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아독취(我獨醉)"는 말장난?

반빈(半賓) 2010. 2. 28. 02:45

"아독취(我獨醉)"는 말장난?

 

    블로그 이름에 쓴 "아독취(我獨醉)"라는 말을 보고 그게 뭐냐는 사람부터 말장난 한 번 재미있게 했다는 사람까지 반응이 갖가지입니다.  물론 그걸 말장난이라고 부른 사람은 한문시간에 그래도 글줄깨나 읽어서 출전을 알뿐 아니라, 출전의 표현을 비튼 결과라는 것까지 안다는 뜻이겠습니다.  물론 말장난이지요.  그러나 그런 말장난밖에 다른 위안이 없는 상태라면 그냥 장난이라고만 할 수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아독취(我獨醉)"는 물론 옛날 옛날 중국의 시인 굴원(屈原)의 말을 비틀어서 만든 말입니다.  그의 유명한 작품인 "어부(漁父)"라는 글을 보면 삼려대부 굴원이 모함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나 호숫가를 배회하면서 무언가 주절거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로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만 홀로 맑고, 사람들이 모두 취했는데 나만 혼자 깨어있구나 (擧世皆濁我獨淸, 衆人皆醉我獨醒)"라고 말했다는 것이지요.  답답한 마음을 잘 담아낸 표현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이 말만 가지고는 이 천 년이 지난 오늘날의 우리들이 기억해줄 정도가 되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이 말을 스타덤에 올려 놓은 건 세상을 답답해하는 이 양반이 탔던 배를 저어주던 어부입니다.  그 어부가 "무릇 성인은 꼭 막힌 사람이 아닐진대, 세상사람들이 모두 탁하면 흙탕물에 발을 담글 줄 알아야 하고,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으면 술지개미라도 먹어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는 것이지요.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는 입장인지는 사람따라 상황따라 의견이 다를 수 있겠습니다.  아무튼 사실은 굴원이 "어부"라는 작품에서 소개하고 있는 대화가 자신과 자신의 배를 젓던 어부 사이에 있었던 실제의 대화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충돌하고 있는 두 개의 목소리라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번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 대화가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는 작품을 찾아 스스로 읽어서 알아보시기를 권합니다.  그게 좋은 공부이겠지요. 

 

    그 대화의 결말을 여기서 따로 자세히 말씀드리지 않는 건 뭐 약을 올리자거나, 또는 선생의 못된 본능을 드러내자는 게 아닙니다.  그냥 양쪽 모두 오늘을 사는 제 입장과 거리가 있기때문에 구태여 이야기를 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 두 가지의 입장을 비틀어서 뭉뚱그려야 제 입장에 접근한다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다 깨어있는데 나만 혼자 취해있구나"라는 뜻으로 "거세개성아독취(擧世皆醒我獨醉)"라고 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취해있건 취해있지 않건, 맑건 흐리건 간에, 나 자신은 분명히 취해있고 또 그래야 살 수 있겠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 기본 전제는 "아취(我醉)"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거기다 "홀로"라는 뜻을 더해 "아독취(我獨醉)"라고 한 것은 소외를 느끼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상황을 넣어두기 위함이었습니다.  소외의 상태는 말 그대로 답답한 상태인데 세상이 그런 상태의 이유를 그런대로 설명을 할 수 있어야 답답함이 조금 덜하지 않겠습니까.  굴원이 그랬던 것 처럼.  단지 나는 굴원처럼 "나만 홀로 깨어있다"는 푸념으로 답답한 이유를 분석할 자신이 없을 따름이지요.

 

    물론 블로그의 제목이 "아독취(我獨醉)"라는 말을 내 건 것은 저와 비슷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에서였습니다.  제가 "아독취(我獨醉)"라고 소리치면 어딘가에서 "나도 역시 홀로 취했다"면서 "아역독취(我亦獨醉)"라는 사람이 있을 것 같고, 그런 소리침이 몇 번이고 계속된다면 "아등역독취(我等亦獨醉)"라고 확대되어 "우리들 역시 홀로 취했다"는 모순이 섞인 말로 변해가겠지요.  모순이 있으면 어떻습니까.  소외를 느끼는 사람이 분명 많아지고 있는 세상이고, 그건 스스로 "아독성(我獨醒)"이라고 뻐기는 사람들이 많아야 가능한 것이지요.

 

    깨어있으라고 하세요.  저는 홀로라도 좋으니 취해있지요.  그러나 솔직하게 말해서 홀로는 아니라는 확신이 있습니다.

 

(2010년 이른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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