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와 영향력의 확장"
이제 건국해서 독립한지도 이백 몇십 년이 되었으니 미국의 역사는 길다고 할 수는 없을지 모르나 짧다고 할 수만도 없다. 적어도 국가의 행태나 정서의 틀이 만들어지고 드러나기에 충분히 긴 시간이 지났다. 그 역사 속에서 미국의 행태나 사고가 보여준 특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토의 확장과정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확장의 속도나 규모가 참으로 경이적이었기 때문이다. 백인들에 의한 북미대륙 "개척"의 역사는 16세기 말 경 로아노크 Roanoke에 식민지를 열어 정착을 시도하면서 시작되어, 동쪽 해안지역을 따라 형성되었던 13개의 지역이 18세기 후반 "아메리카 합중국"이라는 이름의 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을 거쳐, 19세기 중반에는 서쪽으로 태평양을 바라보는 광활한 땅을 차지하는 데 이른다. 그러나 서쪽으로 향한 적극적인 "개척"은 실제로는 독립전쟁이 마무리된 후에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으니 19세기 초반에서 중반에 이르는, 고작해야 반 세기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북미대륙의 동서양안을 포함하는 광활한 영토를 차지한 것이다. 그 영토가 미국이 20세기에 들어 강대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으니, 그 확장의 과정과 의미에 대한 이해없이는 미국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또한 확장에 대한 향수나 집념이 지금의 미국에도 면면히 흐르고 있음은 부인할 방법이 없다.
우선 우리의 기억에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는 현대역사의 한 장면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미국의 35대 대통령이었던 존 에프 케네디John F. Kennedy는 대통령 경선과정에서 "새 경계 New Frontier"라는 표현으로 미국이 지향할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그 목표는 1960년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선후보로 지명되고 나서 행한 수락연설의 주요 내용이었는데, 이 연설은 이듬해에 있었던 대통령 취임연설과 함께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케네디의 명연설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연설의 기초가 되는 역사인식은 그냥 덤덤하게 듣고 지나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나는 오늘 저녁 서쪽을 보며 한 때 "마지막 경계 Last Frontier"라고 생각되던 곳을 향해 섰습니다. 내 뒤로 펼쳐진 삼천 마일의 땅에서 우리의 옛 개척자들은 그들의 안전과, 안락, 때로는 생명까지도 희생하며 이 서부에 새로운 세상을 건설했습니다......그들은 이 새로운 세상을 강하고 자유롭게 건설하기로, 그를 위해 온갖 위험과 난관을 극복하기로, 안과 밖에서 그들을 위협한 적들을 정복하기로 굳게 다짐했습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투쟁이 모두 끝났다고 말합니다. 모든 지평선을 탐험했고, 모든 전쟁을 이겼으니 이제 더 이상 미국에게 경계는 없다고 말합니다. 나는 오늘 여기 모인 많은 동지들은 아무도 그런 감상에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믿습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있고, 아직 이기지 못한 전투가 있으며, 오늘 우리가 "새 경계 New Frontier"의 언저리에 서있기 때문입니다.
높고 진취적인 기상을 보여야했던 대통령후보지명 수락연설이었다는 사정을 고려하더라도 이 연설에 담긴 역사인식은 영토의 일방적 확장에 전혀 주저함이 없던 미국의 행태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예를 들어, 개척자들이 정복한 “안과 밖에서 (그 개척자들을) 위협했던 적”이 과연 누구였는지 한 번 캐물어 볼 일이다. 케네디가 "안의 적"이라고 지칭할 수 있었던 대상은 순하지만은 않았을 자연환경, "인디언"이라는 처음부터 잘못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진, 오래 전부터 북미대륙에 살고 있던 원주민, 그리고 확장에 전혀 주저함이 없는 행태에 대한 내부적인 비판 등 세 가지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안의 적"들에 대한 정복행위가 정당했는지 꼭 한 번은 묻고 지나가야 할 문제이다. 더구나 이주해온 백인들이 소위 "개척"을 하던 시기가 아니고, 미국이 이미 초강대국의 입장에서 냉전의 한 축을 이끌던 시기에서 이러한 언사가 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밖의 적"은 물론 이웃하고 있던 국가나 북미대륙의 땅을 미리 점령하고 있던 다른 제국주의 국가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인데, 그들에 대한 적시 역시 침략적 시각일 수밖에 없다. 케네디의 이런 일방적 역사인식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러한 확장행위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말아야한다는 호소이다. 태평양에 다다른 후에도 영토의 확장이 끝나지 않았다면, 그 다음은 어디로 행진하겠다는 말일까, 어디까지 가야 완성된다는 말일까를 음미해볼 일이다. 케네디가 재임하는 동안 미국의 우주탐험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달에 사람을 보내고 수성, 화성, 금성 등을 관찰하기 위한 우주선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물론 그의 우주탐험계획이 1957년 성공적으로 발사된 소련의 유인우주선 스푸트니크의 자극을 받은 냉전심리의 발로라는 측면이 없지 않으나, 미국의 역사에서 일관적으로 관찰되는 영토의 확장에 대한 집념을 생각할 때, 냉전이 아니었어도 미국이 우주로 향했을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사실 진취적 개척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진 정복과 확장의 심리는 "경계(境界)" 나 "변경(邊境)"으로 번역되는 "frontier"라는 단어의 어감에 이미 새겨져 있다. 여기 제시한 두 가지 우리말 번역은 아주 정확하지 못하다. 우리 말에서 "경계" 또는 "변경"이란 단어는 이웃이 넘어오지 말아야하고 나도 넘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경계선이라는 뜻으로 이해되지만, 미국의 역사에서의 "frontier"는 부단히 서쪽으로 이동되어야하는, 그래서 항상 일시적일 수밖에 없는 경계선이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언어에 이렇게 판이하게 다른 정서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개척정신"이라는 말도 그냥 쉽게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일 일이 아니다. 주인이 없어서 개척하기만 하면 소유할 수 있는 무주공산이 어디 그리 쉽게 있겠는가. 남의 희생과 눈물을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행할 수 있는 "개척"이 정말 가능한 일인가. 다시 말해서 누군가의 희생 위에 (케네디의 말을 빌자면, 누군가를 정복해서) 이루는 개척은 그 자체가 침략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침략 당시 그 침략을 행한 것도 문제이지만, 훗날 그 침략을 미화하고 정당화 하고, 심지어 그리워한다는 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영국과의 독립전쟁이 마무리되면서 미국은 즉시 서쪽으로의 행진을 시작했고, 그 행진은 바로 영토의 확장을 의미했다. 마치 부여받은 과제를 수행하는 듯, 서쪽으로 서쪽으로 행진하면서 땅을 개척해 차지함으로써 영토를 확장했다. 그러한 확장과정 중에는 "평화적"이었다고 간주되는 거래도 없지 않았다. 1803년에 있었던 소위 "루이지애너 구매 Louisiana Purchase"가 한 예이다. 1800년 산일데퐁소 조약으로 스페인으로부터 "루이지애너"를 돌려받은 프랑스는 1803년 이 땅을 미국에 팔았는데, 이는 미시시피강과 로키산맥의 사이에 있는 광활한 땅으로 현재의 알칸소, 미주리, 네브라스카, 캔사스 등의 지역을 포함했다. 이렇게 광활한 땅을 천오백만 달러에 구입했다고 하니 미국으로서는 참 좋은 거래를 한 셈이다. 영토의 확장뿐 아니라 캐나다를 소유한 영국과 "루이지애너"를 소유한 프랑스로부터 받을 수 있었던 군사적 위협을 현저하게 줄이는 전략적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말이 평화적이지, 그 땅이 프랑스가 팔고 말고 할 수 있는 물건이었는지, 스페인과 프랑스가 자기들끼리 주고 받고 해도 괜챦았던 것인지를 생각해보면, "평화"라는 말은 의미를 잃는다.
미국의 서부로 향한 영토 확장은 그칠 줄을 몰랐고 대부분 평화롭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환경과 북미의 원주민이었던 인디언들은 큰 피해를 보았다. 미국의 영토확장이 원주민들에게 얼마나 잔혹한 경험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예는 수없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콜룸부스가 지금의 산살바도르 해안에 도착해 소위 "신대륙"을 "발견"한 후 있었던 유럽사람들과 미주대륙의 원주민과의 접촉의 이야기는 피로 기록된 역사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미주대륙을 어찌 "신대륙"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 대륙이 방금 생겨났던 게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거기 그렇게 있었고, 유럽사람들이 "발견"하기 훨씬 전부터 그 땅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신대륙"이라 한 것은 완전히 유럽중심적인 일방적 사고방식의 표현이 아닌가. 그 역사를 점철했던 사건 하나하나가 모두 피눈물의 이야기들이었지만, 그 중 "눈물의 길 Trail of Tears"은 참으로 뼈아팠던 예이다.
우리는 세계의 시사를 다루는 뉴스 프로그램에서 종종 "인종청소 genocide"라는 말들 듣는다. 탈냉전 이후 유고연방이 해체되면서 있었던 보스니아 내전에서의 살륙행위에 관한 소식에서 많이 들었고, 아프리카에서 정치적 불안과 군사적 갈등이 내전으로 발전하면 늘 부족간의 전쟁이 그 용어로 기술된다. 그에 비하면 북미대륙에서 백인에 의해 자행된 원주민의 살륙행위는 그 범위나 지속된 기간에 있어서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잔인한 인종청소행위였다. 참 한심스럽게도 나는 어린시절 소위 "카우보이" 영화라는 걸 보면서 안장도 없는 말을 타고 도끼를 휘두르며 공격하는 아파치 인디언의 야만성을 백인들이 현명하고 용감하게 대처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 영화들은 대부분 19세기 말의 사건들을 그렸는데, 사실 그 시점에 다다랐을 때 북미의 원주민들은 이미 거의 살륙되어 의미있는 저항을 할 수 없었고, 그런 영화가 그린 이야기들은 백인들에 의한 정복의 뒷정리임에 틀림 없었다. 원주민들은 그보다 훨씬 전부터 무력화되고, 강제 이주되고, 섬멸되었다. 바로 그 과정에서 원주민들은 "눈물의 길"을 걸어야 했다.
미국의 7대 대통령이었던 앤드루 잭슨 Andrew Jackson은 대통령이 되기 전 미국남부의 민병조직을 이끌 때부터 잔인한 수단과 태도로 원주민과 싸운 것으로 유명했다.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 시작한 원주민 정책은 "제거 removal"이라고 불린다. 함께 섞여 살 수 없으니 멀리 옮기겠다는 것이다. 그의 원주민 이주정책에 희생된 원주민은 촉토, 치카소, 크릭, 체로키, 세미놀 등 다섯개의 인디언 부족으로 미국의 남부, 그러니까 현재의 플로라다 북부와 조지아, 알라바마 등의 지역에 살고 있었다. 그들은 백인들의 표준에서 보아도 "문명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평화적으로 공존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예를 들어 1831년부터 시작된 "제거정책"에 의해 알칸소의 서쪽 땅으로 강제이주 당한 인디언 부족들은 이미 백인들의 생활 습속이나 가치관을 많이 공유하고 있었다. 특히 "제거"작업의 제일 마지막 희생자였던 체로키부족은 그들이 강제이주되던 1835년에는 도로나 학교, 교회의 건설은 물론 대의제에 기초한 정치조직을 만들어 유지할 정도로 "서구화"되어 있었다. 잭슨대통령에 의한 불법적 강제이주 명령에 저항하기 위한 체로키 인디언의 수단이 연방대법원에 청구한 재판이었다는 사실은 백인들이 그들 원주민을 제거하고 격리할 이유가 없었음을 웅변한다. 그러나 때로는 무력, 때로는 법률에 호소한 원주민의 저항은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 "눈물의 길"을 걸어 강제이주를 당하면서 여름에는 콜레라, 겨울에는 폐렴 등의 질병과 식량의 부족으로 인한 기아 등에 희생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것이 백인에 의한 영토의 확장이라는 미국역사의 한 챕터를 보며, 그것을 자랑스러워 할 수 없는 이유이다.
더 마음아픈 일은 원주민 인디언으로부터 땅을 빼앗아 개척하고 소유하고 계속 유입되던 백인 이민에게 나누어준 행위를 "명백하게 계시된 운명 Manifest Destiny"을 받아들이는 순명으로 미화했다는 사실이다. 종교적인 엄숙함 마저 느끼게 하는 이 표현은 미국이 텍사스를 겸병하는 과정에 처음 등장했다. 1845년 확장주의를 천명하던 잡지의 기자였던 죤 오설리번 John O'Sullivan 이 처음 사용한 이 표현은 빠른 속도로 널리 채택되어 서부로 향한 개척과 확장을 부추겼다. 술과 땅을 교환하는 협잡행위를 일삼던 땅 투기꾼들로부터 미국 동남주의 원주민을 강제이주시킨 잭슨 대통령까지 많은 미국인들의 침략적인 영토확장 행위가 이런 인식을 기초로 행해지고 정당화 되었으며, 훗날의 역사에 보이는 그들에 대한 찬양 역시 그런 인식을 기초로 한다.
1846년부터 약 2년에 걸쳐 치른 멕시코와의 전쟁은 선전포고도 없이 치른 명백한 침략전쟁이었다. 후일 미국의 제18대 대통령을 지냈고, 멕시코와의 전쟁에도 참전했던 율리시스 그랜트 Ullyses Grant는 멕시코와의 전쟁이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상대로 행한 가장 정당하지 못한 전쟁이었다고 술회했다. 전쟁의 목적은 단 한 가지, 영토의 확장이었고, 미국은 그 목적을 충분히 이루었다. 그 전쟁의 결과로 얻은 영토는 50만 평방마일에 달해, 현재의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를 비롯해 뉴멕시코와 아리조나의 대부분, 와이오밍과 콜로라도의 일부를 포함해서 텍사스까지를 아우르는 참으로 광활한 영토였다. 멕시코에게 천오백만 달러를 지불했다고는 하나, 침략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힌 부정한 전쟁이었음에 틀림없다.
영토의 확장이 19세기 초부터 미국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역사적 과제였다면, 그 과제는 오늘날 영향력의 확장이라는 모습으로 변질되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이 믿어 의심치 않는 시장중심적 신자유주의를 세상 모두가 배우고 따라야할 생활방식으로 전파하려는 모습에서 서부개척시대에 영토의 확장에 혈안이 되었던 미국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19세기 내내 계속된 영토의 확장이 오늘날 미국이 초강국의 지위에 오를 수 있게 한 토대가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그것을 꼭 자랑스러운 역사로 생각해야할지는 철저히 반성해볼 문제이다. 같은 이유에서 오늘날 미국이 고집스럽게 진행하고 있는 영향력의 확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 역시 곰곰히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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