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마호메트만평과 공자(孔子)

반빈(半賓) 2010. 1. 27. 09:53

마호메트만평과 공자(孔子)

 

    놀란 가슴, 아픈 마음을 다독이고 쓸어내리는 게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일상이 되어버린 탓인지 이제 웬만한 일은 걱정도 감동도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래서 어느새 마음이 무디어진 건 아닌지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더욱 소중해졌다. 마음이 무디어지면 곧 굳어지고, 굳어지면 돌이켜볼 기회가 와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마호메트만평”이라고 알려진 서유럽과 이슬람세계의 충돌은 우리의 마음을 다시 비추어보게 하는 좋은 기회이다. 이슬람교에서는 재현조차 금기시 되어있는 마호메트를 두건을 쓰고 폭탄까지 지닌 모습으로 희화한 만화를 실어 사건의 단서를 제공한 덴마크의 신문이나, 그렇다고 만화가와 신문 편집자의 목숨에 현상을 거는 등 폭력적인 소요를 조장하는 일부 이슬람교 성직자나,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골칫거리이다. 그런데 그렇게 충돌하는 양측의 문제가 결국은 같은 원인에서 시작한다는 점을 보면서, 이 사건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볼 계기를 찾아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타자(他者)가 자신과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양측 모두 자신과 같지 않은 것은 무시하고, 배척하고, 증오하고, 심지어는 조롱한다. 현대의 서유럽을 만들어낸 힘은 민주주의 정신이다. 사람들 하나하나가 모두 주권의 원천이라는 민주주의 이론에서는 어떤 절대적 존재나 권위도 인정할 수 없다. 누구도 비판이나 희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정치지도자를 원숭이 모습으로 그려내고, 십자가를 오줌통에 담가 놓고 그걸 예술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게 바로 그런 이유때문이다. “마호메트만평”도 결국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그까짓 만화를 가지고 그러느냐는 변호는 적절하지 않다. 소위 “표현의 자유”나 “성역 없는 비판”이라는 원칙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은 전혀 인정하지 않는다는 굳은 마음의 표출이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성역이 없다면 “민주주의” 자체도 비판의 대상, 회의의 대상에 올려놓을 수 있어야하지 않는가. 물론 이슬람 세계도 같은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기를 희화하고 부정한 사람의 목숨에 현상을 건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실제로 그렇게 죽은 사람도 상당수 있고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피해 살아야 했던 사람도 많다. 이 역시 대상을 막론하고 자신의 믿음과 논리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니 편협한 아집과 다르지 않다.

    공자의 말씀 한마디가 가슴 저리게 다가온다. 《논어(論語)》 〈자로(子路)편〉에 있는 “된 사람은 화합하되 같지 않고, 모자란 사람은 같되 화합하지 않는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는 말은 아집과 독선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나와 남이 같아지는 것이 필연이라고 할 때, 그 과정이 평화로우려면 내가 바뀔 수밖에 없다. 남을 바꾸어 서로 같아지려는 생각은 평화롭기 어렵다. 그러나 나를 바꾸는 일은 쉽지도 않고, 꼭 옳은 길이 아닐 수 있다. 그래서 공자의 말씀이 더욱 적절하다. 공자는 남과의 조화에 “같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서로 다르고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조화의 시작이고 끝이다. 같은 사람들끼리, 같은 편끼리 화합하는 게 무어 그리 대단한가. 다르면서 화합해야 진정하고 뜻있는 화합이 아닌가.

    국제적인 분쟁이나 종교간, 문화간의 대립처럼 큰 문제에 대해서 뿐 아니다. 이 말에 담긴 공자의 지혜는 내 주위의 작은 문제에서부터 자신을 돌아보라고 권한다. 나와 내 주위의 사람들, 아내와 남편 사이, 형제, 친구들 사이에서 화합이라는 이름으로 남이 바뀌기를 고집하고, 그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 성을 내고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소인배적인 경향이 내 안에도 있지 않은가.

 

(2006년 2월 18일, 미주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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