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놀음과 죽(粥)"
나는 중국여행중 종종 아침을 과식해서 하루종일 일정을 거북하게 지내곤 한다. 죽때문이다. 샤올룽빠오(小籠包)라고 하는 작은 만두 서너 개, 따듯한 콩국과 함께 먹는 중국식 도우넛 여우탸오(油條), 사오빙(燒餠)이라고 부르는 납작하게 구운 빵, 거기다 볶은 야채와 달걀요리 약간을 합하면 벌써 평소 먹는 아침의 양을 훨씬 넘어선다. 그런데 그만 일어서려고 할 때쯤이면 아차 죽을 먹지 않았네 하는 데 생각이 미친다. 그러면 기어코 한 그릇 먹을 수밖에 없다. 아니, 못 이기는 척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죽을 뜨러 간다고 해야 정확하고 솔직한 표현이다. 그런데 호텔이나 대학 내빈숙소의 아침식사에는 보통 흰 죽 하나, 무언가 다른 식재료를 넣은 죽 하나, 그렇게 두 종류 준비되어 있다. 마음을 정할 수 없다는 핑게로 둘에 다 손이 가게 된다. 그러다 보면 영낙없는 과식이다.
죽하면 우리의 음식문화도 빠지지 않는데 무슨 수선이냐는 사람들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냥 쌀로만 쑨 흰 죽으로 부터, 잣죽, 깨죽, 호박죽에, 팥죽, 닭죽, 어죽, 야채죽까지, 거기다 자주 먹을 수는 없어도 전복죽 같은 고급까지 합하자면, 모두 늘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러나 아무리 우리 것을 좋게 생각하려 해도 중국의 죽과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알고 보니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몇 년 전 타이베이의 국제도서전에 특별고문으로 초대되어 은사님을 모시고 간 일이 있었다. 은사님이 아침식사때마다 죽을 맛있게 드시는 걸 보고 사실 나도 죽때문에 아침을 과식한다는 고민을 비밀스레 간직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은사님은 아무 말씀 없이 수저를 놓고 내 손을 잡으며 어린아이처럼 웃으셨다. 동병상련이라지만 병이라고 하기에는 참 즐거운 병이 아니냐는 뜻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기본내공이 다르다. 중국사람들은, 특히 남쪽 지방 사람들은 삼시 세때는 아니라고 해도 대부분 하루 한 끼는 죽을 먹는다. 죽 쑤는 기술이 녹아 몸에 배어있다는 게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죽은 한자로 "粥" (중국어로 "쩌우")이라고 쓰고 지방에 따라 계속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만, 생활 속에서는 "희반 (稀飯 씨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희어멀건한 밥" 정도의 뜻이니 글자 그대로 밥을 지을 때보다 반의 반도 되지 않는 양의 쌀을 넉넉한 물에 넣고 끓인다. 한 소끔 끓어 오르면 물을 한 반 공기씩 더하며 끓인다. 눌어붙지 않게 가끔 저어 주고, 끓어 넘치지 않게 물을 더한다. 걸쭉함의 정도는 때에 따라, 용도에 따라 다를 수 있으니, 쌀이 풀어진 후 원하는 적당한 농도를 얻을 때까지 그 과정을 계속한다. 지켜서서 끓여야하는 정성때문인지 몰라도, 그 맛은 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맛도 맛이지만, 나는 다른 이유로 처음 타이완에 유학했던 시절부터 죽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졌다. 타이완에 도착한 것이 1980년이었으니 국민당 정부가 대륙에서 패전하고 타이완으로 피난하는 과정에서 타이완 사람들의 저항을 철저하게 봉쇄하기 위해 내린 계엄령이 30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동원감란시기임시조관(動員戡亂時期臨時條款)》이라고 불리던 이 법률은 헌법의 부속조항일 뿐이었으나 헌법에 우선하는 효력을 가져 행정부에 내부의 의결만으로 긴급처분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그렇게 국민의 대의기관인 입법부가 무시되었으니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유린된 상태였고, 그런 상태가 30년 이상 계속되고 있었다. 경제적 번영을 이루어 국민들의 불만을 제어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그런 상황을 국민이 용납하고 있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런데도 그리로 유학은 한 것은 중국고전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륙의 문은 아직 굳게 닫혀 있었다.
학생들은 정도 이상으로 고분고분했다. 학생들 중 국민당원이 상당수 있어, 당원대회를 버젓이 캠퍼스 안에서 하기도 하고, 군인들이 교관이라는 직책으로 캠퍼스에 상주했다. 국기게양식과 국기하강식이 있어 아침 저녁으로 걷던 걸음을 멈추고 경례하며 국가를 들어야 했다. 눈꼴사납다고 생각하거나, 나라가 이래서야 되겠냐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정이었는데도 학생들은 참 고분고분하고, 또 학업에 열심이었다. 그게 내겐 참 이상해 보였다. 그 배경에는 정말로 학생들의 복지를 생각하는 것 같은 정부가 있었다. 정치, 장기집권, 민주원칙 유린등의 문제를 건드리지만 않으면 살기에 그리 불편하지 않아 보였고, 실제로 별 문제가 없는 듯했다. 내 경험이라는 게 고작해야 대학 캠퍼스를 넘기 어려웠지만, 대학에서 사회가 학생들에게 보이는 배려에는 감동적인 면이 있었다. 우선 대학 등록금이 비싸지 않았다. 원하는 학생들은 모두 학교 기숙사에서 살 수 있었고, 학교 식당은 음식의 질이나 가격, 위생 등 여러 측면에서 불만이 있을 수 없어 보였다. 학생식당에서는 식판을 들고 자기가 원하는 음식을 선택하고 자신이 선택한 만큼의 음식값을 지불했다. 식당 한 가운데엔 커다란 통이 둘 있었는데, 하나는 "씨판"이라고 부르는 희멀건 죽통이었고, 다른 하나에는 국이 들어 있었다. 역시 희멀건 국이었지만, 두부나 배추 등의 재료를 조금 많이 건지겠다고 마음 먹으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죽과 국은 먹고 싶은 대로 퍼다 먹으라는 뜻이었다. 그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 대한 배려임이 분명했다. 짭짤한 반찬을 하나 사먹으면서, 배는 죽과 국으로 채울 수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사는 학생들도 많이 보였다. 그런데 그 죽이 참 맛이 있었다. 돈을 따로 내고 사먹는 음식보다 그게 더 맛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갈하고 정성껏 준비해 내놓는다는 걸 눈으로, 혀로 모두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죽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어서인지, 죽에 관심이 생겼다. 기회를 찾아 먹어볼 수 있는 죽을 많이 먹어보았을 뿐 아니라, 중국고전문학에서 죽이야기가 나오면 더욱 관심을 가지고 즐겁게 읽었다. 그러다 보니 눈에 띄는 게 신선죽(神仙粥)"이라는 음식 이름이었다. 꼭 그렇게 이름이 붙여진 음식이 아니더라도, 죽의 이야기에는 종종 신선이 함께 등장했다. 예를 들어 남송의 유명한 시인인 루여우(陸游)가 지은 "죽먹기(食粥)"이란 작품이 그랬다.
世人個個學長年, 세상사람 모두 오래 사는 법을 배우려 하는데,
不悟年長在目前。 그 오래 사는 법이 눈 앞에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我得宛丘平易法, 나는 완구선생의 손쉬운 방법을 깨달아
只將食粥致神仙。 그냥 죽만 먹고도 신선의 경지에 이르련다.
여기서 완구(宛丘)는 북송 "소문사학사 (蘇門四學士: 소동파 문하의 걸출한 학자 네 명)"의 하나인 짱레이 (張耒 장뢰)라는 사람의 호로 죽에 대한 글을 남겼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거리는 신선을 우리말의 "신선놀음"이라는 표현과 연결시켜 별 어려움이나 고민 없이 아름다운 산천을 노니는 존재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이 시에서 보이는 신선이라는 말에는 늙지 않고 오래 산다는 뜻이 담겨있다. 음식과 약의 중간 정도라는 죽에 대한 평가를 담은 글도 보였고, 심지어 증세에 따라 달리 죽을 끓이면 여러 가지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내용의 의서도 있었다.
신선죽이라는 이름의 음식은 재료나 만드는 법이 천태만상이었다. 신선놀음의 방법이 어찌 한둘뿐이랴. 그중 제일 오래된 기록은 뚠황(敦煌)의 석굴에서 발견되었다고 하니, 당나라 때 이미 신선죽이란 이름과 제조방법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 글을 읽으면서는 마치 비방(秘方)을 전수받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는다. 그 조리법에 따르면 신선죽에는 마(山藥), 계두실(鷄頭實)이라고 하는 연(蓮) 비슷한 물풀 열매의 씨, 메벼 등이 주 재료이고 다진 부추를 넣기도 한다. 마는 한 근을 삶아 껍질을 벗기고, 계두실은 반 근을 삶아 껍질을 벗긴 후 빻아 가루로 만든다. 거기에 메벼 반 되를 섞어 물에 함께 넣은 후 약한 불에 천천히 끓여 만든다. 재미있는 것은 공복(空腹)에 먹어야 하고, 먹은 후에는 반드시 따듯한 술 석 잔을 마셔야 묘한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이 붙어 있다는 사실이다. 재료도 재료지만, 식사를 하는 것인지 약을 먹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복용방법이 붙어있으니, 비방을 얻었다는 느낌을 받지 않겠는가. 실제로 몸을 수련하는 도사들이 먹어 기운과 뜻을 강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고, 아마 그래서 신선죽이라는 이름이 붙은 듯하다.
찹쌀 반 홉에 생강 약간을 넣고 끓이다가, 한 두 번 끓고 나면 대파를 뿌리까지 함께 넉넉하게 넣고 끓인 후 찹쌀이 다 풀어지면 쌀 식초를 약간 넣어 잘 섞어 만든다는 청나라 때의 기록도 있는데, 이렇게 만든 신선죽은 감기 두통 몸살에 특효이니 죽이 식기 전에 먹고 바람이 없는 곳에서 한 숨 자면서 땀을 빼라는 지시가 붙어 있다. 찹쌀은 몸을 보하고(補), 파와 생강은 나쁜 가운을 털어내고(散), 식초가 다시 몸을 거두어 추스리는(收斂)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정말 약처럼 만드는 조리법보다는 연잎(蓮葉)을 이용해 만드는 신선죽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온갖 재료를 넣어 죽을 만드는데까지의 과정에는 그리 다를 게 없다. 흰쌀로 묽게 끓이는 죽을 "명화백죽(明火白粥)"이라고 하는데, 이 단계가 지나면서 갖가지 재료를 더한다. 쌀알이 거의 풀어질 무렵 깨끗하게 씻은 연잎으로 뚜껑처럼 솥을 덮어 한참을 약한 불에 두는 게 묘방이다. 연잎의 파란 기운이 녹아내려 죽 전체가 비취빛으로 변한다. 은은하면서도 깊이를 느끼게 하는 맑은 푸른 색의 죽을 한 입씩 입에 떠 넣으며 즐기는 게 꼭 벽옥을 녹여 마시는 기분이니 신선놀음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런 음식을 먹고 살면 신선처럼 무병장수할 수 있다는 소리를 들으며 그냥 기꺼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사실 우리도 배탈이 나거나 몸이 아파서 입맛을 읽으면 흰 쌀죽을 끓여 먹으며 하루이틀 몸을 달래면 낫는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 효과를 믿는다는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내 기억에 흰 죽은 아픈 몸과 연관되어 있다. 이 신선죽은 분명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있다. 온갖 좋은 재료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비취빛까지 들어 있으니, 맛과 멋을 다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런 죽을 평시에도 늘 즐긴다면 신선이 부러울 게 있을까.
(2011년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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