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詩選) 233

“입춘이 멀었는데 수선화가...”

半賓 立春尚遠見水仙花初開因思坡翁 水仙初發氣仍寒,溫酒三升緒始歡。 且請龍君來對坐,引杯高舉共呼乾。 반빈 "입춘이 멀었는데 수선화가 핀 것을 보고 동파노인을 생각합니다" 수선화가 처음 피었는데 아직 바람이 찹니다 술 석 되를 덥혀야 마음이 비로소 기쁘겠습니다 용왕님을 오시라 청할 테니 마주 앉으십시오 모두 잔을 당겨 높이 들고 함께 외치시지요, "건배"

시선(詩選) 2021.01.25

"떨어져 사는 어려움과 즐거움을 노래함"

半賓 效陶淵明歸園田居五首 其五、詠獨居之苦樂 久雨倏轉晴,當吟一二曲。 時節持奇異,麴酒備豐足。 弈子分黑白,無人來對局。 獨飲置杯近,何妨減燈燭。 天明宿醉走,草率勝張旭。 반빈 "도연명의 '고향 땅으로 돌아가 살기(歸園田居)' 다섯 수를 배워 씀" 다섯째 수: 떨어져 사는 어려움과 즐거움을 노래함 지리했던 비가 어느새 그쳐 맑았으니 반드시 한두 곡 노래를 읊조려야 하지요 시절이 여전히 이상스러워 독한 술을 풍족히 마련했습니다 바둑돌도 흑과 백을 나누어 두었지만 마주앉아 둘 사람이 아무도 오지 않네요 혼자 마시며 바로 앞에 술잔을 두었으니 등불을 조금 어둡게 해도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날이 밝아 숙취한 채 걸으면 휘청거림이 장욱(張旭)의 초서보다 멋드러지겠지요

시선(詩選) 2021.01.15

"경자년 동지에"

半賓 效陶淵明歸園田居五首 其二、詠庚子冬至 日沒尚申時,冬至夜深長。 懼疫缺賓來,難免更鞅鞅。 酣飲能獨斟,尋伴逆時往。 且請聽古人,謔戲或玄想。 詩詞不可少,話頭逐漸廣, 生一陽黑晚,問學泱莽莽。* *最後一聯之出句指《周易》復卦。此卦六爻中初爻為唯一陽爻,象徵黑暗中開始長的陽光。 반빈 "도연명의 '고향 땅으로 돌아가 살기(歸園田居)' 다섯 수를 배워 씀" 둘째 수: 경자년 동지에 해가 이미 떨어졌는데 아직 너댓 시 동지날 밤은 깊고 깁니다 온역이 두려워 찾아오는 손님이 없으니 답답하고 울적한 건 어쩔 수 없겠지요 혼자 술을 따르는데 즐겁게 마실 수 있나요 같이 마실 사람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 갑니다 옛사람의 이야기를 청해 듣지요 유쾌한 말장난도 좋고 깊은 사상도 좋습니다 물론 시와 노래가 빠질 수는 없지요 붙들 화두가 갈수록 ..

시선(詩選) 2021.01.11

"옛 타이베이의 기억을 노래함"

半賓 效陶淵明歸園田居五首 其四、詠老台北之回憶 憶往重踏春,舊事加自娛。 哂儕白髮禿,癡狂卻如初。 當年巢泰山,浮生覺宜居。 地陌語喑啞,步步問渠渠。* 柳二識無那,實虛皆真如。 不飲何嘗散,求學候課餘。 何不扮烏有,笑嚇唬子虛。* 今歸敬酒謝,理當如之無。 *得自梅堯臣詩。 *子虛、烏有用司馬相如〈子虛賦〉事。 반빈 "도연명의 '고향 땅으로 돌아가 살기(歸園田居)' 다섯 수를 배워 씀" 넷째 수: 옛 타이베이의 기억을 노래함 지난 날을 되돌아 보며 푸르렀던 시절을 다시 밟으니 옛일들을 더욱 즐기게 합니다 그 때 동료들끼리 백발조차 빠지고 있다고 놀리는 걸 보면 미친 듯했던 집착이 그 때와 같아요 당시 태산에 둥지를 틀고 떠도는 인생에 어울리는 거처라고 했지요 땅은 생소하고 말도 반 벙어리 신세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어린아이 말 배우..

시선(詩選) 2021.01.08

"서신에 노래로 답해 청산진으로 보내며"

半賓 大春兄簡引謝安與支遁書,吟歌答致青山鎮,用四支韻。 屈指傾遲歡聚期, 但愁各在邈天涯。 東山適隱常青綠, 西域荒蕪多怪魑。 四處瘟神焦慼慼, 千思摯愛慰嘻嘻。 養人老疾可還剡, 酌酒吟詩效驗奇。 반빈 "대춘형의 편지에 사안(謝安)이 쓴 '지둔에게 보내는 서신 (與支遁書)'을 인용했습니다. 노래로 답해 청산진으로 보내며, 시운 상평성 네번째인 지운(支韻)을 씁니다." 기쁘게 모일 날을 손꼽아 세며 기다리지만 각각 먼 하늘의 끝에 있음을 안타까워 할 뿐입니다 동쪽 산은 늘 푸르러 은거하기 적당하지만 서쪽 땅은 거칠어 요상한 도깨비 투성이 이곳저곳에 역병의 기운이 있어 조바심하면서 천 가지 진실한 사랑에 위안을 받아 싱글벙글하지요 늙어 생긴 병을 추스리려 섬산 골짜기로 갈 수도 있겠지만 술 부어주며 함께 시를 읊조리는 것도..

시선(詩選) 2021.01.05

"섣달그믐의 산보"

半賓 効陶淵明歸園田居五首 其三、臘尾散步 漫步攜妻走,路上遇人稀。 蒙面二三人,躲避猶心違。 疫病固蔓延,抖顫疑是非。 來年速請至,解惑有依歸。 반빈 "도연명의 '고향 땅으로 돌아가 살기(歸園田居)' 다섯 수를 배워 쓴다" 셋째 수: 섣달그믐의 산보 발길 가는 대로 마나님과 걷는데 길에서 만나는 사람이 드물다 얼굴을 가린 사람 두셋이 마음에 거리끼는듯 피해 간다 역병이 널리 퍼진 게 사실이니 부들부들 떨며 옳고 그름을 의심한다 오는 새해 속히 이르시기를 청해 미혹을 푸는 데 기댈 곳이 있기를

시선(詩選) 2021.01.02

"지려고 뜨는 해"

*몇 해 전 이맘 때 써둔 시입니다. 올해의 상황에 특히 어울리는 듯합니다. 반빈 "지려고 뜨는 해" 섣달 그믐 부근 며칠 아침 해를 찬찬히 살펴봅니다 자욱한 안개 뒤로 슬며시 오르며 보이다 말다 숨바꼭질로 눈길을 돌리지 못하게 합니다 지려고 뜨는 해인 것 같아서 마음이 더 쓰이는 건지 빠뜨린 건 없나 그냥 가도 되나 망설이듯 망설이듯 희뿌연 얼굴이 아련합니다 질 해는 져야합니다 밤 지나 같은 해가 다시 뜬다 해도 분명히 다를 겁니다 (병신년 세밑에)

시선(詩選) 2020.12.30

“경자(2020)년을 회고합니다”

半賓 冬至前數日效陶淵明歸園田居其一回顧庚子年 夢浮浪浪海,醒見疊疊山。 異域萬里外,疫亂庚子年。 軀縛慕三花,心驚沈九淵。* 靜坐凝精神,呼吸聚丹田。 扶杖漫白日,隱几慌黑間。 能喻寸步外,不記頃刻前。 隱隱散霧霾,陰陰瀾雨煙。 或日開上蒼,應時登頂巔。 振衣除憂悶,彈冠品悠閑。 辛丑新陽至,起步詠傲然。 *〈三花〉引蘇軾〈三朵花並序〉事。〈九淵〉用賈誼〈吊屈原文〉語。 반빈 "도연명의 '고향 땅으로 돌아가 살기(歸園田居)'의 첫 수를 따라 경자(2020)년을 회고합니다" 꿈에서는 일렁이는 바다 위를 떠다니고 깨어나서는 첩첩 쌓인 산을 마주보았습니다 만 리 밖 타향 땅에서 전염병 난리를 겪는 올 해, 경자년 몸이 묶이니 꽃 세 송이 지닌 신선을 부러워하고 마음이 놀라니 아홉 겹 깊은 물속으로 숨었습니다* 조용히 앉아서 정신을 집중하고 깊이 ..

시선(詩選) 2020.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