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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욱선생님 추모의 글

대학시절부터 은사님이셨던 허세욱선생님이 지난 달 초 영면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추모의 글을 썼습니다. ---------- [한겨레신문 2010년 7월3일자] 가신님의 발자취: 허세욱 (외국어대 초빙교수, 고려대 명예교수) "학문의 경계 허문 선생님 업적 새기겠습니다" 선생님, 이른 아침 새소리가 유난히 맑습니다. 홀연히 떠나시려는 선생님을 놓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제 마음을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아 이 맑은 소리가 지금은 오히려 야속합니다. ‘너처럼 미욱한 제자는 몇 번 다시 살아도 이루지 못할 많은 업적을 이루셨으니 감사하며 기꺼이 보내드리라’고 짹짹이는 것이겠지요. 그런데도 선생님 옷소매를 잡고 매달리는 것은 남기신 빈 자리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참 열정적인 학문으로 본을 세..

에세이 2010.08.06

"멍멍이 노래 #5: 착각에서 희망까지"

멍멍이 노래 #5 "착각에서 희망까지" 정말입니다 기도를 알아들어요 아멘이 다 똑같지 않다는 걸 아는 게 분명하다니까요 우리가 밥상에 앉아 잘 먹겠다고 기도하고 아멘하면 소파 위로 올라가 턱을 괴고 눕습니다 감사히 잘 먹었다는 아멘 소리엔 쏜 살 같이 발목 옆으로 달려와 엉덩이 내리고 얌전히 앉지요 그걸 보셔야 해요 우리들 밥 먹는 동안에는 근처에서 서성거려 봐야 국물도 없지만 식사가 끝나면 자기 몫이 있다고 아는 것 아닙니까 아멘 소릴 듣고 어떻게 그걸 구별하는지, 참 다른 집 멍멍이들보다 확실히 지능이 높은 것 같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하는 짓이 정말 다르다니까요 물론 그 뿐이 아닙니다 공 가지고 노는 걸 보세요 이웃집 멍멍이들과는 아주 판이하지 않아요 담요를 물어다 공 위에 얹고 그 아래로 고개를 디..

멍멍이 노래 2010.06.03

빨간 속옷과 유가(儒家)의 가르침

©반빈 "빨간 속옷과 유가(儒家)의 가르침" 재작년인가 중국을 여행하다가 상하이(上海)의 한 주택가 골목에서 목격한 장면이다. 과년한 여인의 속살에 내밀하게 마주 닿아있었을 속옷이 통째로 내걸렸으니 보기에 조금 민망하고 쑥스러웠음은 말할 것도 없겠다. 그런데도 사진까지 찍어 보관했다는 걸 너무 탓하지 마시라. 심각한 관음증(voyeurism)을 앓아 훔쳐보듯이 그 속옷 뒤에 숨어있었을 몸뚱이를 상상한 건 절대로 아니었다. 믿기 어려울지 몰라도 문득 유가(儒家)에서 가르치는 "인(仁)"과 "예(禮)"의 문제에 생각이 다다랐고, 그 이야기를 꺼낼 좋은 화두를 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행을 불러세우고 핀잔을 들을 걸 무릅쓰면서 카메라를 꺼내 찍어둔 것이다. 이 장면처럼 속옷이, 그것도 선명한 빨강색의 여..

에세이 2010.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