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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 박씨, "자고 일어나서"

竹西朴氏 睡起 詩不求工自苦吟,一輪晴日到天心。 高樓簾動微風度,小院烟收細柳深。 壁上已无三尺劒,書中空聽五絃琴。 繁華春色歸何處,數朵殘紅隱綠林。 죽서 박씨 "자고 일어나서" 시를 정교하게 지으려 한 게 아니라 나 자신 위해 애써 읊조릴 뿐이었는데 둥근 밝은 해가 하늘 가운데 이르렀습니다 높은 누각의 주렴을 흔들며 산들바람이 지나가고; 작은 뜰의 안개가 걷히니 가는 버들가지 색이 깊습니다 삼척검은 이미 벽에 걸려있지 않고; 오현금을 하릴없이 책 속에서 듣습니다 화려했던 봄의 색깔은 어디로인지 돌아가고 시드는 꽃 몇 송이만 푸른 수풀에 숨었습니다 주: 셋째 연에서 댓구를 이루는 삼척검과 오현금은 문자의 의미로는 길이가 석 자인 칼과 현이 다섯인 악기이지만 한나라 고조인 유방 (劉邦)이 사용했던 칼과 순 (舜)임금이 ..

"사패 팔성감주에 맞추어 대춘에게 화답합니다"

半賓 八聲甘州 --和大春 望、雨中草木閃紅黃, 說穿本浮生。 漫、西風隨起, 飄搖葉兒, 雲散開晴。 眩曜詩情探美, 想伴共吟行。 唯恐海洋隔, 愁獨如酲。 昨夜朦朧幻影, 料、誦詩剩覺, 淺夢心驚。 喚、大兄回夢, 填滿讀書聲。 客迎來、黃公爐上, 啜一唇、還一口和鳴。 拿來置、大觚大斝, 替小雲觥。 (庚子霜降立冬之間) 반빈 "사패 팔성감주에 맞추어 대춘에게 화답합니다" 보시지요, 빗속에서 풀과 나무가 빨갛고 노랗게 반짝이며 본래 떠도는 삶이라고 털어놓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늬바람이 따라 일어 나뭇잎을 흔들고 팔랑거리게 하더니 구름이 흩어지고 날이 갰습니다 눈부신 시의 느낌으로 아름다움을 쫓으며 둘이 모여 함께 읊조리고 싶네요 오직 한 가지, 우리 사이의 큰 바다가 걱정이지요 홀로 하는 이 시름, 깨지 않는 숙취 같습니다 몽롱..

시선(詩選) 2022.08.22

죽서 박씨, "운을 차례로 따라서"

竹西朴氏 次韻 數旬淹病摠違期,過雨林園綠漲池。 雖着弊衣寧有媿,欲裁佳句每生疑。 落花滿地春光暮,垂柳寒煙日色遲。 深閉書樓人不到,一庭啼鳥苦吟時。 (二句雨字,警修堂本作兩,疑誤。) 죽서 박씨 "운을 차례로 따라서" 두어 달 병에 빠져 지내다 보니 기약한 걸 모두 지키지 못했는데 지나가는 비에 숲과 뜰이 푸르고 연못에는 물이 불었습니다 해진 옷을 입었다 해도 어찌 부끄러울 일이겠습니까; 좋은 시 몇 구절을 만들어 내려니 그 때마다 의문을 갖습니다 떨어진 꽃잎이 땅을 채우면 봄의 경치는 끝물이고; 늘어진 버드나무 가지에 찬 안개가 끼니 햇빛도 느릿합니다 문 닫아 건 서재 깊이로 당신은 오지 않으니 뜰 가득 지저귀는 새처럼 애써 시를 지어야 할 시간입니다 (반빈 역) Bak Jukseo "Following the Rhym..

"대춘이 한번 다니러 오라며 지은 금루곡에 화답합니다"

半賓 〈和大春金縷曲邀訪〉 昨夕青山館, 溢書香、墨濃詩近。 夢何其短。 惜別後誠相逢少, 但覺懷中情滿。 書續出、文交未斷, 四喜大頭雍正帝, 李白來、認大唐隨亂。 催獨酌, 朦朧眼。 當將聖德重吆喚, 應君邀、三人一夥, 結吟遊伴。 夢覺間倏來倏往, 思緒忽寒忽暖。 已忍慣、欣欣謾怨, 為說書邀當臨角, 訪南國、誰請誰酒飯。 懷故友, 再開卷。 自注: 一、上片四喜、大頭春、雍正,甚至李白,皆為大春虛構小說中之人物。〈四喜大頭雍正帝〉能自成一句,可起一笑。 二、下片首句聖德,日本飛鳥時代推行改革之太子,但亦為與大春共飲之清酒品牌名也。 三、下片邀當臨角云云,説大春在近作《南國之冬》中造名為柳亨奎之人物,僅演臨時之角。 반빈 "대춘이 한번 다니러 오라며 지은 금루곡에 화답합니다" 어젯밤 청산관 흘러 넘친 책 향기, 짙어진 먹물, 거의 다 지은 시— 그런데 그 꿈은 왜..

시선(詩選) 2022.08.19

죽서 박씨, "봄 지난 후"

竹西朴氏 春後 日夕林叢挹翠華,今年詩事屬誰家。 却愁驟雨靡庭草,且惜狂風入院花。 寂寞春歸山意懶,冥濛夜入月痕賖。 水流雲散知何處,未信長天竟有涯。 (三句雨字,警修堂本作兩,疑誤。) 죽서 박씨 "봄 지난 후" 낮에나 밤에나 수풀 속에서 임금님 대하듯 푸르름 향해 두 손 모으고 올해는 시 짓는 일을 어떤 사람이 잘 할까 생각합니다 그저 별안간 내린 소나기가 뜰 안의 풀을 망쳤다고 슬퍼하거나; 또는 미친듯한 바람이 정원의 꽃 사이를 휘젓는다 아쉬워 합니다 소리없이 봄이 물러가니 산에 가려는 마음도 시들해지고; 어둑어둑 밤이 길어져 달빛의 흔적이 쌓입니다. 물이 흘러가고 구름이 흩어지는 게 어디에서 인지 알 수 있나요 긴긴 하늘에 끝이 있다는 걸 저는 믿지 않았습니다 (반빈 역) Bak Jukseo "After Spring..

"임인년 입추 첫 닷새에 서울이 물난리를 겪습니다"

半賓 〈壬寅立秋一候首爾患水難〉 暴水決河傾, 滂沱舉市驚。 漫漫人馬道, 汩汩鬼門行。 今歲安魂代, 立秋為祭晴。 寒蟬鳴痛責, 秉國籲虔誠。 (自注:漫漫讀平聲,水大貌,參米元章「漫漫不辨水天行」句。) 반빈 "임인년 입추 첫 닷새에 서울이 물난리를 겪습니다" 사나운 물이 강물을 기울게 하고 비가 세차게 내려 도시 전체가 놀랍니다 사람의 길과 자동차 길로 큰 물이 넘치며 저승으로 향한 행렬처럼 콸콸 흐릅니다 올해에는 혼을 달래는 노래로 맑은 날씨를 기구하는 입추의 제사를 대신합니다 가을 매미 애절한 울음소리가 통렬한 질책으로 나라 운영이 경건하고 정성되기를 호소합니다 H. Rhew "In the First Five Days after the Beginning of Autumn, Seoul Suffers from Disas..

시선(詩選) 2022.08.15

죽서 박씨, “어쩌다 또 쓴 시"

竹西朴氏 又(偶題) 洛城春事盡繁華,佳氣葱葱十萬家。 朝往遊人雙頰醉,暮來兒女滿頭花。 何愁珠玉終難得,最恨文章未易賖。 綠樹陰陰風淡淡,一床書帙足生涯。 "어쩌다 또 쓴 시" 낙양성 봄날 구경거리 떠들썩 하기 그지없고 좋은 기운이 무성해 집집마다에 가득합니다 아침에 떠나는 과객들은 두 볼이 발그레하게 취했고; 저녁에 돌아오는 아이들은 머리 가득 꽃입니다 옥구슬 얻기 어렵다고 심란해 할 것 없지만; 글을 수월하게 찾아 쓰지 못하는 게 제일 한스럽습니다 푸른 나무 울창하고 바람 잔잔하니 책상 위에 책이 가득하면 내 이 생애 충분합니다 (반빈 역) Ban Jukseo "A Poem Written by Chance Again" Activities of spring in the city of Luoyang Are busy a..

"새 붓을 구했기에 무나재에 보냅니다"

半賓 〈購得新筆送無那齋〉 偶而購獲筆三枝, 工匠誇言質勿疑。 無罪狼羊身已化, 有才文士志方馳。 二之無那迎顏柳, 一在雲軒作拙羸。 不厭我瞋新道具, 信君書畢不批誰。 (自注:無那、雲軒皆齋名。) (戊戌臘月) 반빈 "새 붓을 구입해 무나재에 보냅니다" 우연히 붓 세 자루를 구했습니다 품질에 대해 의심하지 말라고 만든 장인이 자랑 섞어 말했습니다 죄 없는 늑대와 양은 이미 몸이 바뀌었습니다 재능 있는 문인이니 이제 생각이 달리겠지요 두 자루는 무나재로 가서 안진경과 유공권에게 맞이할 것이고 한 자루는 운헌에 남아 서툴고 힘없는 글씨를 만들겠지요 나는 만족스럽지 않아 새 도구에 눈을 부라리겠지만 그대가 글씨를 쓰고 나서는 누구도 탓할 일이 없으리라 믿습니다 (무술년 섣달) H. Rhew "Sending Newly Acqui..

시선(詩選) 2022.08.12

죽서 박씨, "어쩌다 쓴 시"

竹西朴氏 偶題 人生難得住年華,空慕文章舊大家。 詩到精工方可語,春因駘蕩乃至花。 浮雲已覺太虛遠,逝水堪憐千古賖。 榮辱分明從我出,癡心莫使望無涯。 죽서 박씨 "어쩌다 쓴 시" 사람의 삶이 본디 좋은 시절에 머물기 어려워 하염없이 글로 이름 떨친 옛 사람들을 사모합니다 시는 정교함에 이르러야 겨우 이야기할 수 있고; 봄은 분방함으로 비로소 꽃을 피워 냅니다 떠도는 구름에서 텅 빈 하늘이 머나먼 것을 알고; 흐르는 물을 보며 천고의 세월을 애틋해 합니다 영예와 부끄러움이 분명히 내 자신에서 나오는 것이니 어리석은 마음에서 끝 모를 곳을 바라보지 말아야겠지요 (반빈 역) H. Rhew "A Poem Written by Chance" Holding on to good times Is difficult in our live..

"더위를 견딜 계책이 없습니다"

半賓 〈消暑缺計〉 酷熱患無方, 時時加苦惱。 氣溫越體溫, 晚禱連晨禱。 兩足夢冰川, 一身思海島。 終能靜小休, 想起催詩稿。 (壬寅中伏後三四日) 반빈 "더위를 견딜 계책이 없습니다" 불볕더위에 대한 처방이 없어 걱정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고민이 깊어지네요 기온이 체온을 넘어서고 저녁 기도가 새벽 기도로 이어집니다 내 두 발은 얼음처럼 시원한 시냇물을 꿈꾸고 이 한 몸뚱이는 바다 한가운데 섬을 생각합니다 드디어 조용히 조금 쉴 수 있나 했더니 써 내야하는 시 독촉이 생각나네요 (임인년 중복 사나흘 후) H. Rhew "Lacking Strategies for Enduring Summer Heat" I suffer for not knowing how to deal with scorching heat. As time ..

시선(詩選) 2022.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