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멍이 노래 2
"이름짓기"
1. 추억
기억하시지요
메리 아니면 쫑
우리 어렸을 적엔 멍멍이들을
대개 그렇게 불렀습니다
그게 흔히 쓰이는
미국사람들 이름이라
우리말로 치자면
영희나 철수 정도라는 걸
중학교 가서 영어를 배우면서
비로소 알았습니다
메리는 마리아
쫑은 아마 죤, 즉 요한이니까
모두 성서에도 나오는
좋은 분들의 이름입니다
아마 그래서 미국사람들이
기쁘게 가져다 쓰는 게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 좋다는 이름들을
왜 멍멍이에게 붙여줬는지
수수께끼입니다
지금은 좀 달라졌는지 몰라도
그 때는 멍멍이가
그냥 멍멍이 아니었나요
안방이나 대청은 커녕
툇마루에도 올라오지 못 했지요
애지중지 안고 다니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존중한다는 뜻은
분명 아니었을 겁니다
꼭 듣기 좋은 이름만
쓴 건 아니었습니다
개는 사나워야 제 격이라며
스탈린이라고 한 집도 있었고
아는 서양이름이 없어
고민고민하다가 그랬는지 그냥
독구라고 부른 사람도 보았습니다
일본식 미국말이었지요
왜 그렇게 다들 꼬부랑말에서
이름을 찾았을까요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영희니 철수니 하느냐는 거였나요
그랬다면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았던 듯 보입니다
짓기는 지어야 하겠는데
외국 영화배우 이름보다
더 멋드러져야 한다니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2. 경과
"서쪽 저 끝 구름 넘어
아폴로에트"
털북숭이 뒤를 졸졸 따라
서류 한 장이 같이 왔었습니다
족보라고까지 할 건 없고
혈통증명쯤 될 텐데
어미개 아무개 아비개 아무개
사이의 아무개라면서
알 듯 모를 듯 한 이름이
그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장황한 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새로 지을 참이었으니까요
태양신에까지 연이 닿았다는 게
골칫거리였습지요
이제 뭐라고 불러야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겠습니까
어쨌든 아폴로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 그 미국 스케이트 선수 있지요
아직 기억이 새롭지 않습니까
"뚜우푸(杜甫)"는 어때
중국 당나라 때 시인, 아니 시성(詩聖)
늘 공부하라고 날 일깨우면서
무한히 즐겁해 해주는 이름인데
"피이지어우"도 괜챦겠네
왜 있쟎아, 맥주라는 중국말
혹시 알아
이름 부르면 한 병씩 물어다 줄지
그런게 번듯한 이름
그럴듯한 이름이냐는
한숨 서너 번
눈흘김 너댓 번 있고 나서
이웃집 아주머니
꼬마 사자처럼 생겼네 하는 말에
그 당장 사자자리 리오가
우리 멍멍이 이름이 되었습니다
뭐, 무슨 두부
또 술타령이야
그렇게 보낸 몇 날 며칠이
무색해진 것이지요
3. 결과
여러 날 머리를 짜며 찾다가
얼핏 발끝에서 주운 듯 했지만
엄마가 즐거워하니
그거면 됐지요
정작 우리 멍멍이는
무슨 난리냐는 태도입니다
불러도 불러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아요
한 옥타브 높은 소리로
노래하듯 부르면 모를까
치즈라도 한 조각 들고 있으면
부르기도 전에 바로 옵니다
치즈라고 지을 걸
그랬나봐요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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