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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 박씨, "봄을 보냅니다"

竹西朴氏 送春 春光又作隔年期,送別那堪落日時。 箇裏盈虛原有定,暗中來去竟誰知。 蝶猶餘戀飛還逐,鸎欲相留語故遲。 何處再憑消息好,早梅先發雪中枝。 죽서 박씨 "봄을 보냅니다" 봄의 풍광이 또 한 해를 기다리자고 기약합니다 작별하고 보내려는데 어찌 해 떨어지는 저녁을 참을 수 있나요 하나하나 속이 차고 비는 건 원래 정해져 있지만 어둠 가운데 오고 가는 걸 끝내 누가 알까요 나비도 할 사랑이 남은 듯 서로 따르며 날고 꾀꼬리도 붙들고 싶은지 더딘 말로 이야기 합니다 어디에 다시 기대어 좋은 소식을 기다릴까요 이른 매화 먼저 피는 것은 눈 속의 나뭇가지 (반빈 역) Bak Jukseo "Farewell to Spring" Scenes of spring present again The promise of another ..

"자랑질과 자조: 소식蘇軾과 김정희金正喜"

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13) "자랑질과 자조: 소식(蘇軾, 1037-1101)과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전공으로 시를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강의해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인문학 교양강좌인데, 그런 요청은 가능하면 받아들입니다. 뭐 꼭 좋은 일을 하자는 뜻에서는 아닙니다. 많은 노력을 들여 쓴 글이 대부분 전공하는 몇몇 사람과 나누어 읽으면 그만이니 조금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건 아닌가 자문합니다. 특히 가끔 귀국했을 때 그런 부탁이 있으면 더욱 기꺼이 받아 들입니다. 대개 거절하기 어려운 지인의 부탁으로 하는 것이니 강의가 끝나면 한 잔 하고 이야기도 듣고 할 수 있어..

죽서 박씨, "다시 마음을 스스로 달랩니다"

竹西朴氏 又(自遣) 平堤一望杳無涯,黃鳥聲中日轉佳。 翠滴空潭楊柳色,紅迷小塢海棠花。 山從別境神常往,春比離人悵更加。 性拙因成踈懶癖,多慙引篆不如蝸。 죽서 박씨 "다시 마음을 스스로 달랩니다" 평평한 강 둑을 바라보니 아득해 끝이 없고 꾀꼬리 소리 속에 해가 편안해 집니다 텅 빈 연못에 듣는 버드나무 푸른 색; 작은 언덕을 덮는 해당화 붉은 꽃 산에서는 다른 세상을 쫓아 정신이 움직여 가고; 봄에는 떠나간 사람과 나란히 슬픔이 깊어 갑니다 품성이 못나다 보니 게으름이 버릇이 되어 글 쓰는 게 달팽이보다 느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반빈 역) Bak Jukseo "Again, Cheering Up Myself" I look out at the leveled river dikes That stretch endlessl..

죽서 박씨, "마음을 스스로 달랩니다"

竹西朴氏 自遣 瀟灑茅廬只數間,柱筇庭畔碧苔斑。 過雨猶餘芳草路,斜陽最在落花山。 鎮日看書全和睡,三春養病却成閒。 濃陰四合疎簾外,百囀流鶯去復還。 죽서 박씨 "마음을 스스로 달랩니다" 겨우 몇 칸의 처량한 초가집 지팡이 짚고 선 뜨락 가장자리엔 푸른 이끼가 끼었습니다 향긋한 풀숲 길에는 지나가는 비가 아직 남았고 꽃잎 지는 산 위로 해가 기울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책을 읽다가 졸고 졸다가 다시 읽으니 봄철 석 달 병을 다스리며 오히려 한가합니다 성긴 주렴 밖은 사방이 모두 짙은 나무 그늘 꾀꼬리 꾀꼴꾀꼴 지저귀며 오고 갑니다 (반빈 역) Bak Jukseo "Cheering Up Myself" A desolate thatched cottage Of only a few poles— The edges of the ya..

"장두환 형님을 위해 웁니다"

半賓 哭張斗煥兄 名山遍地勢崢嶸, 相問與誰踏縱橫。 棄世哀歌聲軋軋, 嗚呼別曲淚盈盈。 咖啡一盞車能換, 濁酒三樽日莫平。 自此周遊無革履, 更憂天柱缺人擎。 (注:詩用今典數則,例如五句七句,各別指為一盞咖啡跨數百里之事,及常購登山鞋供親朋以為樂之事。) 반빈 "장두환 형님을 위해 웁니다" 여기저기 좋은 산 험준하게 서 있습니다 여쭙습니다. 이제 누구와 종횡으로 누비고 다닙니까 세상 버리심을 슬퍼하는 노래 그 소리 삐걱거리고; 애달피 탄식하는 이별곡은 눈물로 그렁그렁합니다 커피 한 잔을 위해 차를 갈아 타셨고; 탁한 술 세 독이 있으니 날이 밝지 말라 하셨습니다 지금부터는 여기저기를 다닐 가죽신이 없겠습니다 더 큰 걱정은 하늘 받칠 기둥이 없어진 것입니다 (주: 두환형님 생전의 이야기가 몇 포함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다섯째와 ..

시선(詩選) 2021.11.05

죽서 박씨, "속절없이 읊조립니다"

竹西朴氏 謾吟 悠悠世事日如空,寂寞乾坤豈有終。 染得烟光芳草綠,蒸成霞氣晚花紅。 蘇回舊病相逢後,惹起新愁暫別中。 情緒萬端如可織,遍教衣被亦難窮。 죽서 박씨 "속절없이 읊조립니다" 세상 일 많기도 한데 내 하루는 허전합니다 하늘과 땅이 적막하다 해도 어찌 끝남이 있겠습니까 안개 빛을 물들이는 향기로운 푸른 풀; 노을에 피어 오르는 저녁녘의 붉은 꽃 오랜 병에서 회복되어 다시 만난 후 새 시름이 생겨 잠시 헤어져 있는 중이니 만 갈래 마음을 베틀에 걸 수 있다면 옷과 이불을 모두 짠다고 해도 다 쓸 수는 없겠습니다 (반빈 역) Buk Jukseo "Chanting Undirectedly" There are so many things in this world But my days feel empty. Heaven an..

죽서 박씨, “병중에”

竹西朴氏 病中 綠樹風微過雨寒,夕陽西下曲闌干。 酒曾飲月痕猶在,詩亦傷春意未團。 枕上長疑懷夢草,爐中那得鍊形丹。 垂垂簾幕無人到,坐久香煙一穗殘。 (「過雨」,警修堂藏本作「過兩」,據手抄本改之。) 죽서 박씨 "병중에" 푸른 나무의 산들바람 비 지나며 차가워졌고 석양은 서쪽 굽은 난간 뒤로 떨어집니다 술과 함께 달을 마시던 흔적이 여전히 남은 듯하고; 시로 가는 봄을 애달파 하려는데 마음이 아직 모이지 않습니다 베개 위에서 님의 꿈 꾸게 하는 풀이 있으랴 오래 의심했지요 난로 속에서 영단묘약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나요 주렴을 늘 내려놓으니 아무도 오지 않고 향 연기 속에 오래 앉아 있으니 등잔 끈만 남았습니다 (반빈 역) Bak Jukseo "Being Sick" A gentle breeze in the green t..

"두보 이야기 (1): 시인의 습유(拾遺)라는 이름표"

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12) "두보(杜甫, 712-770) 이야기 (1): 시인의 습유(拾遺)라는 이름표" 중국의 고전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공부해야하는 작가나 시인이 여러 가지 호칭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같은 사람을 여러가지 이름으로 알아야 하니 좀 성가시기도 합니다. 그냥 두어 가지 호칭을 더 공부해야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심한 경우는 열 개를 훌쩍 넘어 스무 가지 이름표를 달았던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호칭 하나하나의 의미나 그러한 호칭이 생기게 된 연유를 공부하다 보면 재미있는 걸 많이 알게 되는 좋은 점도 있습니다. 중국어로 이름을 명자(名字)라고 하는데 이는 명(名)도 있고 자(字)도 있어서 그 두 가지가 합쳐져 만들어진 명사입니다. 명보다 자..

죽서 박씨, "마음을 풀어냅니다"

竹西朴氏 遣懷 碧樹和烟鎖遠岑,微風時拂倚窓琴。 一年花事酒中盡,半日雨聲樓外深。 病久幾多違踐約,詩成還欲待知音。 枕邊莫使來啼鳥,驚罷西鄰夢裏尋。 죽서 박씨 "마음을 풀어냅니다" 푸른 나무와 안개 먼 산 언덕을 에워싸고 산들바람 때때로 창가에 세워둔 거문고를 스칩니다 한 해의 꽃놀이 술 속에서 스러지고 반나절의 빗소리 누각 밖에서 짙어집니다 병이 오래가 몇 번이고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시가 완성되니 또 욕심스럽게 알아줄 사람을 기다립니다 베갯머리에 새들이 와 짖지 않게 해 주세요 님을 찾는 꿈속에서 놀라 깨겠습니다 (반빈 역) Bak Jukseo "Casting Thoughts in My Bosom" Green trees and mist Shroud distant mountain hills, And a gentl..

"장애물에 담긴 기회 (3): 율시(律詩)의 경우"

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11) "장애물에 담긴 기회 (3): 율시(律詩)의 경우" 표현의 공간을 극히 제한하는 장애물을 절제되고 함축적인 시적 언어의 사용으로 극복하여 여운을 길게 남기는 것이 절구의 짓기와 읽기에서 중요한 미학적 원칙이라고 앞에 쓴 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중국이라는 특정한 문화적 특성에 근거해 생긴 원칙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공간적 제한을 극복하는 방법은 다른 문학에서도 비슷합니다. 일본의 마츠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의 하이쿠(俳句) 한 수를 예로 보시지요. 古池や ふるいけや 蛙飛びこむ かわずとびこむ 水の音 みずのおと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들며 나는 물 소리 열일곱 음절 뿐인 짧은 형식의 시이지만, 거기 담긴 정취가 오래 기억에 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