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각력(脚力)발전"

반빈(半賓) 2011. 7. 26. 19:25

"각력(脚力)발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파머스 마켓(farmer's market)이 하나 새로 생겼다.  소규모 농장의 농부들이 자기가 가꾼 농작물을 손수 들고 나와 소비자들과 직거래하는 이런 시장의 모습은 미국의 여러 도시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런 상거래가 생기기 시작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이제 한 때의 유행이라는 단계를 훨씬 넘어서 미국생활의 확실한 한 부분으로 정착되었다는 느낌이다.  중간 상인들이 배제되었다고 해서 값이 싼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형 수퍼마켓보다 비쌀 걸 각오하고 가야 무얼 살 수 있다.  그러나 건강에 관한 일에 민감해 유기농을 선호하고, 또 부근의 소농들이 대형자본의 전횡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자유로울 수 있도록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소비자가 많아져서 그런지 파머스 마켓은 갈수록 북적거린다.  함께 어우러져 잘 살자는 마음을 상징하는 것 같아 그런 장소, 그런 사람들에게서 훈훈하고 친근한 느낌을 받는다.

 

동네에 새로 생겼다는 파머스 마켓에 대해서는 한두 가지 미담이 들린다.  그 하나에 "각력(脚力)발전"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다.  장터의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음악을 트는데, 자전거를 개조해 만든 발전기로 필요한 전기를 생산해서 충당한다는 것이다.  엄마와 함께 온 아이들은 채소보다 그 자전거 발전기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남편은 채소를 고르러 가고 아내는 그 발전기 앞에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도 흔히 보인다.  힘을 보태는 일에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없는 듯하다.  다리로 자전거 페달을 밟아서 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니, 글자 그대로 각력발전이다.  좋은 점이 한둘이 아니다.  우선 무공해이고 친환경적이다.  무얼 태워서 얻는 열을 쓰는 것도 아니고, 댐을 쌓아 흐르는 물을 막을 필요도 없다.  페달을 밟는 힘이 다리에서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엄격하게 말하면 무한정이라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그 장터에서는 필요한 양의 몇 배가 늘 비축되어 있다.  말하자면 충분히 재생되는 에너지를 사용해서 전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일부러 돈 내고 시간 내서 피트니스센터에 가도 결국 그 비슷한 운동기구 위에서 다리 힘을 쓰며 땀을 내는 것이니 장터에서 같은 동작을 해도 건강에 좋은 건 마찬가지 아니겠나.  게다가 장터에 모인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음악을 제공하는 데 힘을 보태니, 일석이조(一石二鳥)가 아니라 "일석삼사조"라고 해봄직하다.

 

미담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 연구해서 그런 설비를 고안하고, 장비와 부품을 구입해 뚝닥거려야 필요한 발전기를 만들 수 있는데, 그러자면 당연히 비용이 든다.  그 비용을 이곳에서 상당히 안정된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뉴시즌"이라는 수퍼마켓 체인에서 제공했다고 한다.  그 수퍼마켓도 세계 각지의 농산물을 유통하는 큰 자본에 맞서 이 지역의 농산물을 제공하는 사업원칙으로 이름이 있으니 어찌 보면 파머스 마켓은 그 수퍼마켓의 경쟁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영세적인 파머스 마켓을 돕겠다고 발전기 개발과 제작의 비용을 냈다는 것이니 참 재미있는 일이다.  그 수퍼마켓의 담당자가 한 말이 신문에 인용되었다.  함께 먹고 살자는 자선의 의미에서 그 비용을 댄 건 아니라는 게 요지였다.  파머스 마켓이 성공한다는 건 근처의 농장에서 생산하는 신선한 농작물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진다는 뜻인데, 그게 비슷한 개념으로 운영하는 자신들의 수퍼마켓에 도움이 되면 됐지 손해날 일이 아니라고 했다.  말하자면 당장의 손익에 구애되지 말고 큰 그림을 보면 파머스 마켓과 그 수퍼마켓은 함께 성장하고 성공할 수 있는 비지니스라는 생각이다.  그 설명이 정말 이치에 맞는지를 떠나 아무튼 듣기에 흐뭇한 미담이다.  근시안적으로 "경쟁"의 씨를 말려야 성공한다는 생각에 대한 대안이 있음이다.

 

"각력발전"이라는 노력에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요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조그만 장터에 음악을 트는 정도의 전기를 만드는 게 무에 그리 대수냐고 무시할 일이 아니다.  전기(電氣)의 발견과 그걸 만들어내는 방법의 발명이 인류의 역사에 크게 공헌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문명의 혜택을 누리는 동안, 우리가 사는 이 땅은 적지 않은 댓가를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수력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흐르는 물길을 막아야 한다.  "화력발전"은 석탄이나 석유를 태워야 한다.  "원자력발전"의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꼭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와 같은 대형사고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참으로 크다. 

 

"조력발전"이나 "풍력발전", "태양력발전"이 비교적 건강한 대안으로 제시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물론 "각력발전"은 말을 꺼내기가 어색할 정도로 그 효과가 미미하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생산되는 전력이 몇 킬로와트냐는 단순한 계산방식을 넘어서서 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장터에 모인 사람들이 해결할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무언가 의미있는 방식을 찾아 해결에 참여하고, 그 과정에서 신명나는 즐거움을 느끼게 될 때, 어디서 어떤 창의력이 발동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일 아닌가.  "괜챦아, 괜챦아" 하면서 원자력발전소를 지어대는 정부의 방식에 마취되어 문제에 대한 아무런 자각이 없이 그냥 전기를 사용하는 무감각에 비하면 훨씬 사랑스러운 모습이 아닌가.

 

(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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