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빈
"외손주를 안고 동요 노랫말을 찾습니다"
1.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 꽃이 활짝 피었네…"
여기서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고
흥얼거리며 얼버무릴 수 밖에 없는 게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물론 이제 한돌을 지내는 아가에게는
할배가 이런다고 뭐 그리 이상할 게 없겠지요
노랫말이 가물거려 이런다는 건 모를 겁니다
그렇지만 나 자신에게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삼사 십 년 전이기는 했지만
내 딸들을 안고서는 끝까지 불렀던 것 같아요
정성을 들이고 감정을 살려서
혹시 잘 자라는 데 도움이 될까
열심히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낳은
아이를 안고 부르는 지금은
왜 노랫말이 첫 서너 마디만 생각나지요
아아, 그건 나중에 나온 노래라 그래
우리가 그 때는 국민학교라고 했던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아직 없던 노래라서 그럴 거야
음악교과서에도 실리지 않았었어
물론 레레솔 솔파미레… 라고 배우지도 않았고
사팔오 팔팔팔오…는 더욱이 없었지
그냥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스치듯 들었으니
기억이 오래 갈 수가 없는 거지…
이렇게 스스로를 위안해 봅니다
그래서 손주를 안고
한 갑자 전에 배웠던
음악교과서로 되돌아갑니다
별 소용이 없네요
도중에 노랫말이 기억이 나지 않는 건
분명히 교과서에 실렸던 노래도 같습니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 이천 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
여기까지 부르곤 또 멈칫거립니다
잠시 금강산 길이 열렸을 때
운 좋게 가서 겨우 한 번 보았을 뿐인데
철 따라 옷을 갈아입는 걸 어떻게 알아요
마음으로 배우고 발로 배웠어야 하는데
노래를 머리로만 배웠기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 거라고 억지를 써 봅니다
그런데 이것도 헛일입니다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어찌 되는지도 아물아물 하고
귓가에 날아와 앉는 새벽 종 소리에서
민들레 꽃씨를 연상하는 건
듣고 보면 그럴 듯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요
이리저리 밖에서 이유를 찾는 게 딱하긴 합니다
그냥 늙어서 기억이 가물가물해졌다고
받아들여야 하는데 말입니다
(2023년 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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