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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린 새우 "카이양(開洋)"과 무우 배추

말린 새우 "카이양(開洋)"과 무우 배추 무우나물은 내게 아주 특별한 음식이다. 별로 내세울 것 없는 반찬 한 가지를 가지고 무슨 호들갑이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긴 이렇다할 맛이 없는 담백한 맛을 맛으로 삼는 음식인 것도 사실이니 그런 생각도 그럴 듯하다. 그렇지만 내게는 벌써 오래 전에 아주 귀한 음식이 되었다. 특별한 기억과 연결되었기 때문임은 말할 것도 없겠다. 집이 한 동네여서 중학교 3년을 늘 함께 붙어다닌 친구가 있었다. 등하교 길을 콩나물 시루 같던 시내버스 안에서 같이 시달렸고, 그게 싫은 날은 함께 안국동에서 비원을 지나 창덕궁 담을 따라 걸어서 하교하기도 했다. 명륜동쯤에서 옆길로 새 탁구를 한 바탕 차고 나서야 귀가한 날도 셀 수 없이 많았다. 물론 네집 내집 없이 서로의 집을 ..

"일기가성 명박상득"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1년 1월 5일자에 실렸다고 합니다.] "일기가성, 명박상득" 청와대가 새해를 내다보며 ‘일기가성’(一氣呵成)이라는 성어를 내놓았다. 마음이 서늘해지는 낙담을 느낀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사자성어’가 유행한다. 연말연초에는 시의적절한 한자성어를 선택하고 사색하는 일이 약방의 감초 같은 이벤트가 됐다. 이 한 해의 성어를 발표하면, 이제 그 소식이 중국의 매체에까지 소개된다. 이 발표한 ‘올해의 사자성어’를 보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첫째, 교수들은 거의 매년 흔히 접할 수 없는 성어를 찾아낸다. 중국 고전문학과 사상사를 전공한 나조차도 출전이 막막한 경우가 많다. 2010년의 성어 역시 그랬다. “머리를 숨기기에 급급해 미처 꼬리를 감추지 못한다”는 뜻의..

에세이 2011.01.06

"동짓날 개기월식"

"동짓날 개기월식"(*) 동짓날 밤 보름달이 뜬다는 게 우선 흔치 않은 일이겠지만 바로 그 밤 그 보름달이 우리들 그림자로 가득 찬다는 개기월식은 사백 오십 몇 년 만에 처음이랍디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그렇게 한 열 번은 더 세어야 하는 길고 긴 세월 동안 아무도 볼 수 없었던 잔치라길래 핑계 삼아 술 부어가며 기다렸지요. 늘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하다못해 구름이라도 잔뜩 끼는 계절인데 달 뜨기를 기다려 어쩌자는 것이냐고 묻더군요. 월식은 못 본다고 해도 마신 술은 남지 않겠느냐고 대꾸했습니다. 억지였지요. 이번엔 마신 술이 없어지지 어떻게 남느냐는 핀잔이 왔습니다. 왜 말꼬리를 잡느냐는 목청 돋운 핀잔으로 되돌려 준 후 헤헤 웃음을 섞어 얼렁설렁 넘겼습니다. 잠들 시간을 훌쩍 넘어서..

시선(詩選) 2010.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