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15

"시인의 머릿속"

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5) "시인의 머릿속" 나는 시 읽기가 꼭 시인을 염두에 두고 진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인의 의도를 파악하고 확인하는 등의 작업을 시 읽기와 동일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건 뭐 그리 특별한 주장이 아닙니다. 오래 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시를 읽은 사람이 많습니다. 시인의 의도가 정말 의미 있게 파악될 수 있는지도 문제이지만, 꼭 시인을 끌어다 대지 않아도 시를 읽으며 할 수 있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인의 정서와 시인이 구사하는 시적 언어, 심지어 시인의 의도 또한 흥미의 대상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중국시의 원천이라고 해도 좋을 《시경詩經》의 〈대서大序〉는 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詩者,志之所之也。在心為志,發言為詩。情動於..

"놀기와 살리기"

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4) "놀기와 살리기" 한편으로는 "시하고 놀라"고 해놓고,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노는 사람(독자)이 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혼란스럽다는 불평이 있을 겁니다. "놀기"와 "살리기" 사이에 쉽게 메꾸기 어려운 거리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겠지요. 게다가 시를 지은 시인은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이 지은 시를 살려낼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니 더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번 정리해 두기로 합니다. 다음과 같은 두 가지로 정리해 봅니다. 첫째, 시는 독자가 읽으며 놀아야 살아납니다. 시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독자가 실천하는 영역이라는 이 말을 이해하는 건 사실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시인이 써서 발표하고 시집이나 잡지 등의 지..

"시어와 보통 말"

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3) "시어와 보통 말" 지난 번 글에서 시가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기 어렵고, 또 원만한 정의를 찾으려 애쓸 필요도 없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시라고 불리는 글은 형태나 성격이 다양해서 그렇게 넓은 범위의 글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정의를 찾는 게 그리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계속 시와 놀기를 원한다면, 대답을 찾을 수 있는지를 불문하고 계속 시가 무엇인지 묻고 확인하는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시어, 즉 시의 언어가 무엇인지, 보통의 언어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기로 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본다고 할 때, 우리가 보는 그것이 아침에나, 저녁에나 다를 게 없고, 작년에도 지금도 같다고 하면..

"시하고 놀아요"

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2) "시하고 놀아요" 제목이 조금 엉뚱한가요?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제목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이 제목을 소리 내어 읽어 보시지요. "시하고"는 "시와 함께"라는 뜻, 즉, 여기서 "하고"는 무슨 일을 함께하는 동반자를 나타내는 조사로 쓰였습니다. 어법 술어로 말하자면 부사격 조사입니다. 그러나 "시하고"는 또한 "시를 하고," 또는 "시를 하면서"라는 뜻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고"는 원형이 "하다"인 동사로 들릴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말에 등록된 어휘는 아닐 수 있지만 어쩌면 "시하다"를 "시를 하다"라는 동사로 읽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생각에 대해 내가 지적재산권을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뉴..

"시는 무엇이고 어떻게 읽나요?"

반빈(半賓)의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1) "시는 무엇이고 어떻게 읽나요?" 시를 읽는 이야기를 정기적으로 써서 올려보라는 학장님의 분부에 가까운 권유에 못이기는 척하고 글을 써 올리기로 했습니다. 학장님은 편박사님 음악이야기를 배워 매일 하나씩 올리라고 하셨지만, 일주일에 하나 정도가 좋을 것 같아 "시와 함께 맞이하는 주말" 정도의 제목으로 시작해 보기로 합니다. 서양음악사를 꿰뚫고 계신 듯한 편박사님처럼 아는 게 많지 않을 뿐 아니라, 미국에 산다는 이유로 백수 자격이 무한정 보류된 처지라 매일 글을 하나 더 쓴다는 게 부담이 되기도 했습니다. 평생을 시를 공부하며 살고 있지만 돌이켜 보면 엉뚱하게 들어선 길이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동시 몇 수 잘 썼다고 상도 받고 칭찬도 들은 후 그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