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우푸깐(豆腐乾)"
중국 사람들이 참 다양한 방식으로 두부를 먹는다는 건 이미 소개했지만, 그 여러 가지 방식 중 우리와 아주 다른 게 바로 "떠우푸깐(豆腐乾)"이다. 떠우푸깐은 두부를 눌러 수분을 많이 제거해 만들기 때문에 두부에 비해 단단하다. 이름에 들어있는 "깐(乾)"이라는 글자가 바로 "마를 건"이니 그 특징을 잘 설명한다. 아무 조미 없이 그냥 눌러 물기를 뺀 것과 "오향(五香)"이라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향신료를 가미한 것, 그렇게 두 종류가 대부분이다. 보통 두부보다 쫄깃쫄깃해 질감이 특별하고, 물기를 많이 제거해서 그런지 조리한 후 상당기간 보관할 수 있어 편하다. 별스럽게 요리하지 않고도 길쭉한 성냥개비 모양으로 썬 후 부추나 절인 겨자잎과 함께 볶아내면 손쉽게 그럴 듯한 음식 한 접시를 만들 수 있다.
이 식재료를 조리하는 방법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짚어둘 일이 있다. 문화와 음식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주방장의 실력을 평가하는 척도로 흔히 칼을 쓰는 솜씨와 불을 다루는 솜씨를 든다. 중국요리도 그렇다. 칼과 불이 마음처럼 돼야, 즉 "따오꿍(刀工)"과 "후어허우(火候)"를 마음껏 조절할 수 있어야 음식이 뜻대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생각이다. 식재료의 물성이나 조리과정의 필요에 따라 불의 크기나 시간을 조절해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그러나 실제로 불을 적절히 이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또 불의 조절이 경험이나 조리실력의 범주를 벗어나 시설이 받쳐주어야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간단한 예로 짜장면도 그렇다. 중국식 팬인 왁의 바닥 전체를 에워싸는 불길을 뿜어내 불기운이 직접 식재료 위를 날름거릴 수 있게 하는 화덕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재료를 쓰고 훌륭한 조리법을 따른다 해도 맛에서 무언가 빠졌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칼솜씨의 중요함 역시 별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 솜씨가 하루이틀에 습득이 되는 게 아니라서 그렇지, 요리와 칼솜씨는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 요리를 좀 한다는 사람들이 칼과 도마로 만들어내는 소리는 좋은 음악처럼 즐겁다. 《와호장룡(臥虎藏龍)》(2000년)으로 유명한 리앙(李安) 감독이 만든 영화 《음식남녀(飮食男女)》(1994년)에서 큰 호텔 주방장인 아버지가 세 딸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면서 큼지막한 칼로 무우채를 썰어내는 장면은 참 깊은 인상으로 기억에 남았다. 칼을 쓰는 솜씨는 식재료에 대한 이해로 부터, 음식이 입 안으로 들어와 치아와 혀에 주는 질감에 대한 구상까지를 두루 포함하는 내공의 문제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도공"과 "화후"를 이야기하는 것은 여기 소개하려는 "지웨이깐쓰(鷄煨幹絲)"를 조리하는 데 아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냥 이 음식의 이름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우선 "웨이(煨)"라는 글자는 우리말로 훈과 음을 달자면 "불꽃/불씨 외"이다. 이 글자는 조리와 관련해서 대개 두 가지 뜻이 있다. 곰국을 끓이듯 은근한 불에 오래 고아낸다는 게 그 첫째이고, 고구마나 감자 같은 재료를 잿속에 묻어 굽는다는 뜻이 그 둘째이다. "불씨"라는 훈에서도 보이지만 두 가지 뜻이 모두 은근한 불을 이용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쓰(絲)"의 우리말 훈과 음은 "실 사"이니 재료를 가늘고 길게 채썬다는 뜻이다. "깐(乾)"은 물론 떠우푸깐을 줄인 말이겠다. 그러니 이름으로 볼 때, 이 음식은 싱싱한 토종닭을 은근한 불에 오랜 시간 고아낸 국물에 떠우푸깐을 채썰어 넣어 조리한다고 보면 된다.
떠우푸깐은 제품에 따라 크기가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대부분 두께가 3펀(分), 그러니까 1센티미터 남짓한 납작한 모습이다. 이 재료로 따오꿍, 즉 칼솜씨를 자랑하는데, 그 두께의 떠우푸깐을 20여 개의 박편으로 썰어내 겹쳐 놓고 다시 두께와 같은 칫수의 너비로 썰어 아주 가는 성냥개비 모습으로 채를 만들었다는 전설적인 사부(師傅)의 이야기도 전한다. 이미 기계로 썰어내 포장해 파는 떠우푸깐 채를 사다 쓰는 시대가 되었으니 그런 칼솜씨가 옛날 처럼 중요하지 않겠지만, 그렇게 기계로 썬 걸 쓰다보면 정성도 내공도 사라져버린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선입견 때문인지는 모르나 직접 떠우푸깐을 채썰어서 조리하면 그 맛이 기계로 대량생산한 떠우푸깐 채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다.
제일 중요한 부분은 역시 닭국물이다. 두부로 하는 요리에서 두부는 다른 식재료의 향과 맛을 머금어 미묘한 조화를 만들어내는 기능을 가장 중요하게 친다. 그러므로 가늘고 길게 썬 떠우푸깐 채를 우선 끓는 물에 잠시 데쳐내어 두부제품에서 날 수 있는 간수의 맛을 제거한 후 건져 물기가 빠지도록 둔다. 물론 닭국물를 만드는 데는 훨씬 시간과 공이 많이 든다. 사회가 그래도 넉넉하고 돌아가던 옛날옛적의 조리방법을 이야기하는 분들은 닭의 선택에서부터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한다. 그날 낮까지도 따듯한 체온을 가지고 있던 닭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건 공장에서 대량으로 잡아 냉동시킨 건 아무래도 맛이 덜하다는 뜻이겠다. 또 수탉보다는 암탉이 좋다고 한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같은 나이의 수탉과 암탉을 한꺼번에 잡아 같은 방법으로 조리해서 비교시식해서 그 맛의 차이를 과학적으로 확인한 적이 없기는 하지만, 그 말이 그냥 그럴 듯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건 아마 내가 남성중심 사회의 사고방식에 나도 모르게 매어있어서 그런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지금도 이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킬 수는 있다. 재래시장에 가서 살아있는 암탉을 지목해 잡아달라고 하면 된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성가신 일이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캔으로 만들어 놓은 닭국물(chicken broth)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닭을 삶아 국물을 만든다면 암탉이건 수탉이건, 냉동이건 아니건 그래도 조금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도 든다.
닭을 잘 씻은 후, 우선 펄펄 끓는 물에 한 5분 삶아 핏물도 빼고 잡내도 없애는 게 좋다. 그런 후 큰 냄비에 찬물과 닭을 넣고, 파, 마늘, 생강과 약간의 술을 더한 뒤 중불로 조리한다. 물이 끓으면 불을 줄여 최소 두세 시간을 고아낸다. 그 과정에서 가끔 들여다 보면서 뜨는 이물질이나 기름을 건져내는 게 좋다.
닭국물이 준비되면 지웨이깐쓰를 만드는 나머지 과정은 특별할 게 없다. 뚝배기에 표고버섯과 겨울 죽순(冬筍), 햄을 가늘게 채썰어 넣고 닭국물을 부은 후 약 30분 끓인다. 다시 준비해둔 떠우푸깐 채를 넣고 다시 중불에 2-30분 끓인다. 앞에서 말했듯이 두부는 그 자체의 맛이 아니라 다른 재료의 맛과 향을 흡수하여 지니고 있기 때문에 버섯이나 햄 등을 꼭 함께 조리해야 한다.
여기 말하는 햄은 서양식 햄이 아니다. 중국에서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바람부는 곳에서 걸어 발효시켜 갈무리했다는 기록은 송나라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니 이미 천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후어퉤이(火腿)"는 서양식 햄(ham)이라는 말의 번역이 아니라 중국 특유의 돼지고기 갈무리 방식이다. 이 갈무리 방식은 서양의 햄처럼 훈제(smoke)해서 만들지 않기 때문에 사실 "불(火)"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데도 이름에 "불 화(火)"자가 들어 있는 것은 중국식으로 소금에 절여 발효시키면 돼지 뒷다리가 불처럼 붉은 색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의 햄은 뭐니뭐니 해도 쩌쟝(浙江)성 진화(金華)지방에서 만든 걸 제일로 친다. 나는 꼭 진화후어퉤이(金華火腿)를 고집하지 않는다. 우선 명품이라고 알려져 값이 아주 비싼 것이 큰 흠이다. 또 한 3-4년 전인지 이 진화후어퉤이의 생산과정에서 공업용 살충제를 사용해 크게 물의를 일으켰다고 보도된 게 기억이 남아, 장을 볼 때 손이 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서양식 햄을 넣으면 물론 맛이 아주 다르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의 좋은 맛이다. 구수한 목소리로 바둑해설을 하는 사람의 말대로 그것도 한 판의 바둑인 것이다.
가늘게 채썬 떠우푸깐에 닭국물과 햄, 죽순, 버섯의 맛이 배어들면 지웨이깐쓰는 거의 완성이다. 대파나 마늘잎을 송송 썰어 얹는 일만 남은 것이다.
흔히 이 음식을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양쩌우(楊州)지방의 특징적인 맛이라고 한다. 이 지방은 사실 여러 가지 두부음식으로 일찍부터 이름을 날렸다. 원쓰(文思)라는 이름의 스님에게서 유래했다는 "원쓰떠우푸(文思豆腐)"도 잘 알려져 있는데, 부드러운 두부에 목이버섯과 진쩐(金針)이라는 나리꽃 꽃망울을 말린 재료를 함께 넣고 끓이는 두부찌게이다. 그러나 떠우푸깐으로 하는 요리는 중국의 여러 지방에 두루 퍼져있다는 느낌이라 꼭 어느 한두 지역으로 한정할 수 없는 것 같다. 가는 곳마다 조금씩 조리법이나 식재료가 다르니 주의해 관찰하며 시식하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조금 고급 중국집엘 가면 떠우푸깐 채에 독특한 해산물 소스를 얹은 찬 음식을 반찬으로 내 놓는 걸 본다. 우샹(五香)에 살짝 삶아낸 땅콩이나 절인 짜차이(榨菜)를 내는 게 보통인데, 이런 반찬을 대개 "샤오차이(小菜)"라고 부른다. 메인코스에 들어가기 전 미리 식탁 위에 놓인 작은 음식 중에 흰 국수 비슷한 재료를 짙은 색의 소스로 비빈 게 보이면 그게 바로 떠우푸깐 채로 만든 "샤오차이"이다. 기본으로 나오는 반찬이라 대수롭지 않게 보아넘기기 쉽다. 그러나 좋은 음식점은 기본반찬부터 다르다. 잘 만든 떠우푸깐 채 비빔은 하나의 요리로 불러도 좋을 만큼 손이 가는 음식이다. 우선 떠우푸깐 채를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선 잠시 끓는 물에 담가 잡내를 없애야 한다. 다시 정성스럽게 준비한 닭국물에 한 십 분 끓여 건져 낸 떠우푸깐 채를 잘 말려 물기를 뺀다.
이렇게 준비한 소스를 비빌 소스 역시 매우 중요하다. 패주와 말린 새우를 술을 조금 넣은 물에 불리고, 다시 고추, 햄과 함께 잘 다진다. 그것을 간장과 굴소스, 다진 파, 다진 마늘과 함께 센 불에 볶아 만드니, 정성도 정성이지만, 들어가는 재료가 장난이 아니다. 그렇게 준비한 소스와 떠우푸깐 채를 잘 비빈 후 마늘 잎을 길쭉하게 채썰어 얹으면 완성이다. 기본 반찬으로 하지 않고 요리의 하나로 내 놓아도 손색이 없지 않겠는가.
이 두 가지 요리는 떠우푸깐을 쉽게 구할 수 없을 경우에는 조금 단단한 부침용 두부로 시도해 보는 것도 좋다. 두부가 끊어지기 쉽다는 걸 고려해 너무 가늘게 채썰지 않는 게 좋겠다. 다른 식재료의 맛을 잘 흡수해 아우르는 건 두부나 떠우푸깐이나 다 할 수 있는 역할이다.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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