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음식 기행

"도(道) 닦는 음식"

반빈(半賓) 2011. 7. 18. 14:19

 

"() 닦는 음식"

 

 

뚜우푸(杜甫)가 리뻐(李白; 李太白)을 생각하며 쓴 몇 수의 시 중에 "이백에게 드린다(贈李白)"라는 작품이 있다.  열두 행으로 오언고시(五言古詩) 치고는 짤막한 편이다.  우선 작품을 읽어보자.

 

二年客東都, 뤄양(洛陽)에서 객지생활 두 해,

所歷厭機巧。 겪어야 하는 온갖 치사한 꼴에 진저리가 난다.

野人對腥羶, 거칠게 살며 늘 비리고 누린 음식을 대하다 보니

蔬食常不飽。 이제 푸성귀로는 배가 부르지 않아.

豈無青精飯, 푸른 정령의 밥이 어째 없는가?

使我顏色好。 내 얼굴빛을 좋게 해줄텐데.

苦乏大藥資, 이렇다할 보약재를 살 여유도 없고,

山林跡如掃。 산길 조차 걷지 않고 있구나.

李候金閨彥, 출중한 수재 이태백은

脫身爭幽討。 조정을 벗어나 그윽히 살면서

亦有梁宋游, 옛 양나라 송나라 땅을 노닐고

方期拾瑤草。 신선의 옥초를 구하고 있다네.

 

이 때 당나라의 수도가 창안(長安)이었으니, 뤄양(洛陽)에서 살고 있다는 말에서 두보가 실의의 시기를 지내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동쪽의 수도(東都)"라고는 해도 낙양은 조정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두보는 평생 높은 벼슬을 해본 일이 없었으니 장안에 산다고 해도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 아니었겠다.  하지만 나라에 충성한다는 마음이 누구보다 충실했던 두보에게 장안을 떠나 사는 객지생활이 어려웠으리라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 객지생활에서 도대체 어떤 점이 특히 어려웠을지가 이 작품을 잘 읽기 위한 열쇠이다.  그 어려움에 장안을 떠나 산다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무엇이 어려웠고, 그 어려움이 어떻게 이태백에 대한 그리움과 부러움으로 연결되는 헤아려 보는 게 좋겠다.  이 시는 사람을 그리워하는 작품이면서도 음식의 이야기를 뼈대로 내용을 꾸려간다는 점이 재미있다.  어쩌면 객지생활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하는 반성이 음식의 이야기를 통해 은유적으로 나타난다고 해도 좋겠다.  일곱째 행에서 돈이 없어 먹을 수 없다고 한 보약재와 마지막 귀절에 이야기하는 이태백이 구하러 다닌다는 신선의 옥초(瑤草)는 약이니 제처 놓는다고 해도, 음식이 세 번 등장한다.  셋째 행에 "비린내 누린내(腥羶)" 나는 음식이 넷째 행의 "푸성귀()"와 서로 대조를 이루며 등장한다.  여기서 "야인(野人)"이라는 말은 적절한 번역이 없어 "거친 삶을 사는 사람" 정도로 읽었다.  "거친 삶"은 우선 자신이 처한 거친 환경을 한탄하는 말이겠다.  물론 낙양이 무슨 황야나 산 속처럼 야생동물을 사냥해야 하는 곳이 아니었으니, 그 거친 환경은 못된 사람들에 둘러쌓여 있다는 뜻으로, 그런 사람들 사이에 끼어 사는 어려움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이 탄식은 또한 그런 환경 속에서 자각하지 못한 채 함께 거칠어지고 황폐해져 버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반성하면서 스스로를 조롱하는 말이기도 하다.  요컨대 비린내 나는 물고기와 누린내 나는 짐승을 잡아먹고 사는 사람들 틈에 끼어 있다 보니 한편으로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진저리가 나기도 하지만, 어느새 그 무리의 하나가 된 것은 아닌가 하는 근심이 생긴 것이다.  물론 꼭 사냥이나 낚시로 연명한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수양을 멀리한 절제없는 생활을 "비린 음식, 누린내 나는 음식"이라는 은유에 담았다고 보는 게 좋겠다.  어느새 채식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말이 바로 그런 읽기를 뒷바침한다.  자신의 그러한 처지를 음식의 이야기에 담은 건, 물론 시의 후반부에서 "약초"에 담은 이태백의 삶과 대조하기 위한 설정이다.  조정이 아끼는 출중한 수재이면서도 정치현실에 섞이지 않고 몸을 빼 약초를 캐고 떠돌듯 도를 닦으며 사는 이태백이 그립다는 말이다.  무엇이 진정으로 중요한지를 알고, 또 아는 것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이니 부럽다는 뜻이다.

 

다섯째 귀절에 등장하는 "칭징판(靑精飯)"이라는 음식이 흥미롭다.  이태백의 삶을 상징하는 옥초(瑤草)와 자신의 처지를 나타내는 비리고 누린 음식의 중간쯤이라고 할 수 있을테니 두보가 도를 닦으며 살고 있다면 먹을 음식이겠다.  이 음식이 얼굴빛을 좋게 해준다고 한 걸 보아도 예사음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도가의 선인을 그린 그림을 보면 백발이 성성한 노인도 얼굴에는 늘 어린아이 같은 홍조를 띄고 있다.  수련의 공이 얼굴에 나타나는 것이다.  "청정반"이라는 이름은 뜻을 잘 전달할 적당한 번역을 찾지 못해 그냥 "푸른 정령의 밥"이라고 얼버무렸지만, 실제로는 내력이 있는 음식이다.  그래서 음식과 약초의 가운데 어디쯤 있을 법한 음식이라고 한 것이다.  음식이름의 "청(靑)"은 물론 색깔이다.  그러나 이 "청"은 파란색과 초록색의 중간쯤으로 소나무의 색을 이 글자에 담으니 색깔의 범주를 넘어 깨끗하고, 절개가 있어 변하지 않는다는 가치를 담고 있다고 보아도 좋겠다.  "정(精)"은 가장 중요한 부분을 선택해서 모았다는 뜻으로, 그렇게 하려면 정성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깨끗하고 순수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런 특징을 갖춘 밥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기분이다.

 

무얼 어떻게 준비해서 만드는 음식이길래 이렇게 좋은 뜻의 글자 둘을 합해 이름을 지었을까?  두보는 왜 이 음식을 구할 수 없었을까?  구할 수 없었던 것인가, 아니면 황폐해진 자신의 생활과는 어울리지 않는 음식임을 인정한 것인가?

 

이 음식의 내력은 송나라 사람 린훙(林洪)이 지은 《산가청공(山家淸供)》에 소개되어 있다.  우선 이 책의 제목을 들여다보자.  "산속의 집(山家)"라는 말은 세속을 떠나 수양을 하는 사람이 사는 집이겠다.  "청(淸)"은 맑다는 말이니 수양의 지향이나 효과로 보아도 좋겠다.  여기까지는 도가(道家)의 맛이다.  제목의 마지막 글자 "공(供)"은 "공양"이라는 말이니 불가의 용어이다.  우리말에서도 절에 가면 "아침 공양 하시지요", "점심공양은 하셨습니까?"하는 말이 쓰이니 "공양"은 "식사"라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산가청공》이라는 책은 도가나 불가의 수양과 관계있는 음식을 모아 소개한 책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첫번째 음식이 바로 "청정반"이니, 도 닦는 음식이라고 해 손색이 없지 않은가. 

 

《산가청공》은 "청정반"을 만드는 방법으로 두 가지를 소개하는데 이 둘이 서로 아주 다르다.  첫째는 남촉목(南燭木) [오반수(烏飯樹)라고도 하고, 우리말로는 모새나무라고 부르는 철쭉과의 관목]의 잎새와 줄기를 절구에 찧어 얻은 즙에 쌀을 담가두었다가 쪄내어 볕에 말려 만드는 방법이다.  이렇게 처리한 쌀을 오래 복용하면 얼굴빛이 좋아지고 장수할 수 있으니 이게 바로 선가(仙家)의 처방이라고 소개한다.  또 한가지는 적석지(赤石脂)라는 광물로 만드는 방법이다.  적석지 세 근과 청량미(靑粱米) 한 말을 물에 함께 넣고 사흘을 불린 후 쌀을 빻아 자두만한 경단으로 빚어 만드는 데 하루에 세 알을 먹으면 배가 고프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는 이 두 가지 제조법이 모두 근거가 있으니, 산속의 집이나 절에서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는 청정반은 첫째 방법으로 만들 것이고, 짱량(張良)의 "벽곡(辟穀)"을 따라해 볼 요량이면 둘째 방법을 써야할 것이라고 했다.  호(號)를 자방(子房)이라고 한 장량은 유방(劉邦)을 도와 한나라의 건국에 기여한 후, 곡기를 끊고 솔잎이나 밤등을 섭취하면서 수련했다는 전설이 있으니, 여기서 말하는 "벽곡"이 바로 그 수양과정의 섭생이다.

 

송나라 때 이미 두 가지 아주 다른 처방이 기록되었다는 사실에서, 청정반의 조리법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면서 갖가지 약재가 가감되면서 바뀌어갔고, 조리과정도 상당히 복잡해졌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구증구폭(九蒸九曝)"이라는 제조법까지 생겨났다.  쌀을 모새나무 잎새즙에 담가 불린 다음 쪄내고, 찐 것을 볕에 말리고 하는 과정을 아홉 번 반복해서 만든다는 말이니 지극한 정성이 아니면 생각도 할 수 없는 음식이다.  그러나 이렇게 준비한 쌀은 색이 맑고 깊은 푸른 색을 띄는데 쌀알이 견고해져서 오래 보관할 수 있고, 끓는 물에 불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색에서 청정함을 보고, 한편으로는 섭생에 대한 다른 염려없이 수련에 전념할 수 있다는 장점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고 하겠다.

 

지금도 이씽(宜興)이나 진탄(金壇), 안휘성 남부 일대 등 양자강 남쪽 지방에서는 모새나무 잎새의 즙으로 준비한 청정반을 명절음식으로 먹는다.  특히 사월 초파일에는 정성스럽게 준비한 청정반의 쌀로 떡을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하는 관습이 있는데 그 때 올리는 음식을 "아미반(阿彌飯)"이라고 한다.  이 당연히 이름이 "아미타불(阿彌陀佛)"에서 왔으리라 짐작하기 쉽지만  "오미반(烏米飯)"이라는 말도 쓰이는 걸 보면, 모새나무잎새의 즙으로 푸르게 물을 들인 쌀로 만들었다는 표현의 발음이 조금 바뀌어 부처님의 이름이 붙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아미반"이나 "오미반"이나 거기가 거기라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이러한 혼돈에서 청정반이 도가냐 불가냐에 구애 받지 않는, 도를 닦을 때는 언제나 취할 수 있는 음식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이야기를 조금 샛길로 돌려 동서양의 대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불가에서는 석가 탄신일에 부처님께 나뭇잎새의 즙으로 물을 들인 떡을 공양한다.  제삿상 밥이 다 그렇지만 결국 제사드린 후 나누어 먹는 것이 또한 중요한 의미인데, 큰 축일의 음식이 소박하기 그지 없다는 점이 재미있다.  이런 관습은 서양에서 성탄절을 맞이하는 태도와는 판이하다.  서양의 성탄절 동요 중에 "거위가 살찐고 있다(The Goose is Getting Fat)"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우리집 아이들이 자랄 때 부르는 걸 귀동냥으로 들어 배운 것인데, 그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Christmas is coming, the goose is getting fat
Please put a penny in the old man's hat.
If you haven't got a penny, a ha'penny will do.
If you haven't got a ha'penny, God Bless YOU!

 

성탄절 식탁에 오를 음식이 칠면조가 아니고 거위인 걸 보면 미국이 아니라 영국에서 생긴 오래된 동요라고 짐작된다.  거위가 살쪄가는 걸 보면서 성탄절이 가까와졌음을 알게 되고, 거기서 자선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고, 조금의 자선도 할 수 없는 처지에 있는 사람에게는 하느님의 축복을 빈다는 내용이다.  자선을 내용으로 하는 2-4행은 탓할 것이 없으나, 노래의 첫 귀절에 성탄의 준비가 풍부한 만찬을 상상하는 데서 시작한다는 것은 석가탄신일에 청정반으로 떡을 만들어 공양하고 먹는 관습과는 확실하게 대비를 이룬다.  물론 기쁜 날이니 먹고 마시는 걸 탓할 수 없다.  게다가 우리가 즐기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풍성하신 은혜에서 받은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할 때, 거위를 잡아 식탁에 올리고 아기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불쌍한 늙은이의 모자에 동전 한 닢, 반 닢을 넣는 걸 잊지 않으니, 그것도 좋다.  그러나 깨끗하고 부족한 듯한 섭생을 하며 도를 닦는 삶의 연장에서 석가모니의 탄생을 축하하는 모습과 대비를 이루는 것도 또한 재미있는 사실이다.

 

다시 이야기를 청정반으로 되돌리자.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려" 준비해야 한다면 그건 예삿일이 아니니 그런 음식을 어디서 먹어볼 수 있을까.  어쩌면 두보가 없다고 한탄한 게 비단 자신의 생활이 수양과 멀어져 있음을 인정하는 탄식에 그치지 않고, 정말 복잡한 과정이어서 수월하게 준비할 수 없었음인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을 여행하다 만날 수 있는 청정반은 "찌고(蒸) 말리는 (曝)"과정을 대폭 생략해 그 때 만들어 그 때 먹는 음식으로 변해있다.  우선 모새나무의 여린 잎새를 깨끗이 씻어 절구에 빻은 후 물을 조금 더해 즙을 짜낸다.  그 즙에 멥쌀(粳米)을 넣어 검은 녹색을 띌 때까지 두었다 건져 물기를 뺀다.  그 푸른 즙을 탄 물을 불에 올려 끓으면 건져 두었던 검은 녹색의 멥쌀을 넣어 익힌다.  밥이 다 되었을 때는 초록과 파랑의 중간, 벽록(璧綠) 정도로 묘사할 수 있는 깊은 옥색을 띄는데 향기롭고 윤기가 흘러 먹기 전부터 우선 기분이 좋다.  식당메뉴나 선전책자에 나열한 약효는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가지이다.  하지만 정성스럽게 준비해 볕에 말린 푸른 찐 쌀을 한 됫박 작은 자루에 담아 메고 산속으로 도를 닦으러 떠나는 사람의 모습과는 이미 멀어져 있는 음식이다.  그러나 몸에 좋다고 하고, 도사들의 수양에서 유래했다는 주장과 연결되었으니 꼭 양자강 남쪽이 아니라도 만날 수 있고, 점점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되지 않을까 짐작한다.

 

하긴 지금 만나 맛볼 수 있는 청정반이 더 이상 도 닦는 음식이 아니라는 불평은 하지 않는 게 좋겠다.  도를 닦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도 닦는 도사들의 음식을 찾아서 무엇하겠는가?  시성 두보도 그걸 먹을 수 없는 걸 안타까와 했지만, 당시 자신의 생활에서 그걸 먹을 자격을 찾지 못했던 것 아닌가.  중국 어디서든지 청정반을 마주하게 되면 그냥 고맙게 즐기기 바란다.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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