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逌根
〈過善竹橋〉
五百年間劇逝波,
荊榛極目臥銅駝。
凄凉滿月臺前草,
蕭瑟杜門洞裡家。
春眷天心知有在,
悠悠人力欲如何。
可憐善竹橋邊血,
扶植綱常賴已多。
注:餞送仲父赴任寧邊至開城時所做五首之一。二句用〈荊棘銅駝〉事:「靖有先識遠量,知天下將亂,指洛陽宮門銅駝,嘆曰:「會見汝在荊棘中耳。」見《晉書》〈索靖列傳〉。頷聯滿月臺、杜門洞,為高麗朝松京周圍之史蹟。滿月臺為高麗晚期高麗王宮。杜門洞為高麗滅亡後遺臣七十二人進而拒絕出仕之處。七句善竹橋為高麗末鄭夢周因反對新進士大夫革命而被刺殺之處。
김유근
"선죽교를 지나며"
오 백 년이란 시간은
어느 덧 흘러간 물결
눈길 닿는 끝까지 모두 덮은 가시덤불에
구리로 빚은 낙타가 누었습니다
만월대 앞이
잡초로 처량하고
두문동 안은
집들이 쓸쓸합니다
봄을 아끼는 하늘의 뜻이
있음을 분명히 알면서
아득한 사람의 힘으로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선죽교 부근에 뿌린
피는 안타깝지만
삼강오륜을 굳게 지키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주: 영변으로 부임하는 숙부를 개성까지 전송하고 그 옛 도읍지를 유람하며 지은 시 다섯 수의 하나입니다. 둘째 구절의 구리 낙타는 궁전에 세워 두었던 장식품으로 도읍지나 궁전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그것이 가시덤불 속에 있다는 표현은 《진서晉書》 〈삭정열전索靖列傳〉이 출전입니다. 삭정은 앞날을 내다보는 능력이 있어 천하가 어지러워질 것을 알고 낙양성 궁전의 구리 낙타를 가리키며 가시덤불 속에 있게 될 것이라 탄식했다고 합니다. 둘째 연의 만월대와 두문동은 고려말의 역사와 관계된 지명으로 만월대는 고려말의 궁전, 두문동은 역성혁명을 반대한 사대부 일흔 두 명이 새 왕조의 벼슬을 거절하고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는 곳입니다.
(반빈 역)
Kim Yu-gūn
"Passing by the Sōn-juk Bridge"
Five hundred years of time
Are waves that have gushed away.
On brambles stretching to the limits of my eyesight,
Copper camels are lying.
Before the Full Moon Terrace
Is desolate with overgrown weeds;
In the Grove of No-Exit Gate
Are bleak houses.
We know that there is
Heavenly intent cherishing the spring;
What can be desired
With the power of human beings so faint?
Lamentable is the blood
Shed by the Sōn-juk bridge,
But that helped preserve
The fundamental principles of human relations.
Notes: This is one of five poems written around Kaesōng to where the poet accompanied his uncle appointed to a post in Yōng-byōn. The second line alludes to the story of Suo Jing (索靖, 239-303), who, with his ability to know the future, anticipated the onset pf disorder. He lamented to the copper camels, telling them that they would be lying on thorny brambles. This story is recorded in the "Biography of Suo Jing" in the History of Jin Dynasty. The second couplet refers to two historical sites related to the end of the Koryō Dynasty. The Full Moon Terrace (Man-wōl-dae) was the residence of the kings in later years of Koryō. The Grove of No Exit Gate (Tu-mun-dong) was the village where seventy-two scholar-official of Koryō lived, refusing to come out and serve in the court of the new dynasty, Chosōn. The Sōn-juk Bridge in Line #7 is the location where Chōng Mong-ju (鄭夢周, 1337-1392) was assassinated by those who were planning the coup d'état to overthrow Koryō.
(H. Rhew, 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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