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음식 기행

"홍사오(紅燒)" 조리법

반빈(半賓) 2010. 4. 16. 17:57

"홍사오(紅燒)" 조리법

 

"Good Friend"라는 중국집이 있었다.  중국어 옥호는 "好友記"라고 했다.  뉴욕에서 기차를 타고 내려와 프린스턴대학으로 가려면 프린스턴정션(Princeton Junction)이라는 역에서 내려 대학갬퍼스 안의 딩키스테이션까지 가는 두 칸 짜리 전차를 타는데, 그 중국집은 프린스턴정션 역의 주차장 바로 밖에 있었다.  삐걱거리는 문과 마루, 표면이 조금 끈끈하다는 느낌을 주는 테이블 등이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었다.  아직까지 성업중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내가 자주 드나든 게 프린스턴대학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이었으니 20년이 훨씬 지난 일이고, 그 당시 벌써 주인장의 나이가 지긋했으니 이제는 없어졌을 수도 있겠다.  아직 있다고 해도 그 때와는 주인도 음식도 다르지 않겠나 짐작한다.  주인장은 광뚱(廣東)이 고향이라는 떠버리 영감님이었는데, "좋은 친구"라는 옥호에 어울리게 아주 친절했다.  삐걱대는 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늘 들을 수 있던 어서 오라는 인사의 목소리는 마치 먼저 와 있는 손님 모두에게 손님이 또 왔다고 하는 광고같았다.  그 영감님과 친하게 된 계기가 바로 "홍사오(紅燒)"라는 조리법이었다.  그게 아주 보편적인 조리법이라는 건 나중에 음식의 조리법이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더 생기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지만, 그 집에서 처음으로 그 이름의 조리법으로 만들면 맛이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다. 

 

몇 번 가서 얼굴을 익힌 후, 늘 쓰는 전략대로 이 집에서 제일 내로라는 음식이 무언지 소개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기다렸다는 듯, 돼지 어깨요리가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호기심이 동해 어떻게 요리하느냐 물었더니, 그냥 주는대로 먹으면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대답을 하다가 말이 빗나가 "홍사오"라고 일러주었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어딜 가나 주는 대로 먹었지 이것저것 따지고 의견을 낼만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어도 알 길이 없긴 했다.  그냥 그렇게 물으면 주인장이 음식에 대해 좀 아는가보다 생각해줄지 모른다고 막연히 기대했던 것뿐이니, 주인장의 그 대답에는 그저 아는 척하고 고개를 끄덕일 밖에 다른 대응이 없었다.  마음 속으로 "붉다"는 뜻의 "홍(紅)"과 "태운다, 익힌다"는 뜻의 "소(燒)"을 한데 묶었다는 사실에 근거해 대충 그 의미를 짐작하면서 음식의 모습과 맛이 그 말뜻에 합당한지 보고 기억해 두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얼마 후 나온 음식은 붉은 색이 아니라 거의 검다고 해야할 정도로 진한 갈색의 커다란 고기덩어리였는데, 그 위로 엄지손가락 두 개 길이 정도의 뼈가 비스듬히 솟아나와 있어 마치 전쟁영화에서 전사자의 무덤에 그가 사용하던 소총을 꽂아 둔 듯한 모습이었다.  게다가 고기덩어리 전체가 찐득해보이는 국물로 덮혀 있있다.  아무튼 아무리 잘 보아주려 해도 그리 입맛이 당기는 모습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My friends…!" 하며 음식을 들고나온 주인장의 얼굴을 봐서 즐거운 듯 표정관리를 했다.  일행이 대여섯쯤이었는데 아무도 손을 대려는 얼굴이 아니었다.  중국말 한다고 잘난 척 그런 음식을 시켜버린 나를 원망하는 눈길을 느꼈다면 그건 같이 갔던 친구들이 실제로 그랬던 게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조차 그 음식이, 최소한 생김생김에서는, 조금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으리라.  매도 먼저 맞는다는 기분으로 한 덩어리를 떼어 내 접시에 옮기곤 한 조각씩 떼어 함께 간 친구들의 접시에 올려 권했다.  모두 조심스레 한 입씩 맛을 본 후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 큰 고기덩어리가 금세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맛을 본 "홍사오지엔방(紅燒肩膀)"을 그 후로 참 여러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음식이 나오면서 벌어지는 상황은 언제나 같았다.  음식을 보는 순간 일행이 모두 딴청을 부리지만, 잠시 후 억지로 권한 한 조각이 입에 들어가고 나면 순식간에 쟁반이 비어나갔다.  그건 어르신들도 다르지 않았다.  한번은 다른 학교에서 학위를 마치고 뉴욕시의 콜럼비아 대학에서 "뽀닥"이라고 부르던 박사후과정에 하게 된 고등학교 동창생 부부가 부모님과 함께 여행하던 중 들렸길래 모시고 갔는데 첫 입은 조금 등떠밀려 드시는 기분이었지만, 그 다음에는 서슴없이 조금 더 달라고 하셨다.  아무튼 메뉴에 올려놓지도 않고 그런 음식을 준비한다는 게 다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내가 갈 때 먹을 수 있으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홍사오"라는 이름이 여러가지 음식에 두루 붙어있는 걸 보면 그 조리법은 적용할 수 없는 재료가 없을 정도로 보편적이다.  그러나 이 조리법에 가장 어울리는 것은 역시 돼지고기인데, 돼지고기 중에도 껍질과 비게, 살코기가 모두 들어있는 부분이 좋다.  그런데 돼지고기를 그렇게 요리하고 보면, 거기에 중국식 해삼이 섞여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고급 중국요리집에 가면 볼 수 있는 "해삼주스"가 바로 그 예이다.  돼지고기 허벅지 살과 해삼을 재료로 하는 그 음식의 조리법이 대부분 "홍사오"이다.  그런데 사실 허벅지 살보다는 뱃살이나 족발(그걸 중국말로 "티방[蹄膀]"이라고 하는데, 돼지족발일 경우는 그냥 "쭈티[猪蹄]"라고 하기도 한다.)이 더 어울린다.  어쩌면 껍질과 비게에 홍사오의 맛이 배는 것이 그 요리법의 요체이기 때문이겠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국물이 쫄아 타지 않게 하기 위해 조금 조심을 해야하는 게 성가시긴 해도 그리 잘못 될 가능성이 없는 요리이니까 족발과 해삼을 "뻘겋(검)게 요리"하는 "홍사오티선(紅燒蹄參)"은 한 번 집에서 시도할만 한 요리이다.  먼저 기억할 것은 돼지족발과 해삼을 우선 따로 조리해서 상에 내기 바로 전 단계에서 섞는다는 점이다. 

 

우선 돼지족발을 요리해보자.  열 명 정도가 함께 먹는다고 생각하면 족발 대여섯 개면 적당하겠다.  우선 족발을 찬물에 담가 핏물과 누린내를 빼야한다.  그렇게 한참을 담가두었던 물을 버린 후 조리를 시작한다.  돼지족발의 조리에 사용하는 솥은 높고 좁은 것이 좋다.  "홍사오"의 양념이 골고루 배게 하려면 돼지고기의 대부분이 국물에 잠기게 하는 것이 좋은데 널찍한 솥을 쓰면 물을 많이 잡아야하고, 그러다 보면 맛이 고기 속속들이 배게 하는 것이 어렵다.  큰 불에서 돼기고기와 함께 넣은 물이 한 번 끓으면 불을 약하게 줄인다.  다시 약 반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려 생강, 파, 양파 등을 큼지막하게 썰어넣고, 소흥주(紹興酒)와 간장을 넣는다.  "홍사오"가 내는 색을 붉은 색으로 보든 검은 갈색으로 보든 그 요체는 간장이다.  소금을 쓰지 않고 간장으로만 짠맛을 내야 한다.  간장이 음식재료에 깊히 스며드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므로 조리과정에서 색이 잘 나지 않는다고 처음부터 조바심을 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조미재료 외에 또 한가지가 필요한데, 그것이 우리나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았다.  바로 "삥탕(氷糖)"이라고 하는 재료인데 글자 그대로 얼음의 모양을 한 설탕이다.  구할 수 없으면 검은 설탕(brown sugar)를 넣어야겠지만, 구할 수 있는지 알아보시기 바란다.  한국식 족발을 요리할 때 흔히 물엿을 넣은 걸 보면 삥탕의 대신으로 물엿이 들어가도 좋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삥탕이라는 조미재료는 단맛도 단맛이지만, 그보다 족발의 껍질을 타고 자르르 윤기가 나게 하면서 쫄깃한 기분을 더해주므로 만족스러운 식사경험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간장이나 삥탕의 양을 조절하는 건 늘 어려운 문제이지만 족발 하나에 간장 한 컵 정도가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리고 족발 대여섯 개를 조리한다고 할 때 삥탕은 서너 덩어리 넣으면 좋겠다.  "우샹(五香)"을 조금 넣으면 중국식 맛을 더할 수 있다.

 

모든 재료가 들어간 후 약 세 시간을 은근한 불에서 조리하는데, 다음의 세 가지에 유념하면 맛있는 "홍사오 돼지족발"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첫째, 약한 불에 조리해야한다.  불의 세기는 돼지고기, 특히 껍질부분의 쫄깃한 맛을 내는 데 아주 중요하다.  둘째, 솥의 뚜껑을 꼭 덮고 조리하는 것이 좋다.  좋은 맛이 날아가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이다.  세째, 약한 불에 올려놓았다고 안심하고 신문을 보거나 낮잠에 빠지지 말고 무엇인가 다른 일을 하면서 부엌에 있는 것이 좋다.  간장과 삥탕으로 해서 솥바닥에 족발의 껍질이 늘어붙기 쉽고, 상당히 오랜 시간 끓여야 하므로 국물이 쫄기 쉽다.  그래서 가끔 큰 국자나 주걱으로 위아래를 뒤집어주는 게 좋다.  세 시간 정도 후 조리가 다 되었다고 생각되면 불을 끄고 솥에 그대로 두는 것이 좋다.  조금 식는 과정에서 홍사오의 맛이 더욱 깊이 배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의 결과는 "홍사오 돼지족발(紅燒蹄膀)"이라고 그럴 듯한 이름을 붙여도 좋을 족보에 있는 음식이다.  그러나 정말 제대로 한 번 해 보려면 해삼을 요리해 함께 섞어야 한다.  중국요리에 쓰는 해삼은 우리가 부산이나 제주도에서 회를 쳐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어린 시절 반듯하게 편 옷핀으로 손수레에서 팔던 걸 찍어먹던 그런 싱싱한 해삼이 아니다.  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싱싱한 해삼으로 하면 중국음식이 될 것 같지 않은 기분이 든다.  아무튼 말린 해삼을 물에 불려서 쓰는 것이 보통이다.  말린 해삼은 보통 물에 불리면서 크기가 두 배로, 그걸 삶으면서 다시 두 배로 늘어난다고 생각하고 양을 조절하면 되겠다.

 

우선 말린 해삼 예닐곱 개를 찬물에 담가 세 시간 정도 불린 후, 물을 따라 버리고, 새 물로 갈아 넣은 후 생강을 몇 조각 저며 넣고 조리용 술을 더한 후 크지도 작지도 않은 불에 삶는데 물이 끓으면 바로 불을 끄고 식을 때까지 둔다.  이 단계에서 확인하면 해삼의 크기가 말랐을 때에 비해 두 배 정도로 크다.  해삼이 식으면 건져서 배를 갈라 내장과 오물을 빼고 씻고, 다시 조리용 술, 생강편을 넣은 찬물에 해삼이 잠기게 해서 중간 정도의 불에 다시 올려놓은 후, 물이 끓으면 식힌다.  해삼이 식었을 때 보면 크기가 다시 두 배로 불어있다.  말랐을 때보다 네 배로 커진 것이다.  

 

이렇게 준비된 해삼을 보기좋고 먹기 좋은 크기와 모습으로 어슷어슷 잘라 팬에 넣은 후 홍사오 돼지족발을 만들며 생긴 걸죽한 국물을 넣어 은근한 불에 한 시간 정도 가볍게 뒤적거리며 조리한다.  그게 끝이다.

 

한편에 홍사오 돼지족발을 한편에 그 국물로 마무리한 해삼을 적당히 쌓은 후 남은 국물을 너그럽게 얹은 후 식탁에 내면 된다.  조금 멋을 부리면서 야채를 곁드리고 싶으면 국물을 얹기 전에 미국사람들은 "bokchoy (白菜)", 중국사람들은 "칭껑차이(靑梗菜)"라고 부르는 녹색 야채를 살짝 데쳐 접시의 주변에 빙 둘러 놓을 수도 있겠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불에 올려둔 후 잊고 있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어서 조리하기에 불편한 건 사실이지만, 조리하는 요령이 간단하고 큰 기술이 필요없으면서 정말 진한 중국음식의 맛을 내 손으로 만들 수 있으니 한 번 시도해 보시라.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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