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음식중엔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이름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서시설(西施舌)"이라는 음식이 그렇다.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서시(西施)의 혀"라는 뜻인데, 중국역사에서 손꼽히는 미인였다는 서시, 그것도 그 여자의 혀를 지칭하고 있으니, 도대체 어떤 음식이길래 그런 이름을 감당할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서시설"은 중국 동남해안에 위치한 복건(福建)성과 타이완의 동남쪽 해안에서 나는 조개의 한 종류인데, 이 조개를 재료로 조리한 음식도 그냥 "서시설"이라고 부른다. 일본음식에서 사시미 재료로 인기가 있는 미루가이라는 조개(우리나라에서는 왕우럭조개나 코끼리 조개라고 부른다)보다는 작은 편이지만 몸체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길고 통통한 수관(水管)부분이 식용으로 애용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서시설은 이 수관부분의 우윳빛 색깔과 씹히는 질감이 아주 매력적이어서 인기가 있다. 중국현대문학 초기의 시인 위다푸(郁達夫)가 좋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하지만, 사실 그 사람 말고도 이 음식을 좋아한 사람은 부지기수였을 것이다. 그 좋은 맛이 어찌 이름이 알려진 그런 사람들에게만 좋겠는가. 흠이 있다면 그건 가격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부분에서 나면서 생산량이 많지 않은 탓에 값이 아주 비싼 것이다. 내력이야 어쨌든 "서시의 혀"라는 이름은 좀 고약스럽다. 비싸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 같지는 않고,녹갈색의 조개껍질 밖으로 길게 뻗어나온 수관에서 여인의 혀가 연상되었다고 하면 그런대로 그럴 듯한 설명이다.
이 글에서 소개하려는 "스즈터우(獅子頭)"라는 음식의 이름은 그런 설명조차 어렵다. 글자 그대로 하면 "사자의 머리"라는 뜻인데… "사자의 머리"라…
도대체 어떻게 생겼고,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어떤 유래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고, 또 맛은 어떨까. 이름만 보면 이런 상상을 불러 일으키는 게 당연하다. 물론 동물의 왕인 사자를 잡아 그 머리부분을 재료로 요리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막상 완성된 요리를 보아도 사자와의 연상은 조금 억지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스즈터우"는 그렇게 유별난 음식이 아니다. 다진 고기로 큼지막하게 만든 경단을 주재료로 한 찌게 정도라고 생각하면 그리 틀리지 않다. 집에서 늘 해먹는 소위 "쟈아창(家常)" 음식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으나, 손님을 청할 때 이 음식을 단골메뉴로 준비하는 가정이 적지 않으니 그리 귀한 음식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다. 이 말은 어쩌면 요리법이나 재료에 있어 변화의 폭이 크다는 게 특징이라는 뜻도 된다. 양쩌우(楊州) 지방의 특산 요리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재료나 조리법이 유사한 음식은 중국 여러 곳에서 볼 수 있고, 각각 다른 이름이 따로 달려있기도 하지만 모두 스즈터우로 통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외국인들 중에도 먹어본 사람이 많다. 쟝졔스(蔣介石)총통이 즐겼다고 알려져 있고, 양쩌우가 고향인 중국의 전 국가주석 쟝쩌민(江澤民)은 이 음식과의 일화가 여럿 전한다. 국가주석 재임 당시 중국을 방문한 미국의 대통령을 환영하는 만찬에도 이 음식이 올랐고, 몇 년 전 인도네시아가 해일로 큰 피해를 입었을 때 전임 국가주석으로 구호모금을 위해 큰 규모의 저녁상을 마련했는데, 그 때도 스즈터우가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손님상에 흔히 오르는 음식이라 오히려 특별히 화제에 오르지 않을 수도 있고, 그래서 외국인 손님은 자기가 "사자머리"를 먹는 줄도 모르고 먹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 음식은 요리법의 변화가 많다. 내 입맛에 맞아 기억이 나는 스즈터우는 질퍽하다고 느낄 정도로 기름기가 많이 느껴지는 돼지고기 경단과 대합조개, 그리고 배추가 어우러져 내는 야릇한 맛이었다. 중국식 햄이 들어있어 발효된 육류의 짭짤한 맛뿐 아니라 색상의 조화에도 기여했다. 조리하는 그릇도 "사꾸어(砂鍋)"라는 우리나라의 뚝배기 같은 옹기를 사용하는데, 뚜껑이 있는 것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경단과 탕(湯)의 육수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주요 재료에 따라 실제 이름에 다소 변화가 있지만, 위에 묘사한 정도라면 "사꿔꺼리스즈터우(砂鍋蛤蜊獅子頭)" 정도의 이름이겠다. "뚝배기 대합 사자머리찌게"로 번역하면 무리가 없겠다.
이제 고기의 조리법을 소개한다.
먼저 고기 경단. 살코기와 비계가 적당히 층을 이루어 섞여있는 돼지고기를 우리말로는 "삼겹살"이라고 하고 중국어로는 "우우화러우(五花肉)"라고 부르는데, 뱃살뿐 아니라 앞다리 윗부분의 살도 역시 그런 모습이다. 살코기와 비계가 아주 잘 어우러진 앞다리 살을 중국에서는 "메이화러우(梅花肉)"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어떤 유래에서 그렇게 불리게 됐는지는 확실치 않다. 우선 이 고기를 잘 다져야 한다. 어떤 요리전문가들은 기계로 갈아 만들면 칼로 두드려 다지는 것에 비해 맛이 덜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손으로 다지면 아무래도 좀 덜 고르게 될테니 씹는 맛이 조금이라도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기계로 간고기를 사는 것보다 고기를 사서 다지는 게 좋은 이유는 따로 있다. 고기에서 시작해야 살코기와 비계의 비율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이완 유학시절 이 요리를 처음 맛보앗을 때는 고기 경단이 흐물흐물해 입안에서 녹는 듯 부드러웠다고 기억되는데, 갈수록 점점 씹히는 맛이 더해지면서 그 부드러운 느낌이 줄어들었다. 언젠가 스즈터우를 준비한 집의 안주인에게 그 연유를 물어 본 적이 있다. 그 아주머니는 신명나는 듯 장황하게 설명했는데, 세상 바뀌어 가는 게 옛부터 먹어온 그 음식에도 그렇게 반영된다는 게 요지였다. 그 차이는 결국 살코기와 비계의 비율에 의해 결정된다. 전에는 비계와 살코기를 3:7, 심지어는 4:6 정도로 해서 기름기가 많았고 그만큼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그런 맛의 높은 경지를 중국사람들은 "풍성하면서 느끼하지 않다(肥而不膩)"고 한다. 그러나 그건 점점 그리워할 뿐 찾지 않는, 심지어는 회피하는 맛이 됐다. 기름기가 온갖 현대병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름기가 줄어들면서 점점 깔깔하게 씹히는 맛이 더해 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그게 스즈터우의 본맛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비뚤어진 성격때문인지, 아니면 기름기가 설탕, 소금과 함께 맛을 좌우하는 세 요소라고 믿고 있기 때문인지, 나는 그런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어떤 때는 일부러 비계를 많이 넣기도 하고, 어떤 때는 조금 넣기도 해, 질감의 변화를 꽤하기도 하고, 심지어 한 그릇의 스즈터우에 기름의 양을 달리한 두 종류의 경단을 넣어보기도 한다. 건강(중국에서는 그걸 "신체를 건강하게 한다"는 뜻으로 "지엔선(健身)"이라고 한다)에 집착하는 새로운 조류에 대한 창의적 거부라고 하면 오버하는 걸까?
간 고기가 다 준비되면 큼지막한 대접에 다진 고기와 생강과 마늘 즙을 넣은 술, 그리고 적당량의 간장을 넣은 후, 젓가락으로 한 방향으로 3-4분 힘차게 젓는다. 재료가 잘 섞이면 작은 주먹만한 정도로 큼지막하고 둥글넙적하게 경단을 만든다. 소금 말고 약간의 간장으로만 간을 하는 이유는 나머지 조리과정에서 여러 가지 맛이 스며들어 자연스럽게 간이 되기 때문이다. 적당량의 간 고기가 경단의 모습이 되어가면 오른손으로 뭉쳐서 왼손에 탁, 왼손으로 뭉쳐서 오른손에 탁, 그렇게 던지기를 예닐곱 번 반복하여 경단의 모습을 완성한다. 경단 준비의 마지막에 한가지 빠뜨리지 말아야할 과정이 있다. 달걀 흰자를 잘 때려 준비해 두었다가 준비된 경단을 잠시 담가 옷을 입히는 것이다. 가볍게 입히기 때문에 조리한 후 흰색이 전혀 보이지 않기도 하지만 이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말아야한다. 달걀 흰자로 입힌 옷은 우선 불에 얹어 끓일 때 경단이 흐트러져 버리는 걸 방지해 준다. 왜 "사자머리"라고 부르는지 잘 모르겠으나, 완성된 요리에서 한 가지를 골라 사자머리라고 부르라면 결국이 경단밖에 없는데, 그게 흐물흐물 부서져 버리면 쓰겠는가. 그러나 달걀 흰자에 담그는 과정을 거치는 더 중요한 이유는 조리과정에서 경단이 육수의 맛을 흡수해 간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육수는 주로 대합의 맛으로 만든다. 물론 닭국물에 대합을 삶아서 사용할 수도 있지만, 닭은 빠질 수 있어도 대합을 뺄 수는 없다. 옹기 냄비에 반쯤 물을 채우고 물이 끓으면 대합을 넣는다. 대합이 약간 열릴 때쯤 불을 끈 후, 대합을 건져내고, 배추의 속 부분을 냄비 바닥부분에 넣는다. 준비한 고기경단을 입을 벌린 대합에 밀어넣어 대합이 고기경단을 물고 있는 모습을 만든다. 말하자면 대합이 사자머리를 삼키고 있는 모습인 것이다. 고기경단에 달걀 흰자로 옷을 입힌다고 했는데, 대합에 밀어넣은 후 달걀 흰자를 입히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준비된 경단과 대합을 가지런히 옹기냄비에 넣고 그 외에 햄과 스캘럽(패주) 등을 넣은 후, 배추 큰 잎사귀로 음식재료 전체가 모두 싸이도록 잘 덮는다. 뚜껑을 덮은 후 작은 불에 서너 시간 끓인다. 국물이 넘지 않도록 유의하는 것은 물론, 수시로 고기핏물 등 찌꺼기가 포함된 기름을 건져야 한다.
물론 죽순이나 표고버섯 등 맛을 더할 수 있는 재료를 더 넣는 것도 좋다. 특기할 것은 "사자머리"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어 만들어 볼 엄두가 나지 않을 수는 있으나 일단 만들면 실패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고기 잘 다지고, 고기 양념과 술을 넣어 잘 섞어 큼지막하게 경단을 만들고, 육수 끓이다가 대합을 넣고, 입을 벌리면 꺼내 경단을 밀어넣으면 그 다음에는 배추로 냄비의 위 아래를 잘 받치고 덮은 후 작은 불에 오래 조리하는 것이니 어디서도 삼천포로 갈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사자머리를 물은 대합을 통째로 건지는 동작부터 벌써 입에 침이 고인다. 그렇게 말하고 보니 입을 떡 벌리고 커다란 고기덩어리를 물고 있는 대합이 사자의 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튼 고인 침이 헛되지 않은 맛이니 한 번 소매를 걷고 시도해 보기를 권한다.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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