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렁뱅이 닭"
구걸한 음식으로 연명을 해야하는 사람들을 걸인, 거지, 또는 거렁뱅이라고 한다. 지금은 음식을 구걸하는 걸인을 잘 볼 수 없지만, 음식대신 돈을 구걸한다고 해도 그 돈이 고픈 배를 채우는 데 많이 쓰일 것으로 짐작한다. 걸인들은 음식과 가장 멀면서도 가장 가까운 관계에 있다. 누군가 적선을 해주지 않으면 먹을 음식이 없을 테고, 그래서 팔을 뻗어도 뻗어도 닿지 않는 곳에 음식이 있다고 느낄 것이니 그 둘 사이의 거리는 참 멀고도 멀다. 그러나 음식이 멀리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음식이라는 화두가 마음과 머리를 떠날 날이 없을 것이므로 둘 사이의 관계는 뗄 수 없이 가깝기도 하다. 그래서 "거지"와 이야기가 맞닿아 있는 음식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음식 귀한 줄을 아는 사람들이라서 별 맛이 없는 음식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맛있게 먹을 것이라고 상상하면서 관계를 그렇게 설정한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전에 "부처님 담치기 (佛跳墻)"라는 음식의 유래를 기구한 거지 아이의 생활에서 찾아보는 글을 쓰기도 했지만, 거지의 이야기는 다른 음식에도 종종 등장한다.
상하이에서 양자강을 타고 양자강 삼각주의 안쪽으로 조금 들어가다 보면 우우시(無錫)나 창수우(常熟) 같은 도시를 지나가게 되는데, 그 일대는 오랜 문화의 발자취가 사회의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인상적인 곳이다. 예를 들어 그 지방의 방언인 오어(吳語)로 하는 공연하는 이야기꾼들은—그런 사람들을 "수워수렌(說書人)"이라고 한다—그 사투리를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내가 들어도 신명이 날 정도로 표정과 음조, 음색이 뛰어나게 풍부하다. 음악 역시 대단히 섬세해서 중국고전민속음악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들어도 애틋한 사랑의 맛이 듬뿍 들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문명의 역사가 긴 지역일수록 음식 역시 독특하고 깊은 맛이 있게 마련이다. "찌아오화아지이 (叫花鷄)"라는 닭고기 요리가 바로 그 지방의 특색을 담은 요리의 하나인데, 중국사람들은 이 음식의 유래를 거지의 이야기로 설명한다. 음식이름에 들어있는 "찌아오화아(叫花 또는 叫化)"라는 말이 구걸한다는 뜻의 동사이고 거기에 접미어 "즈(子)"를 더하면 "거렁뱅이", "거지"라는 뜻이다. 음식의 이름만 보아도 실제건 허구건 거지와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음식의 내력에 대한 이야기는 간단하다. 거렁뱅이가 서리해온 닭을 조리할 기구도 더할 양념도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이렇게 구워 먹었더니 맛이 있었고, 그게 발전해 "거렁뱅이 닭"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음식의 원조라고 알려진 상숙(常熟)의 산지잉유엔(山景園)이라는 음식점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훨씬 더 자세하다. 그 음식점 주방장과의 인연으로 개발되어 알려졌다는 주장을 담기 위해서 세세한 부분까지 이야기를 부연했기 때문이다. 이 음식점은 청나라 꽝쉬(光緖)제 때인 1890년에 창업을 했으니 100년이 넘은 오랜 전통을 자랑한다. 음식점 초창기, 그러니까 19세기 끝무렵에 쭈(朱)씨 성을 가졌던 주방장이 상숙 근처의 험한 산 속에 있는 절에 가서 향을 올리고 돌아오는 길에 시냇가에서 목을 축이며 쉬다가 어떤 늙은 거렁뱅이가 조리하는 닭의 향내에 반해 자기도 모르게 다가가 맛을 보고 물어본 조리법에서 유래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여기 등장하는 늙은 거렁뱅이는 백발이 성성한데다 흰 수염까지 길게 기른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 조리법을 배운 장소가 심산유곡이었다는 부분도 범상치 않다. 말하자면 거렁뱅이와 신선의 모습을 뒤섞어 놓은 셈인데, 그런 이야기의 구조를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생각해 볼 만하다.
몸을 다쳐 오도가도 못하는 이 늙은 거렁뱅이를 다른 거렁뱅이들이 거두어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자, 그 늙은 거렁뱅이가 고마움을 어찌 보답할까 궁리하던 중 마침 "임자없는" 닭 한 마리가 나타난다. 닭 한 마리만으론 어찌 조리를 해 볼 도리가 없어 몇 날 며칠을 동냥으로 들어오는 다른 재료가 좀 있을까 기다린다. 소금에 파와 생강, 그리고 향료 약간이 생기고, 쌀겨도 조금 얻은 후에 드디어 닭을 잡는다. 음식에 들어갈 재료가 변변치 않을 뿐 아니라, 조리에 쓸 도구가 아예 없다. 닭을 잡아 내장을 빼는 것 까지는 별 문제가 아니지만, 큰 솥이 있어야 끓는 물에 닭을 담가 털을 뽑을 수 있겠는데, 난감하다. 결국 잡은 닭을 털도 뽑지 않은 채 진흙으로 싸발라 쌀겨 속에 넣고 불을 지핀 후 오래오래 그렇게 굽는다. 진흙이 말라 단단하게 굳고, 속에 갇힌 닭이 수분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서서히 익으면 진흙 껍데기를 깨부수는데, 닭털은 진흙에 엉켜붙었다가 이 때 손쉽게 빠지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닭만 남는다.
산경원의 주방장 주씨는 물론 그 조리법을 그대로 쓸 수 없다. 털을 뽑지 않고 요리한다는 것도 그렇고 진흙이 깨끗하게 떨어져 나올지 의문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거렁뱅이"의 태를 벗은 "거렁뱅이 닭"을 만들기 위해 갖가지 실험을 거친다. 그러나 조리법의 요체는 보존해야 하는 데, 갖가지 요체가 이 이야기에 거의 들어있다.
우선 닭이 좋아야 한다. 좋은 닭의 요건을 대개 "머리는 작고 몸은 큼지막하면서 토실토실하게 오른 살이 연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세가지가 노란 (三黃)" 빛이라고 해서 부리가 노랗고(黃嘴), 발이 노랗고(黃脚), 털이 노란(黃毛)색인 닭을 제일로 친다고도 한다. 노란색은 즉 "땅빛", "흙색"이다. 이야기 중에 닭을 손에 넣은 후 몇 날 며칠을 잡지 않고 기다렸다는 부분은 물론 기본적인 양념재료라도 조금 얻은 후에 조리하려는 생각인 것으로 꾸며져 있지만, 그걸 다만 두 주일이라도 흙 속에서, 순수한 자연 속에서 머무르도록 하라는 뜻으로 읽어도 좋겠다. 흙에서 자란 토종이 좋겠다는 말을 그렇게 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닭외에 별다른 재료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건, 요리집 메뉴에 오르기 위해서는 바뀔 수밖에 없다. 털도 뽑지않고 굽는다는 것 역시, 아무리 진흙의 마력을 믿는다고 해도 그리 마음에 놓이지 않았을 것이다. 닭을 잡은 후, 털을 뽑고, 안팍을 깨끗이 씻은 후 술과 생강즙에 파, 정향, 팔각 등의 향신료 가루를 섞어 안팍으로 문지른다. 내장이 있던 자리는 다진 돼지고기, 잘게 썬 닭고기, 표고버섯, 새우, 햄 등의 재료를 각각 다른 양념으로 볶아 채운다. 이 재료들이 닭 속에서 조리되면서 깊은 맛을 얻고, 또 닭고기에 미묘한 맛을 더해준다.
진흙으로 싸발라 굽는다는 것도 음식점 요리상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 듯 하다. 진흙이 닭고기에 묻어 남아있기 쉽다는 염려 때문이 아니었겠나. 그러나 은근한 불에 오래오래 굽는다는 부분은 포기할 수 없다. 진흙은 두 겹의 연잎과 그 중간에 넣은 셀로판 종이가 대신하는 게 보통이다. 온갖 재료를 준비해 뱃속을 채운 후, 닭의 겉에 돼지기름을 넉넉히 바르고 연잎으로 한 켜 싼 후, 셀로판 종이나 알루미늄 포일로 또 한 켜, 다시 연잎으로 한 켜를 싸 노끈으로 단단히 묶는다. 그렇게 한 후 맨 바깥에 진흙을 다시 싸 바를 수도 있겠으나 그건 준비한 닭을 어떤 불에 조리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겠다. 쇠 솥에 담아 오븐에서 굽는다면 진흙은 그리 중요하지 않겠다. 수분을 잡아두어 육질을 연하게 유지하면서 기름만 빠지게 한다는 취지는 겹겹이 싼 연잎이나 셀로판 종이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쌀겨를 태워 만든 은근한 불 속에서 굽지는 않더라도 조개탄 위에서 굽는다든지 하려면 진흙으로 싸발라 "거렁뱅이 닭"의 전통을 지키는 것도 좋겠다.
어찌하든 그렇게 오랜 시간을 은근한 불에서 익히면 유명한 "거렁뱅이 닭"이 된다. 그러나 산경원을 포함해서 그럴듯 한 음식점에서 이 요리를 시키면 별다른 재료 없이 털도 뽑지 않은 채 굽는 결과로 얻을 수 있다고 기대되는 순수한 닭고기의 맛은 없다. 이미 고급음식이 된지 오래고, 미리 예약주문을 해야 맛볼 수 있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요리이기 때문인지, 무언가 "거렁뱅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과는 맛이나 모습이 달라져 있다. 아마 그래서인지 이 "거렁뱅이 닭"의 유래로 아주 다른 이야기가 전하기도 한다. 청나라 치엔룽(乾隆)황제가 변복을 하고 민생시찰차 양자강 하류지역을 돌아다니다가 부주의로 길을 잃고 헤맸다고 한다. 이를 불쌍히 여긴 거지가 자기 처지에는 아주 고급음식인 이 "거렁뱅이 닭"을 대접한다. 오랜 시간을 헤매고 난 후라 피곤하고 배가 고팠을 테니 무엇인들 맛이 있지 않았으랴. 변복을 한 황제가 맛있다고 감탄을 하며 이 음식의 이름을 물었는데, 차마 "거렁뱅이 닭"이라고 하기가 뭐해서 "부귀 닭(富貴鷄)"이라고 소개했다 한다. 말하자면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잘나가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닭, 심지어 부귀와 영화를 가져다주는 닭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애써 얻고자 하는 것이 부귀일진대, 어찌 솥 하나, 양념 몇 가지 없이 진흙으로 싸발라 구운 닭을 부귀에 가져다 붙일 수 있는가. 그러나 지금 양자강 하구의 고급 음식점에서 맛보는 이 음식은 말할 것도 없이 거렁뱅이 보다는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에 가깝다. 거지 대신 황제와 연결된 내력이 만들어진 건 이 음식의 그러한 변화를 반영한 것이지 싶다.
워낙 유명한 음식이라서 기회가 있으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한 번 시식할 만하다. 그런 호기심은 결과의 만족도 여부를 떠나 나쁘지 않다. 그러나 짐작이긴 하지만 유난을 떨며 자주 찾아 먹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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