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멍이 노래

"멍멍이 노래 #2: 이름짓기"

반빈(半賓) 2010. 2. 24. 21:26

멍멍이 노래 2

 

"이름짓기"

 

1.  추억

 

기억하시지요

메리 아니면 쫑

 

우리 어렸을 적엔 멍멍이들을

대개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게 흔히 쓰이는

미국사람들 이름이라

 

우리말로 치자면

영희나 철수 정도라는 걸

 

중학교 가서 영어를 배우면서

비로소 알았습니다

 

메리는 마리아

쫑은 아마 죤, 즉 요한이니까

 

모두 성서에도 나오는

좋은 분들의 이름입니다

 

아마 그래서 미국사람들이

기쁘게 가져다 쓰는 게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 좋다는 이름들을

왜 멍멍이에게 붙여줬는지

 

수수께끼입니다

지금은 좀 달라졌는지 몰라도

 

그 때는 멍멍이가

그냥 멍멍이 아니었나요

 

안방이나 대청은 커녕

툇마루에도 올라오지 못 했지요

 

애지중지 안고 다니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존중한다는 뜻은

분명 아니었을 겁니다

 

꼭 듣기 좋은 이름만

쓴 건 아니었습니다

 

개는 사나워야 제 격이라며

스탈린이라고 한 집도 있었고

 

아는 서양이름이 없어

고민고민하다가 그랬는지 그냥

 

독구라고 부른 사람도 보았습니다

일본식 미국말이었지요

 

왜 그렇게 다들 꼬부랑말에서

이름을 찾았을까요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영희니 철수니 하느냐는 거였나요

 

그랬다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았던 듯 보입니다

 

짓기는 지어야 하겠는데

외국 영화배우 이름보다

 

더 멋드러져야 한다니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2. 경과

 

"서쪽 저 끝 구름 넘어

아폴로에트"

 

털북숭이 뒤를 졸졸 따라

서류 한 장이 같이 왔었습니다

 

족보라고까지 할 건 없고

혈통증명쯤 될 텐데

 

어미개 아무개 아비개 아무개

사이의 아무개라면서

 

알 듯 모를 듯 한 이름이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장황한 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새로 지을 참이었으니까요

 

태양신에까지 연이 닿았다는 게

골칫거리였습지요

 

이제 뭐라고 불러야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겠습니까

 

어쨌든 아폴로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 그 미국 스케이트 선수 있지요

아직 기억이 새롭지 않습니까

 

"뚜우푸(杜甫)"는 어때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아니 시성(詩聖)

 

늘 공부하라고 날 일깨우면서

무한히 즐겁해 해주는 이름인데

 

"피이지어우"도 괜챦겠네

왜 있쟎아, 맥주라는 중국말

 

혹시 알아

이름 부르면 한 병씩 물어다 줄지

 

그런게 번듯한 이름

그럴듯한 이름이냐는

 

한숨 서너 번

눈흘김 너댓 번 있고 나서

 

이웃집 아주머니

꼬마 사자처럼 생겼네 하는 말에

 

그 당장 사자자리 리오가

우리 멍멍이 이름이 되었습니다

 

, 무슨 두부

또 술타령이야

 

그렇게 보낸 몇 날 며칠이

무색해진 것이지요

 

3. 결과

 

여러 날 머리를 짜며 찾다가

얼핏 발끝에서 주운 듯 했지만

 

엄마가 즐거워하니

그거면 됐지요

 

정작 우리 멍멍이는

무슨 난리냐는 태도입니다

 

불러도 불러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아요

 

한 옥타브 높은 소리로

노래하듯 부르면 모를까

 

치즈라도 한 조각 들고 있으면

부르기도 전에 바로 옵니다

 

치즈라고 지을 걸

그랬나봐요

 

 

(2010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