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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가성 명박상득"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1년 1월 5일자에 실렸다고 합니다.] "일기가성, 명박상득" 청와대가 새해를 내다보며 ‘일기가성’(一氣呵成)이라는 성어를 내놓았다. 마음이 서늘해지는 낙담을 느낀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사자성어’가 유행한다. 연말연초에는 시의적절한 한자성어를 선택하고 사색하는 일이 약방의 감초 같은 이벤트가 됐다. 이 한 해의 성어를 발표하면, 이제 그 소식이 중국의 매체에까지 소개된다. 이 발표한 ‘올해의 사자성어’를 보면서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첫째, 교수들은 거의 매년 흔히 접할 수 없는 성어를 찾아낸다. 중국 고전문학과 사상사를 전공한 나조차도 출전이 막막한 경우가 많다. 2010년의 성어 역시 그랬다. “머리를 숨기기에 급급해 미처 꼬리를 감추지 못한다”는 뜻의..

에세이 2011.01.06

"동짓날 개기월식"

"동짓날 개기월식"(*) 동짓날 밤 보름달이 뜬다는 게 우선 흔치 않은 일이겠지만 바로 그 밤 그 보름달이 우리들 그림자로 가득 찬다는 개기월식은 사백 오십 몇 년 만에 처음이랍디다.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그렇게 한 열 번은 더 세어야 하는 길고 긴 세월 동안 아무도 볼 수 없었던 잔치라길래 핑계 삼아 술 부어가며 기다렸지요. 늘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하다못해 구름이라도 잔뜩 끼는 계절인데 달 뜨기를 기다려 어쩌자는 것이냐고 묻더군요. 월식은 못 본다고 해도 마신 술은 남지 않겠느냐고 대꾸했습니다. 억지였지요. 이번엔 마신 술이 없어지지 어떻게 남느냐는 핀잔이 왔습니다. 왜 말꼬리를 잡느냐는 목청 돋운 핀잔으로 되돌려 준 후 헤헤 웃음을 섞어 얼렁설렁 넘겼습니다. 잠들 시간을 훌쩍 넘어서..

시선(詩選) 2010.12.24

"북한산"

산행은 북한산으로 더 많이 했으면서 지리산 산행에서 쓴 시만 한 수 올릴 수 없어서 북한산 걸은 후 쓴 시도 하나 올리지요. ----- 북한산 대남문 주위로 일요일 아침 내내 새소리는 없이 사람들 아우성이 가득하지만 그 사람소리가 바로 새소리입니다. 멀리로 여기저기 가지런히 줄을 맞추어 늘어선 도심의 묘비들을 뒤로하고 바람을 찾아 북한산을 오른 것이 새들이고 사람들입니다. 나도 너를 모르고 너도 나를 모르지만 서로 재잘댈 수 있는 것이 한가지입니다. (2002년 6월)

시선(詩選) 2010.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