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명박박"이라는 꼼수
"명명박박"이라는 말이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만들어졌었다는 사실이 아직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지 궁금하다.
전과기록이 열 번도 넘는다는 소문조차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는지, 지난 번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은 이명박후보를 선택했다. 결과론으로 보면, 무엇에 홀렸는지, 아니면 무엇에 정말 큰 불만이 있었는지, 엉뚱한 선택을 했달 수밖에 없다.
나같은 책벌레는 당연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겠지만 소문의 수준을 넘어 실제의 기록으로, 심지어 자신이 등장하는 동영상으로 명백하게 드러날 구린 구석이 상당하게 있는데도 출마했다는 사실에서 나는 만용과 무감각의 중간 어디쯤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그리 어렵지 않게 국민의 선택을 받았으니 참새가 감히 봉황의 뜻을... 운운하는 말로밖에 정리할 수 없겠다.
돌이켜 보면, 자신의 어두운 과거가 마음에 걸리긴 했었던 듯하다. 요즈음 나꼼수 팟캐스트에서 자주 육성으로 들려주는 "나는 그런 삶을 살지 않았다,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다"라는 호소의 바닥에서 그런 거리낌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거짓은 또 거짓을 낳게 마련이니까. 그런데 그 호소만으로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던 듯하다. 도대체 누구의 말이 새빨간 거짓이냐는 뒷말이 나올 게 뻔했으니 말이다.
그걸 정면으로 돌파한 수순이 바로 모든 걸 "명명박박"하게 밝히겠다는 선언이었다. 언뜻 보면 그럴 듯한 전략이었다. 참모 중에 누군가 꾀돌이라 부를만한 사람이 있었단 모양이다. 우선 후보자의 이름을 적절하게 이용해 귀에 쏙 들어오게 했고, 쉽지 않은 상황을 유머로 헤쳐 나가는 능력이 있다는 평가까지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그건 꼼수였다. "명명백백"을 "명명박박"으로 고친 건 사실은 "한 획쯤 빼고 밝히겠다"는 뜻이었음이 분명하다. "ㅐ"가 "ㅏ"로 바뀌는 과정에서 날아가버린 한 획에는 분명히 무엇인가 중요한 사실이 담겨 있었다. 무언가 가려놓고 밝히겠다는 의중을 마치 명백히 밝히겠다는 뜻인 것처럼 들리게 알렸으니 "꼼수"라는 말의 정의에 적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당선됐으니 꼼수가 통한 것이고, 결국은 국민들이 꼼수를 꿰뚫어 보지 못한 하수였던 것이다.
물론 갖가지 의혹을 달고 산 사람이, 그것도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서 모두 밝히겠다고 했으니, 그걸 액면 그대로 받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온갖 의혹과 함께오는 피곤함을 선거과정을 통해서 몸소 겪었으니 그 때부터라도 그런 꼼수를 써야하는 상황을 피하려 노력할 것이라고 희망적인 기대를 한 사람은 없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 희망적 기대(wishful thinking)의 허상은 지난 몇 년동안 여실히 드러났다. "명백"이 "명박"으로 바뀌는, 말하자면 한 획이 날아가 버리는 정도의 은폐를 훨씬 지난지 이미 오래다. "명백(明白)"에서 "명박"이 되었으니, 조금 더 감추어지고 무시되면 무엇이 될까? 아예 기역 받침도 떼고 "ㅏ"의 꼭지 도 떼어버리면 "명비"쯤 되겠다. 그걸 한자로 쓰려면 어떻게 할까? "明非"라고 쓴다면 "분명히 아니라"는 완전 부정쯤 되겠다.
거기서 한 단계 더 나가면 어찌 되는가? "명비"에서 조금 더 가려 비읍을 미음으로 고치면 "명미"가 되는데, 그러면 한자로는 그걸 "冥微" 정도로 쓰면 되겠다. "명명미미(冥冥微微)". 어둠침침하게 잘 드러나지 않게 하겠다는 뜻이 될 터이다. 어쩌면 근래에 청와대나 정부, 집권여당에서 하고 있는 작태를 보면 이미 오래 전에 이 단계에 이른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그 사람에게 별명으로 따라다니는 설치류 동물이 보여주는, 늘 그렇게 어둠침침한 곳에서 은밀하게 움직이는 행태와 어울리기도 한다. "명명백백, 명명박박, 명명비비, 명명미미......"
(2011년 11월)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맥주이야기 #1: "진짜 맥주" (0) | 2012.01.19 |
---|---|
"그믐날 돼지꿈" (0) | 2012.01.01 |
"길(道)이라는 메타퍼" (0) | 2011.09.09 |
"천국과 지옥" (0) | 2011.07.31 |
"각력(脚力)발전" (0) | 2011.07.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