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민물에서 나는 게를 익히지 않고 먹어도 되는 거야, 디스토마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나, 하고 묻는 사람이 없지 않았다. 그런 질문에는, 그래 걱정되면 손대지 말고 그냥 놔 둬, 나 혼자 먹어도 많지 않으니까, 하고 대답할 정도로 마음이 끌리는 추억이 담긴 음식이었다. 그런 음식을 판다는 광고가 여기저기 나붙었으니 어찌 눈을 끌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래도 반찬일 뿐인데 어찌 식사메뉴가 될 수 있을까 미심쩍었기 때문에 실제로 주문해 시식해본 건 한참 후의 일이었다. 걱정했던대로 기대와 희망에 미치지 못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해 그럴 듯 해 보이는 음식점에서 몇 번 시켜보았지만 내 기대를 만족시키기에는 늘 아주 부족했다.
음식점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했지만 대체로 두 가지가 근본적으로 틀렸다. 첫째는 너무 싱거워 제 맛이 날 수가 없었다. "밥도둑"으로 갖추었어야 할 짠맛이 부족했던 것이다. 물론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설렁탕 세 그릇 값은 주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게 다리 서너 개 내 놓고 말 수는 없는 일, 식사 한 끼 하는 동안 한 마리는 해치워야 제 값을 했다는 기분일 것 아닌가. 그러자니 싱겁게 담글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대에 차지 못했던 더 큰 이유는 간장게장이라면서 참게가 아닌 꽃게를 썼기 때문이었다. 꽃게로 게장을 담그려면 갖은 양념을 해서 뻐얼건 기분이 돌게 할 터이고, 참게로 담그는 게장이야말로 간장을 양념의 주재료로 하면서 마늘과 통후두, 생강, 청주 등을 함께 넣어 맛을 내는 음식이다. 매콤한 맛을 더하기 위해 고추를 넣는 다고 해도, 고추가루보다는 통고추를 넣는데, 이 역시 색에서나 맛에서나 간장이 주재료임을 분명히 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어릴 적 외가가 있던 예산에서 여름을 보내고 상경하는 길에 할머니가 쌀자루에 넣어주신 참게 150 마리를 들고 왔던 기억이 있다. 그 때도 귀하긴 했지만 찾으면 구할 수는 있었는지 외할머니는 늘 그렇게 참게를 보내주시곤 했다. 장항선을 타고 천안쯤에서 내려 국수 한 그릇을 먹고 경부선을 갈아타는 여정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기차가 달릴 때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역에 서면 자갈자갈 소리가 들리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가지고 온 게가 목욕재계를 받은 후 커다란 항아리 속에 들어가면 이어서 간장과 갖은 양념재료가 더해졌다. 그 위로 숯도 몇 덩어리 둥둥 떴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나서 얼마 동안 장을 몇 번 다려 부으면 한참동안 그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내 기억에 기껏해야 한두 마리로 열 명을 넘나든 우리 식구의 밥맛을 돋구어 주었다. 물론 아껴 먹은 것이다. 그러나 짠 맛때문에 그보다 많이 먹을 필요도 방법도 없었다.
그 시절 배워 익힌 방법으로 상하이 참게 두 마리를 공략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생김생김으로 보면 분명 간장게장 감인데…. 우리식 사우나, 우리식 짜장면집뿐 아니라, 우리식 학원까지 있는 걸 보면 우리 고향사람들도 분명 많이 있을 텐데, 누군가 거기서 상하이 참게로 간장게장을 담아보면 어떨까. 우리나라로 수입할 수도 있을텐데…
'중국 음식 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술지게미" (0) | 2010.04.10 |
---|---|
메뉴와 음식주문 (0) | 2010.03.27 |
미국 중국음식이 중국음식? (0) | 2010.03.19 |
만리장성(萬里長城)에서 먹은 4인분 점심 (0) | 2010.03.05 |
부처님 담치기 (0) | 2010.0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