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선생의 시 한 수를 소개합니다. 다소 길지만 찬찬히 읽어보시면 맛이 있을 겁니다. 조선 후기의 저명한 학자로만 생각하면 의외일 수 있지만. 자신의 내면에 없을 수 없는 번민을 담았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丁若鏞(1762 - 1836)
〈烏鰂魚行〉
烏鰂水邊行,
忽逢白鷺影。
皎然一片雪,
炯與水同靜。
擧頭謂白鷺,
子志吾不省。
旣欲得魚噉,
云何淸節秉。
我腹常眝一囊墨,
一吐能令數丈黑。
魚目昏昏咫尺迷,
掉尾欲往忘南北。
我開口呑魚不覺,
我腹常飽魚常惑。
子羽太潔毛太奇,
縞衣素裳誰不疑。
行處玉貌先照水,
魚皆遠望謹避之。
子終日立將何待,
子脛但酸腸常飢。
子見烏鬼乞其羽,
和光合汙從便宜。
然後得魚如陵阜,
啗子之雌與子兒。
白鷺謂烏鰂,
汝言亦有理。
天旣賦予以潔白,
予亦自視無塵滓。
豈爲充玆一寸嗉,
變易形貌乃如是。
魚來則食去不追,
我惟直立天命俟。
烏鰂含墨噀且嗔,
愚哉汝鷺當餓死。
정약용(1762-1836)
"오징어의 노래"
오징어 하나가 물가를 가다가
갑자기 백로 그림자를 만났습니다
눈같이 흰데
잔잔한 물결 따라 반짝였습니다.
머리를 들어 백로에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나는 정말 모르겠어
물고기를 잡아 먹으려면서
맑은 절개를 따져 무엇 하나
나는 뱃속에 늘 먹물 한 주머니를 지니고 다니는데
한 번 뿜어내면 몇 길 물속을 캄캄하게 할 수 있어
고기들은 눈이 침침해져 지척을 분간하지 못하지
꼬리를 버둥대 빠져 나가려 하지만 방향을 잡지 못해
내가 입을 벌려 삼키려 해도 알지 못하지
내 배는 늘 가득하고, 고기는 어쩔 줄 몰라
자네는 깃털이 참 깨끗해 눈에 쉽게 띄지
위 아래가 모두 희니 누군들 의심하지 않을까
어디를 가도 그 멋들어진 모습이 먼저 물에 비치니
고기들이 멀리서도 보고 조심조심 피하는 거야
자넨 종일 그렇게 서서 무얼 기다리나
다리가 저리고 배는 늘 고프겠지
가서 까마귀 녀석들에게 깃털 좀 달라고 간청해 봐
반짝이는 데는 때를 타게 해 좀 편안하게 살아
아마 자네가 잡는 고기가 언덕만큼 쌓일 걸세
마나님과 아이들도 배불리 먹게 하고"
백로가 오징어에게 대답했습니다
"자네 말에도 일리가 있어
그러나 하늘이 내게 깨끗한 흰 색을 주셨고
나 역시 나를 흠도 먼지도 없는 나로 알 뿐이야
어찌 짤막한 내 배 하나 채우자고
내 모습을 그렇게 바꾸겠는가
고기가 오면 먹고, 가버리면 쫓아가지 않겠어
나는 오로지 꼿꼿이 서서 하늘의 명을 기다리겠네"
오징어가 눈을 부릅뜨고 먹물을 뿜으며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녀석, 넌 그럼 굶어 죽어 마땅해"
(반빈 역)
Chong Yag-yong (1762-1836)
“A Song of Cuttlefish”
A cuttlefish moves along the shore,
And suddenly stumbles on the reflection of an egret,
As white as snow,
As glistening as quiet ripples.
Raising his head, the cuttlefish says to the egret,
“What is it that you want? I really don’t get it.
If you want to catch fish to eat,
What’s the point of holding onto pure integrity?
Stored in my belly all the time is a bag of ink,
Which, if I spit out, can darken some ten yards around.
The fish, eyes blurred, is confused just inches and feet away,
It might flaps the tail to escape, but is oblivious of directions.
I'd open my mouth to gulp it, before it realizes.
My belly is always full, and the fish, always confounded.
Your feathers are too clean, and the plumage too conspicuous.
Your jacket and skirt are too white. Who wouldn’t be suspicious?
Wherever you go, your striking look gets there first,
Scaring away the fish from afar.
You stand all day long. What is there to wait for?
Your legs must be sore, and guts empty.
Go find some crows and beg them for a few feathers.
Soil the glossy with stains, and follow the expedience.
The fish you catch will pile up like a mound.
You can feed your better half and your kids.”
The egret responds to the cuttlefish:
“What you say makes sense, too,
But Heaven has endowed me with spotless white.
I, too, see myself without dust or dirt.
How could I, for filling a small crop of mine,
Change my body as you say?
When the fish would come, I eat, but I don’t chase them.
I'd just stand straight up and wait for the heavenly decree.”
The cuttlefish squirts the ink with a stare, and says,
“You idiot! You should die of starvation.”
(H. Rhew,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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