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자랑질과 자조: 소식蘇軾과 김정희金正喜"

반빈(半賓) 2021. 11. 13. 13:56

반빈(半賓)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13)

 

"자랑질과 자조: 소식(蘇軾, 1037-1101) 김정희(金正喜, 1786-1856)"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전공으로 시를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강의해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인문학 교양강좌인데, 그런 요청은 가능하면 받아들입니다.   좋은 일을 하자는 뜻에서는 아닙니다. 많은 노력을 들여 글이 대부분 전공하는 몇몇 사람과 나누어 읽으면 그만이니 조금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 부탁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아닌가 자문합니다. 특히 가끔 귀국했을 그런 부탁이 있으면 더욱 기꺼이 받아 들입니다. 대개 거절하기 어려운 지인의 부탁으로 하는 것이니 강의가 끝나면 하고 이야기도 듣고 있어 즐겁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강의는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있겠습니다. 전공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채울 곳이 많은 청중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어렵겠다고 생각할 있지만, 사실 점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적당히 채우면 되니까요. 그리고 억지로 와서 그런 강의를 듣는 사람은 별로 없으니, 채우려 하면 쉽게 채워집니다.  그런 강의를 어렵게 만드는 제일 이상한 이유는 듣는 사람들이 쉽게 만족한다는 사실입니다.  시의 행에서 교감할 있을 같은 생각을 만나거나, 강의의 부분이 마음에 들면 거기에 사로잡히는 것이 보통입니다. 전체적으로 무얼 말하려는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도 만족한다는 느낌이니 강의하는 사람은 맥이 풀리기 일쑤입니다.  풀어보려는 작품을 끝까지 읽는 데도 관심이 없어지고, 심지어 강의를 끝까지 들으려는 생각도 급격히 줄어듭니다. 인문학에 관심있으면 지양해야 태도입니다.  여기 소개하는 소동파의 시를 재료로 진행하려고 했던 강의도 그런유로 옆길로 새고 말았습니다.  우선 읽어 보시지요. 어떤 구절이 그런 치명적인 만족을 주었을까 상상해 보시는 것도 재미있을 같네요.

 

蘇軾

 

〈石蒼舒醉墨堂〉

 

人生識字憂患始,姓名粗記可以休。

何用草書誇神速,開卷惝怳令人愁。

我嘗好之每自笑,君有此病何能療。

自言其中有至樂,適意不異逍遙遊。

近者作堂名醉墨,如飲美酒消百憂。

乃知柳子語不妄,病嗜土炭如珍羞。

君於此藝亦云至,對牆敗筆如山邱。

興來一揮百紙盡,駿馬倏忽踏九州。

我書意造本無法,點畫信手煩推求。

胡為議論獨見假,隻字片紙皆藏收。

不減鍾張君自足,下方羅趙我亦優。

不須臨池更苦學,完取絹素充衾裯。

 

소동파

 

"석창서의 취묵당"

 

사람의 삶은 글자를 알면서부터

    온갖 우환이 시작됩니다

이름 석자 적당히 알면 그만이니

    더 배우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무얼 하려고 초서를

    번개처럼 빨리 쓴다는 자랑해

사람들이 글씨 두루마리를 펼치면서

    놀라고 근심하게 합니까            4

나도 그걸 좋아했다고

    스스로를 비웃는데

당신도 병이 있으니

    어찌 고칠 있겠습니까

당신 스스로 안에

    "지극한 즐거움" 있다고 말하니

당신이 느끼는 쾌적함이

    "내키는 대로 걷기" 다름 없지요        8

최근에 집을 지어

    "취한 "이라고 당호를 붙이고

가지 근심을 없애는

    좋은 술과 비슷하다고 하셨다지요

그래서 알게 되었습니다

    당나라 유종원의 말이 틀리지 않았어요

탐닉이 병이 되면

    흙과 숯도 귀하게 여긴다고 했답니다        12

예술에 있어서 당신은

    경지에 다다른 것이라 하겠습니다

닳아 못쓰게 붓이

    담장 옆에 산처럼 쌓였다고 들었습니다

흥취가 일어나면 휘둘러

    종이 폭을 쓰신다니

늠름한 말이 깜짝할 사이에

    전국을 밟고 다니는 것과 같겠습니다        16

글씨는 마음 내키는 대로 쓰는 것이라

    처음부터 무슨 법식도 없었습니다

손길 가는 대로 점을 찍고 획을 그었을

    무얼 애써 구하는 것은 귀찮았습니다

나를 그렇게 훌륭하다고 하는지

    도대체 모를 일입니다

글씨 적힌 종이 조각도

    왜 모두 가져다 소장하지요            20

종요나 장지에 못지 않으니

    만족하신다 들었습니다

아래로 눈을 돌려 나휘나 조습보다는

    내가 낫다고 하지요

연못 옆에서

    애써 공부하실 없습니다

깨끗한 비단은 두었다가

    이부자리 만드는데 쓰라고 하세요            24

 

:

1-2 : 사마천司馬遷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紀" 이야기를 사용했습니다. 공부와 검술 연마를 게을리한다는 삼촌 항량項梁의 비판에 대해 항우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합니다. "글은 이름과 성을 알면 족합니다. 칼은 한사람의 적을 상대할 뿐이니 배울 없습니다.  어떻게 명의 적을 상대할지를 배우겠습니다. 書足以記名姓而已,劍一人敵,不足學,學萬人敵。"

 

7-8: 행에 쓰인 "지극한 즐거움" "내키는 대로 걷기" "지락至樂"  "소요유逍遙遊" 직역한 것입니다. 직역의 의미로 읽어도 시의 뜻은 전달되지만 개의 명사가 장자莊子의 첫째와 여덟째 편의 제목이라는 사실도 참고할 만합니다.

 

11-2 : 연은 당나라의 시인이며 문장가인 유종원柳宗元이 최암崔에게 편지를 전고로 합니다.   편지에서 유종원은 글을 쓰려는 것은 탐닉의 병과 같고, 심해지면 마음과 몸의 병을 치료하게 위해 흙과 숯을 먹는 정도에 이른다 했습니다.

 

13-4 : 행은 당나라 때의 스님이면서 초소로 알려진 회소懷素의 이야기를 씁니다.  그는 닳아 못쓰게 붓을 모아 장례를 치렀고, 그렇게 해서 생긴 언덕을 필총筆塚, "붓의 무덤"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21-2 : 행은 명필로 알려진 서예가들이 스스로를 평가하는 이야기를 사용합니다. 왕희지王羲之는 자신의 글씨를 평하면서 자신의 글씨가 종유鍾繇나 장지張芝의 글씨에 비견할 만하다고 했다고 전합니다. 장지와 동시대 사람인 나휘羅暉와 조습趙襲은 글씨가 좋지 않았을 아니라 스스로의 글씨에 대해 높게 평가한 것으로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장지는 "아래로 내려다 보면 나휘와 조습에 비하면 여유가 있다下方羅趙有餘" 말했다고 전합니다.

 

23-4 : 행의 후한서後漢書에 전하는 장지의 이야기를 이용합니다. 장지가 글씨를 익히던 곳의 연못은 붓을 씻은 물로 검게 되었고, 집안의 비단은 그가 글씨를 다음에야 가져다 이불을 만들 있었다고 합니다.

 

읽으시는 김에 영어번역으로도 한번 노시기 바랍니다.

 

Su Shi (1037-1011)

 

“Shi Cangshu’s Hall of Drunken Ink”    

 

Calamities in life begin

    With learning how to read and write.

Knowing roughly how to write

    One’s own name should be enough.

What is the point of bragging

    About the speed of cursive writing?

That will just dazzle and torment

    Those who open the scroll.            4

I did like to do that myself as well,

    And I always laugh at myself about that.

That malady of yours

    Is serious and can never be cured.

You say you find

    Right there the “greatest pleasure”;

The comforts you enjoy

    Seem no different from “roaming freely.”    8

You’ve recently built a hall

    And named it “Drunken Ink,”

Dispelling hundred worries

    Like drinking fine wine.

So I find

    What Master Liu said was not fallacious:

Indulgence could make

    Dirt and coal palatable.            12

In this art, you have reached

    The highest level of mastery,

Having made a mound

    Of worn-out brush pens by the fence.

When stimulated, you write

    A Hundred sheets in a single move,

Like a steed galloping

    All through the nine provinces in a flash.    16

I just do what pleases me,

    Following no particular methods,

Letting the hand do the dots and strokes,

    And pursuing nothing particular.

I wonder why

    I get such flattering reviews,

And why even scraps

    With a few words become collectables.        20

Not being inferior to Zhong and Zhang

    Shall make you satisfied;

I too am better when matched up

    Downward with Luo and Zhao.

There is no need

    To practice by the pond,

Let the clean silk

    Be used for beddings.                24

 

Note:

Lines #1-2: This line alludes to the story of Xiang Yu 項羽 recorded in the “Basic Annals of Xiang Yu” in Sima Qian’s Shiji. Responding to the reproof from his uncle, Xiang Liang 項梁, that he was slow in learning reading and swordsmanship, Xiang Yu said, “Writing would suffice if I can write my name. Swordsmanship is for fighting a single opponent, and thus not worth learning. I will learn how to fight ten-thousand opponents.” 書足以記名姓而已,劍一人敵,不足學,學萬人敵。

 

Lines 7-8: Literal meaning of words in this couplet makes sense, and there seems no reason to look for an allusion, but educated readers will find that the ending of the two matching lines, “greatest pleasure 至樂” and “roaming freely 逍遙遊,” are the titles of two chapters in the Zhuangzi.

 

Lines #11-2: This couplet alludes to a letter Liu Zongyuan 柳宗元, 773-819, a master of poetry and prose in the Tang times, wrote to Cui An 崔黯. Liu said in the letter that the intent to learn to write well is an obsessive disease, the seriousness of which is tantamount to eating dirt and coal to treat the illness in mind and body.

 

Lines #13-4: This line alludes to a Tang monk, Huaisu 懷素, who was famous for the art of cursive style calligraphy. A story about him has it that he performed a burial for worn-out brushes, and called the mound bizhong 筆塚, “Tomb for Brushes.”

 

Lines 21-2: These two lines allude to stories of self-evaluation by well-known calligraphers. Wang Xizhi 王羲之, 303-361, said, commenting on his own work, that his achievements were comparable to or even slightly better than that of Zhong You 鍾繇 and Zhang Zhi 張芝. Luo Hui 羅暉 and Zhao Xi 趙襲, contemporaries of Zhang Zhi, were bad calligraphers whose misguided high praise of their own work made people feel embarrassed. Zhang Zhi said that he had comfortable room when compared downward with Luo and Zhao. 下方羅趙有餘.

 

Lines 23-4: These two lines use the story of Zhang Zhi recorded in the Hou Hanshu 後漢書, the History of the Later Han. The pond before which he was practicing turned black because he washed the brush all the time, and all silk cloths were used for making beddings and clothes only after he used them for practicing calligraphy.

 

문제는 구절이었습니다.  작품을 읽기 시작했는데 사람으로부터 공감한다는 의미인 듯한 탄식이 터졌습니다. 판소리에 넣는 추임새 같았는데, 계속 들어보겠다는 뜻이라고 하기 보다, 나머지 스물 행은 눈에도 귀에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실 글공부를 시작하면서 인생의 우환이 시작된다는 생각은 쉽게 동의하고 공감할 있는 주장은 아닙니다.  상당히 공부를 했다는 전제하에나 있는 소리인데 스스로 소동파처럼 공부를 상당히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같습니다.

 

또한 공감을 한다고 해도 공감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로 다를 있습니다. 소동파는 그런 소리를 했는지, 강사인 나는 소동파의 작품으로 강의를 하기로 했는지를 관심을 가지고 들어보면 더욱 재미있을 텐데, 행에서 터지는 탄식은 그런 모두 삼켜 버렸습니다. 배우기만 어렵고, 사실 배워 보니 노력에 비해 효용이 없다는 뜻일 수도 있겠습니다. 반대쪽의 끝에는 배우면 배울수록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끝이 없는 과정이니 아예 시작하지 않았으면 속은 편했겠다는 뜻일 수도 있겠습니다. 꼭지점 사이에 많은 가능성의 조합이 있을 테니 찬찬히 읽어보고 들어보면 생각할 거리, 거리를 많이 찾을 있었을 겁니다.

 

소동파의 시를 읽으면서 이미 느끼신 분도 많이 있겠지만, 행의 바탕에는 자랑질이 있고, 자조가 있습니다. 어쩌면 가지는 소위 지식인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의 특성이기도 합니다. 자랑할 없고, 스스로를 비웃을 여유가 없으면 지식인으로 사는 맛이 자리를 잃을 같습니다. 그런데 자랑질과 자조는 서로 얽혀 있습니다. 겉으로는 자조인데, 바탕은 자랑질인 경우도 있고, 자랑질을 통해 하는 자조도 있습니다. 시에서는 취묵당을 지어 글씨의 맛과 술의 흥취를 아울렀다는 석창서까지 개입되면서 더욱 복잡해집니다.  추켜세우는 듯하다가 비웃고, 비웃는 듯하다가 공감한다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많이 써서 닳아버린 붓이 산처럼 쌓였고, 자리에서 글씨 폭을 쓰는 노력을 치하하고, 그래서 글씨의 힘이 달리는 늠름한 말과 같다고 칭찬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부분에서 자신의 글씨는 법도도 없이 내키는 대로 써대는 것이라 고백하는 듯하면서도, 그래도 사람들이 글씨를 소장하려고 애쓴다고 함으로써, 자랑질로 기울어 갑니다. 석창서의 노력도 자신이 멋대로 휘갈기는 글씨 앞에서 빛을 잃는다는 뜻도 되니, 자조에 석창서라는 희생양을 섞어 자랑질을 하는 겁니다.

 

시를 읽는 석창서는 자신을 희생양으로 하는 듯한 소동파의 자랑질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궁금하시지 않나요?  바보가 아니니 추켜세우는 듯한 부분이 사실은 희생제물로 바치기 위한 준비작업이라는 모를 리가 없었겠지요. 붓을 씻어 까맣게 변한 연못, 비단만 있으면 글씨를 , 깨끗한 이부자리는 채도 없을 정도라는 마무리를 보면 분명히 비웃음을 담았는데, 소동파의 그런 자랑질을 석창서가 어떻게 삼켰을지 궁금할 밖에 없을 같습니다.   대답은 동류의식의 확인입니다. 자랑질과 자조로 가득하지만, 그건 알아들을 있는 사람들만 알아듣는다는 어찌 말하면 계급 전체의 자랑질이기도 합니다. 작품에 걸핏하면 글줄이나 읽고 서예의 역사에 대해 아는 사람들만 있는 전고를 많이 것도 그런 면모의 하나입니다. 소동파가 아무리 석창서를 희생시켜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다고 해도, 석창서는 그로 인해 소동파와 같은 무리의 일원이 되는 것이겠습니다. 소동파의 작품으로 돌아가, 어느 부분이 자랑질이고, 어느 부분이 자조인지, 어느 부분에 둘이 함께 버무려져 있는지 찾아보시면 재미있을 같습니다. 거기에 석창서에 대한 평가까지 함께 끌어내 놀아 보시면 어떨까요?

 

소동파가 11세기의 송나라와는 너무나 많이 떨어진 18-9세기 조선에 김정희도 소동파와 그리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실 김정희는 소동파를 마음속으로 매우 존경했습니다.  김정희는 북경에서 만나 평생을 마음으로 존경한 옹방강(翁方綱, 1733-1818) 영향으로 소동파를 더욱 흠모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동파가 삿갓을 쓰고 나막신을 쓰고 있는 모습을 그린 동파입극도(東坡笠屐圖) 형상이 김정희의 제자 허소치(許小癡, 1809-1892) 그린 김정희의 초상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을 보아도 김정희가 시공을 넘어 소동파와 공명했다는 것을 있습니다. 사실 소동파와 김정희는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학문과 문학의 성취가 남달랐다는 것도 그렇고, 서예로 이름을 떨쳤다는 것도 비슷합니다. 게다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유배생활로 보냈다는 것도 비슷합니다. 어쩌면 김정희가 자랑질과 자조로 가득한 시를 썼다는 것이 이상할 없습니다.

 

글씨를 공부한다는 후학을 위해 김정희의 수는 앞에 소개한 소동파의 작품을 생각하며 읽으면 맛이 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정희의 자랑질, 자조, 그리고 동류의식의 확인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

 

〈聞某從市中得拙書流落者,購藏之。不覺噴飯如蜂走,寫以志媿,略敍書道,又以勉之。〉

 

吾書拙且陋,廿載迷路歧。

未解元和脚,寧識蘭亭皮。

或有人强要,拈毫先忸怩。

不足博一芋,何緣贐市兒。    7-8

君書妙傾城,鏡裏舞春姿。

獨詣騁異才,自求有餘師。

多怪嗜痂癖,仍成愛鶩癡。

芝箭歸並蓄,豨苓諒不遺。    15-6

自檢輒自惑,直欲詰君爲。

然吾不善書,書道頗聞之。

溯源該三蒼,橅眞學衆碑。

平直均密間,煥乎字外奇。    23-4

會稽千年跡,尙有快雪時。

旁探樂毅海,遙證落水彝。

而歐怪褚妍,攝之一牟尼。

山海叩崇深,鸞鳳恣鞭笞。    31-2

紛紛屢飜本,捫籥堪一噫。

古肥與今瘦,倒行又逆施。

扶起大雅輪,特竪勿字旗。

行當張吾軍,以此爲質劑。    39-40

 

"듣기에 아무개가 흘러흘러 시장바닥에 까지 못난 글씨를 사서 소장했다고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웃다가 먹던 밥알이 벌떼처럼 터져 나왔다. 여기 이야기를 써서 부끄러움을 기록하고, 서도에 대해 대략 서술해 열심히 하기를 권면한다."

 

글씨는 투박하고 서툴어서

이십 동안 여러 갈래의 길을 헤매고 있네.

당나라 원화 년간의 기초를 아직 깨치지 못했으면서

왕희지 난정서를 껍데기라도 알고자 하지            4

가끔 억지로라도 써달라는 사람이 있지만

붓도 잡기 전에 먼저 수줍어요

글씨로는 토란 톨과도 바꿀 없을 텐데

어떤 연유로 장사꾼의 손에 들어 갔는지            8

그대의 글씨는 능란해서 장안이 떠들썩하니

거울 속에서 춤추는 봄날의 맵시 같은 모습이지.

혼자서 남다른 재주를 이루었으니

스스로의 스승이 되고 남을 거야                12

이상도 . 부스럼에 앉은 딱지 같은 탐내고

볼품없는 오리를 좋아하게 것인지

신령한 약재는 보관하고 있으면서

흔한 버섯 따위도 남겨 두지 못하네            16

혼자서만 점검하다 보면 미혹에 빠질 있을 테니

솔직하게 그대에게 묻지

내가 글씨는 쓰지 못하지만

글씨 쓰는 길에 대해서는 상당히 들었어            20

근원을 찾아 삼창의 글씨를 익히고

참된 글씨를 느끼기 위해 비석을 많이 공부해

평평하고 곧고 고르게 빽빽한 중에

글씨 밖으로 기이한 기운이 환히 비칠 거야            24

회계산의 자취에

아직 왕희지의 쾌설시가 남아 있어

옆으로는 악의론의 바다를 탐구하고

멀리는 낙수의 청동기도 찾아 공부해야지            28

그리하여 구양순의 괴이함, 저수량의 맵시를

묶어 내면 석가모니 염주가 되네

산과 바다를 두드려 높이와 깊이를 느끼면

봉황새를 마음대로 부릴 있겠지            32

여러 다시 목판본을 이리저리

사람 피리 만지듯 본다면 어찌 참을까

두툼한 글씨와 깡마른 지금의 글씨를

뒤집어 놓고도 보고, 거슬러 올라가 보기도 해야지        36

품격을 바퀴를 일으키고 받쳐 들어

"이렇게 하지 마세요"라는 깃발을 세우게

그렇게 나아가면 우리 군대가 펼쳐지네

이걸 지킬 약속으로 삼아야 하네            40

 

“I heard that so-and-so ran into my clumsy calligraphic work stranded at the market and purchased to own it.  Before I knew it, I burst into laughter spewing out the food in my mouth.  I write this to record a sense of humility, to brief on the way of calligraphy, and as an exhortation.”

 

My writing remains clumsy and crude,

Being lost on forked paths for two decades.

Having never understood the base stroke of the Yuanhe period;

I’d rather still scratch the surface of Orchid Pavilion style.    4

Now and then when some obliged me to write,

I was bashful to grab the brush.

Not even good enough to swap for a taro,

How did it fall in the hands of a vendor?            8

Your writing is refined that it could push a city into commotion,

Like the posture in the mirror dancing out the vernal charm.

You alone attained the outstanding talent to dash off,

Seeking in yourself the master to follow.            12

How bizarre is the eerie craze for scabs,

Still more the idiocy of chasing unruly ducks.

Trametes and gastrodia should be stashed away,

But you don’t even set aside any poria mushrooms.        16

As self-scrutiny alone leads you only to delusion,

I want to debrief you right away.

I am mindful that I am no good in writing,

But I have heard quite a bit about the way of writing.        20

We must trace back to the “Three Texts” on standard seal script,

And copy the truest form of stele style by studying many.

Amongst strokes, level, straight up, evenly spread, and dense,

Are glowing wonders beyond written characters.        24

Added to the marks of Guiji from a thousand years ago,

Are the “Timely Ceasing of Snow” leaflet,

Seek to the side the letters “ocean” in “On Yue Yi,”

And remotely verify the “Falling Water” leaflets of Yizhai.    28

Anomaly of Ouyang and beauty of Chu

Shall all be brought into a string of prayer beads.

Mountains and seas, tap them for their heights and depths;

Strokes of phoenix, spare them of whipping and caning.        32

Busying yourself with woodblocks recarved repeatedly,

Patting them like the blind feeling a pipe? Oh, how unbearable!

Encountering the stout of the past and the lean of the present,

You should move them backward and carry them upstream, too.    36

Prop up the wheel of great elegance,

And make sure to set up banners bearing “Don’t.”

These practices will extend the army on our side.

Take these as the covenant.                    40

 

Notes:

 

L-13: This line uses a story of Liu Yong (劉邕) of the Liu-Song Dynasty, known to be fond of eating scabs.  “He liked to eat scabs from sores, and thought that they tasted like abalone.  Once he went to see Meng Lingxiu, who suffered from a festering sore.  Scabs from it fell to the bed, and Yong picked and ate them.  Ling Xiu was greatly frightened. 邕所至嗜食瘡痂,以為味似鰒魚。嘗詣孟靈休,靈休先患灸瘡,瘡痂落床上,因取食之。靈休大驚。” See the “Biography of Liu Muzhi 劉穆之,” in the History of (Liu-)Song 宋書.

 

L-14: This line alludes to the story of Yu Yi (庾翼, 305-345), a well-known calligrapher, but to his frustration a contemporary of Wang Xizhi  (王羲之, 303-361). Seeing that people dismissed his writing and praised Wang, he said that preferring “wild duck 野鶩” to “chicken at home 家雞” is valuing the new at the cost of the familiar.

 

L-21: The “Three-Cang 三蒼” translated here as “three texts on standard seal script,” refer to “Cangjie 倉頡,” by Li Si (李斯, 284-208 BCE), “Yuanli 爰歷” by Zhao Gao (趙高, 258?-207 BCE), and “Boxue 博學” by Huwu Jing (胡毋敬, nd.).  These are all texts that discuss the standardization of the “lesser seal scripts 小篆” after the unification of China by the Qin in 221 BC.  These three texts were compiled into a single text later in the Han period, and came to be known as the “Cangjie Chapters 倉頡篇.”

 

L-25:  Guiji 會稽, also read as Kuaiji, is a mountain in the Zhejiang province. This place is related to calligraphy through two things. First, Goulou Stele 岣嶁碑, also known as King Yu Stele 禹王碑. One of the rubbings of it is associated with a place near the mountain.  Second, this mountain is celebrated as the place of the “Orchid Pavilion 蘭亭” gathering in the ninth year of the Yonghe reign (353 CE).  Therefore, this line could be read as a reference to the calligraphic style of the “Preface to the Orchid Pavilion Gathering 蘭亭集序” by Wang Xizhi (王羲之, 303-361).

 

L-26: This line refers to the “Pleasant Timely Ceasing of Snow 快雪時晴” leaflet by Wang Xizhi.

 

L-27: This line refers to the “On Yue Yi 樂毅論” leaflet by Wang Xizhi, which is considered an outstanding example of regular script.

 

L-28: Yizhai is the sobriquet of Zhao Mengjian (趙孟堅, nd).  His “Falling Water Orchid Pavilion 落水蘭亭” scroll is a celebrated calligraphic work.

 

L-29: This lines alludes to the leaflets, “To Court Secretary Xue Shaopeng 寄薛郎中紹彭” by Mi Fu (米芾, 1051-1107), in which he characterizes the calligraphy of Ouyang Xun (歐陽詢, 557-641) and Chu Suiliang (褚遂良, 596-658) in terms of anomaly and beauty 歐怪褚妍.

 

L-32: Luan and feng are fabulous phoenix-like mythic birds.  The phrase, “luan-phoenix soars and feng-phoenix flies 鸞翔鳳翥,” comes from “Rhyme-prose on Floating Cloud 浮雲賦” by Lu Ji (陸機, 261-303).  Han Yu (韓愈, 768-824) used the phrase in his “Song of Stone Drum 石鼓歌” to refer to strokes of power and grace in calligraphy.

 

L-34: This line refers to an essay by Su Shi (蘇軾, 1037-1101), “Understanding the Sun 日喻,” which tells a story of a blind person trying to figure out the shape of the sun based on descriptions of it by others and on his own sensing of the objects named in the descriptions, a copper gong and a candle.

 

(2021.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