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음식 기행

"빼갈의 추억"

반빈(半賓) 2011. 4. 13. 19:16

 

"빼갈의 추억"

 

중국술하면 역시 "빠이지어우(白酒)"가 제맛이다. "사오씽지어우(紹興酒)" 같은 쌀로 담근 양조주도 잊기 어려운 독특한 맛이지만, "까오량(高梁 수수)"등의 몇 가지 곡식을 재료로 빚은 후 증류과정을 통해 만들어 낸 백주의 맑고 깨끗한 색깔과 맛은 다른 문화의 술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식도를 훑어내리는 뜨거운 촉감은 참으로 특별한 경험이다.  사실 백주의 감흥은 혀와 식도로 다가오기 전에 코에서 먼저 시작한다.  품질이 좋은 백주는 누군가 식당 한 구석에서 한 병을 열어도 식당손님 모두를 그 향으로 매혹시킨다.  몇 년 전 타이완 정부의 높은 관직에 있는 친구가 선물한 "사오따오즈(燒刀子)"를 불광동의 어떤 조그만 중국집에서 함께 북한산에 다니는 선배, 친구들과 마신 적이 있었다.  병 뚜껑을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식당 전체에서 재미있는 반응이 일었다.  감탄과 아우성의 가운데 어디쯤이었는데, 그 반응이 결국 "이게 무슨 술인지 우리도 한 병 달라"는 주문으로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우리 일행에 집중됐다.  그 식당에서 파는 술이 아니라는 설명이 아쉽다는 탄식을 자아냈지만, 참 대단한 향이라는 수긍도 따랐다.  그 향은 술이 식도를 태우며 타고 내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입과 코에 남아 즐거움을 더한다.

 

언제부터인지 "우울량예(五粮液)"나 "펀지어우(汾酒)"등 명품 백주에 "까오뚜(高度)"와 "띠뚜(低度)"의 구분이 생겼다.  원래 백주는 알코홀 농도가 55-57% 정도로 높아서 식도가 타들어가는 후끈한 느낌을 즐기며 마시는 게 고유의 맛이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순한" 느낌으로 마신다는 이름 아래 알코홀의 양을 30-35%로 줄인, 말하자면 꼬마버전이 등장한 것이다.  그게 도대체 뭐냐고 핀잔을 하니, 한 중국 친구가 너희 한국사람들의 중국방문이 잦아지면서 순한 술을  찾은 게 새 제품 개발의 동기였다는 이야기도 들리더라고, 오히려 책임을 우리에게 미루기도 했다.  그 설명의 진위를 밝힐 길은 없겠지만, 듣고보니 그럴 듯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선 25도 정도이던 우리나라 소주의 주정도가 점점 낮아져 이제는 20도 아래로 떨어진 제품이 인기인 걸 보면 우리나라의 많은 애주가들이 쉽게 넘어가는 술을 선호한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니다.  또 우리나라가 대단한 술 소비량을 "자랑"하니 중국의 술 회사가 우리의 기호를 고려해 제품을 개발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그러나 말을 바로 하자면, "저도"의 백주는 결국 "물을 탄" 것에 다름아니다.  그러니 좋게 보아줄 수가 없다.  "순한" 제품을 개발한 동기에 정말 우리의 음주문화가 관계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해도, 한 자리에서 마시는 술의 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음주방식의 문제는 결코 미미하다 할 수 없다.  천천히, 조금씩 타는 듯한 뜨거움을 즐기는 걸 마뜩치 않다고 느끼는 문화를 조금씩 바꾸어 보는 것도 좋겠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의 고백성사쯤으로 들어주시기 바란다.)  아무튼 "저도"는 내 취향은 아니다.

 

사실 이건 꼭 내 개인적 취향에서 뿐 아니라 백주의 역사에 근거해서 하는 말이다.  중국이 언제부터 증류법을 사용해서 주정도가 높은 술을 만들어 마셨는지, 또 그 방법이 중국에서 자생했는지 밖으로부터 전해졌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그러나 늦어도 12세기에는 증류법이 보급되었음이 분명하다.  여진이 세운 금(金)의 대정(大定 1161-1189)연간에 제작된 구리로 된 증류솥이 1970년대 후반에 출토되었고, 송(宋 960-1279)대의 문헌에도 주정도가 높은 술이 제조, 소비되었음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상당히 포함되어 있다.  향이나 맛이 어땠는지는 자세히 알 길이 없지만, 주정도를 높이는 기술을 개발해 사용했음은 분명하다.  우선 술에 붙인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다.  송나라때는 "후어퍼지어우(火迫酒)"라고 불렸다고 하니, 밀려오는 뜨거운 불길을 대하는 듯한 급박한 기분을 담고 있지 않은가.  뱀에 물렸을 때 독을 빼기 위해서는 입에 그 술을 한 모금 머금고 빨아내라는 의서의 기록도 있다.  술로 소독을 한다는 뜻이겠는데, 그러려면 당연히 주정도가 높았을 것이다.

 

(明 1368-1644)대에 쓰인 "사오따오(燒刀)"나 "사오따오즈(燒刀子)"라는 이름 역시 높은 주정도를 반영한다.  타는 듯한 뜨거운 촉감을 칼이나 도끼에 비유해 표현한 것이다.  예컨대, "날이 없는 도끼(無刃之斧)로 그 성질이 흉포하고 참담하다(其性凶慘)"는 표현으로 백주를 마신 경험을 포착해 낸 글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 "저도"라는 개념이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게 바로 백주의 역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 명명법과 계통을 달리하는 이름이 바로 우리가 오래전부터 사용한 "빼갈"이라는 명칭이다.  아마 "빠이까얼(白乾兒)"이라는 중국 화북지방의 말이 우리나라로 소개되어 우리말 어휘에 흡수되면서 생긴 음운변화의 결과가 아닌가 짐작한다.  눈부시리만큼 투명하니 "희다(白)"고 했을 것이고, 마시고 나서 타들어오는 느낌이 지난 후 입이 마르면서 앗쌀하게 오는 깨끗한 느낌을 "마르다(乾)"라는 말로 표현한 것 같다.  그 외에도 "얼꾸어터우(二鍋頭)"라는 말이 쓰이는데, 이는 증류하는 과정에서 두번째로 흘러나오는 걸 받은 술을 의미한다.  "천녜엔까오량(陳年高梁)", 즉 오래 숙성시킨 고량주라는 말을 줄여 부르는 "천까오(陳高)"도 있는데, 그건 상당히 고급 백주임을 이르는 용어이겠다.

 

"머리에 피도 마르기 전에 엉덩이부터 뿔이 나서" 친구들과 삼삼오오 중국집에 몰려 다니면서 짜장면 한 그릇에 빼갈을 시켜 마신 추억이 있어서인지 뭐니뭐니해도 "빼갈"이라는 이름이 제일 정답다.  그 때 중국집들은 대부분 아래층에는 커다란 홀이 있었고, 위층에는 미닫이 문을 설치해 임시로 칸을 막은 방들을 몇 갖추고 있었다.  담배도 피우고 빼갈도 마시는, 말하자면 하지 못하게 되어있는 일을 골라서 하자니 꼭 이층의 방을 차지해야 했고, 일하는 사람들은 척 보면 무얼하러 온 녀석들인지 알 수 있다는 듯,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이층으로 안내했다.  심지어는 주문을 하기도 전에 머릿수를 세고 "짜장면 다섯, 빼갈 두 도꾸리"라고 선언한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리는 수도 있었다.

 

내 기억이 옳다면 그 때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고량주로 "동해고량주"라는 제품이 있었다.  우리는 그걸 빼갈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냥 "수류탄"이라고 불렀다.  둥근 몸통에서 갸름한 목이 올라와 있던 병의 모습 때문에 그리 부른 것이겠지만, 맛도 향도 "빼갈"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는 비판적 평가가 한 몫을 했다고 기억한다.  그 때는 테이블마다 재떨이와 팔각형 종이상자에 든 성냥이 놓여 있었다.  "유엔"이라는 제품이름이 그 성냥에 붙어있었지 싶다.  우리는 재떨이에 빼갈을 조금 따른 후 성냥을 그어 불을 붙여보곤 했다.  맑은 보랏빛 불꽃이 일면, 바로 이거야 하며 낄낄거리고, 그 불붙는 맛을 식도로 느꼈다.  혹시 불이 붙지 않으면 "짱꿰" 아저씨에게 물은 탄게 분명하다고 불평을 하기도 했다.  물론 동해고량주에는 불이 붙지 않았다.  주정도가 높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탕수육이나 팔보채는 아주 멀리 느껴져 아예 생각하지도 않던 요리였고, 어쩌다 서비스로 제공하는 짬뽕 국물이 있으면 이게 빼갈과 찰떡궁합이 아닌가 하며 또 낄낄거렸다.  중국의 문이 열리기 훨씬 전의 일이니 좋은 품질의 백주는 타이완에서 오는 "진먼(金門)" 고량주였다.  지금도 내로랄 수 있는 좋은 술이지만 그 때는 정말 더할 수 없이 기쁘게 하는 술이었다.  흰딱지도 좋았지만 어쩌다 금색 딱지가 붙은 금문고량주가 손에 들어오면 가까운 친구들과 어울려 무리를 해서라도 부추잡채를 시켰다.

 

중국이 열리고 나서 얼마동안은 꿰이쩌우(貴州)의 특산이 "마오타이(茅台)"뿐인 줄 알았다.  물론 좋은 술이고 그래서 쩌우언라이(周恩來)가 키신저를 접대하면서 그 술을 썼겠지만, 중국의 문이 열리면 열릴수록 좋은 술이 속속 알려졌다.  후난(湖南)성의 "지어우꿰이(酒鬼)"나 쓰촨(四川)성의 "우울량예(五粮液)", "수에이징팡(水井坊)", 산시(山西)성의 "펀지어우(汾酒)" 등 좋은 술이 너무도 많다.  이런 소위 명품을 제외하고도 "쿵푸쟈지어우(孔府家酒)"나 "징지어우(京酒)"도 더할 수 없이 즐거운 맛을 지녔다.  최근에는 생산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가짜가 많다고 하고, 실제로 정품이 아닌 듯한 제품을 마신 경험도 많이 있다.  정품이 아니라도 맛이 있다는 게 재미있는 사실이다.  정품을 마시고 싶으면 값이 조금 더 싼 쪽으로 톈진(天津)고량주나 옌타이(煙台)고량주로 가면 된다.  값이야 어쨌든 훌륭한 백주이기 때문이다.  하긴 값도 매기기 나름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지금은 천정부지로 값이 올라 명품으로 간주되는 "분주"에 관해 재미있는 경험이 있었다.  포틀랜드 다운타운에 "Mandarin Cove"라는 야릇한 이름의 중국식당이 있는데, 오향족발이 그럴 듯했다.  그걸 좀 사다 집에서 먹겠다는 생각에 들려 음식을 주문한 후 마침 주방에서 걸어나온 주방장에게 너희들은 일과 후에 어떤 술을 마시는지 그 술 한 번 맛을 보자 했다.  그랬더니 가지고 나온 게 바로 "분주"였다.  독한 술이라 메뉴에 올리고 팔지 않았고 실제로 자기들이 마시려고 준비해 둔 게 분명했다.  그래서 값을 얼마로 계산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별 생각이 없었다.  한 병 팔라고 했더니 사온 값에 준다고 하면서 요구한 값이 진로소주 한 병 값이었다.  말하자면 횡재를 한 셈이었다.  그렇다고 그게 꼭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 때 들인 입맛이 그 술이 명품이 되어버린 지금에도 그대로 있어 주머니를 털게 한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이기 때문이다.

 

콜라병의 반에 반 크기도 되지 않는 제품이 밀려 들어와 친숙해진 "얼꾸어터우(二鍋頭)"도 만만치 않은 술이다.  빨간 별이 하나 그려져 있는 "훙씽(紅星)" 이과두가 가장 흔히 보이는 제품인데 정련되지 않은 독한 맛이 인상적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과두"라는 이름은 증류과정을 반영한 말로 낮은 품질의 술이라는 말이 전혀 아니다.  "홍성이과두주"가 값싼 술일 따름이지, 명품의 맛을 품은 이과두주도 많이 있다.

 

중국을 다니면서 백주를 마시게 될 때 조심할 일이 있다.  중국사람들은 식사의 첫 머리에 초대한 손님에게 "훼이허지어우마(會喝酒嗎)?", 즉 "약주 하시지요?" 하고 물어 확인을 거친다.  이 때 꼭  "훼이뎨얼(會點兒)", 즉 "조금 합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  어린시절 중국집 이층에서 몰래 빼갈을 시켜 먹던 추억에서 "잘 먹는다", "좋아한다"고 대답했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양의 백주를 삼키게 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게 무서워 손을 내저으며 마실줄 모른다고 대답하는 것은 물론 방법이 아니다.  정말로 권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식도를 타고 내리는 뜨거운 기분을 포기하고 지나칠 수야 있겠는가.

 

(20114)

 

'중국 음식 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조(元祖) 북경오리구이"  (0) 2011.06.28
"떠우푸깐(豆腐乾)"  (0) 2011.06.18
"신선놀음과 죽(粥)"  (0) 2011.04.01
"썩어도 준치"?  (0) 2011.03.25
"차예딴(茶葉蛋)"  (0) 2011.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