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음식 기행 20

"라오떠우푸(老豆腐)"

"라오떠우푸(老豆腐)" 우스갯소리로 하신 말이겠지만 결혼을 며칠 앞두고 가진 한 저녁자리에서 내 장인은 따님의 혼처가 원래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게 정해졌다고 하셨다. 마침 저녁상에 오른 두부요리가 화제가 된 끝에 나온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렸을 적부터 두부를 좋아해서 늘 두부공장집으로 시집을 보내야한다고 말해왔는데 어쩌다 보니 고리타분하게 중국고전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보내게 됐다는 말씀이었다. 내 자격지심때문이었는지 그 말씀이 그냥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았다. 그 때만 해도 중국이 아직 소위 "죽(竹)의 장막"에 가려져 있어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문학을 공부하는 게 그리 희망이 있어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그 때 내 인생의 청사진이 꼭 배고프게 살겠다는 선언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

"스즈터우(獅子頭)"

중국음식중엔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이름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서시설(西施舌)"이라는 음식이 그렇다.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서시(西施)의 혀"라는 뜻인데, 중국역사에서 손꼽히는 미인였다는 서시, 그것도 그 여자의 혀를 지칭하고 있으니, 도대체 어떤 음식이길래 그런 이름을 감당할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서시설"은 중국 동남해안에 위치한 복건(福建)성과 타이완의 동남쪽 해안에서 나는 조개의 한 종류인데, 이 조개를 재료로 조리한 음식도 그냥 "서시설"이라고 부른다. 일본음식에서 사시미 재료로 인기가 있는 미루가이라는 조개(우리나라에서는 왕우럭조개나 코끼리 조개라고 부른다)보다는 작은 편이지만 몸체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길고 통통한 수관(水管)부분이 식용으로 애..

거렁뱅이 닭

"거렁뱅이 닭" 구걸한 음식으로 연명을 해야하는 사람들을 걸인, 거지, 또는 거렁뱅이라고 한다. 지금은 음식을 구걸하는 걸인을 잘 볼 수 없지만, 음식대신 돈을 구걸한다고 해도 그 돈이 고픈 배를 채우는 데 많이 쓰일 것으로 짐작한다. 걸인들은 음식과 가장 멀면서도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다. 누군가 적선을 해주지 않으면 먹을 음식이 없을 테고, 그래서 팔을 뻗어도 뻗어도 닿지 않는 곳에 음식이 있다고 느낄 것이니 그 둘 사이의 거리는 참 멀고도 멀다. 그러나 음식이 멀리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음식이라는 화두가 마음과 머리를 떠날 날이 없을 것이므로 둘 사이의 관계는 뗄 수 없이 가깝기도 하다. 그래서 "거지"와 이야기가 맞닿아 있는 음식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음식 귀한 줄을 아는 사람들이라..

"홍사오(紅燒)" 조리법

"홍사오(紅燒)" 조리법 "Good Friend"라는 중국집이 있었다. 중국어 옥호는 "好友記"라고 했다. 뉴욕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와 프린스턴대학으로 가려면 프린스턴정션(Princeton Junction)이라는 역에서 내려 대학갬퍼스 안의 딩키스테이션까지 가는 두 칸 짜리 전차를 타는데, 그 중국집은 프린스턴정션 역의 주차장 바로 밖에 있었다. 삐걱거리는 문과 마루, 표면이 조금 끈끈하다는 느낌을 주는 테이블 등이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었다. 아직까지 성업중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내가 자주 드나든 게 프린스턴대학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이었으니 20년이 훨씬 지난 일이고, 그 당시 벌써 주인장의 나이가 지긋했으니 이제는 없어졌을 수도 있겠다. 아직 있다고 해도 그 때와는 주인도 음식도 다르지 않겠나 짐..

"술지게미"

"술지게미" 술이나 식초를 만들고 생기는 찌꺼기를 중국말로 "짜오(糟)"라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은 무슨 일이 생각처럼 되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우리말로 "제엔장"이나 "제기럴" 정도의 뜻을 내뱉고 싶을 때도 사용한다. 보통 "떡"이라는 뜻의 "까오(糕)"를 덧붙여 "짜오까오!"라고 하는데, 뜻은 별로 다르지 않다. 술찌꺼기를 떡처럼 뭉쳐놓은 걸 뜻하는 것일 테니 여전히 술찌꺼기인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입에서 "제기럴", 조금 젊은 세대 사람이라면 "씨X" 정도의 말이 나올 상황에서 중국사람들은 "술지게미!"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테니스 게임에서 더블폴트를 했거나, 방에 열쇠를 둔 채로 방문을 잠가 낭패했을 때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이 이 말이다. 이 말을 미국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이해를 ..

메뉴와 음식주문

"메뉴와 음식주문" 서양음식점은 고급일수록 화려하게 인쇄된 메뉴를 갖추고 있다. 가죽으로 멋드러지게 제본을 해서 손에 들고 있기만해도 기분이 싱숭생숭해질 정도인 곳도 있다. 음식메뉴뿐 아니라 와인리스트가 따로 준비되어 있기도 한다. 와인의 선택은 대부분 그 날의 주빈이나 호스트의 임무인 경우가 많아 모인 사람 모두가 와인리스트를 검토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두툼하고 묵직한 두 권의 책을 수험생 입시공부하듯 자세히 들여다 보며 무얼 어떻게 시켜 먹을지 궁리하는 모습은 그런 음식점에서 흔히 보이는 정경이다. 글로 인쇄된 메뉴를 공부하는 것으로 다 끝나지 않는다. 그날 그날의 특별메뉴가 준비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서너 가지 요리의 재료와 양념, 조리법 등을 설명하는 웨이터의 말이 뒤따르는 게 보통이다. 외운..

미국 중국음식이 중국음식?

"미국 중국음식이 중국음식?" 언제 기회가 있어 파리나 카이로, 리우데자네이로, 또는 케이프타운 같이 아주 먼 곳에 가게 되면 현지의 고유한 음식은 물론 그곳의 중국음식을 먹어볼 계획이다. 최소한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중국음식"은 세상 어느 구석엘 가나 있기 마련인데, 가는 곳 마다 나름대로의 특징을 보인다. 중국음식이 처음 소개된 시점의 사회상황이나 그 후의 정착의 과정을 반영하고 있는 듯 해서, 음식을 먹으며 해볼 수 있는 이런저런 생각이 음식만큼이나 맛있고 흥미진진하다. 그런 점에서는 중국의 바로 이웃인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요즈음은 조금 생소해졌는지 몰라도 "청요리"라는 말이 있었다. 그 때, 그러니까 우리 어렸을 적의 중국음식은 끼니로 먹는 음식과 "청요리"라고 불리던 조금 호사스러운 음..

만리장성(萬里長城)에서 먹은 4인분 점심

"만리장성(萬里長城)에서 먹은 4인분 점심" 중국 출장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즐겁지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그 즐거움의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을 차지한다. 우선 땅덩어리가 커서 여러 지방의 특색있는 음식이 참 많고, 오래 지속되고 있는 문명이라 음식에 갖가지 사연이 담겨있어 흥미롭다. 범상치 않은 재료로 만든 음식이 꼭 마음을 끄는 건 아니지만, 당나귀 고기나 전갈 같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재료를 식탁에서 만나는 것도 아슬아슬한 즐거움이다. 그래서 중국출장을 앞두고는 늘 이번에는 어떤 음식을 경험을 하게 될까 마음이 설레곤 한다. 그러나 첫번째 여행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나 자신 조금 긴장했던 까닭도 있었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중국은 풍부한 음식문화의 전통을 외국인들에게 소개할..

상하이 참게(大閘蟹)찜

"상하이 참게(大閘蟹)찜" 2007년 쑤쩌우(蘇州)의 한 재래시장에서 만난 참게 시월 중순을 전후한 몇 주 사이에 양자강 하류 지역, 즉 상하이(上海)나 쑤쩌우(蘇州), 항쩌우(杭州) 같은 곳을 여행해 본 사람은 대부분 집게발 발등에 털이 수북하게 난, 꼭 우리 어린 시절 논두렁 사이 물길이나 하천에서 볼 수 있었던 모습의 참게가 다리를 가지런히 접혀 웅크린 몸을 가느다란 지푸라기 산내끼에 꽁꽁 묶인채 음식상에 오르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진미(珍味)라니까 하며 그 참게찜을 한두 마리 먹어본 사람도 많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따자씨에(大閘蟹)"라는 이름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 아마 민물 수로의 수문 근처에서 많이 잡힌 모양이다. 이 참게는 그 근방 넓은 지역에 두루 분포되어 있는데 양청후(陽..

부처님 담치기

"부처님 담치기" "386세대"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부터 50년대에 태어나 70년대에 대학을 다닌 우리 세대의 시대는 그냥 얼렁뚱땅 생략되고 지나가 버렸다는 느낌이었다. 은근히 섭섭한 마음 없지 않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들이 가지지 못한 경험을 많이 했다고 주장할 근거가 상당히 있다. 예를 들어 사업을 하다가 망한 사람에게 "깡통을 찼다"고 말하는 근거가 무언지 젊은 세대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깡통을 차고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면서 "밥 좀 줘어--"하는 모습을 어디서 경험했겠나. 우리는 그걸 다 겪으면서 자랐다. 그런 광경을 일상에서 보며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감수성과 정서, 어려움에 대한 경외, 마음 한 구석에서 자라난 정의에 대한 갈망,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