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관계의 상충과 국론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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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문에 실린 재미있는 만화이다. 아니, 그냥 재미있다고 하면서 한 번 웃고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화두가 담겨있는 만화다. 지금 미국사회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게 무엇인지, 혹시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를 물으면서,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금권과 탐욕의 폐해를 역사의 맥락에서 사색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 만화가 그리고 있는 장면은 언뜻 보기에는 1787년 필라델피아에서 소집되었던 미국 제헌의회의 모습이다. 조지 워싱턴이나 벤자민 프랭클린 같이 식민지 시대부터 이미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원로도 보이고, 알렉산더 해밀턴이나 제임스 매디슨 같은 젊은 청년도 보인다. 그러나 미국의 헌법을 만들겠다고 모였던 이 사람들 가슴에 오늘날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국제적 기업의 로고가 달려있어서 이 단체초상화는 이 백여 년 전 역사의 맥락에서 떨어져나와 오늘의 현실에 대해 논평한다.
각 분야의 큰 기업은 거의 모두 모인 듯하다. 체육과 여가산업의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나이키, 정보통신계통의 구글과 벨, 컴퓨터산업의 대표로 아이비엠과 애플, 프랜차이즈 요식사업의 맥도널드, 국민건강보험정책의 발목을 잡는다고 비판을 받는 제약회사들을 대표하는 듯 버티고 앉은 화이저, 석유에너지회사 쉘, 화학과 가전산업의 듀퐁과 제너럴 일렉트릭, 기업적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에이비씨 등 모두 미국굴지의 국제적기업들이다. 자동차산업의 지엠이나 금융계의 제이피모건 정도도 누군가의 가슴에 달려있겠지만, 최근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극심한 불경기의 상징으로 면목이 없어 어느 구석에 쭈그리고 앉았는지 보이지 않는다. 같이 신문을 보던 아내에게 어떻게 마이크로소프트가 빠졌는지 모르겠다고 하니까, 혹시 빼달라고 로비를 세게 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며 웃는다. 하긴 의회에 로비 공세를 하는 기업이 만화가 하나에게 로비하는 게 무에 그리 어려우랴.
이 사람들이 모여 초안하고 있는 문서에도 필라델피아 제헌의회가 만든 헌법의 첫 귀절 "우리 국민들은 (We the People)…"이 어느새 "우리 기업들은 (We the Corporations)…"으로 바뀌어 있다. 이것 역시 그냥 익살로 보기에는 너무도 예리한 지적이다. 물론 미국의 제헌의회가 오늘 열린다면 국제적 기업의 이해관계가 상충되어 합의를 도출하기 어려울 것이고, 합의에 이른다 해도 기업의 이익을 대변할 거라는 뜻을 담았다.
그러나 상충되는 이익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국가의 정책과 법률이 좌우된 건 비단 오늘날의 현실만은 아니었다. 1787년 실제로 열렸던 제헌의회도 넓은 폭의 이해관계가 모여 서로 충돌했다는 점에서 이 만화가 꼬집고 있는 현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펜실바니아의 대표로 참석한 벤자민 프랭클린이 81세였고, 뉴저지 대표였던 조나선 데이튼은 27세였다는 사실이 이 때 제헌의회에 모인 55명의 대표들이 얼마나 각양각색이었는지를 웅변한다. 그러나 연령의 차이는 아주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의회에 참석한 대표 중 17명이 흑인을 노예로 소유하고 있었고, 이들이 소유한 노예만도 천 몇 백 명에 달했다고 한다. 노예제도를 둘러싼 의견의 대립이 첨예했을 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들이 대표한 12개 주(로드 아일랜드는 참석치 않았음)에는 큰 주와 작은 주, 인구가 많은 주와 적은 주, 흑인노예의 노동력에 의존하는 대규모 플랜테이션을 기간으로 하는 주와 노예제도 자체를 없애야 할 악으로 규정하고 있는 주 등이 섞여 있었으니 이들의 상충하는 이해를 조정해서 국론을 형성한다는 일이 어땠을지 헤아리기 조차 어렵다.
이 백여 년 전 막 독립한 신생국 미국과 오늘날의 미국 사이를 오가며 또한 제헌의회에 참석한 대표들과 오늘날의 미국 국회의 의원들 사이에 보이는 간과할 수 없는 공통점에 대해 사색할 수 있다.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배경에 든든한 재산이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제헌의회의 대표들은 대부분이 상당한 재산가였다. 남부의 대표들은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을 소유한 지주였고, 북부의 대표들은 은행이나 사업체를 소유한 부유한 상인계층이었다. 헌법을 만들어 나라의 기본 골격을 만드는 일이 부자들의 손에 맡겨졌다는 사실 자체가 당시 상황의 한계를 암시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의원들은 그 때처럼 그렇게 부유층에서 선출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재력의 뒷바침이 없이 의회에 대표로 선출되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들이 대기업의 금권으로부터 받는 압력과 그로 인한 상호의존관계는 이 만화가 보여주고 있듯이 전혀 무시할 수 없는 어려움이다.
여기서 이야기되는 두 시기 사이에 아주 다른 점이 있다면, 제헌의회의 대표들은 거의 모두 명석한 정치가여서 끊임없는 협상으로 합의를 끌어냈다는 사실이다. 1787년 제헌의회가 만들어낸 헌법은 미국이 건국 후 두 세기가 채 지나기 전 세계의 초강대국의 지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완벽한 문서라는 칭송을 받게 되었지만, 사실은 출중한 정치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이상과 정치적 편의의 사이를 수없이 오고가며 만들어낸 타협의 결과이다.
그들은 많은 장애물을 넘어야했다. 우선 독립을 선언한 이듬해인 1777년 연방의회에서 초안하고 1781년 비준되었던 "연방규약 The Articles of Confederation"의 문제점을 다루어야 했다. 이 규약은 독립을 선포해서 영국을 상대로 함께 싸우고는 있지만, 중앙집권적인 강력한 정부가 나타나 영국의 자리를 차지할지 모른다고 걱정하던 당시 미국사람들의 정서를 잘 나타내고 있다. 우선 각각의 주가 "주권과 자유와 독립"을 유지한다고 규정하였으니 하나의 국가로서 가지는 응집력보다 각각의 주 정부가 가지는 독립적 권한이 더욱 중요했다는 말이다. 그래서 세금을 부과할 권한이나 교역을 통제할 힘 조차 연방의회에 부여하지 않았으니, 새 국가의 건설은 차치하고 전쟁의 수행과 전쟁피해의 복구에 조차 의미있는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따라서 강력한 연방정부를 만들되 각 주의 자치에 장애가 되지 않는 형태를 고안해야했다.
그들이 고안하고자 한 정부가 대의제(代義制)를 채택해야 한다는 데는 공통적인 인식이 있었으니, 여러 개의 주 사이에 엄연하게 존재하는 크기나 인구의 불균형을 극복하게 해줄 대의제를 고안하는 일은 쉽지 않은 과제였다. 특히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만한 합의에 다다를 수 있는 형태의 대의제를 고안하기 위해서는 창의적인 사고가 필요했다.
행정부과 입법부, 사법부의 3권을 분립시켜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게 하고, 입법부인 의회는 양원제를 취하는 국가의 형태는 이러한 어려움과 씨름하면서 도출해 낸 합의였다. 양원제를 채택하되 상원은 각 주가 같은 수의 의원을 선출하고, 하원은 인구비례에 따라 의원의 수를 결정하도록 하여 두 가지 방법의 대의제를 병립시키고 입법의 과정에서 상이한 대의제에 근거해 조직된 상원과 하원이 협의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타협으로 극복해야 할 어려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흑인노예의 노동력에 의존해야 했던 남부의 주는 한편으로는 흑인이 사람이 아닌 팔고 살 수 있는 재산이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흑인의 수를 하원구성을 결정하는 인구 비례에 반영시키고자 했다. 물론 남부가 흑인의 문제에 있어 상호모순되는 두 개의 주장을 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두 주장이 원만하게 포함되는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남부의 주가 "미합중국"이라는 연합의 일원이 되지 않을 가능성은 분명히 있었다. 그 결과로 생길 수 있는 분리를 피하는 것 또한 북부가 짊어졌던 과제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 바로 흑인 한 사람을 3/5명으로 계산한다는 타협이었다.
이러한 타협이 윤리적으로 정당했는지의 여부를 떠나, 제헌의회가 끊임없이 타협하는 정치력을 발휘했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당론이나 보수 진보의 논리에 따라 두편으로 갈려 힘겨루기를 일삼는 오늘날 의회의 상황이 정치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두 세기 전의 제헌의회보다 후퇴한 것은 아닌가 반성해볼 일이다. 탐욕스럽게 영리를 추구하는 국제적 대기업의 끊임없는 로비를 헤쳐나가야 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볼 때 상충하는 이해관계 속에서 정의로운 국론을 형성해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그것이 바로 이 만화를 보고 그냥 재미있다고 웃고 넘길 수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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